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작곡가 최고원 / 음악춘추 2012년 6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2. 6. 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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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최고원
강한 의지력으로 일구어 낸 음악세계

 

현재 서울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작곡가 최고원은 부산예고 제9회 졸업생으로 작곡과에서 처음으로 서울대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를 만나 먼저 부산예고를 빛낸 10인에 선정된 소감을 묻자, “일단 부끄럽습니다(웃음).”라며 멋쩍게 웃어 보인 그는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리고, 앞으로 학교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피아노 전공생으로 부산예고에 입학한 최고원은 반복된 연습보다 매번 새로운 일을 하기를  원하였고, 작곡과로 재입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처음 예고에 입학하고 보니 함께 음악을 공부할 친구들 중에서도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에 많은 실망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인문계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인문계 학교의 음악 선생님이 작곡 전공이셨는데, 그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작곡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 후 1년간 작곡을 공부해서 다시 부산예고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예고로 돌아올 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더욱 막중했기에 더 큰 의지와 용기가 필요했다는 그는 어려운 결정이었던 만큼 입학 후에는 모범생이라 불릴 정도로 작곡과 공부만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부산예고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하여 정태봉 교수를 사사한 그는 “장정익 선생님께서 명예 퇴직하신 이후 박사과정에서도 정태봉 선생님을 사사하고 있는데요. 제가 결혼을 하고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제 뜻과 다르게 공부에 소홀해지고 있어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사실 지금 둘째 아이를 낳은 지도 삼 주밖에 안 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꾸만 선생님을 피하게 되고 도망 다니게 되네요(웃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묵묵히 지켜봐 주고 계셔서 너무나 감사할 다름입니다. 또한 부산예고 시절 많은 도움을 주셨던 이승호 선생님과 저의 상황을 항상 배려해 주셨던 장정익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라며, 작곡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추기도 하였다.


서울대를 졸업한 후 일본 정부 문부과학성 초청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는 동경예술대에서 노다 테르유키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일본 동경 공과대학 미디어학부 강사를 역임한 바 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정태봉 선생님께서 일단 언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일본으로 유학 갈 것을 권유해 주셨어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좋아했던 작곡가가 노다 선생님이셨는데 동경예술대학에 입학하며 선생님께 배울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적은데 비해 일본에서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곡가를 쫓아다니면서 현대음악 작곡 발표회를 보러 다녀요. 노다 선생님의 퇴직 음악회에도 많은 고정 팬들이 찾아오시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랍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현재 운지회, 한국여성작곡가회, I.S.C.M., 한국음악협회 부산광역시지회 회원이자 부산예고, 수원대, 경기예고에 출강하고 있는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론에 대한 기초가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며, “작곡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음악이론의 기초가 안 되어 있거나 잘못되어 있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너무나도 많습니다. 작곡은 학문적인 부분이 많아 스스로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해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지요. 요즘 학생들은 의지력이 약해서 안 되면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될 때까지 노력하는 치열함을 가지고, 다양한 공부를 통해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부산에도 좋은 선생님들이 많으시지만 대다수의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음악가 분들은 서울에서 지내시다 보니 아무래도 환경이 조금 열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런  분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아 정보도 한 발짝 느릴 수밖에 없고요. 이러한 부분들이 조금 안타깝습니다.”라며, 본인 또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향인 부산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며 말을 마쳤다.


글 박진하 기자 / 사진 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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