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인물탐구 - 한국 교회음악의 선구자 김두완 선생 / 음악춘추 2014년 12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5. 2. 5. 22:00
300x250

음악춘추 기획대담 | 인물탐구 12월호
한국 교회음악의 선구자 김두완 선생님

 

김두완 박사는 1926년 3월27일 평남 용강에서 출생하여 일본 메지로중학교와 고등음악학교를 졸업했고, 서울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로스엔젤리스 대학교에서 음악석사, 미국 켈리포니아 린다비스타 신학대학에서 음악박사학위를 받았다.
1949년부터 1974년까지 성신여고, 보성여고, 대광고등학교 등의 음악교사를 역임했고, 그의 많은 제자들이 교회 음악계에 많은 공헌을 하고있다. 1974년 아가페음악선교원과 기독교음악통신대학을 설립했고 원장 과 학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아가페합창단, 아가페코랄을 창단하여 단장 및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또한 서울기독교필하모니 관현악단을 창단하여 단장을 역임하였고 한국교회음악협회 회장,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회장, 한국성가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46년부터 성가만을 작곡하여 작곡40주년기념연주회(호암아트홀), 작곡50주년기념연주회(국립극장)을 가진 바 있다.
저서로는 「교회음악개론」, 「교회음악의 이해」, 「종교음악의 미학」,「교회와 음악목회」 등이 있다. 작곡으로는 어린이 찬송가 「연못가에 자라는」,「사랑으로 우리를」,「갈릴리 그리운 동산」이 있으며, 독창곡 「서로 사랑하자」,「어지신 목자」,「황홀한 음총」과 칸타타 「승리의 그리스도」,「노엘」, 「기다리던 예수」와 함께 한국교히에서 널리 불려지고 있는 합창곡 「본향을 향하네」로 시작되는 「순교자」 등 약 1,000여곡의 작품을 남겼다.
또한 육군본부교회, 성광교회, 후암교회. 영암교회 의 찬양대 지휘를 했고, 1973년 영락교회 갈보리찬양대 초대지휘자를 역임했다. 영락교회 장로로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은퇴 후, 2008년 8월30일 소천했다.

 

일시: 11월 13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코스모스사 악기사 10층
진행: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김명엽(서울시합창단 단장)
      김규현(총회 신대원 교수, 한국음악비평가 협회회장)
      이승하(해방촌교회 원로목사)
      백선용 (전 횃불합창단 상임 지휘자, 음악목사)

 

1.김두완 선생님의 성장 과정 및 음악의 출발
2.김두완 선생님과의 첫 만남
3.김두완 선생님의 음악세계
4.김두완 선생님이 한국 교회음악계에 끼친 영향


이용일/ 이번 12월호 음악춘추에서는 교회음악에 일생을 바친 김두완 선생님을 재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선생님의 성장과정과 음악의 출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김명엽/ 제가 알기로는 김 선생님께서 목사님 자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본향을 향하네’로 잘 알려진‘순교자’라는 곡도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합니다. 사변시 월남하신 고향분에게서 아버지 김치근 목사가 공산당에서 순교당 하셨단 이야기를 전해 듣고 교성곡 「순교자」를 작곡한 것입니다.

이승하/ 김두완 선생님은 김치근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직업이 목사이지만 의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의사로서 농촌교역을 하기를 부탁하였습니다. 반면에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는 부친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 부담이 되어 교회음악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신 것 같습니다.

 

김명엽/ 당시 숭의여고 국어 선생 이였던 김희보 목사는 손아래 동서입니다.  김두완 선생님은 김희보 목사님과 작곡 작사를 많이 하셨습니다. 김 목사님은 한동안 기독음대에 와서 도와주신 적이 있습니다.

 

김규현/ 그때 당시 의사가 되길 바라던 부모님의 뜻을 못 지킨 것을 교회음악으로 신앙을 풀어갔다고 합니다. 작곡, 지휘, 그리고 음악교육을 통해서 실천한 것이 그것입니다.

 

이용일/ 김두완 선생님께서 일본고등학교(現 쿠니다지 음악대학)를 졸업하셨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느 학교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명엽/ 아마도 지금의 콘서바토리 같은 학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승하/ 어린 시절에 일본에 가신 선생님은 중·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일본에서 받았습니다.

 

김규현/ 김두완 선생님은 일본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해서 성신여고, 보성여고, 대광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퇴임 후 서울 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이후 기독교음악 통신대를 설립했습니다.

 

김명엽/ 서울 장신대는 평신도 신학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김규현/  김두완 선생님은 이문근 신부에게  3년간 작곡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가톨릭적인 경향을 느낄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선법적 음악의 요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용일/ 김두완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이승하 목사님은 선생님을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이승하/ 제가 김두완 선생님을 만난 것은  50년대 후반, 신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신학교를 다녔을 때, 주일학교 운동을 하면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교사를 가르치고 학생들과 부흥회할 때에 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두완 선생이 대광학교 국어선생인 최영일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여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최영일 선생님이 작사하고, 김두완 선생님이 작곡한 곡이 아마 300곡은 될 것 같습니다. 어린이곡도 제가 추측하기에는 1000곡정도 작곡하신 것 같습니다.

 

김명엽/ 60년대, 저는 대광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저희 교회의 지휘자로  계셨었습니다. 제 동기인 이단열, 이수철 등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보다 먼저 선생님과 음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합창, 밴드 등을 같이 하였습니다. 

 

이용일/ 백선용 목사님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백선용/ 횃불 선교회 합창단 창단 연주회 때 입니다. 많은 지휘자들이 김두완 선생님의 작품 ‘「본향을 향하네」 가 너무 쉽다고 생각하여 꺼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김두완 선생님의 작품부터 연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화성이 단순하지만 아름답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는 절대 표현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93년도에 선생님께서 저희 창단 연주를 보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연주에 많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선생님과 저의 첫 만남 이었습니다.

 

김규현/ 저는 1984년도 선생님이 한국 교회 음악작곡가 협회회장으로 계셨을 때, 처음 뵈었습니다. 그전에는 아가페 합창단을 지휘하셨을 때 청중의 입장에서 만나 뵈었을 뿐입니다. 직접 뵌 것은 교회음악작곡가 협회에 들어가서 협회총회모임에서였습니다.

 

이용일/ 김두완 선생님의 음악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승하/ 저는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김두완 선생님의 음악세계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김두완 선생님이 ‘교회음악에도 클래식이 있고, 대중음악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음악은 클래식, 예배 음악을 해야 하고 대중음악이라고 불리는 것은 배제해야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김두완 선생님의 음악세계는 바흐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예배의 음악이 진정한 기독교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 찬송가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예배음악에 복음적인 경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예배음악이 그분의 음악세계인 것 같습니다.

 

이용일/ 선생님의 신앙생활은 어땠나요?

 

김명엽/ 신앙생활은 모범적입니다. 몇 몇 사람들은 선생님의 음악이 수준이 낮다고 하지만 음악의 기본에 바탕을 두고 본인이 가진 재능을 100프로 활용한 작곡가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화성이 쉽고 다양하진 않지만 멜로디는 누구의 작품 보다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다는 실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분의 음악이 대중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분의 곡은 지방의 조그만 교회에서도 많이 연주가 됩니다. 제 생각에는 이 분이 예술적으로  심취가 되어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제가 김두완 선생님 작곡 50주년 연주회를 국립극장에서 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잘 만들어 드리려고 ‘승리의 그리스도’를 다시 편곡하여 연주하였습니다. 보통 작곡가들은 곡을 고치면 자존심이 있어서 화를 내시는데 선생님은 좋아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작곡은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부르도록 실용적으로 선생님이 있는 실력을 다 활용한 것 같습니다.

 

이용일/ 감동입니다. 편곡을 하였을 때 화를 내시지 않고 좋아하셨던 점은 포용력이 넓다는 뜻이고 실용적인 음악을 작곡하였다는 것은 회중들을 생각해서 작곡을 하셨다는 이야기지요.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김명엽/ 이분이 작곡하신 장르가 교회음악에 굉장히 많습니다. 선생님은 주로 어린이 찬송가, 어린이 칸타타를 많이 쓰셨습니다. 바흐같이 곡을 못 쓰더라도 칸타타 형식을 그대로 가지고 와 작곡을 하였습니다. 코랄 , 전주, 합창, 중창, 독창의 순서를 지킨 칸타타를 많이 작곡하셨습니다. 또한 남성합창단을 위해 찬송가를 많이 편곡도 했습니다.

 

백선용/ 저는 여기 계신 분 보다 잘 모릅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서 김두완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작품이 단조로워서 프로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에 레퍼토리가 될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해석을 해 보았더니 자기 인생의 흐름을 담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느 서양의 찬송곡과 비교해 음악적으로도 차이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단원들과 저는 감동과 은혜를 받고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김두완 장로님이 연주회가 끝나고 오셔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코랄을 하나 만들어서 선생님의 작품을 연주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큰 부담에 정중히 거절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규현/ 김두완 선생님의 음악을 보면 선율이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그 것을 보면서 이 아름다움 선율이 어디서 올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선율은 교회음악적, 성서적, 예배적 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논리를 주안점으로 해서 창작을 한 것 같습니다. 선율에서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선생의 곡 쓰기가 그것입니다. 선생의 곡을 분석해보면 선율의 아름다움과 반주의 단순성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곡들을 보면 간결하고 단순성한 흐름을 가진 창작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인위적인 곡 쓰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받아서 곡을 쓴 것입니다.

 

이용일/ 제가 작곡 공부할 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작곡가들이 거의 다 현대음악을 하는 것입니다. 작곡을 잘하고 공부를 잘하는 것을 떠나서 그 작곡가의 모든 것을 끌어내어 작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두완 선생님은 그것을 실현하신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김명엽/ 내 것이 아닌 음악을 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의 음악철학이 곡에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바로 돌아가시기 전에도 연락을 하고 찾아뵈었는데, 사모님이 옆에서 도와주시면서 선생님이 작곡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곡을 쓰니 그는 작곡을 하기 위해 태어나신 분 같습니다.

 

김규현/ 선생님은 의도적으로 무조(無調)음악을 쓴 일은 전혀 없습니다. 선율에 간혹 변화음이 나타나지만, 일시적인 전조를 위한 변화음에 불과합니다. 선생님 음악의 특징은 도약보다는 순차 선율의 아름다움과 음악구조의 간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설정은 후반부 고음에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두고 있습니다.

 

이용일/ 선생님이 일본에서 공부할 시절에 선생님의 전공은 무엇이었나요?

 

김규현/ 작곡전공 입니다. 이문근 신부로부터 작곡을 사사 받은 것만 보더라도 작곡전공으로 볼 수 있고, 후에 신학을 공부한 것 같습니다.

 

김명엽/ 그 때 아가페 합창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칸타타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시절에 ‘순교자’라는 칸타타가 발표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남학생들을 데리고 공연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예배음악을 많이 만들어 학생들을 데리고 여러 종류의 예배를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오페라형식의 음악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백선용/ 선생님이 저를 만나기 전에 전통음악 이외의 다른 음악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저를 만나고 난 후 저에게 ‘백 선생 연주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선생님의 곡이 달라졌습니다.

 

김규현/ 작품들을 분석해보면, 선생님은 국악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찬송가선율들을 불러보아도 5음계 선율로 만든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김명엽/ 선생님은 육군본부교회 등 여러 교회 성가대 지휘를 했습니다. 저희에게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사진 찍을 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셨습니다. 악보가 없을 때에 귀가 밝은 선생님은 흑인 영가를 듣고 채보해서 만드셨습니다. 책도 많이 내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명으로 K.D.William 으로 영어이름을 사용하여 미국 책 인 것처럼 판매한 적도 있습니다..

 

정리_구수진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12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이승하(해방촌교회 원로목사)

김규현(총회 신대원 교수, 한국음악비평가 협회회장)

진행: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김명엽(서울시합창단 단장)

 

백선용 (전 횃불합창단 상임 지휘자, 음악목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