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소프라노 한지혜 / 음악춘추 2014년 9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4. 10. 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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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
소프라노 한지혜
비엔나를 무대로 한국 성악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소프라노

 

인천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소프라노 한지혜는
오스트리아 탈리아비니 콩쿠르 2위, 마르세유 국제 오페라 콩쿠르 1등과 특별상인 관객상,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국제 음악 콩쿠르 특별상,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 3위에 입상한 실력파다.


성악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였는지요?
중학교 때 부모님의 권유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해서 인천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서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요?
당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노래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인천예고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꼴찌로 들어갔어요. 그러나 노래를 하면 할수록 너무 재미가 있었고 학교 연습실에서 3년 내내 거의 밤 10시까지 있었습니다. 그 결과 22명 중 22등이었던 제가 3등으로 실력이 올랐고, 3년 내내 실기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사사한 선생님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다면요?
한국이나 빈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임웅균 선생님과 박경념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임웅균 선생님께서는 중저음을 잘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셨습니다. 한국의 선생님들이 테크닉적인 부분과 음악적인 기본을 잘 닦아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콩쿠르에 입상하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콩쿠르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2009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마르세유 국제 오페라 콩쿠르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저는 1, 2, 3등을 뽑기 전에 특별상을 심사하는 자리에서 청중상을 받았기 때문에 ‘입상권 안에는 들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1등 수상자 이름을 호명했을 때 옆 친구가 저에게 1등이라고 말해서 알게 되었지요.(웃음)
그리고 제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을 때이기도 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는 상황에서 2주 동안 콩쿠르를 준비하며 프랑스에 머물러야 했는데, 숙박비를 제하고 하루에 1끼 , 빵 한 조각밖에 먹을 수 없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가장 큰 보상을 받아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콩쿠르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요?
콩쿠르는 꼭 도전해 봐야 합니다. 입상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연주자로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콩쿠르에 입상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그것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정작 음악적인 표현, 프로적인 부분을 다 잊어버리고 순위에만 집중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입상해야지” 라는 생각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입상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본인이 노래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음악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인이 음악을 정말 일대일로 마주하고 있는지 등의 기본적인 것들을 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입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콩쿠르는 떨어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보며, 음악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콩쿠르 무대가 가장 떨리는데, 제가 할 수 있는 100%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 데뷔무대에 대한 느낌이 있다면요?
몇 년 전 비엔나에 있는 교회 전도사님이 한 매니지먼트를 소개시켜 주셔서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운 좋게도 그 매니지먼트는 유럽에 있는 극장들과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지요. 사실, 일류 극장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 수십 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각오를 하고 도전하였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첫 오디션을 치른 폭스오퍼에 당당히 합격하였지요. 그 후 첫 데뷔작 역할은 나비부인이었습니다. 그게 4년 전 일입니다. 당시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베이비 버터플라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어요. 그렇게 큰 역할을 어린나이의 소프라노가 맡았다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너무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음악적 자존심이 매우 높고 보수적인데, 어린 동양의 소프라노가 나비부인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 큰 이슈가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언론에서도 “그녀의 단독 무대였다”라는 호평을 보내주었어요. 그 때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것을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무대에 올랐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폭스오퍼에서 데뷔를 하였는데, 그 극장이 어떠한 극장인지를 설명해 준다면요?
비엔나에는 크게 3개 극장인 슈타츠오퍼, 폭스오퍼, 캄머오퍼가 있습니다. 슈타츠오퍼가 메인 극장이고, 두 번째가 폭스오퍼입니다. 유럽 전체로 보았을 때 슈타츠오퍼, 폭스오퍼는 A급 극장에 속합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 남자성악가가 여자성악가보다 많은 이유는 역할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여자성악가는 동양인이 아니더라도 예쁘고, 노래를 잘하는 성악가들이 많이 있지만, 남자성악가는 한국남자만큼 소리를 낼 수 있는 유럽남자가 많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제 비엔나 친구들이 농담 삼아 “한국 사람들은 무슨 물을 마시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우리나라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너무 좋습니다.(웃음) 남자들은 분장하고 가발을 씌우면 거리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 성악가들이 유럽에서 활동하는 것이 남자성악가들보다 어렵기 때문에 훨씬 더 잘해야 합니다.

 

글_구수진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9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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