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합창지휘자 이상훈
국립합창단의 미래는 더 많은 관객들의 관심과 격려에 달려있다
국립합창단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올해로 창단 41년을 맞은 국립합창단은 국내 60여 개에 이르는 전문 합창단의 효시로써 1974년 창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립합창단의 역할은 크게 과거와 현재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과거의 역할은, 첫째 국민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우리의 정서를 담은 한국적 합창곡을 만들어 보급하는 일, 둘째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최고의 오페라 합창을 제공하는 일, 셋째 국내외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최고의 심포닉 콰이어를 제공하는 일, 넷째 문화적으로 척박한 지방도시에 수준 높은 합창음악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현재의 역할은, 첫째 여타의 지방 시립합창단에서는 기획하기 힘든 대형 창작합창곡들을 만들어 내는 일, 둘째 국내에서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수준 높은 심포닉 콰이어를 제공하는 역할이다. 전세계를 무대로 매년 굵직한 음악페스티벌에 초대되면서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합창단으로서 그 활동범위를 세계로 넓혀가게 되었고, 셋째 국내적으로는 60여 개 이상의 지방 시·군립합창단이 만들어지면서 지방 순회 대상지역을 더욱 척박한 지역으로 확대하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방방곡곡 문화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방연주를 가지게 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국내합창계를 위하여 지속적인 차세대 합창지휘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고교 합창경연대회와 어르신 합창경연대회 등을 기획하여 합창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전임지휘자가 이룬 국립합창단의 업적 중 본인이 수긍하고 따라한 일과, 본인이 독창적으로 새로이 한 일은 무엇인가?
전임지휘자였던 나영수 감독님께서 시작하신 일이 미래의 한국합창을 이끌고 갈 신진 합창지휘자들을 발굴하여 전문합창단 연수 경험을 갖게 하는 데뷔콘서트 프로젝트였다. 이번 상반기로 11회째를 맞이하며, 21명의 신진 합창 지휘자들이 적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친 연수경험을 토대로 데뷔콘서트를 통해 국립합창단을 직접 지휘하며 공식적인 데뷔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젝트를 거친 이들은 현재 국내 대학의 교수나 강사, 지방 시립합창단의 지휘자나 부지휘자 등으로써 활발한 활동을 하며 미래 한국합창의 리더로써 착실한 준비를 다져오고 있다.
또한 국민이 함께 부를 수 있는 합창곡을 만드는 프로젝트인 기존의 가곡, 민요 편곡 및 창작사업을 본인은 보다 실용성 있는 합창곡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가곡 같은 가요, 가요 같은 가곡이라는 컨셉으로 바꾸어 많은 합창곡들을 만들어 내고 새로 만들어진 곡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실황 음반과 악보를 함께 보급하는 일에 힘썼다.
이 외에 본인이 지난 3년간 새로이 시작한 일은 보다 본격적으로 합창지휘 리더들을 교육 혹은 재교육시키기 위하여 〈합창지휘 아카데미〉를 개설한 일이다. 초기에는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를 설득시키는데 애를 먹었지만, 이제 3기에 이르며 매 기수마다 합창지휘 전문가들들 모셔서 각 분야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최고의 강사진, 최고의 프로그램이라는 호평 속에 기수마다 40~50명에 이르는 많은 참가자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강의를 수강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는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두 번째 새로이 한 일은 합창지휘 경연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 대회는 국내외 수많은 합창지휘 전공 학생들에게 전문 합창단 지휘의 경험을 갖게 하며, 함께 공부하는 동년배의 다른 학생들과 자신의 기량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국내 유일의, 아마도 세계 유일의 전문합창단 주최 합창지휘 경연대회일 것이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며, 이제는 외국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참여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고, 외국 국적의 학생들도 문을 두드릴 정도의 대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세 번째 한 일이 전국 골든에이지(어르신) 합창경연대회를 연 것이다. 국립합창단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이 우리나라의 합창계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국립합창단은 이미 8년 전부터 대학입시 등으로 위축된 고사 직전의 위기에 처한 고교합창음악의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전국 고교합창 경연대회를 개최해 왔으며, 이제 어르신들을 위한 합창단의 발전을 위하여 지난 2011년,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셨던 최광식 장관의 적극적인 이해와 도움으로 제1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배 실버합창경연대회를 그 해 10월 국립극장에서 성황리에 열 수가 있었다. 지난 해였던 2013년에는 전국 예선을 갖도록 확대되어 전국을 돌면서 예선대회를 치르며 땀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르신들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또 즐거워하시던지 전국 순회 심사의 피로를 경연대회장에서 다 날려버릴 수가 있었고, 어르신들이 합창을 통하여 노년의 여가생활을 보다 건강하고 풍요롭게 누리시는 모습에 기획자로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네 번째 역점을 두고 힘쓴 일이 남기는 일이었다. 국립합창단 41년의 역사 가운데 마땅히 내놓을 만한 음반이 드물었다. 3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3장의 CD(애창곡 모음, 아카펠라, Voices of Korea)와 1장의 DVD 세트(오라토리오 모음, 2장의 DVD), 3장의 창작 편곡 합창곡 CD 그리고 4장의 한국가곡 CD(한국가곡 보급용, 국립합창단원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짐)가 만들어졌다. 총 10장의 CD와 1세트(2장)의 DVD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 외에도 국립합창단이 가지고 있는 악보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누구나 쉽게 국립합창단이 가지고 있는 악보에 접근하여 악보를 검색 및 구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써 방대한 한국합창곡 중심의 작업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립합창단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이룩한 일 중에 자랑스러운 점과 후회스러운 점이 있다면?
지난 3년간 국립합창단의 정기연주회는 음악사적 가치가 있는 전통적인 오라토리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국립합창단의 우수한 성악적 기량을 토대로 예술의전당이라는 작지 않은 연주홀에서 연주할 때, 국립합창단의 효용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고민하였고, 그 결과 이제까지 크게 관심 받지 못했던 오라토리오 분야라는 판단이 섰다. 대부분 2시간 이상의 긴 작품들이었기에 일반 청중들에게는 지루하거나 종교적인 주제들이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충성 관객들의 평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관람한 작품의 감동으로 인해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관심을 갖고 예매하는 관객들이 늘게 된 것이다. 또한 관객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한국 성악가들을 발굴 및 초청하여 오라토리오 독창자로 기용한 것도 성악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이 보다 국립합창단의 연주에 관심을 갖도록 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같은 날 서울의 다른 연주회장에서 열리는 유수의 세계 음악인들에 의한 연주와도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소프라노 임선혜·박은주, 테너 강요셉·김세일, 베이스 정록기·나유창·손혜수 등과 함께 만들었던 바흐의 「요한수난곡」, 「마태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엘리야」, 「사도바울」, 「메시아」, 「크리스투스」 등은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연주로 기억된다.
아쉬운 점은 국립합창단이 이제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운영시스템이 시급한 상황에 이제 겨우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고민하여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시점에 임기를 마치게 된 점이다. 좀 더 시기를 당겼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섞인 후회의 마음이 크다. 단원들을 통제하고 구속하기 위한 시스템이나 이에 따른 매뉴얼이 아니라, 단원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운영시스템과 이에 따르는 변화된 매뉴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후임자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많은 성악가들이 국립오페라단과 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스러워 한다. 국립오페라단과의 협력은 필요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찌해야 하는지?
국립합창단이 독립 법인화하면서 구조적으로 생겨난 문제이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국립합창단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많이 들어왔지만 실제 재임하면서 느낀 것은 억울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우선 본인의 재임 동안 국립합창단은 최선을 다하여 국립오페라단에 협조를 하였다. 이것은 국립오페라단도 인정할 줄로 믿는다. 바로 다음 주에 「마태수난곡」 연주가 있으면서도 그 연주 내내 오페라 연습을 하였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였다. 예술의전당의 오페라극장 대관신청과 콘서트홀 대관신청이 분리되어 있다 보니 늘 콘서트홀 대관 확정 후에 오페라공 연 협조 요청이 들어와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국립합창단 정기연주회 일정을 다른 민간단체의 연주하기 불편한 날짜와 바꾸면서까지 오페라 공연에 최선을 다하여 협조하였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오페라극장이라는 하나의 하우스 안에 오페라단, 합창단, 발레단, 오케스트라가 다시 모이지 않는 한 그 해결책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이제는 제2의 국립극장이 새로 마련되어져 하나의 하우스 안에서 흩어졌던 위에 언급한 국립예술단체들이 다시 함께 모여 그야말로 제대로 된 시너지효과를 도모해야 할 때가 아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고 있다.
오페라 합창은 성악적인 기량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단원들의 연기 또한 필요한 장르이다. 국립합창단은 이와 관련하여 여타의 사설 오페라 합창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경험과 연륜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그렇다면 국립합창단을 국립오페라단의 흡수 혹은 합병을
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해결책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오페라단이 합창단을 운영할 재정적, 행정적 능력이 있다면 그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나 국립합창단은 위에서 언급한 감당하여야 할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있기에 섣부른 합병이나 흡수보다는 국립합창단의 규모 확대를 통한 해결책을 주장하고 싶다. 즉, 대규모 그랜드오페라에서는 80명 규모의 대합창이 오페라합창을 담당하고, 소규모합창이 필요할 때는 합창단의 일부가 합창을 담당하면서 나머지 합창단은 국립합창단 본연의 역할을 계속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해결책은 물론 독자적인 오페라 합창단을 갖는 일이다. ‘성악의 나라’로 불리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전국에 50여 개 이상의 오페라 합창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 문제는 후에 좀 더 심도 깊게 논의 되어야 할 것이다 .
지난 임기 동안 관객들과의 교류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관객들의 반응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현재 전국에 60여 개가 넘는 시·군립 합창단들은 대부분 정통 클래식 합창음악과 대중적인 합창음악을 때로는 안무를 곁들인 춤을 섞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합창단이니만큼 시민들이 즐거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주회를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국립합창단을 맡은 본인의 생각은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정통성 있는 작품들로 새롭게 디자인하여 새로운 디자인에 청중들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하자는 쪽이었다. 합창을 듣는 새로운 감동을 디자인해 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서울지역, 예술의전당을 주무대로 연주를 갖게 되는 국립합창단은 충분히 이런 디자인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다. 아니 어쩌면 청중들은 이미 이런 정통성 있는 연주회를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취임연주부터 멘델스존의 걸작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연주하였다. 그리고 취임 첫 해 크리스마스 음악회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전곡 연주를 감행하였다. 거의 세 시간 반에 이르는 연주시간으로 인해 예술의전당조차 난색을 표했다. 합창단 담당자도 예당 측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본인이 나섰다. 연주회 시작 시간을 저녁 8시에서 7시 30분으로 앞당기고, 전반부 연주가 끝난 후 30분간의 로비 콘서트를 갖는다는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하여 예당 측의 허락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유럽에서 식사시간을 사이에 두고 전곡연주를 하는 전통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질 수 있었다.
매년 연말이면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메시아 연주에 식상한 청중들에게 무엇인가 새로운 메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었던 나의 생각이 반영된 두 번째 크리스마스 음악회는 리스트의 「크리스투스」였다(2012년 12월). 독일 유학시절 우연한 기회에 선물 받은 엄청난 두께의 총보를 바라만 보며 거의 17-8년 동안을 서가에 꽂아만 놓았었는데 2011년,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있었던 「크리스투스」 세계 동시 연속연주 프로젝트에 한국을 대표하여 참여하며 아시아 초연을 하였던 작품이었다. 이렇듯 본인의 국립합창단과의 연주는 국립합창단으로서는 당연히 40년 역사의 합창단 역사에 필히 연주목록에 있어야 할 곡들을 부지런히 연주하는 시간들이었고, 청중들에게는 외국 연주단체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유산과 같은 작품들을 친절한 한글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본인의 마지막 예술의전당 연주는 지난 3월 있었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이었다. 2011년 12월의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와 2012년 3월, 바흐의 「요한수난곡」을 원전 악기에 의한 원전연주로 만들었었기에 이번 마지막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도 원전연주로 만들고 싶었지만 두 개의 오케스트라로 편성된 이 작품을 연주하기에는 아직은 원전악기만으로 구성되어진 국내연주자들이 충분하지 않고 부족한 연주자를 가까운 일본에서 모셔오려니 재정적인 어려움과 함께 국내연주자로서만 언젠가 「마태수난곡」 전곡 연주를 해 보고 싶은 욕심에 이번에는 현대악기로 바로크풍의 연주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접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고악기에 의한 원전연주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고 콘서트홀의 크기가 고악기로 연주하기에는 규모가 큰 실제상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임기 중 바흐솔리스텐서울(지휘자/김선아, 악장/최희선)과의 계속된 협업은 국내 고음악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고음악에 관심 있는 청중들에게 이러한 고음악적 접근은 또 하나의 국립합창단 연주를 찾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7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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