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피아니스트 신유민 - 커버스토리 / 음악춘추 2018년 2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8. 2. 12. 14:49

커버스토리 / 피아니스트 신유민

음악춘추 2018년 2월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신예 피아니스트


신유민은 11살의 어린 나이에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찍이 국내 유수의 콩쿠르들에 입상해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신유민은 유학을 떠난 이듬해에 리스트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그 실력을 증명했다. 이후 2014년 독일전국콩쿠르 1등, 2015년 이태리 비에트리 술 마레 국제콩쿠르 대상, 2016년 이태리 안토니오 나폴리타노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바두라 스코아를 비롯한 거장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녀의 음악은 꾸준히 성장해왔고 현재도 배움에 열중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며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와 동시에 이태리 카타니아 라흐마니노프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신유민을 만나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제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영향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렸을 때 노래를 많이 불러 주셨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누군가가 반주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반주자를 자처하면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다니는 성당에 미사 반주를 하기 위해서도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피아노 스승님은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께서는 굉장히 엄격하셨고 연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에게 하루에 9시간씩 연습하게 숙제를 내주셨는데, 저는 피아노 치는 것이 즐거워 신부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당시에 신부님께서 성실하게 연습에 임하는 자세를 잘 다져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어머니와 함께 10년 전부터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찾아가서 저의 음악을 들려드리는데, 그곳에 계신 분들께서 저의 음악을 듣고 정말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어린나이에 유학을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첫 스승이신 신부님 덕분입니다. 가톨릭대학교 음대교수로 재직하시고 이태리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고 오신 신부님께서는 저에게 유학을 가서 타국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연주회를 많이 가야 한다고 당부하셨고, 당시의 어린 나이의 저는 당장 유학을 떠날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에 유학의 꿈을 새기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신부님께서 가톨릭 영재음악원에 원장으로 계시다보니, 학생들을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셨던 것 같습니다.
2008년도에 독일로 떠나서 유학생활을 한지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유학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어느 나라로 갈지를 정확하게 결정하지 못해서, 유학지를 정하기 위해서 러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 다녀왔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독일 선생님이신 Gelinde Otto 선생님의 마스터 클래스가 한국에서 열리게 되었고, 선생님께서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한 저를 보시고 당장 독일로 함께 가자는 제안 하셨습니다. Gelinde Otto 선생님께서는 제가 유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부분들을 세심하게 챙겨 주셨고,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서 많게는 일주일에 3번씩 콘서트 무대에 세워주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2009년 2월부터 3월까지 독일에서 열렸던 제2회 프란츠 리스트 국제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제안들을 받고 도움을 받으면서 독일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Gelinde Otto 선생님의 보살핌과 가르침 속에서 저는 바이마르로 유학지를 정하고 바이마르 음악고등학교에서 3년반 정도 공부했고 하노버 예비학교에 입학한 1년 뒤에 학사과정을 밟기 시작하여 현재 하노버 음악대학교에 4학년으로 재학 중입니다.


박경우 선생님과의 이야기
저는 6학년 때, 유학을 떠나기 전에 박경우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습니다. 유학생활을 10년가량 하면서 새로운 기회와 좋은 결과들이 생겨, 좋은 소식을 듣고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와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에 입원 중이셨던 선생님께서 저를 레슨해주시기 위해서 퇴원을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내색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더 자주 레슨을 받으러 오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몇 번씩 레슨을 가기도 했었죠.
다른 곡을 레슨 받으러 간 저에게 “네가 친 쇼팽의 「바르카롤」이 듣고 싶다.”고 레슨곡을 바꾸기도 하셨고, 함께 모차르트의 「협주곡 21번」을 연주하고 싶다고 하셔서, 저는 전혀 선생님의 마지막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건강이 나빠지셨다는 것은 알았지만, 전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시다보니 그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셨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잡혀있던 레슨 며칠 전에 갑자기 오지 말라고 하셨고, 그 이후에 선생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레슨 중에 마치 유언처럼 저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며, 연주에 책임감을 느끼라는 말과 “너는 대가가 될 것이다. 외국에서 활동을 오래하다가 천천히 귀국하라.”고 격려의 말씀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혹은 이를 준비하면서 느낀 자신의 음악은?
가장 기억에 남는 콩쿠르는 처음으로 참가했던 국제 콩쿠르인 리스트 콩쿠르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처음으로 외국 관객들 앞에서 연주해야 했고, 처음 출전하는 국제 콩쿠르인 만큼 준비할 당시에 마음가짐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요.
사실 콩쿠르 같은 경우에는, 콩쿠르가 개최되는 장소에 갔을 때보다 준비할 때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요. 아무래도 경쟁을 해야 하니 즐길 수도 없고, 제 음악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니까요. 계속적으로 제 음악을 체크하면서 ‘이 연주가 너무 주관적인 해석으로 연주하는 것인가? 조금 더 논리적이게 들릴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음악적 해석과 연습에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콩쿠르에서 만나는 음악가들의 연주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음악 자체는 순간적인 것이라 그 해석도 연주자와 상황에 따라 가변하게 되는데, 다른 음악가들의 연주를 들으면 무대 위에서도 그 사람만의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이 굉장히 신기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표정과 감정이 연주할 때 묻어나, 마치 연주가 살아있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얼굴과 같이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묻어나는 음악을 항상 책임감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화려한 곡들을 많이 연주하여 무대를 장악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들으면 편안하고 따뜻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연주를 할 때는 화려한 음악과 편안한 음악을 잘 구성하려고 합니다.
제 선생님이신 Gelinde Otto 교수님이 거주하시는 지역이 바흐의 도시로 유명한 라이프치히 인데, 그곳에서 선생님께 배우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좋은 공연을 보러갔습니다. 그곳에서 접한 바흐의 음악이 제 마음속에 남아서 저는 바흐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거장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배운 그들의 음악과 영향
먼저 Gelinde Otto 교수님은 13살의 나이의 어린 제가 독일이라는 낯선 곳에 유학을 떠나고 그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며, Rolf-Dieles Arens 교수님께는 독일문화와 독일음악에 대해 알려주신 분입니다. 또한 소천하시기 전까지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故 Karl-Heinz Kammerling 교수님과 Epifanio Comis 교수님, Roland Kruger 교수님도 저에게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신 분들입니다.
Paul Badura-Skoda 교수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중학생 때였습니다. 음반으로만 접하던 대가의 연주를 무대 위에서가 아닌 레슨하면서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매 레슨 때마다 선생님의 음악을 옆에서 경험하면서 영감을 받지만,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악기개인박물관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베토벤의 후기소나타를 쳐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 연주를 들으면서 마치 ‘기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음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 연주하시는 당시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잊지 않으려고 되새기고 곱씹어 보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특정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서 프레이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그 가사들이 대부분 기도와 같은 가사입니다. 또한 제가 연주할 곡들의 악보를 미리 복사해서 연주시에 주의할 곳은 표시해주기도 하시고, 이제는 구하기 힘든 선생님의 레코딩 음반들을 주시면서 듣고 연습에 참고하라고 하시는 등 섬세하고 자상하게 지도해주십니다. 직접 악보에 유쾌한 메모도 남겨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연습할 수 있게 해주시죠. 그리고 가장 오리지널에 가깝고 정확한 악보를 가지고 오라고 하시며, 악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기억력이 너무나 좋으셔서 제가 연주한 특정마디를 3개월 후에도 기억하고 지금의 연주와 비교해서 말씀해주시고 하십니다.
현재 연세가 97세이신데, 레슨을 2~3시간을 연달아 하실 정도로 열정적으로 지도하시며 제가 최근에 부탁드린 추천사에 10년 전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고 함께 적어주셨습니다.
지난번 포르투갈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너는 너의 길을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응원을 해주셨는데 안타깝게 그 콩쿠르에 제가 떨어지게 되자 오히려 더 미안하게 생각하시면서 앞으로의 저의 걸음을 더 응원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음악가로 남고 싶으신가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들에게 저의 연주를 들려주고 그들이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고 연주만 하고 싶었는데, 저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최근에 더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콩쿠르에도 최선을 다해 임하고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또한 요즘 공부하는 시칠리 아카데미를 가면서 만나는 주변 친구들을 통해서도 기분 좋은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시칠리 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은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연주자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국제 콩쿠르에 참가해서 저만의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 계속적으로 콩쿠르에 도전할 것이며, 공연도 계속해서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 임하고 있는 학업도 최선을 다해서 해내서 졸업을 잘 마칠 예정입니다. 그리고 솔로 연주뿐만 아니라, 실내악과 가곡 분야에도 관심이 있어서 연습과 연주를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신유민
재독 피아니스트 신유민은 만 11세 도독하여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와 동시에 이태리 카타니아 라흐마니노프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다. 일찍이 국내에서는 틴에이저 콩쿠르 전체대상, 난파, 음악저널, 중앙대학교 콩쿠르, 한국음악대상(신인연주가상), 세종음악상 영재상 및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국외에서는 리스트 국제 콩쿠르, 러시아 문화부 장관상, 독일 전국 콩쿠르 1위, 이태리 비에트리 술 마레 국제콩쿨 대상, 러시아 유즈노 사할린스크시 공로상, Gran Gala Premio Lydia Iemmolo Giardina 감사패, 안토니오 나폴리타노 국제콩쿠르 1위 등 수많은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Franz Liszt 탄생 200주년의 해" Festival(독일) 폐막식 공연에 참가, Teatro Massimo Bellini 오케스트라 협연, 하바로브스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 등 독주회 및 연주활동을 유럽 무대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며 그외 러시아 국영 TV 방송, 포르투갈 클래식 라디오 Antena 2 연주실황, 독일 MDR Figaro 라디오 방송, 하노버 h1 뉴스 출연 등 국외 미디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일찍이 거장 파울 바두라 스코다는 ‘장차 우리가 주목해야할 소녀’라고 평하였고, 현재 재학 중인 하노버 음대의 지도교수인 롤란드 크뤼거 교수는 ‘무대에 서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줄 아는 연주자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피아니스트’ 라고 평하며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지도하고 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R. Melmuka 교수는 "신유민은 태어날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평하였다.
신유민은 차인현 교수, 노민영, 김지윤, 윤병우 교수, 박성미 교수, 김금태 교수, 박경우 교수, Prof. Gerlinde Otto, Prof. Rolf-Dieter Arens, Prof. Karl-Heinz Kammerling, Maestro Epifanio Comis, Maestro Paul Badura-Skoda, Prof. Roland Kruger를 사사 하였다.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8년 2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_ 김진실 기자 / 사진_ 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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