테너 박인수
데뷔 50주년 기념 음악회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1989년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 선생은 정지용의 시 〈향수〉를 가사로 한 동명의 노래를 열창했고, 이 무대를 통해 박인수 선생은 대중에게 더욱 널리 알려졌다.
사실 박인수 선생은 귀국 훨씬 이전부터 수백 편의 오페라 공연을 통해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가볍고 유쾌한 모차르트와 도니제티, 벨리니의 오페라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가 노래하는 ‘플로레스탄’을 들은 뉴욕 타임즈의 저명한 평론가 피터 데이비스(Peter Davis)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피델리오의 플로레스탄을 노래한 박인수는 훌륭한 음질과 영웅적인 폭을 가진 테너다”(뉴욕 타임즈 1972. 12. 17)
미국과 캐나다, 남미와 유럽에서 주역 테너로서 놀라운 성공을 거뒀으며, 1983년 귀국해 20여 년 간 모교인 서울대에서 제자들을 양성했고, 3백여 회의 오페라 주역과 2천 회를 훌쩍 넘는 콘서트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테너 박인수 선생이 데뷔 50주년을 맞이해 9월 1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기념 음악회 ‘향수’를 개최한다.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박상현)를 비롯해 박인수 선생의 제자이자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테너 김성빈, 김성준, 김성진, 류정필, 박현재, 신동원, 양인준, 윤상준, 이병삼, 이상규, 이성민, 정규남, 정의근, 정호윤이 출연하며, ‘1부 테너들의 향연-박인수의 제자들’, ‘2부 테너 박인수 애창곡’, ‘3부 테너 박인수와 제자들’로 나뉘어 오페라 아리아, 한국 가곡, 민요 등을 선보인다.
1962년, 서울대 음대 3학년 2학기 때 서울대 음대 강당에서 슈만의 「시인의 사랑」 전곡으로 독창회를 가진 것이 박인수 선생의 정식 데뷔 무대였다. 지금도 국내 무대에서 전곡을 감상하기 힘든 그 작품을 50년 전 대학생이 노래했다니 당시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계속해서 공연을 해오고 있기 때문에 ‘데뷔 50주년 기념 음악회’라는 것이 저 스스로에게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습니다. 꽤 오랜 세월 노래한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제자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점이 제게는 더 큰 결실입니다.”
제자들에게 음악에 있어서 첫째도 소리, 둘째도 소리를 강조해 온 선생은 좋은 소리를 내야 청중이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어떤 방법이 낫고, 어떤 소리가 좋은 것인지를 고민한 선생은 다양한 방법을 자신에게 직접 실험해 보고 효과가 있으면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선생은 이런 과정들 속에서 제자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는 것이 진짜 보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서울대 음대에서 20년간 봉직한 후 8년째 백석대 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서 후학 양성을 이어가고 있는 선생에게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테너가 많다.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주역 가수로 오랜 기간 활약한 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테너 박현재,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 영국 로얄 오페라 하우스,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의 무대에서 주역 가수로서 명성을 쌓은 신동원, 독일 함부르크 국립극장 주역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의 주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정호윤 등을 비롯해 많은 제자들이 국내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은 이미 ‘박인수와 음악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제자들과 함께 활동해 오고 있다.
이번 데뷔 5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이러한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박인수 선생은 50주년이기 때문에 과거를 회상하는 기분으로 당시 즐겨 부르던 곡을 선곡해 2부에서 노래할 예정이다. 박인수 선생은 이번 9월 공연에 앞서 지난 여름 미국 LA 디즈니 콘서트홀 등에서 제자들과 함께 세 차례의 데뷔 50주년 기념 음악회를 가졌으며, 이 기념 음악회는 9월 19일 대구, 11월 4일 부산으로 이어진다.
스승의 발자취를 느끼고, 하나되는 시간
박인수 선생과 인터뷰를 하고 그 며칠 후인 8월 14일 서울대 중강당에서 다시 박인수 선생과 그의 제자들을 만났다. 삼성 드림클래스 중 하나의 일정으로 개최된 8월 14일 음악회에 ‘박인수와 음악친구들’이 출연한 것이다. 드림클래스 2012 여름 캠프는 다양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은 전라남도 읍·면·도서지역 중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3주간 실시된 것으로, 그 날 ‘박인수와 음악친구들’은 「그리운 금강산」, 「목련화」, 「거위의 꿈」, 「마법의 성」,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새타령」, 「진도아리랑」, 「오 해피 데이」 등을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냈다.
리허설 후 잠시 진행한 인터뷰에는 이 날 음악회에 출연한 정규남, 김성준, 조현호, 전종옥, 왕승윤, 양인준, 신동원, 박현재가 자리 했다. 그들은 모두 서울대 재학시절 박인수 교수와 처음 만나 지금까지 돈독한 사제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가 학생이었을 때도 그러셨지만 지금도 연주 활동을 많이 하십니다. 연주가 있는 날은 레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인데, 선생님께서는 연주 직전까지도 레슨을 하셨어요. 그런 선생님이 저희에게는 슈퍼맨처럼 보인 적도 많았지요. 레슨을 해주신 후에는 그 날 레슨이 없는 제자까지도 모아 자주 밥을 사주셨어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옷은 물론 신발, 안경, 시계 등을 나눠주시기도 했고요. 저희에게 성악가로서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주셨지요.”(정규남)
“가족의 다른 말인 식구(食口)가 한문 그대로 풀이하면 같이 밥 먹는 사람을 뜻하듯, 저희 클래스는 학창시절에는 레슨 후, 그리고 지금도 연주 후 꼭 식사를 함께 합니다. 학창 시절 오전에 레슨을 받은 후 교내 식당에 열댓 명 정도 되는 제자들이 선생님과 같이 식사하는 모습에서 식구같은 느낌을 받곤 했지요.”(박현재)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은 그들은 “일반적으로 교수님이라고 하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대하기가 어렵지만, 박인수 선생님께서는 가족처럼 대해 주셨고, 덕분에 아버지, 할아버지를 뵙는 것처럼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 덕분에 그들은 “제자들이 선생님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상한 조직”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며, 그 정도로 각별한 클래스임을 과시했다.
“박인수 선생님의 후임으로 서울대에 와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놀랐고, 선생님을 더 존경하게 된 것이, 선생님께서 서울대에 20년간 봉직하셨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뛰어난 제자들을 키워내셨다는 점입니다. 활동하며 만난 성악가들께서도 제가 박인수 선생님을 사사했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좋은 테너를 많이 키워낸 비법이 무엇인지 묻곤 하십니다. 저 역시 선생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네요.”(박현재)
이어 “선생님께서 후학 양성을 잘하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해봤다”는 박현재는 “선생님 가르침의 큰 특징은 연간 200회 이상의 무대를 계속 하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은 물론 다른 제자들도 스승의 무대를 보고, 한 무대에서 노래하기도 한 것이 큰 도움이 된 듯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한 “음악회 전에 리허설을 하면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자신의 기량을 전부 사용하지 않는 성악가들이 대부분인데, 박인수 선생님께서는 리허설도 실제 연주처럼 하라고 하시는 등 강하게 키우셨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9월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을 스승의 데뷔 50주년 기념 음악회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은사님께서 그 동안 걸어오신 위대한 길을 제자들이 느끼고, 밟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이 지금은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한 자리에 모여 하나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박현재). 외국에서 활동하거나 국내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등 각자 활동이 바빠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번 데뷔 50주년 무대를 계기로 명절에 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누듯이 선생님과 선, 후배 제자가 모여서 명절처럼 소중하고 즐거운 축제가 되길 소망합니다(왕승윤).”
글_ 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테너 박인수
신동원
박현재
정규남
양인준
조현호
왕승원
김성준
전종옥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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