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바리톤 안갑성 / 음악춘추 2012년 11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2. 11. 1. 10:48

바리톤 안갑성
국립오페라단 오페레타 「박쥐」의 주역으로 국내 오페라 무대 데뷔

 

올 여름 바리톤 안갑성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국립오페라단은 2013년 시즌 공연 협의 차 베를린의 슈타츠오퍼를 방문했고, 마침 11월 「박쥐」의 아이젠슈타인 역으로 국내 무대에 소개할 라이징 스타를 찾고 있던 국립오페라단에 슈타츠오퍼 스태프들이 하나 같이 바리톤 안갑성을 추천한 것. 작은 기회 하나 하나에도 밝고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임했던 그의 성실한 자세를 높이 평가한 주변의 동료들이 우연한 기회에 그를 고국의 데뷔 무대로 이끌었다. 그는 여느 바리톤과 달리 높은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으며 독일어 딕션이 완벽한데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이 코믹한 「박쥐」라는 작품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바리톤이다.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지는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 기념 오페레타 「박쥐」의 주역 아이젠슈타인 역으로 국내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는 바리톤 안갑성. 영국의 스콜라 학자 베이컨의 명언 중 지혜로운 사람은 기회를 찾기보다 기회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다. 언제나 성실한 자세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왔던 바리톤 안갑성은 그 명언처럼 지혜롭게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국내 무대 데뷔를 늘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역할로, 그리고 최고의 프로덕션이 함께 하는 무대로 첫 테이프를 끊고 싶었죠. 저를 오페레타의 마법에 빠지게 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로 국내 무대에 데뷔할 수 있게 되어 무척 흥분되고 기대가 됩니다. 특히 매 공연마다 최고의 프로덕션을 선보이기로 정평이 나있는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올리는 작품에 주역으로 발탁되어서 더더욱 영광입니다.” 
국내 무대에 올려진 오페레타 「박쥐」의 대부분은 대사를 한글로 번역하여 공연한 반면, 국립오페라단은 이번 무대에서 대부분의 대사를 원어인 독일어로 진행하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때문에 안갑성은 독일어를 모르는 관객들도 극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행동과 표현을 더욱더 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고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할 시점에 처음으로 성악을 시작하였다는 안갑성은 10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수년간 음악을 공부해 온 동기들에 비해 기초가 부족했던 그는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고, 결국 해병대에 자진입대하기로 결심한다.


“군대를 가기 전까지는 많은 혼란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IMF경제위기라 시기도 뒤숭숭했으며, 심지어는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곤 했는데, 제대하고 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시력이 나쁘면 촉각이나 청각 등 다른 기능이 발달하듯이, 저는 악보 보는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대신 듣는 귀가 굉장히 밝아지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남들에 비해 악보를 인지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지금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안갑성이 쉽게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형 때문이기도 하다.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한 그의 형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동생의 유학을 위해 성악가의 길을 접었다.
“그래서 저는 늘 형과 같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꿈 안에는 형의 꿈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더 쉽게 포기할 수가 없지요. 지금은 형님께서 전공을 음성치료로 전환하셔서 제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자문을 많이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마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난 안갑성은 베를린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010년 독일 엠머리히 즈몰라상, 안넬리제 로텐베아거 콩쿠르 1위, 국제라이온스 성악 콩쿠르 1위, 바이로이트 바그너협회 장학생 선정 등의 경력을 쌓으며 점차 그의 꿈을 향해 전진해 갔다.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이 꿈을 조금한 상자에 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안돼’, ‘나는 목소리가 작아서 불가능할 거야’가 아니라 자유롭게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부단히 정진하다보면 자신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은데, 먼저 자신의 가능성을 한정짓는 것은 젊음이 너무나 아까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 또한 지금처럼 생각지도 못한 큰 무대에서 데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저의 노래를 들어주고 믿어주는 분들이 생겼으니까요.”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을 지닌 Lyrisch 바리톤 안갑성은 현재 독일에서 다양한 오페레타와 초연작품을 공연하는 데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으며, 테너와 바리톤 사이의 음역을 가진 자신의 음역대를 충분히 살려 앞으로도 폭넓은 연주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였다.
“초연작품은 재공연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아쉬운 점이 있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분들은 왜 그러한 공연을 하느냐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저 자신은 새로운 것을 창작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반도, DVD도 없이 악보에만 집중하다 보면 저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지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으로 국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글_박진하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