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피아니스트 박성렬 / 음악춘추 2012년 11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2. 11. 20. 09:54

피아니스트 박성열
추계예대 피아노과 교수로 활동

 

“지인들은 벼락맞을 확률보다 낮은 확률이라 이야기하더라고요(웃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표현이겠지요.”
지난 9월부터 추계예대 피아노과 교수로 새롭게 임용되어 재직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성열을 만나 소감을 묻자 돌아온 첫 대답이었다. 오랜 유학생활 끝에 귀국을 앞두고 추계예대 교수 공채에 지원하게 된 그가 그렇게 어렵다는 교수의 문턱을 단번에 넘어선 것이다.
“저 자신도 아직 얼떨떨하지만 앞으로 추계예대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우리나라 음악계에 공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기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침에 뜻이 있어 귀국하자마자 교수 직에 몸담게 되었지만 앞으로 연주 활동에도 결코 소홀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박성열은 교수로서는 학생들에게 권위있는 모습으로 다가가기보다 벽을 허물고 그들의 생활에 직접 관여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음악은 인성’이라는 그의 교육철학과 연관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들 이야기하지요. 저 또한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학생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서 그들이 가슴 속에 품고있는 각자의 생각이나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음악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육자로서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스승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박성열. 그렇다면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는 누구일까. 지금껏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오던 박성열은 과거를 회상하듯 한 박자 늦추어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스크바에서 유학할 당시 사사하였던 Lev Vlasenko 선생님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셨습니다. 선생님께 가르침 받는 동안 시드니 국제 콩쿠르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콩쿠르 직전에 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원래 심사를 맡기로 예정되어있으셨는데 심사도 못하시고 병원에 입원을 하셨지요. 당시 콩쿠르가 라디오에서 실황으로 방송되었는데, 선생님께서 라디오로 제 연주를 들으시며 저에게 편지를 쓰셨더라고요. 그로부터 2주 후에 세상을 떠나셨고요. 후에 편지를 전해 받았는데, 편지의 말미에 ‘네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그 믿음을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라’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몹시 아픈데요. 선생님의 그 말씀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재학 중 가족 모두 호주로 이민을 떠나게 되어 시드니 콘서바토리움에서 공부를 계속한 그는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움, 토론도 그렌 굴드 학교, 매네스 음대, 워싱턴 대에서 수학하였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유학 길에 올라야 했던 박성열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기 유학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성인이 되기 전에 음식, 문화, 심지어는 운전하는 방향까지 모든 것이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갔지만, 특히 주관과 판단력이 아직 완벽히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혼자 유학을 떠날 경우 바른 길로 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유학을 가게 되면 주변에 잘라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약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고, 특히 유학지에서 가장 먼저 오는 향수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계속해서 싸움을 해나가야 하는데 대부분이 무너져버리고 말지요. 물론 결국은 자신이 얼마나 독하게 마음을 먹느냐에 달려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허황된 생각이라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운을 뗀 박성열은 이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로 유학을 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예를 들어 클래식의 본거지는 미국이 아님에도 많은 음악인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이는 물론 그 나라의 재정, 국력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음악계는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국제 콩쿠르나 세계 어느 무대에서든지 한국인들의 활동 소식을 접할 수 있지요. 앞으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유학을 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_ 박진하 기자 / 사진_ 김문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