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오보이스트 정지인
독일 에어푸르트 극장 오케스트라 수석 발탁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군은 서로 비슷한 음색을 갖고 있으며 작품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연주되지만 목관악기군은 각 악기마다 개성적인 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작품 중에서 특정한 부분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관현악곡에서 돋보이고, 인상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는 목관악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목관악기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음색을 지닌 오보에는 오케스트라 무대의 가운데에 자리하며, 연주가 시작되기 전, 모든 악기가 오보에의 A음에 맞춰 조율을 한다.
한국 출신의 오보이스트 정지인이 오는 9월부터 독일 튀링겐주의 주도인 에어푸르트시 극장(Theater Erfurt)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활동한다는 소식이다.
한국 출신의 연주자들의 유럽이나 미국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으나 여전히 동양인으로서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지인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오디션을 통해 당당히 수석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정지인은 현재 독일 하노버 Musik Hochschule Master 과정 중으로, 오는 7월에 졸업할 예정이며, 클라우스 베커(klaus becker)를 사사하고 있다.
원래 꿈은 오케스트라 부수석?!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중에 독일 오케스트라에 취직해서 독일에서 살 거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에어푸르트 극장 오케스트라 오디션은 두 번째 오디션을 본 곳인데, 예전에 2차 오디션까지 올라갔지만 아무도 뽑지 않았었어요. 그리고 다시 오디션을 보겠냐는 연락이 와서 1월말에 오디션을 봤는데 운이 좋게 합격했네요.”
1차 오디션에서 정지인은 심사를 맡은 단원들과 사이에 막을 두고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 다장조 K.314」를 연주했다. 이 곡은 오보이스트들이 대학 입시, 오디션 등에서 자주 접하는 단골 레퍼토리이다. 그리고 2차 오디션에서는 막이 열려 있었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오디션 대상자의 프로필, 예를 들어 이름은 물론 어디 출신이며, 어느 교수를 사사했는지 등을 공개적으로 읽은 후 연주를 듣는다. 정지인은 2차에서 슈트라우스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3차 오디션까지 올라간 그녀는 오디션 과제곡으로 발표되었던 9개의 작품 중 당일 오디션장에 들어가기 전에 뽑은 두 곡을 연주했다. 그녀가 3차에서 연주했던 작품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미완성」의 2악장과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일부분이었다.
“사실 클라우스 베커 교수님께서 늘 ‘너는 동양인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독일인 연주자와 저의 실력이 같다면 저보다는 독일인을 뽑는다는 것이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래서 2차부터 막이 사라지고 제 프로필이 공개적으로 읽힐 때 마음을 비우게 되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3차에서는 독일 여자분과 저만 오디션을 치렀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가 인종, 언어 등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했는데 합격해서 기쁩니다.”
이로써 정지인은 에어푸르트 극장 오케스트라의 유일한 동양인 단원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농담반 진담반으로 입버릇처럼 말하던 꿈이 현실이 되자 그녀는 합격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직접 오케스트라 사무국을 찾아가 정말 여기서 평생 일할 수 있게 된 것인지 묻기까지 했다며 웃어 보였다.
그녀에게 오케스트라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질문하자, “어려서부터 내가 돋보이게 연주하는 것보다는 앙상블을 할 때 사소한 부분에서 더 기쁨을 느꼈다”며 덧붙여 설명했다.
“그래서 원래 꿈은 수석보다는 부수석이었어요(웃음). 제가 솔로를 잘해서 얻는 희열도 크지만 솔로 연주자를 잘 서포트함으로써 음정이나 밸런스가 잘 맞았을 때, 여리게 연주된 부분이라 객석에서는 잘 안 들리지만 연주자인 우리끼리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음악을 만들 때의 행복이 제게는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그럴 때는 무대에서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져요.”
하지만 나이가 젊은 편이다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경험을 쌓을 기회가 풍부하진 않았다.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기회는 몇 차례의 객원 연주뿐이었고, 서울대 음대 재학시절 서울시 유스오케스트라의 단원 생활을 병행한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 유스오케스트라에서의 활동은 그녀가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 음대 오케스트라는 한두 곡을 갖고 한 학기 내내 공부해서 흥미가 점점 떨어지기도 해요. 하지만 서울시 유스오케스트라는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하다 보니 보다 많은 레퍼토리를 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세컨드, 퍼스트, 잉글리시 호른, 수석까지 고루 경험하며 ‘이 파트는 이런 고충이 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선배 언니들이 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고, 친구들과 앙상블을 맞춰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오케스트라에 점차 흥미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앙상블에서 빛을 발하는 오보에의 매력에 빠지다
어린 시절 정지인은 피아노를 배우기 전이었지만 텔레비전에서 들은 음악을 피아노에서 반주까지 만들어 치는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당연히 피아니스트가 되는 줄 알았던 그녀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학교의 특별 활동을 통해 플루트도 접해 피아노와 병행했으나 플루트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학생이 악기를 그만두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던 플루트 지도 교사는 학생에게 다른 목관 악기를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오보이스트 박중수 선생의 레슨실을 방문한 정지인은 그 곳에서 예원, 예고 학생들의 오보에 소리를 듣고 평생의 악기를 택하게 되었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플루트 소리가 공허하게 느껴졌었는데, 오보에 소리는 처음 듣는 순간 어린 마음에도 ‘내 악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은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오보에를 닮아가게 된 것인지, 아니면 오보에가 자신의 성격과 비슷해서 선택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보에 소리는 직설적이고 꾸밈 없는 것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보에 음색이 굉장히 튀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매우 융화가 잘 되는 소리라며, 특히 오보에게 음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악기인 만큼 목관 앙상블에서 다른 악기들과 음정이 정확히 맞았을 때의 희열은 어떤 것보다 크다고 말했다. 그리고 식상한 표현이지만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이고, 그런 표현에 가장 적합한 악기라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오보에를 처음 접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사사한 박중수 선생님은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으로, 기초를 늘 강조하셨어요. 그래서 레퍼토리를 늘리는 것보다는 나중을 위해 연습곡, 바로크, 고전 작품을 위주로 하여 기초를 정말 탄탄히 다져주셨습니다.”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4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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