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 인물탐구
피아니스트 이혜화
피아니스트 故이혜화(1931~2002) 선생은 1931년 12월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장군과 독립운동가 이 갑 선생의 외동딸 이정희여사의 3남2녀 중 2녀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독문과 손재준 교수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는데, 현재 아들 손 진은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에서 산업연구관리 실장으로 근무 중이며, 딸 손아영은 철학을 전공 후 현재 수원대학교 교양대학 객원교수로 근무 중이다.
1954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과를 졸업(사사 : 김성복 교수)하였고, 1957년 미국 신시내티 음악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사사 : Olga Conus) 1958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강사로 시작해서, 1959년 ∼1997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교수(피아노과 학과장 역임)로 재직하였다. 1961년 오스트리아 Wien Academy에서 Josef Dichler 교수에게 사사 했으며, 1980년 오스트라 Mozarteum Summer Academy연수를 하였다. 이 밖에도 동아콩쿠르, 삼익콩쿠르, 쇼팽콩쿠르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1954년 조선일보사 주최 신인음악회에 출연하였고, 1958년 귀국 독주회(이화여대 강당)를 비롯해서 1971년(명동 국립극장, 대전 시민회관), 1982년(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독주회를 개최하였다. 1977년 이화여대 관현악단과 협연(이화여대 강당)을 하였으며, 1975년(이영희), 1979년(서수정), 1992년(나효선)과 두오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1997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를 역임하였다.
일시 : 2018년 8월 16일 오전11시
장소 : 코스모스악기 7층
진행 :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 이상만(음악평론가, 국제델픽위원회 명예회원)
나효선(동덕여대 명예교수, 프랑스음악연구회 회장)
이혜정(명지전문대학 클래식공연예술과교수)
노수영(백석예술대학교 음악예술학부교수)
배주은(바디맵핑(Body Mapping) 강사)
1. 이혜화 선생의 성장과정과 음악의 출발
이용일: 오늘은 피아니스트 이혜화 선생님을 추모하는 대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음악적, 가정적 배경을 몰랐는데 애국지사의 집안에서 자랐고 우리나라 일가에 속하는 집안에서 자랐기에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이 아닌 고고하게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합니다. 먼저 이혜화 교수님의 성장과정을 나효선 교수님이 말씀해주십시오.
나효선: 선생님께서는 대부분의 음악인들처럼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으셨지만, 음악 과목을 특별히 좋아하셨대요. 처음에는 거의 독학을 하다시피 피아노를 익히셨다고 하셨고,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들께서 음악은 일종의 사치로 여기셨기 때문에 부모님의 뒷받침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버님이 동덕여고를 설립하신 조동식 박사님과의 친분과 의리 때문에 맏딸은 경기여고에 보내셨지만 둘째 따님인 선생님은 동덕여고에 보내셔서, 아버지 때문에 일류학교를 못 다니게 되었다고 원망을 하시며, 학교 음악실에서 아무 때나 피아노를 치시고 공주처럼 학교를 다니셨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나는군요.
이상만: 제가 처음 이분을 알게 된 것은 1954년 이혜화 선생이 이화여대를 졸업 할 당시, 조선일보 주최 신인음악회에 출연했을 때 입니다. 당시 소문으로 이응준 초대참모총장의 따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만나보니 모습도 단아하고 인품이 깨끗하게 보이셨습니다. 아마 그렇게 일생을 자라지 않으셨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뵌 것은 1997년 2월 22일 세종소강당에서 열린 정년퇴직 음악회에서였습니다. 저의 처는 이화여고를 다녔는데, 이혜화 선생과 가까운 친구였기 때문에 간간히 알고 지냈습니다. 비교적 일찍 미국 신시내티에서 유학하고 나중에는 빈에서 1년 동안 공부한 굉장한 학구파입니다. 그리고 피아노도 아주 깨끗하게 정석으로 연주하는 분으로 기억합니다.
이용일: 깨끗하게 정석으로 연주하셨다는 이상만 선생님 말씀에 제가 동의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어떤 피아니스트가 찬송가 반주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반주자가 아주 깨끗한 소리로 반주를 하는 것을 듣고,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물으니 이혜화 선생님이라고 대답을 해서, 선생님이 보통 야무지게 가르치지 않았으면 이런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효선: 맞아요. 저희가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울 때 저희의 손과 팔을 일일이 붙잡고 힘을 빼도록 바로 잡아주시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혜화 선생님께서 미국 유학 시에 스승님이 러시아 출신 교수셨는데, 손등과 팔의 핏줄 움직임을 보기만 해도 어디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 수 있으셨던 분이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어깨, 겨드랑이, 팔꿈치, 팔, 손목, 손가락 모두 릴렉스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주은: 그래서 선생님께서 저희들 모두에게 힘을 빼는 연습을 많이 시키셨습니다. 레슨을 받으러 가면, 선생님께서 팔과 손목을 직접 꽉 잡아주시면서 릴렉스를 강조하셨고, 페달 누르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제자들 발 위에 선생님 발을 올려놓고 직접 페달도 꼼꼼하게 밟아주시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열정이 대단 하셨지요.
2. 이혜화 선생과의 첫 만남
이용일: 이혜화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나효선: 저는 대학교 3학년 1학기에 처음 이혜화 선생님께 배정이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나는 너 가르치기 싫어. 그런데 김영희 선생님께서 가르치라고 하시니 꼭 한 학기만 가르칠꺼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웃음) 제 아버님은 작곡가 나운영 선생님이신데, 당시에는 미디시설이 없었던 때라 아버님께서는 자신이 작곡하신 곡을 들어보고 싶으셔서 집에 합창단과 실내악단을 상설하셔서 매일 밤 10시가 넘도록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피아노는 제 차지가 되기 힘들었어요. 음대 진학은 생각지도 못하고 이대 약대를 지원하려고 준비 중이던 고3 11월 중순 경, 같은 반 친구 어머니셨던 이애내 선생님께서 부르셔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곡가가 되라고 하셨어요. 작곡가가 되려면 피아노를 잘 쳐야하니 우선 피아노 전공으로 진학을 하라시며 두 달 반 동안 입학시험곡을 가르쳐주셔서 이대 음대기악과에 입학했고, 2학년 말까지 이애내 선생님께 실기지도를 받았어요. 기초가 없는 제가 1~2학년 실기시험 때마다 테크닉이 어려운 부분을 제대로 치지 못하는 걸 보신 선생님께서 음악가 딸이라는데 연습을 안 하는 말썽꾸러기 인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지요! 그런데 3학년 1학기부터 이혜화 선생님께 손가락과 팔의 힘을 빼는 것을 배우게 되어 그동안 그렇게 뻣뻣했던 손가락이 돌아가니 피아노 연습이 재미있어서 하루에 6∼10시간씩 연습을 했어요. 선생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아 학교에서 1번, 댁에서 2번, 일주일에 세 차례나 레슨을 해주셔서 일취월장 피아노 실력이 늘어 피아노로 대학원 진학을 했고 대학 강사, 급기야는 피아노과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혜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도 없을 거예요. 늘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이용일: 이혜정 선생님은 언제 이혜화 선생님을 만났나요?
이혜정: 이혜화 선생님과 제 친정어머니는 절친한 친구셨어요. 저는 어릴 때 처음에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배우다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무렵부터 이혜화 선생님 제자에게 피아노를 배워 작은 콩쿠르에 입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베토벤 소나타를 치기 시작하게 되자, 이혜화 선생님께 직접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혜화 선생님께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희 집은 용산, 선생님 댁은 길음동이었는데 제가 멀미가 심해서 선생님 댁에 갈 때마다 얼굴이 노랗게 돼서 기진맥진 한 상태로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앞에서도 많이 이야기가 나왔지만, 릴렉스를 선생님께 굉장히 정확하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 릴렉스가 잘되는지 빨리 파악할 수 있고, 강조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음악적으로 가르치셨고 소리 하나 하나 꼼꼼하게 눌러서, 음 하나도 그냥 지나가지 않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노수영: 저는 서울예고 3학년 9월쯤에 이혜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혜화 선생님께 배우기 전에는 서울대 교수이셨던 이기원 선생님께 배웠었는데, 두 분의 티칭 스타일이 너무나 달라서 적응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이혜화 선생님께서는 손을 끝까지 잡고 계시고, 근육을 보시면서 힘이 들어가는 포인트를 누르며 가르치셨습니다. 힘이 들어가는 부분이 보이면 손을 잡으시니 피아노를 칠 수 없을 정도였지요(웃음). 그런데 지금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선생님께 배운 대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페달 감각을 키워주시기 위해 직접 밟아주시면서 그 깊이를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남자 교수님께 배웠는데 그분은 직접 발로 밟아주지는 않으시고 피아노 밑으로 들어가서 손으로 페달의 깊이를 계속 알려주셨습니다. 이를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이혜화 선생님께서도 이걸 가르쳐주시고 싶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선생님께서는 릴렉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셔서, 선생님께 배웠던 6년의 시간동안 매 레슨마다 릴렉스를 말씀하셨고, 유학을 갈 때에도 릴렉스만 완벽하게 배워오면 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강조하셨습니다.
배주은: 저는 대학원에 입학해서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연세가 있으실 때 만나서인지 젊은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지요.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옛날에는 너무 열심히 가르치느라고 모두 귀한 집 딸들인데 학생들에게 야단을 많이 친 것 같애”라는 말씀도 하셨고, 또“피아노는 손으로 치는 게 아니고 팔로 치는 거야”라고 강조해 주셨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피아노를 치려면 팔과 몸에 대해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하였고 그와 관련된 책도 번역하고 현재 바디 맵핑(Body Mapping)에 대해 강의도 하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대학원생이면 타이트하지 않게 레슨을 해주실 법도 한데, 한 시간 이상은 기본으로 레슨을 해주셨고 열과 성의를 다해 가르침을 주신 기억이 납니다.
3. 이혜화 선생의 교육관
이용일: 일본의 동경예술대학에서 어떤 선생님은 처음부터 힘을 아주 강하게 쓰게 만들어서, 힘이 자연스럽게 빠지게 만드는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릴렉스를 할 수 있게 스승이 유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여러분에게는 이혜화 선생님의 방법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의 우리나라 피아니스트들이 어렵게 배웠던 것들을 현재 학생들을 더 쉽게 배우기도 합니다. 아마 선생님들의 실력이 높아짐에 따라 더 좋은 가르침을 받는 것이겠지요.
이상만: 이혜화 선생님이 우리나라 최초로 러시아 피아노 악파의 교육방법론을 시행하신 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 당시에는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들이 힘을 뺄 줄을 몰랐습니다. 피아노를 칠 때 릴렉스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초로 심은 분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그때 당시 6.25전쟁이 나고 해서 육군참모총장의 따님이면 하늘과 같은 공주 같은 분이었는데, 그 티를 많이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분이 또한 음악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화여대에 함께 있던 민원득 선생님과 생각이 맞았습니다. 민원득 선생님은 음악교육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효시가 되시는 분인데, 그분과 가까이 지낸 것으로 봐서는 아마 음악교육에 대해 굉장히 깊이 통찰하시고 방법론과 교수법 등 전반에 걸쳐 철학들이 몸에 배어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용일: 선생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나요? 책에 들어 있지 않은 내용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효선: 1980년 전후에 친정 부모님과 같은 빌라의 위 아래층에서 살으셨었는데 아버님께서 초대 육군참모총장이셔서 명절에는 과거의 대통령이셨던 분들과 군에 높은 분들 등 손님이 많이 오셨었다고 하셨어요. 또 친정어머님께 꾸중을 들으셨던 얘기를 해 주셨는데 양탄자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선생님께서 소파 밑에 깔 것과 식탁 밑에 깔기 위해서 2개를 구입 했다가 “귀한 걸 두 개씩이나 사는 건 천한 짓”이라며 많이 혼이 나셨다고 하시며 절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노수영: 일 년에 한 번 선생님 생신 때 전체 제자모임 때에는 회비를 내고 모였지만 그 외에, 제자들과 식사를 하게 되면 대부분 선생님께서 사 주셨어요. 또 허세가 없으셔서 식사비로 과한 지출을 못 하게 하셨습니다.
이혜정: 선생님은 솔직하시고 당당하셨고, 그러면서도 겸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재치가 있으셨지요. 선생님하고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제자들끼리 비교하지 않으시고 경쟁도 시키지 않으셨어요. 한 사람 한 사람에 맞게 칭찬하시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힘이 났습니다.
노수영: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이 납니다. 대학에 다닐 때, 선생님께서 꽤 엄격하게 저희를 지도하셨는데 제가 3학년 때 연습을 게을리 한 적이 있었습니다. 쇼팽의 「프렐류드」 전곡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가 8번 악보가 어려워서 치지 않고 슬쩍 9번으로 넘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그래, 다음에는 꼭 연습 해와.”하고 넘어가셨는데, 두 번째 레슨에도 연습을 안 해오니 엄청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레슨 때에도 제가 연습을 안 해가지고 갔더니 그 때부터 저를 투명 인간 취급을 하셨습니다. 레슨에 들어갔는데, 저를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전화를 하기도 하시고 소파에 앉아서 그냥 주무셨습니다. 당황한 저는 마냥 서 있다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처음부터 계속 치기 시작했는데 레슨시간이 끝날 때까지 저를 못 본 척하셨습니다. 약 한 달간을 그렇게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께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절대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를 하셨고, 그 다음 레슨 시간에는 이전에 있던 일을 일절 언급하지 않으시고 레슨을 해주셨습니다. 정말 따끔하게 저의 버릇을 고쳐주셨어요.
이용일: 교수님께서 제자에 대한 애정이 있으셔서 그렇게 했겠죠.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예전이 더 낭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선생님들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더 각박해지는 세상 인 것 같습니다.
4. 이혜화 선생의 음악세계
이용일: 이혜화 선생님의 연주 레퍼토리는 어땠나요?
이혜정: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죤, 쇼팽, 슈만의 곡을 연주하셨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브람스, 드뷔시, 라벨 등 인상주의, 또 프로코피에프 등 현대 작품도 레퍼토리로 주셨고, 가르치셨습니다.
배주은: 선생님께서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음악을 하라고 하셨고, 쇼맨십으로 연주를 하는 것은 싫어하셨습니다.
이용일: 좋아하시던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노수영: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 프로코피에프 외에 드뷔시, 라벨 등의 인상주의 음악도 좋아하셨습니다.
나효선: 1972년 독주회 때는 윤기선 선생님께 거의 10개월 정도 레슨을 받고 연주를 준비하셨고, 그 후에도 연주 때마다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랑 같이 두오 음악회를 준비할 때는 하루에 6시간 이상 템포를 아주 느리게 부터 조금씩 빠르게 하면서 꼼꼼하게 연습을 했습니다. 제가 선생님과 연습을 하는 날에는 독문학과 교수이시고 시인이신 사부님께서는 제자, 친지들과 약주를 하시고 마음 놓고 댁에 늦게 들어오시곤 하셨어요. 저는 선생님 댁에 연습하러 오전에 갔다가 사부님께서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밤늦도록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점심과 저녁도 주시고... 저는 선생님과 연습하던 선생님 댁의 피아노 스튜디오와 선생님의 피아노 치시던 모습 등 그때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이용일: 윤기선 선생님과 이혜화 선생님의 관계는 사제지간은 아니지요?
나효선: 아니에요. 이대 피아노과 교수이셨던 윤보희 선생님의 오빠이셔서 윤보희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공부하시게 된 걸로 기억합니다. 네 손을 위한 연주(1대 혹은 2대)를 할 때에 페이지 터너를 옆자리에 앉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자기 손으로 악보를 넘기지도 못할 만큼 연습을 하고 어떻게 연주를 하느냐고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제자들은 페이지를 자기 손으로 편안하게 넘길 수 있을 만큼 앞뒤를 다 외워서 연주를 했습니다. 저하고 같이 두오 연주를 하실 때에도 페이지 터너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혜정: 항상 저희에게 정직하게 바르게, 정도를 가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배주은: 네. 학생들에게도 엄격하셨습니다. 평가하실 때에도 제자라고 무조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으셨고, 솔직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용일: 이상만 선생님께서 이혜화 선생님이 국내 음악계에 끼친 영향을 마지막으로 정리해주신다면?
이상만: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대하셨고, 항상 성실과 정직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그 분의 정신이 우리나라 국내 음악계에 끼친 큰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용일: 네. 오늘 이렇게 날씨도 무더운데 나와 주셔서 선생님의 업적을 기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_ 김진실 기자 / 사진_ 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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