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피아니스트 김정원
슈베르트의 음악이 주는 터닝포인트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을“따뜻한 감성과 판타지, 아이디어가 넘쳐 시종일관 청중을 사로잡는 연주자”라고 말했다. 그의 음악회는 새롭고 흥미롭다. 2006년부터 시작된‘김정원과 친구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올해에도 무대를 앞두고 있는‘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 최근에는 클래식으로 젊은 세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한 기획공연인‘옐로우 라운지’에도 초청받아 강남의 클럽에서 연주하는 등 청중들과 소통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그리고 기자에게는 굳이 말하기를 꺼려했지만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의 제자가 작년 이례적으로 국내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최고 성적으로 입상하는 등 교육자로서도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음악춘추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을 찾아 그의 음악이야기를 지면에 싣는다.
***가장 많은 연주를 하는 연주자 중에 한 분이신데 어떻게 그 많은 연주를 소화하고 계신지요.
글쎄요. 제가 놀라울 만큼 많은 양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양의 연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교와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족 안에서는 남편, 아버지, 그리고 아들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연주자로서 산다는 것이 녹록치는 않은 게 사실이지만, 부족한 준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연주를 하면 말할 수 없이 괴롭습니다. 연주자는 결국 견고한 준비 끝에 만족스러운 연주를 하는 것에서 자존감을 얻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레퍼토리도 끝없이 많고, 남은 시간들을 잘 활용해서 피아니스트로 사는 제 인생의 족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2014년부터‘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를 해오고 계신데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슈베르트라는 작곡가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주 어린 시절(만15세)부터 빈에서 살았습니다. 제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죠. 슈베르트는 개인적으로 저에게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작곡가입니다. 그의 음악 자체가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는 않아서 어릴 때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변하듯 어느 순간부터 여백이 많은 슈베르트의 음악이 아름답다는 걸 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그 음악이 무대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업해야 하는 음악인지 절감하게 되었지요. 연주와 함께 음반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이미 6개의 소나타를 3장의 CD에 담은 첫 음반팩이 나왔습니다. 영감과 순발력의 절정인 공연과는 또 달리, 녹음은 지구력과 집중력의 싸움입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좋은 분들과 함께 이루어낸 행복하고 성취감 가득한 작업이었습니다.
***연주자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후진양성에 힘쓰고 계시는데요, 지난 5년간 경희대학교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한 것에 대한 소감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경희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한 것은 굉장히 급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계획한 일도 아니었고 당연히 경험도 거의 없었지요. 가르침이라는 것을 음악적인 교육 쪽에만 포커스를 맞춰 생각했었는데 학생 한명 한명과 소통하다보니 제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재능과 열정이 있는데 일찍부터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기본기가 약해 힘들어하는 학생들, 더 많이 공부해 꿈을 펼치고 싶어도 환경이나 형편이 어려워 벽에 부딪히는 학생들... 언제나 나와 내 음악, 그리고 내 가족이 전부였던 저의 눈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지요. 제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어 답답하고 가슴 아플 때가 많지만 제 고민과 노력으로 학생들이 성장해갈 때 그리고 꿈을 가지기 시작할 때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제자를 길러낸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도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지요.
*** 그간 많은 공연을 통해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보통 경험은 하면 할수록 사람이 성장해간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는 반면에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험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경험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주 욕심은 많고 조절할 수 있는 판단력이 흐렸던 시절 무턱대고 많은 연주를 했었지요. 어느 순간엔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만 겨우겨우 끄면서 살고 있더군요. 얼마나 큰 홀에서 연주를 하는지, 티켓이 얼마나 팔렸는지, 얼마나 화려한 타이틀의 공연인지는 제게 더 이상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음악’이라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연주자가 요리를 할 때 재료가 아깝지 않도록, 깊고 진하게 우려내는 과정이 있어야 연주를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절감하고 기획한 것이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였습니다.
***한국의 클래식계는 학생 수도 줄어들고 공연의 위기라고 하는데 앞으로 새로 배출되는 연주자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클래식 음악계가 어렵지요. 위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걱정은 됩니다. 하지만 이 음악이 얼마나 위대한 음악인지 알기에 어떻게 음악을 알리느냐에 따라 해결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 12월에 강남의 클럽 옥타곤에서 열린‘옐로우 라운지’라는 공연에 초청받아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조인트 콘서트를 했습니다. 옐로우 라운지는 클래식 음악회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젊은 세대와 클래식 음악을 더 가깝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일종의 자발적 운동입니다. 음악인으로서 클래식 음악의 저변확대에 관해서는 늘 절심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한 마음으로 연주를 했는데 클래식 공연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음에도 오히려 클래식 공연장에서의 연주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았고 공연 또한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어떻게 해야 대중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편견과 벽을 깨고 공연장으로 발길을 유도할 수 있을지 연주자로서도 더 많이 생각해야 하고 뜻이 있는 기획자와 관계자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지요. 조성진군이 작년에 그렇게 큰 성과를 올린 것은 정말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매우 큰 경사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사회적 이슈가 일시적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
섬세한 감성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음색과 강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국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동세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미 일본 및 유럽과 미국의 무대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동아음악콩쿠르 1위, 뵈젠도르퍼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롬브로 스테파노프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마리아 카날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금메달 외 여러 수상 경력을 가진 그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와 프랑스 파리 고등 국립 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친 이후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주활동을 시작하였다. 블라디미르 페도세이에프가 지휘하는 빈 심포니, 마이클 프란시스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막심 쇼스타코비치가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닉, 뉘른베르크 심포니, 부다페스트 국립 필하모닉, 프라하 방송 심포니 토론토 심포니, 휴스턴 심포니, 덴마크 국립 방송 심포니, 체코 야나첵 필하모닉, 독일 예나 필하모닉, 독일 카셀 국립 오케스트라, 베이징 국립 필하모닉, 나고야 필하모닉, 바르샤바 방송 심포니, 아테네 국립 심포니, 멕시코 국립 필하모닉, 스페인 코르도바 심포니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마에스트로 정명훈, 곽승, 박은성 등 거장들의 지휘로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부천시향, 코리안심포니 외 여러 주요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였다. 폴란드 쇼팽협회가 주최하는 바르샤바 쇼팽 페스티발, 펜데레츠키 어소세이션이 주최하는 바르샤바 이스트 베토벤 페스티발,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 페스티발,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발, 테플리체 베토벤 페스티발, 이탈리아 피아노 에코스 페스티발 등 유럽의 유서 깊은 음악제의 솔리스트로 다수 연주한 김정원은 체코의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통령에게 감사패를 수여받았고 전 미국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 앞에서 직접 연주를 하여 가장 감동적인 연주였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10년 5월에는 서울국제음악제의 폐막공연에서 솔로이스트로 초청되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을 아시아 초연했고, 실내악 연주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세계적인 거장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를 비롯 피아니스트 피터 야블론스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첼리스트 조영창, 리-웨이 친, 체코의 야나첵 현악사중주단 등 여러 뮤지션들과의 실내악 공연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2003년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함께 MIK 앙상블을 결성해 국내외 음악계의 찬사를 받으며 활동 중이다. 2006년부터 매년‘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이색적인 앙상블 공연을 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고, 2007년 국내 최초로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시작해 전국 12개 ~ 18개 도시를 순회, 클래식 공연계의 이례적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으며, 2011년에는 일본에서 7개 도시 첫 투어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한 EMI에서 발매한 라흐마니노프/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음반 외에도 쇼팽 24개 연습곡 등 10여 장의 독주, 협주곡, 실내악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2012년에는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런던 심포니와 함께 녹음한 라흐마니노프-바렌베르크 피아노 협주곡의 세계초연음반(개정판)이 발매되어 주목받았다. 또한 2014년부터 시작된 슈베르트 21개 소나타 전곡 연주 및 음반녹음 프로젝트는 현재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6개의 소나타가 담긴 그 첫 번째 음반이 작년 9월에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발매되었다.
글_김수현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6년 2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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