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소프라노 전지영
‘밤의 여왕’으로 유럽 오페라무대에서 종횡무진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소프라노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생각하면 사람들은 「밤의 여왕 아리아」를 생각할 것이다. 그 아리아를 부르는 ‘밤의 여왕’을 500번 이상 소화해낸 소프라노가 있다. 바로 소프라노 전지영이다. ‘포스트 조수미’, ‘작은 체구, 위대한 목소리’라는 평을 받으며 유수의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종횡무진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그녀의 음악이야기를 지면에 담아본다.
*** 유학시절과 밤의 여왕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해마다 뮌헨에서는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뮌헨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던 저는 모차르트 오페라 「후궁으로부터 도주」의 블론혠으로 전격 캐스팅되었습니다. 거의 40여회의 오페라를 하는 것이라서 이틀에 한번 노래를 해야 했습니다. 한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가수들끼리 피아노 앞에 모여 와인을 마시면서 노래로 긴장을 풀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공연하는 친구가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반주해주었고, 그 때 제가 분위기에 취해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높은 F음이 나는 것 이였습니다. 그것이 저와 밤의 여왕의 첫 만남입니다. 23살 때, Agent인 Stoll에게 발탁되어 도이치오퍼베를린과 하노버국립극장에서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으로 유럽무대에 첫 데뷔하였습니다.
*** 23살에 데뷔한 소프라노
너무 젊은 나이에 데뷔하여 모든 것에 겁이 없었습니다. 공연 하나가 끝나고 1500키로 떨어진 곳을 11~12 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바로 다른 공연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음악이 즐거웠기에 힘들지 않고 재미있게 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많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두 공연이 있는데, 첫 번째로는 독일 뤼벡극장과 하노버극장에서 같이 일할 때 이야기입니다. 뤼벡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줄 알고 있는 저는 목욕을 하며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전화내용은 1시간 30분 뒤에 하노버극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이였습니다. 저는 목욕을 하다 말고 급하게 옷을 입고 택시를 잡아 하노버로 갔습니다. 1막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왔을 때 하노버에 도착하였습니다. 1막은 제가 없이 파미나를 한 친구가 노래를 대신 부르고, 안무가가 연기를 대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은 대사와 노래를 아주 천천히 해주었습니다.
남은 2막이라도 ‘잘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연을 하였습니다. 급하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날보다 호흡과 소리가 더 잘 나왔습니다. 아마 그 날 박수를 제일 많이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저의 연주비를 3등분 나뉘어 파미나와 안무가에게 나누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뮌헨 심포니를 이끌 때였습니다. 그와 연주를 하는 자리였기에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연주제안을 너무 갑자기 받은 저는 연주공부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연주로 바쁜 저는 연주준비를 충분히 못해 주눅이 들어있었습니다. 혼나는 학생처럼 기가 죽어 어쩔 줄 모르는 저를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불렀습니다. 저는 혼나는 줄 알고 우물쭈물 그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음악을 하나씩 다 가르쳐주는 것 이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대가의 여유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연주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 ‘밤의 여왕’으로 500여회 출연
아시아인 중에서 ‘밤의 여왕’을 500여회 한 소프라노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밤의 여왕은 고음과 스케일로 인해 노래하기가 힘든 역할입니다. 많은 소프라노들은 고음에 소리가 닿지 않아 ‘밤의 여왕’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스트 싱어*로 살아남으려면 밤의 여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스트 싱어*들은 다른 캐릭터로 자주 불러지지 않기 때문에, 밤의 여왕은 경쟁력이 있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성악가들은 부담, 에너지 소모, 긴장감 때문에 밤의 여왕을 하지 않지만 저는 그 당시에 너무 나도 겁이 없었기에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웃음).
유럽은 2~3달 연습을 해서 오페라를 올리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공연 3일전에도 가수들에게 공연문의를 하여 무대를 올립니다. 가수는 무대에 따라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는 경우가 있고, 또 몰락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몰락한 경우 감정을 서서히 알게 되지만, 갑자기 스타가 되는 경우 감정을 갑자기 느끼게 됩니다.
밤의 여왕을 할 때, 사람들이 갑자기 저를 알아주어서 ‘내가 이 캐릭터를 하면 계속 잘 할 수 있겠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밤의 여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은 것은 큰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의 여왕을 처음했을 때는 어린 마음에 ‘고음을 제대로 내야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밤의 여왕이 가지고 있는 고통, 그녀의 아이러니하고 이중적인 성격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가 부르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해석하여 왜 부르게 되었는지 공부하였습니다. 지금은 내용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고음은 이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저절로 소리가 나오더라고요(웃음).
***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
현재 쾰른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소프라노 에다 모저는 아마 밤의 여왕 아리아를 가장 많이 한 소프라노일 것입니다. 어느 날 그녀가 독일방송에 나와 ‘나는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에 나는 죽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름이 끼친 저는 저의 음악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밤의 여왕이 아닌 다른 캐릭터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밤의 여왕’은 아주 차가운 역할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차가운 성격보다는 따뜻한 성격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차가운 역할만이 아니라 따뜻한 역할을 더욱 많이 하고 싶습니다.
*** 오페라 캐릭터 중 어떠한 캐릭터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렸을 때 저는 사회성도 좋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여 「라보엠」의 무제타와 가장 비슷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투란도트」의 ‘류’나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가 된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박쥐」의 ‘로잘린데’ 라고 하네요. 독일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독일어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쥐」의 ‘로잘린데’ 는 좀 더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습니다. 4월 23일 영산아트홀에서 진행된 이번 독창회에서 로잘린데 아리아를 마지막으로 노래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반짝반짝한 삶을 즐겼다면 지금 저 스스로는 정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안에 차가운 밤의 여왕뿐 만 아니라 류, 비올레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류를 연기할 때 제 자신이 편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 안에 그러한 슬픔이 있기에 이러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는 애착이 가는 역할이고,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는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역할입니다.
유럽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항상 저에게 나비부인에 대한 역할을 많이 물어봅니다. 나비부인에 대해 공부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음악을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학생들은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에서 있는지 알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저는 너무 젊은 시절에 데뷔하였기에 공연을 많이 했는데도 함께 공연한 연주자들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의 음악적인 은인인데도 말이죠. 그러니 아무 것도 모를 때 무대에 서지 말고, 준비를 충분히 한 후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금 더 준비를 더 했더라면 사람들과 더 잘 지냈을 텐데, 또 음악을 조금 더 표현을 잘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뭐하는지도 모르고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아쉽습니다.
글_구수진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6년 5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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