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인물탐구 - 클라리네티스트 이규형 선생 / 음악춘추 2014년 4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4. 5. 22. 20:27
300x250

음악춘추 기획대담 | 인물탐구

클라리네티스트 이규형 선생
클라리넷 앙상블 발전에 열정 바친 선구자

 

한국 관악계의 발전을 위해 열정을 쏟은 클라리네티스트 이규형(1932. 6. 19∼2013. 9. 3) 선생은 충청도 논산 출생으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후 경희대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서울대, 한양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경희대, 중앙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한 선생은 서울시향의 클라리넷 수석주자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쳤으며, 청주시향의 지휘봉을 잡은 바 있다. 또한 서울목관5중주단, 서울콘서트밴드 등의 창단 활동을 통해 관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한 선생은 공주대 사범대학 음악교육학과 교수로서 정년을 마침과 동시에 퇴임 기념 음악회(1997)를 가졌고, 국내 클라리넷 교육의 큰 축을 담당하면서 대형 연주자들을 길러 낸 바 있다.

 

일시: 2014년 2월 27일(목) 오전 10시 30분
장소: (주)코스모스악기 10층
진행: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최용호(아마데우스챔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고광설(아미띠에클라리넷콰르텟 음악감독)
      이창수(추계예대 교수)
      이창숙(한국리코더아카데미 이사)

 

이규형 선생의 성장 과정 및 음악의 출발

이용일_ 이번 음악춘추 4월 호에서는 국내 클라리넷 음악 발전에 힘쓰신 이규형 선생님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춘추 인물탐구 난은 원로 연주자들의 업적을 재조명하고자 이루어진 자리로서,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규형 선생님과 저는 대학교 동기로서 각별한 사이였기에 오늘의 자리가 개인적으로 남다르게 느껴지는데요. 그럼 이규형 선생님의 성장 과정 및 음악의 출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는 것으로 좌담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고광설_ 사실 저희들은 제자였기에 선생님의 과거에 대해 직접 들은 바는 없으나, 사모님을 통해 이 선생님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유복한 가정의 9남매 중 6째로 태어나셨고, 고위 공무원이셨던 부친은 이 선생님께서 공부를 잘하셨기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길 바라셨다고 해요. 하지만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던 선생님께서는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셨고, 그러던 중에 학교 밴드부에 참여하면서 처음 클라리넷을 접하셨다고 합니다.

 

이용일_ 의대가 아닌 음대에 진학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이규형 선생님의 집안에서 반대가 심하셨겠군요.

 

고광설_ 네. 그럼에도 이 선생님은 산 속에서 홀로 연습에 매진하며 음악의 길로 가겠다 다짐하셨고, 마침내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음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합격하셨습니다.

 

이용일_ 그렇다면 가족들 중 음악에 조예가 깊으셨던 분은 없으셨나요?

 

고광설_ 네. 이규형 선생님의 둘째 따님이 연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였으나 현재는 활동하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많은 음악인들이 그러하셨듯이 이규형 선생님 또한 자수성가하셔서 국내 클라리넷 발전에 앞장서셨습니다.

 

이규형 선생과의 첫 만남

이용일_ 평소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레슨 때는 무서운 분이셨지만 제자들의 음악 교육에는 그 누구보다 열성적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스승과 어떻게 첫 만남을 이루셨는지 궁금하네요.

 

최용호_ 저는 서울대를 졸업하기 이전인 1963년, 한양대에 입학해 잠시 다닌 적이 있었고, 그 때 이규형 선생님께서 저의 담당 교수님이셨습니다. 서울대로 학교를 옮기면서는 임춘원 선생님께 레슨을 받게 되었지만, 1년간 한양대에서 이규형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제 음악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창수_ 이규형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70년대에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이 선생님께서 수석으로 계셨던 서울시향에 객원으로 나갔을 때라고 기억합니다. 저는 임춘원 선생님의 제자였음에도 이규형 선생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후 이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창숙_ 저는 1981년, 숙명여대에 입학을 하면서 이규형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물론 고3 때 잠깐 테스트를 받기도 하였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고, 대학원 때까지 계속 되었기 때문에 사실 다른 선생님과의 왕래는 별로 없었지요. 그리고 다른 선생님께 배우고 학교에 들어온 후배들도 대부분이 이규형 선생님께 새로운 배움을 얻었습니다.

 

이용일_ 이창숙 선생님이야말로 이규형 선생님의 정통 제자이셨군요. 고광설 선생님께서도 스승과의 첫 만남을 전해 주시지요.

 

고광설_ 저는 1975년부터 이규형 선생님을 뵈어 왔었지요.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한 이후로는 쭉 선생님 곁을 지켰습니다.

 

이용일_ 그렇다면 이규형 선생님은 어느 분에게 사사하셨나요?

 

최용호_ 나이 차이는 비록 한두 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임춘원 선생님을 항상 깍듯하게 스승으로 대하셨었습니다.

 

이용일_ 이규형 선생님은 워낙 성품이 올곧으셨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사제지간의 관계를 지켜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마찰 없이 다른 선생님들과도 잘 지내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규형 선생의 교육관

이용일_ 이규형 선생님은 집안에서 반대하는 음악의 길을 걸으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치자 대학교 2학년 때 서울고, 경기고에 밴드부가 생기면서 지휘를 맡아 생계를 꾸려나가셨다고 합니다. 당시 이규형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과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지만, 그 제자들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이 선생님을 깍듯이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이규형 선생님은 재능 있고 성실한 학생들이 가정 환경이 어려워 좌절을 겪을 때마다 학비 및 레슨비에 도움을 주시는 등 제자들을 생각하심이 남다르셨습니다. 하지만 평소 성격은 차가운 편으로 학생들에게 볼멘 소리를 들으셨을 만큼 표현에 인색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규형 선생님의 교육관에 대해서 여기 계신 제자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광설_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독주보다는 교육과 합주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셨습니다. 청주시향에서 지휘를 맡으셨고, 밴드를 창단하신 적도 있었지요.

 

최용호_ 네, 맞습니다. 제 기억에도 실내악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교육 쪽에 관심이 많으셔서 1975년에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으신 것을 비롯해 여러 대학에 출강하셨습니다.

 

이창수_ 초창기의 클라리넷 분야는 사실 임춘원 선생님께서 거의 주도하다시피 하셨지만 1971년도에 선생님께서 이민을 가셨고, 그 이후로는 이규형 선생님께서 바톤을 넘겨 받으셨지요. 그리고 이 선생님께서는 서울시향의 대표적인 클라리넷 주자로서, 오케스트라의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함께 하셨습니다. 

 

이창숙_ 돌이켜보면 저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언뜻 이 선생님의 말씀들이 생각나서 이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로 테크닉적인 부분보다는 감성적인 분위기를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인지 학생들에게 저도 이런 것을 깨우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을 인간적으로 대해 주셨던 예로, 연습을 해오지 않으면 눈물이 날 만큼 야단을 치곤 하셨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감싸안아 주셨습니다.
그런 따뜻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숙명여대 동문들은 아직까지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으며, 여름과 겨울 방학 때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바로 전 모임에는 편찮으셔서 참석하지를 못하셨습니다. 저희 모두를 제자가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 봐주셨던 이규형 선생님의 인품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단점을 찾아 볼 수가 없더라고요.

 

이용일_ “이규형은 클라리넷 같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들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클라리넷 같은 분이 아니셨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고광설_ 주로 앙상블, 오케스트라를 오래 하신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당시 윈드 앙상블이 다소 취약하다 보니 그 부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나아가 윈드 연주가 활성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셨지요.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최초로 여름 음악 캠프를 개최하신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용호_ 네 맞습니다. 1982년에 청평에서 열린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고광설_ 그 때의 젊은 연주자들은 해외에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학생들 간의 교류가 원활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당시 캠프의 총무 직을 맡았었기에 누구보다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지요.

 

이용일_ 하나의 관악기로서 국내 최초로 여름 음악 캠프를 개최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규형 선생님의 중요한 업적인 것 같네요. 그리고 제 기억으로는 당시 클라리넷으로 현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악보도 지금처럼 충분히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용호_ 네. 모두 직접 악보를 사보하여 사용하였지요. 특히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의 경우, A 클라리넷을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일이 드물었을 때다 보니 연주자들이 일일이 반음씩 올려 사보를 했었습니다. 물론 피아노 반주 악보까지 전부 손으로 사보하여 사용하였으니 요즘 학생들은 그러한 어려움을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고광설_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1981년경에 우리나라 최초로 클라리넷 앙상블의 정기 연주회가 국립극장에서 첫 번째로 올려졌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꽤 여러 현악 합주단은 활동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종류의 관악기로만 이루어진 앙상블은 처음이었지요. 창단 때에는 서울대 음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하여 앙상블을 만들었었는데, 이규형 선생님께서 직접적으로 관여는 하지 않으셨지만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시거나 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정기 연주회가 끝난 후에는 호평이 이어졌고, 특히 서울대 현악 4중주단 학생들이 공연을 본 후 깜짝 놀라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때 저희가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전곡을 클라리넷 앙상블로 연주를 해내니 “클라리넷으로도 앙상블이 되는구나”라고 많은 학생들이 느꼈다고 합니다. 당시의 재미있는 일화를 말씀드리면,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클라리넷 앙상블 악보를 시중에서 구입할 수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마침 레코드판 메뉴얼에 깨알 만한 악보가 인쇄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스코어 악보를 이창희 선생이 돋보기를 보며 하나 하나 사보해 내어 무사히 무대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연주를 마쳤지만 그 때의 연주는 지금까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고, 이규형 선생님께서 앙상블 쪽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음악회가 성사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용일_ 우리나라 최초 클라리넷 앙상블 연주회에 이규형 선생님과 제자분들이 함께 하셨다니, 많은 분들께서 이에 대해 놀라워 하셨겠네요.

 

고광설_ 그 때의 정기 연주회에는 베이스 클라리넷, 콘트라 베이스 클라리넷 등 10명이 넘는 클라리넷 주자들이 앙상블을 이루는 무대로도 꾸몄었습니다. 그리고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저희 제자들에게 클라리넷의 테크닉적인 부분을 비롯해 앙상블 연주를 도와줄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라 가르치셨습니다.

 

최용호_ 또한 학교 행사나 서울대 동문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던 것으로 보아 온화한 성품을 지니셨지만 내성적인 분은 아니셨습니다. 특히 서울대 관악 동문회 모임을 보더라도 소속되어 있는 분들의 수는 많지만 사실 참석하는 분들은 별로 없기 마련인데, 동문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참여도부터 일단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선생님은 동문회 모임에 나가 보면 항상 만날 수 있는 분으로 많은 음악인들의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고광설_ 덧붙여 강력한 주장을 내세우시는 분은 아니셨지만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성실히 참여해 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따뜻한 분이셨지요.

 

이용일_ 사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가 다른 악기를 만나게 되면 배려를 해주어야 훌륭한 앙상블이 되기 마련인데, 이 선생님도 당신의 전공 악기를 따라 가셨던 것 같네요.

 

이창숙_ 앞서 고광설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클라리넷 앙상블에 대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는데요. 수업시간 외에 앙상블 연주를 중요시 생각하신 이규형 선생님께서는 숙명여대, 이화여대에서도 몇 년간 클라리넷 앙상블을 통한 발표회를 개최하셔서 학생들이 앙상블을 연주함으로써 음악적으로 많은 공부가 됨과 동시에 선후배 간의 관계도 돈독해졌었지요. 그 때만 해도 다른 관악기 전공 학생들은 학교에서 앙상블을 한다는 것을 생각도 하지 못하였지만, 저희 클라리넷 팀은 거의 유일하게 앙상블을 졸업 때까지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졸업생들도 객원으로 도와주기도 하고, 대학원생들도 함께 참여를 하여 현악 중주단이나 목관 5중주와 같은 개념이 아닌 클라리넷 하나로만 앙상블을 하는 것에 선두 역할을 하지 않았으셨나 생각됩니다.

 

정리_이은정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4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진행: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최용호(아마데우스챔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고광설(아미띠에클라리넷콰르텟 음악감독)

 이창수(추계예대 교수)

이창숙(한국리코더아카데미 이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