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타악기 연주자 박광서 / 음악춘추 2015년 7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6. 1. 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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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타악기 연주자 박광서
끝없는 열정으로 완성한 그의 음악세계

 

“궁극적으로 음악회를 찾은 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를 추구합니다. 아무리  좋은 작곡가라 할 지 라도 음악은 우리 연주자가 해석을 잘해서 연주를 해야 감동을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타악기는 표현이 무궁한 악기이기에 여러 가지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하더라도 관객들의 귀에 거슬리게 연주를 하면 그것은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소리, 음악의 조화, 감동을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박광서의 음악이야기
“학창시절 저는 미술과 연극 등 예술을 좋아한 아이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밴드부로 관악기와 타악기를 처음으로 접한 저는 퍼레이드와 군악대의 공연을 보게 되었고, 타악기의 매력에 이끌려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말로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덧붙여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타악기 전공이 많이 없었기에 혼자서 독학하듯이 공부한 저는 비엔나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동양인이 음악의 본고장에서 타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학을 가기 전, 홍콩국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의 단원으로 무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타악기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유학을 가 처음부터 다시 열심히 공부하였고 선생님들도 저를 인정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그 노력이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라며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대학 졸업 후 비엔나 음악학교 교수와 대만에서 교수와 오케스트라 수석제의가 있었지만 결국 KBS교향악단에 수석으로 입단하여 활동하면서 서울타악기앙상블, 한국 페스티벌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던 그는 KBS 교향악단, 부산시향, 원주시향. 수원시향. 창원시향 등과 협연한 바가 있다. 오스트리아 빈 페스트홀, 호암아트홀, KNUA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던 그는 수십 회의 페스티벌에 출연함으로써 연주자로서, 음악감독으로서 그의 음악세계를 알차게 채워왔다.

 

유학 가기 전에 무대를 먼저.
비엔나에 유학하기 전, 1972년 남산 KBS 시절에 국립교향악단 오디션을 한 그는 5년 동안 부수석으로 활동하였다. 또 한국에서 홍콩시립교향악단의 오디션이 진행하고 있어 오디션을 도전한 그는 합격하게 되어 홍콩으로 가 수석단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5년 동안 KBS교향악단에서 부수석으로 일한 당시, 홍콩시립교향악단이 한국에 오디션을 보러 왔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오디션을 보게 된 저는 합격을 하여 홍콩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국비 장학생이 아니면, 일단 돈을 벌어 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3년 동안 수석단원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 후 독일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에서 공부를 하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비엔나에서의 제대로 된 음악수업은 나에게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예종과의 만남
1990년 6월 국립예술학교 설립계획에 따라 국가 정책적으로 설립된 실기전문 교육기관으로 1993년 3월 8일 음악원을 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로 개교하였다. 학사과정으로 예술사 과정, 예술전문사 과정, 예술실기 연수과정 예술영재 선발제도로 구성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6개원은 각자 독자성과 전문성을 지닌 독립된 교육기관이지만, 예술이라는 공동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그 전문성을 심화시켜 나가도록 조직되어 있다.
“저는 처음부터 한예종의 교수로 학생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1993년도에 학교가 설립된 후 강사로 후학을 양성하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콘서바토리 개념의 학교라 학교의 시스템이 저에게 잘 맞았습니다. 강사로 시작한 저는 학교를 모교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커리큘럼, 시스템 및 환경이 다른 학교에 비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1998년도부터 지금까지 ‘정성을 들여서 아이들을 음악적으로 키우자’ 가 제 목표입니다.”

 

선두주자가 있으면 따라하게 됩니다.
앙상블 연주회 ,마림바콘서트 국내?외 초청연주회, 학교 선생들과 같이 하는 연주회 등으로 학생들이 음악적으로 많이 발전이 되었다고 말하는 박광서 교수에게 타악에 대해 묻자, 그는 "2010년부터 시작한 서울국제타악기페스티벌을 통해서 해외의 훌륭한 연주자들과 함께 음악을 배울 수 있고, 또 같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들의 음악의 시야가 넓어졌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발전이 우리나라 전체의 타악 음악계가 발전된 계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장르이든 선두주자가 있으면 따라하게 됩니다. 타악 음악계에서는 우리 학교가 선두주자가 된 것 같습니다. 저희 학교에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들이 많이 와 마스터 클래스를 합니다. 학생들은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자신들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기 때문에 저희 학교에 많이 오려고 합니다. 졸업생을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덕분에 국제콩쿠르에 골고루 입상하였습니다. 또 국내에 있는 콩쿠르도 1등을 많이 입상을 하는 편입니다. 예전보다 수준이 높아진 학생들을 보며 저 또한 기분이 흐뭇해집니다. 저의 제자들 중 몇 명은 교향악단, 수원시향수석, 코리안 심포니단원, 원주 시향수석 강남심포니 단원 등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연주자들이 연주할 때는 자신의 음악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연주자의 연주와 자신의 연주를 비교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타악기의 매력
“음악은 신이 주신 선물 중에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음악 중에서 여러 악기의 소리가 있겠지만, 가장 원초적이며, 솔직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양한 음색을 나타내는 악기는 타악기라고 생각합니다. 타악기라는 것은 재료와 표현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분야입니다. 현대음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이고, 연주와 창작에서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는 분야가 타악기 분야입니다.”
손이나 채로 두드리거나 흔들어 소리 내는 악기를 타악기라 불린다. 가장 오래된 악기 형태로 나무 가죽 금속 따위로 만들며, 주로 리듬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 타악기는 일정한 음정이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구분한다. 음정이 없는 악기로는 큰북, 작은 북,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등이 있으며 음정이 있는 악기는 팀파니, 실로폰, 첼레스타, 차임 등이 있다. 두드림과 리듬으로 다양한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 타악기의 매력인 듯하다
.

현재 타악음악계와 미래 타악음악계에 대한 나의 생각
양적으로 풍부해진 우리나라 타악음악계. 여러 무대에서 연주와 감독으로 타악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박광서 교수는 다른 악기에 비해 타악기가 더 발전을 많이 했다고 전하였다.
“타악기는 현대음악에서 필수로 들어갑니다. 한국음악계의 영향이 세계 속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타악음악계도 꾸준히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우리나라 타악음악계는 발전할 부분이 아주 많이 남아있습니다. 어린나이에 창작의 상상을 펴서 하는 작곡과 함께 타악 음악부분도 발전해야 합니다. 타악에 관심을 둔 학생이 비교적 어린나이에 작곡, 피아노를 함께 공부해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 타악기 작품들이 미래에 탄생하리라 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타악기음악계는 발전할 흥미진진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박광서의 미래
“제자들에게 항상 자랑스러운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저로 인해 많은 제자들이 힘을 얻고 또 자극을 받아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 저는 후배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우리보다 몇 걸음 앞선 서구 타악기 연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무대까지도 마련되도록 힘쓰고 싶습니다.”


 

글 _ 구수진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5년 7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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