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 음악춘추 2015년 2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5. 5. 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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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폐셜 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반드시 들어봐야 할  연주자

 

너무나 많은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국내외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에 이제는 어떤 젊은 연주자를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이 고갈되는 느낌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와 인터뷰를 하며 그녀의 이력이나 생각이나 활동이 어떤 젊은 연주자에 뒤지지 않다고 느낀다. 아니 오히려 특별한 것 같다. 어떤 수식어로 그녀를 꾸미기 보다는 그냥 그녀의 이야기를 나열해 본다.

 

바이올린에 대해서
바이올린은 레퍼토리가 많은 악기입니다. 그렇기에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선택권이 넓은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곡의 메인 멜로디를 표현하는 악기이기에 관중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이 되면 앞에서 메인 멜로디를 키는 바이올린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옵니다. 그 아름다운 악기의 모습과 음색에 누구나 한 번쯤은 반할 법한 악기, 바로 바이올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의 왼손 다섯 손가락에는 늘 굳은살이 박혀있습니다.

 

바이올린의 시작 그리고 유학 그리고 나의 스승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는 1988년 대전 출생으로 5세 때 그의 어머니 추천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양해엽 교수 사사 아래 예원학교에서 공부한 후 중2의 어린 나이에 도미하여 커티스 음악원에서 아론 로잔드의 사사로 디플롬을 받았다.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학사학위, 석사학위, 연주자과정을 마쳤으며. 현재는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미하일라 마틴을 사사 중이다.
“유학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고, 책임질 일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선택받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행복하게 순간순간을 버텨냈습니다. 미국 커티스음악원을 가서 많은 레퍼토리를,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음악적인 해석을 공부하였습니다. 유학시절에 의사소통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초등학생 때 미국에 살았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학 준비하는 학생들이 해외에서 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한국에 있을 때 유학준비를 더 해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음악적인 삶에서 많은 스승들이 있지만, 그 중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의 미리암 프리드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는 김다미는 “선생님은 제가 디테일하게 음악해석이 잘 안 되는 상태로 저에게 곡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셨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헤맸지만, 선생님이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어 곡에 대한 저만의 의견이 생겼습니다. 또 선생님은 ‘음악을 악기로만 연주하지 말고 입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과의 유학시절 덕분에 음악적으로 실력이 늘은 것 같습니다.” 라며 미리암 프리드 선생님을 떠올렸다.

 

김다미의 이력
금호영재· 영 아티스트 · 라이징스타 출신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는 2010년 제53회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 2012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입상, 2012 독일 하노버 Joachim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등 중요 콩쿠르에서 입상하였다.
“보통 연주자들은 어릴 적부터 콩쿠르를 시작하는데, 저는 정식으로 콩쿠르를 대학교 들어가서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더 준비를 하여 콩쿠르를 나가자’ 라는 생각에 콩쿠르를 늦게 시작하였습니다. 콩쿠르를 하면서 파이널에 들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콩쿠르를 했을 때, ‘콩쿠르를 일찍부터 했으면 더 많은 무대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콩쿠르를 더 잘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며 콩쿠르를 늦게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콩쿠르가 제53회 파가니니 콩쿠르입니다. 저는 거기서 1위없는 2위를 하였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다른 콩쿠르에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콩쿠르를 하면서 좌절하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콩쿠르가 제 음악의 밑거름이 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예전보다 더 편안히 콩쿠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콩쿠르는 자신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콩쿠르에서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하지 않다 보니 콩쿠르 나가는 것에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콩쿠르를 그만하고 더욱 더 다양한 레퍼토리를 하려고 합니다.”

 

글_구수진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5년 2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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