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치유의 작곡가 이혜성 / 음악춘추 2016년 3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7. 1. 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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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초대

치유의 작곡가 이혜성
작품이 완성되기 전, 대팻날을 가는 시간은 더욱 중요해요


*** 작곡가로서 상당 기간 활동하셨는데, 작곡가로서의 자신을 회고한다면...

회고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 적용한다는 것이 좀 낯설게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어느새 유학에서 돌아온 지 25년 사반세기가 넘었으니 회고가 가능한 시기이네요. 정호승시인의 산문집에 보면 시가 써지지 않을 때 “왜 시가 안 써질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목수가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특히 젊은 날은 대팻날을 가는 시기라고 했는데, 창작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작곡도 매한가지입니다. 시인이 대팻날을 가는 것과 작곡가가 대팻날을 가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또한 제 자신은 작품을 만들기 전에 대팻날을 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곡가의 일상이 대팻날을 가는 일상이어야만 작곡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40대에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의 초안과정은 실제 오선지에 음표로 적는 시간에 비하여 매우 더디었습니다. 그때는 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작품마감을 앞두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지요.

다행이도 지금은 초안 과정도 짧아지고 오선지에 드레프트 분량도 상당히 줄었습니다. 만약 지금도 젊은 시절과 비슷한 분량으로 인내해야 한다면 우선 체력이 고갈되어 버텨낼 용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3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써온 작품의 수를 보면 70여 곡이 됩니다. 30대에는 곡을 써도 작품의 수가 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곡가로서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1년에 최소한 2~3곡은 쓰자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어느새 70여 곡이 되었습니다. 물론 작품의 양이 곧 작품의 질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간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유학에서 돌아와 첫 작품 ‘깨어있음’을 시작으로 늘 깨어있으면서 작곡가로서 마음을 비우며 공명을 연구했던 ‘비움’ 그리고 살면서 늘 미소 짓고 싶은 마음을 담았던 ‘미소’연작이 있습니다. 지난해 ‘치유’연작 11개를 끝내면서 이전 작품들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당시에 쓸 때에는 이렇게 유대관계가 밀착될 것을 예측하지는 못했습니다. 내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겠다는 계획은 크게 잡고 지속적으로 진행 했었지만 작품의 제목을 통해 연결되는 것이 보이는 지금, 돌아보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연주자와의 긴밀한 관계의 의미는?

훌륭한 연주자들을 만난 것이 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곡은 궁극적으로 혼자서 해내야 하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사실상 작품이 무대에서 연주되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저의 쌍둥이 동생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예찬 교수와 는 여전히 든든한 동행자이고, 한국페스티발앙상블 대표 박은희 선생님의 지속적인 위촉과 관심은 이제 20년을 넘었습니다. 현대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 교수와의 만남도 ‘고요2009’를 시작으로 작년에 ‘라온 1번’과 ‘라온 2번’을 함께 했습니다. 가천대학교 피아니스트 한영혜 교수님과의 피아노 소리에 대한 대화는 기쁨 그 자체로 ‘위파사나2002’로 완성되었고, 서울대학교 타악기연주자 최경환 교수님과 아카데미타악기앙상블대표 이강구 선생님의 위촉덕분에 특별한 타악기작품이 존재하게 되었지요. 최고의 더블베이스 연주자이고 KBS교향악단의 수석으로 계시는 이창영 선생님도 “치유5” 안에서 더블베이스 10대를 쓸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또한 첼로와 관련해서 가천대 남수아 교수와 “치유4”를, 신상원 선생님과 “치유9”에서 연주자 특유의 질문을 받으면서 첼로에 대한 즐거운 만남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치유11” 역시 가천대 김현숙 교수님의 위촉으로 플루트 8대가 중심인 그야말로 편성자체가 고민의 시작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호평 받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멋진 연주자와의 인연이 제 작품 안에서 늘 소중하고 감사한 순간들로 점철되어있습니다.


*** 교수로서의 자신을 회고 한다면...

지난 1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교수님이 타계하셨는데 저는 그 분의 책을 가까이에 놓고 삶의 희로애락 안에서 공감대를 많이 느꼈습니다. 최근 발간된 ‘담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마중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의 강의가 마중물이 되어 여러분이 발 딛고 있는 땅속의 맑고 차가운 지하수를 길어 올리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는데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단어인 마중물이라는 것은 지하수의 물을 한참 펌프질을 해야지만 물이 나오던 시절, 그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을 뜻하지요. 그 맑고 깨끗한 맑은 물을 올리기 위한 과정을 도와주는 역할 그것이 가르치는 입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졸업한 제자들 중에 40대도 있다 보니 “아, 내가 오히려 도움을 받는구나...”, 예전에는 제가 도움을 주었다고 감히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제자들을 통해 도움도 받고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삶의 가치에 대해 그들과 공감하는 순간이 더 많아져서 무척 기쁩니다.


*** 앞으로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올해 제 은사이신 백병동 교수님께서 팔순이 되셨습니다. 한결 같이 작곡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계시는 모습에 늘 존경을 표하게 됩니다. 그간 제 작품이 한 자리 숫자에서 두 자리 숫자로 넘어가면서 그리고 100이라는 수에 가까이 가는 과정에 서서 겸허하게 작곡가로서 사는 날까지 창작의 기쁨이 메마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 한국 작곡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 말씀해 주십시오.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와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코코아 술래 작곡가등 한국작곡가협회를 중심으로 여러 세대의 작곡가들이 지난 30여 년간 다각적으로 한국작곡계를 위하여 창의적인 시도와 시스템 구축을 위하여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과거 함께 고민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 바라보는 입장에서 늘 마음으로 진심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노고에 결과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발전을 위한 과정의 시간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우리 작곡계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여러 작곡단체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ISCM, 미래악회, 창악회, 한국여성작곡가회, 델로스, 운지회를 통해 작품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얻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돌아보면 단체를 통한 작품발표는 저에게 값진 경험의 장이 되었지요. 이제는 많이 누린 입장이라 판단되어 젊은 작곡가들에게 더 넓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 단체에서의 발표를 가급적 자제하는 편입니다.(웃음)


작곡가 이혜성

작곡가 이혜성은 이화여자대학교 작곡과, 오스트리아 비인 국립음악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베를린 국제 작곡기타 콩쿠르 1등, 오스트리아 테오도르 퀘르너 대통령상 수상, ISCM 국제현대음악협회 세계음악제 2000 룩셈부르그 <고요> 입선, 독일 뮨스터 Music of Our Time 2013 Korea 초청작곡가, 대한민국작곡상 제21회 <비움> 수상하였다. 그는 유수한 연주단체의 위촉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으며 소리연구에 대한 관심은 서양악기를 넘어서 국악관현악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론서적으로 <배우기쉬운 이혜성의 선법대위>의 저자이며 14작품의 악보출판과 창작음반이 3집까지 출간되었다. 현재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교수이다.


글_김수현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6년 3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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