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 피아니스트 박정윤
1957년,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음악회가 열렸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화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 자신의 첫 피아노독주회를 본교 대강당에서 가졌다. 이후, 김생려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제65회 정기연주회에서 차이코프스키의「피아노협주곡 제1번」을 연주하며 한국 음악계에 이름을 올린 그 학생이 바로 피아니스트 고(故)박정윤 선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도미하여 아메리칸 콘서바토리의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수학한 그는 1962년에 귀국하여 연세대학교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6년, 한양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직후에는 <서울뮤지카트리오>를 조직하여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의 개관연주회를 비롯하여 매년 정기연주회와 해외순회연주회를 가졌다.
특히 그가 한국에서 초연했던 작품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과 제3번」,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가 있으며, 초견 연주와 음악 해석이 탁월하여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도록 성악가와 기악연주자들에게 반주자로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일시 : 2014년 9월 6일(월) 오전 10시 30분
장소 : 코스모스 악기사 10층
진행 : 이용일 (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 이규도 (성악가 /전 이화여대 음대 학장)
송향지 (한국음악협회 수원시지부장)
박성미 (협성대 교수)
이종구 (작곡가 / 한양대 명예교수)
임효선 (춘천교대 교수)
1. 박정윤 선생님의 성장 과정 및 음악의 출발
2. 박정윤 선생님과의 첫 만남
3. 박정윤 선생님의 음악세계
4. 박정윤 선생님의 교육관
5. 박정윤 선생님이 국내 음악계에 끼친 영향
이용일: 6년이 넘게 꾸준히 이어져 온 음악춘추의 인물탐구는 우리나라 근대 음악사에 소중한 자료로 남을 것입니다. 인물탐구는 2007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피아니스트 박정윤 선생님의 이야기로 이번 음악춘추 11월호에 조명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가족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이규도: 박선생은 독실한 기독교의 가정에서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님은 전도사로 30년을 사역하셨고요. 7세 무렵, 만주에서 아버님께서 독일 선생님에게 손잡고 데리고 다닌 것이 음악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용일: 아버님의 기대와는 달리 왜 서울대 문리대 화학과를 가신건가요?
이규도: 제가 듣기로는, 박선생이 서울고를 졸업했는데요. 그 당시 주위에 음대 다닌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피아노도 하고 싶고 일반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화학과 쪽으로 선택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음악이 없는 삶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결국, 서울대 화학과를 가서도 음악을 좋아하여 두 번의 독주회도 했답니다.
이용일: 저는 공군 복무시절에 박선생님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같이 했습니다. 선생은 워낙 웃음이 많아서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성격이 원만하고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송향지선생님은 언제 박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까?
송향지: 저는 1971년 고2 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고, 30살이 넘어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워서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찾아뵙고 지도를 받곤 했습니다.
이용일: 박성미선생님은 박선생님을 언제 만나셨습니까?
박성미: 한양대에 들어가면서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부터 선생님의 귀국과 국내의 활동상황에 대한 소식을 많이 들은 바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양대에 가서는 당연히 선생님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용일: 네, 그러면 임효선선생님은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임효선: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원학교에 들어가 선생님께 잠시 배우다가 대학원에 들어가서야 다시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저는 돌아온 연어가 되었습니다.
이용일: 이규도선생님과 박선생님의 연애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규도: 이화여대 성악과 2학년 재학시절, 저는 영락교회에서 성가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정윤씨는 오르가니스트였습니다. 3학년에 올라갈 무렵, 박선생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학생들이 편지를 써서 저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것을 수줍어했습니다. 제가 이화여대에 입학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 만난 김자경선생님과의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1954년 6.25 때 부산에 피난 가 있을 당시, 안병환선생님이 25명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미군위문 공연을 다녔습니다. 25명의 해군 어린이 정훈음악대와 함께 3개월 동안 미국으로 위문공연을 갔을 때 그곳에서 소프라노 김자경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김치도 해주시고 한 달 동안 우리들과 같이 다녔습니다. 제가 고2 때, 김선생님이 귀국하여 이대 교수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재학시절 김선생님이 저에게 독창회를 시키셨는데 박선생이 피아노를 반주했습니다. 제가 후암동의 박선생 집에 연습하러 갔는데 ‘앞으로는 편지 전달하는 노릇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것이 우리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연애시절에, 박선생이 저에게 성경을 늘 읽게 했습니다. 저희는 연애를 3년 동안 했는데, 부모님께서는 ‘다방에서 만나지 말고 집에서 만나라’고 하시더군요. 박선생은 말수가 적고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 표현하지 못하였습니다. 결혼하고도 고치는데 3년은 걸렸습니다.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용일: 박정윤 선생의 음악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피아노 음악의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나요?
임효선: 우리 선생님은 과제곡을 주실 때도 고민을 많이 하시고, 여러 연주자들의 음반을 들으시면서 곡을 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연주자의 음반을 꼭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당신이 먼저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음악에 대해서 준비를 철저히 하신 선생님 이셨습니다. 보이지 않게 제자들을 채찍질하신 것이 기억에 가장 남습니다.
이용일: 한양대에서 같이 근무 한 이종구선생님은 언제 박선생님을 처음 보셨나요?
이종구: 저는 1983년에 한양대에 부임하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활약을 하시던 선생님을 잘 알고는 있었습니다. 한양대에 들어온 이후에야 선생님의 고고한 정신세계와 그 분의 인격을 더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성미: 박선생님의 가장 특별한 점을 꼽으라면, 언제나 학생들과 교감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저도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선생님처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교감이 이뤄져야 가르침이 전달된다는 것을 선생님은 저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용일: 그 교육방법은 대단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교수를 좋아해야 그 과목을 열심히 합니다. 교사가 준비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박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송향지: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박선생님께 배정된 적이 있었는데, 그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박선생님께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선생님 많이 힘드실텐데 그 학생들을 다른 선생님에게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그 아이들에게 더 잘해줄게' 라고 하셨고, 그 학생들을 위해서 다과까지 손수 준비하시며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서 그들을 가르치신 선생님의 모습이 저에게는 아직까지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훗날 그 학생들은 모두 대학원을 마치고 유학도 다녀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용일: 이규도선생님께서 보시기에 박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어땠나요?
이규도: 특별한 점은, 시간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으시고 학생들을 지도하셨어요. 학생들이 해낼 때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지요.
이용일: 이종구 선생님은 박교수님의 교육관과 지도방법이 어떠했는지 말씀해주세요.
이종구: 아주 자상하고 친절한 면이 있었고, 때로는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세상을 교육자로서 살아가신 것 같습니다. 제가 박선생님 제자의 석사논문 지도 교수를 했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심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황금분할의 암산으로 계산하여 거의 비슷하게 답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 분은 논리적으로 음악해석을 하시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용일: 박선생님의 교수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임효선: 제가 선생님의 트리오 앙상블 공연을 많이 보았는데, 그 연주회가 감명이 깊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트리오 연주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레퍼토리와 연주회는 매우 색달랐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내 준 곡들도 보면 정말 학구적인 곡들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과 공부했던 레퍼토리를 아직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아마 그런 좋은 곡들을 몰랐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작품에 도전을 많이 하였습니다.
송향지: 예를 들면,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트를 오늘 함께 듣자'라고 하면 5시간 정도는 들어야 합니다.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은 후 비교하고 분석을 합니다. 저는 선생님 덕분에 많은 곡들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제자인 셈입니다. 토론을 마치고 나면, 선생님께서는 음원을 굽고 작품의 해석을 워드로 쳐서 집으로 보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용일: 이종구선생님이 볼 때 박종윤 선생님의 현대음악의 관심은 어떠하였나요?
이종구: 현대음악을 연주하시는 것은 들어보지 못해 말씀 드리기가 어렵지만, 박선생님은 반주에 대해서만큼은 확고한 의식을 가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반주는 주도하는 악기의 한 수 아래에서 연주하는 것이다.‘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사실, 반주라는 말은 슈베르트 이후에는 이중주라는 개념으로 치환되어 더 이상 반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확대되면 협주라는 말과 같은 것이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같이 어우러지는 어떤 음악의 세계, 즉 자기 혼자보다 남을 위해 배려하고 앙상블을 이룰 수 있는 음악의 정신이 우리 음악계에 얼마나 중요할까? 라는 문제를 개척해 나갔던 인물이셨다고 봅니다.
이용일: 우리가 선생님께 배워야 할 점은 겸손과 배려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음악가들에게 절대 필요한 점이 남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이 앙상블의 기본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송향지: 저는 멀리서 배우러 온 학생이라고 레슨비도 잘 받지 않으시려고 했고 저의 사정을 늘 고려해 주시곤 했습니다.
정리_구수진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11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진행 : 이용일 (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이종구 (작곡가 / 한양대 명예교수)
이규도 (성악가 /전 이화여대 음대 학장)
송향지 (한국음악협회 수원시지부장)
임효선 (춘천교대 교수)
박성미 (협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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