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초대
소프라노 고현아
빈 슈타츠오퍼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 시작
1869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바니」를 초연하면서 개관한 빈 슈타츠오퍼(빈 국립 오페라 극장)는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이자 유럽 최고의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이다.
그 곳에 한국의 소프라노 고현아가 2013-2014년 시즌부터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한다는 소식이다. 이로써 그녀는 아시아 출신의 여성 성악가 중 최초의 빈 슈타츠오퍼 전속 솔리스트가 되었다.
사실 큰 극장들은 오디션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다. 오디션을 원한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장 측의 초대로 오디션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큰 극장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경력과 실력이 갖춰진 성악가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빈 슈타츠오퍼에 정원이 있어서 오디션을 본 것도 아니었다. 큰 극장에서는 정보식의 오디션을 갖기도 하므로 많은 매니지먼트들이 소속 가수들을 오디션에 지원시키는데, 그녀는 이를 통해 정식 솔리스트로 발탁된 것이다.
그녀는 “오디션에서 한 곡만 노래하기 때문에 그 5분 안에 인생이 결정된다는 생각에 매우 부담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의 노래를 들은 극장장이 한 곡 더 노래하라고 했고, 그녀는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에 이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노래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극장장으로부터 “당신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겠다”라는 합격 통지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두 달 남짓 지난 지금도 정말 기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던 그녀가 성악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중1 때 반장이었는데, 어느 날 합반을 해 음악 수업을 받았고, 음악선생님께서 반장들에게 그 날 배운 가곡을 노래해 보라고 하셨어요. 당시 다른 반의 반장은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 친구들이 저희의 노래를 듣더니 그 반장보다 제가 더 노래를 잘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 반장에게 가서 레슨비가 얼마인지 물었는데,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레슨은 꿈도 못꿨어요.”
성악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상 부모님께 성악 레슨을 받고 싶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그녀는 음대 시험을 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딱 3개월만 레슨을 받게 해달라고 말씀드리며, 음대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재수해서 다른 과를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히 한양대 음대에 합격했다.
이 이야기와 곁들여 그녀는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오빠가 중창단 활동을 해 그 오빠를 보려고 중창단에 따라 들어갔고, 한양대에 진학한 오빠를 따라 역시 한양대에 입학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입학해서 보니 그 오빠는 이미 캠퍼스 커플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짝사랑은 거기에서 끝났다고.
“하지만 막상 대학시절 성악을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음악 선생님이 되려고 마음먹었는데, 4학년 때 문득 음악 선생님이 되더라도 성악과을 졸업한 이상 노래를 잘해서 스스로에게 당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디 가서 ‘고현아가 노래는 못했는데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이 됐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지도 교수님이신 신영조 선생님을 찾아가서 ‘노래를 잘하고 싶고, 일주일에 한 번씩 더 레슨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그녀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로 레슨비를 마련해 갔으나 신영조 선생으로부터 “네가 내 딸을 가르쳐라. 그러면 나는 대신 너를 가르치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고현아는 당시 고3이었던 신영조 선생의 딸에게 성악을 가르쳐서 한양대에 합격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신영조 선생의 권유에 따라 동대학원에 진학했고, 처음 출전한 중앙음악콩쿠르의 본선에 올랐다. 하지만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에 기쁜 나머지 한양대의 비탈진 언덕을 단숨에 뛰어 올라가 독감에 걸렸고, 결국 본선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절대 입을 벌리고 뛰지 않으며, 가능한 뛰지 않는다는 그녀는 경험이 정말 중요한 거 같다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2001년 독일 유학 길에 올랐다.
“사실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유학을 갔어요. 독일어를 못해도 오면 다 된다는 말만 곧이 곧대로 믿고 갔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사실 기본적인 독일어만으로 생활할 수 있긴 했지만 저로서는 그런 생활이 너무 답답해 바로 어학원에 등록했고, 매일 6시간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정말 열심히 독일어 공부만 했어요. 독일의 음악, 문화를 배우러 와서 그 나라 말을 못한다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때 그녀는 모든 책에 ‘날개를 달자’라고 적어 놨고, 일년 후 뉘른베르크-아우그스부르크 국립음대에 입학했다. 그 곳에서 James Taylor 교수를 사사하고 이어 쾰른 국립음대에서 세계적인 바그너 가수인 한스 소틴(Hans Sotin) 교수를 사사하며 콘체르트 엑자멘을 졸업했다.
“한스 소틴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선생님을 만난 것은 인생의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헤맬 때 제 목소리에 맞는 정확한 레퍼토리를 정해 주셨고, 테크닉 등 독일 음악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거든요. 학교를 졸업한 지금도 제가 공연할 때 직접 오셔서 들으신 후 별 말씀 없이 ‘여기 소리는 별로다, 이 부분은 좋았다’라고 짚어주시는데, 그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됩니다.”
그리고 쾰른 국립음대 재학시절 처음으로 출연한 학교 오페라인 「헨젤과 그레텔」은 가장 기억에 남는 오페라이다. 그녀는 극중에서 그레텔 역을 맡았는데, 오페라 출연은커녕 오페라 워크숍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무대에서 얼음처럼 굳은 자세로 노래했지만 그 공연을 하며 무대에서 발을 떼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3년 7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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