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춘추 2017년 4월호
춘추초대 / 마에스트로 양재무가 만난 사람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봉렬
내일의 고전을 창조하는 예술가를 키우는 교육가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992년 전문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개교 이후 세계적인 무대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뤄내며 국위선양은 물론 국내 예술의 수준을 세계수준에 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3년 취임한 김봉렬 총장은 ‘한국과 세계의 예술교육을 바꾸어 놓을 획기적인 예술학교를 만들자’는 초기의 창조적 정신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새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예술이 오염되어 그 빛을 잃으려하는 지금의 세태에 이 마에스트리 음악감독인 양재무가 우리나라 예술계 스타들의 공장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총장을 만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성공요인은 순수와 열정
양재무: 안녕하십니까? 음악잡지에서 이공계 인사이신 총장님을 뵙고자 한 것은 의외의 제안이었습니다. 제 생각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숲속에 있는 사람들이고 총장님은 건축을 전공하셔서 그 숲의 나무를 골라내서 영원한 건축물을 만드시니 숲속의 사람들 보다는 훨씬 안목이 높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그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우리나라예술계에 큰일을 했기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한예종 설립당시에는 종합대학 안에 있는 예술대학이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습니다. 외국처럼 독립 예술대학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였고 그 어려운 상황에도 좋은 미래형 그리고 예술형 학교를 잘 만들어서 지금 굉장히 큰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무용의 신장은 놀라워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고 다른 분야 역시 예술한국의 명예를 떨치는 국위 선양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내에도 예술의 우수성을 많이 알리고 있습니다. 특히 목표로 하시는 예술정책이 있으신지요?
김봉렬: 학교 설립 당시의 목표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세운 계획은 국내파들도 해외무대에서 설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예술계의 사관학교이다, 예술의 태릉선수촌이라고 불렸고요. 혹독하게 훈련시킨다는 질타의 목소리도 섞여있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목표들은 단시간에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높고 치열한 경쟁이 아닌 창조적 영역에 속하는 작가를 만들고 예술가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높이보다는 내면세계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니까요.
성공의 요인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저는 순수와 열정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학교 설립 당시, 서울대학교에 재직하시던 교수님들 서너 명이 파격적으로 학교를 옮기셔서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맨땅에서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원 후 미술원 설립 당시에 학교에 왔는데, 한예종으로 학교를 옮겼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예술학교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많이 제시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이 순수하게 헌신하셨고, 제도적으로 따지면 교육부 소속이 아닌 문화부 소속으로 학교가 출발하면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학생 선발제도와 커리큘럼을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뛰어난 학생들이 들어왔기에 학교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원이 생겼을 때 어떻게 알고 왔는지, 들어온 학생들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아주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시험을 보러 왔는데, 각기 다른 상황에서도 공통적으로 무언가 하고 싶어서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자발성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열정과 교수들의 헌신이 잘 어우러져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스타 산출을 넘어 ‘내일의 고전을 창조하는 학교’
양재무: 제가 봐도 처음에 이강숙 선생님이 취임하셔서 학교를 세우는데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여러 총장님들이 취임하셨지만, 김봉렬 총장님이 취임하신 2013년부터 다시 한예종의 위상이 부각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드디어 초기에 눈물로 심어 놓은 것의 아무도 예상 못했던 당연한 열매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봉렬: 그렇겠죠. 뿌려 놓은 것이 효력을 발휘하는 거겠죠. 사실 제가 보기에도 음악이나 무용은 10대 후반에 판가름이 나는데, 영화나 미술은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성과가 납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좋은 결과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마 앞으로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학교가 국제 콩쿠르에 우승하여 국위 선양하는, 설립 당시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지금은 추구하는 바가 심도 있게 다양화 되면서 학교의 캐치 프레이즈도 ‘내일의 고전을 창조하는 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스타 산출을 넘어서 작품과 예술을 남기고자 합니다.
하이든은 예술계에서 어려운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명성을 내는 것, 둘째는 명성을 유지하는 것, 셋째는 죽어서도 명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명성을 내는 것 즉 스타가 되는 것은 본인의 영광이요 가문의 영광일지 몰라도 예술계 자체에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 그리고 명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대가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예술계의 발전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죽어서도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고전이 되는 것입니다. 고전이 되는 것은 예술계를 벗어나,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예술의 목표가 거기까지 가야합니다. 이제는 국제대회 우승이 큰 뉴스가 아니기에, 그 단계를 극복하고 학생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학생들도 경쟁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예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경쟁을 목표로 해서 가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 자신의 행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양재무: 이러한 예술적 열정이 특성화되어 한예종이라는 꼭지점을 유지하면서 칼끝이라말할 수 있는 첨예화되고 극단의 집중된 응집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의 재능을 이렇게 좋은 학교에 넣어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가능성일 텐데요 우리민족의 예술적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김봉렬: 우리국민은 다방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집중력이 없습니다. 너무나 다양하게 펼쳐져 있고 유행도 많이 타다보니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러한 재능을 제도화 시키는 것이 학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문화정책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최근에 최순실 사태와 같이 문화계가 많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 인간이 사는데 3가지 필요합니다. 먹는 것(경제활동), 사회관계(국가제도와 교육), 여가(문화와 복지)입니다. 행복은 사실 여가에서 옵니다. 최순실 사태에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와 문화가 결합해 버린 것입니다. 문화를 통해서 권력을 잡고, 문화를 통해서 돈을 벌고... 이것은 섞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창조경제가 조급하게 산업화와 문화를 연결을 시켰고 창조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성찰 없이 성과 위주의 진행이 문화교육에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문화는 제도화된 교육을 통해서 길러내야 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너무 급하게 가져간 것입니다. 학교가 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돈을 얻는 것이 아닌 문화예술의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문화예술의 목표는 행복을 주는 것이지, 물질이나 권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라는 제도가 다양한 관심, 취미들을 집중화 시키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체부가 20년 동안 경제논리를 가지고 문화를 움직였는데, 그렇게 목표를 잡아서는 안 됩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가 있습니다. 그 책의 핵심은 호모루덴스가 되려면 목적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놀이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술이 어떤 목적을 가졌을 때는 다양성도 깨지고 순수함도 깨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 우리 학교가 가진 목표인 예술 국가 대표가 되는 것이 곧 한계를 드러내, 계속해서 목표를 수정 중에 있습니다. 요즘은 진정으로 예술을 즐기는 학생들도 나오고 전공을 바꾸는 학생도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초기보다 학생들이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죠.
양재무: 법대를 나온다고 전부 판검사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회가 역시 다양성이 확보가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인데, 핀란드는 직업이 없어도 평생을 국가가 모든 것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오히려 창의적인 기업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대학 다니는 젊은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모티브로 준다면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봉렬: 앞으로 사회가 ‘사’자 붙은 직업들은 인공지능에 의해서 사라지고 프로페셔널한 직업 교육이 한계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끝까지 하지 못하는 예술가, 성직자 등의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끝까지 남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의 미래가 대단히 밝죠. 앞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가 대단이 중요한 문제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오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행복을 증진시켜나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재무: 우리나라 놀이문화가 없는 편입니다. 옛날 고전에는 여러 놀이가 있었는데, 근대화 되는 과정에서 혹은 일제하에서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김봉렬: 그것도 있고, 가장 치명적인 것이 조선의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인간을 정신적 존재로 규정해버립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서, 감성적인 부분을 굉장히 억제해버렸습니다. 고려시대의 놀이가 풍부한 것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예술 활동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려청자도 만들 수 있었고요. 성리학의 시대에 감성과 욕망이 억제되고, 후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양반문화의 뿌리도 일제로 인해 문화 창조층이 파괴되면서 모두 경제적 인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복원을 해야 하는 시기이고요.
과거는 당시의 현재, 과거와 현재가 가까워지는 노력
양재무: 일전에 청와대 앞 통의동에 총장님께서 설계하신 작품 아름지기 사옥을 가봤습니다. 밖의 외관은 한옥집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현대식 외모인데,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한옥집이 한 채가 잘 지어져 있지요. 마치 반전과 역설이 포함된 소설과 같은 스토리를 감지할 수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김봉렬: 사실 저는 건축가는 아니고, 건축 역사학자인데,,, 건축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이론적인 길과 디자인하는 설계의 길. 사실 학교 다닐 당시에는 설계를 하면서 교수님들께 에이스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 재학시절, 경주에 갔다가 한옥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500년 된 한옥 집이었는데, 거기서 현대 건축이 가지지 못한 가능성을 보게 되고 그래서 전공을 바꾸어 한옥 연구, 건축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쭉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사회가 한옥에 다시 관심이 생기면서, 내가 설계의뢰를 받았고 그 건물을 설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또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요. 제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건축역사를 하면서 고전과 현대, 동서양의 건축을 알고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의 경계선상에 있는 경계인이라고 하죠(웃음). 저는 공과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전공은 건축역사 불교철학이라는 인문학적인 내용입니다. 그래서 공학자들보다는 인문학자들과 교류가 많았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술학교로 오게 되어 보니 어느새 예술계 인사로 분류가 되어있습니다. 공학과 인문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것 같지만 어느 하나에도 정통은 아닌 경계에 서있습니다.
양재무: 그것이 중요합니다. 정체성이 없는 것이요.
김봉렬: 그렇게 살아왔고, 설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한옥설계와 현대적 설계를 넘나들 수 있는, 조화를 시키고 쉽게 변화시킬 사람이 없고 시공도 동시에 할 수 있는 건설회사가 전무합니다. 그렇다보니 충돌이 벌어지고요.
양재무: 그렇다면 총장님께서 설계하신 아름지기사옥은 한옥과 양옥이 콜라보레이션한, 굉장히 기념비적인 건물로 기록되겠는데요?
김봉렬: 아마 역사에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재무: 저는 그러한 학문적인 의미 보다는 좀 반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외관에서는 보통 오피스 건물이었는데, 2층에 올라가니 한옥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김봉렬: 그 시도가 성공을 거둔 건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양재무: 국악과 양악도 서로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많습니다. 그런데 서로 접점은 찾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김봉렬: 우리학교에도 전통예술원이 생겼습니다. 저는 음악과 국악을 나누는 자체가 이상하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긴 하지만 음악 안에 국악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건축 역사학자이기에, 한예종 건축과에서는 한옥만을 전공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가르치지 않고 그 안에 녹아들게 합니다. 과거는 당시의 현재입니다. 자꾸 현재성을 생각하면서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서양음악은 유럽의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의 음악이 들어가서 지경을 넓혔는데, 왜 국악과 양악은 통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건축은 비교적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옥 건축은 많은 분들이 문화재 보수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이분들에게는 현재성을 말하기 힘들죠. 제가 500년 된 한옥을 보고 감명을 받은 것은, 기와집의 형태를 좋아한 것이 아니고 건물의 구조를 통해 현재성을 본 것입니다.
장인을 만들 것인가? 창작인을 만들 것인가?
양재무: 융합-창의라는 단어를 이 정부에서 특별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사회가 융복합을 많이 하고 있는데, 종합대학 안에서는 정해진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을 들으면 사실 융복합이 불가능합니다. 기본적 소양의 예술가라는 것은 음악을 하면서 문학적 소양도 갖추어야 하고, 건축을 하면서도 미적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야하는데, 한예종에서는 이를 위해서 어떠한 시도를 하고있나요?
김봉렬: 학교가 처음에 콘서바토리로 시작했기에 아직도 어떤 과는 전공필수과목이 80퍼센트가 넘는 곳도 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의 생각은 현대 예술은 결국은 인문학에서 출발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문학적 비전이 없이는 창작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학교 내에서도 이 이야기에 공감해서 제가 교학처장을 할 때는 교양과목을 학과별로 필요에 의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 단위로 교양과목 개설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부족한 부분은 외국어대학과 공동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목표가 장인을 만드는 것인가? 창작자를 만드는 것인가? 중에 선택한다면, 장인을 만들 때는 이러한 교과과정들이 필요 없지만, 창작자를 만들지 위해서는 필요 합니다.
현재 6개의 예술장르가 있는데, 학생들 간의 교류가 활발합니다. 우선 융합이라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저희가 생각을 해서 세 단계를 정했습니다. 첫째는 내 안의 융합으로, 내가 융합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안의 융합은 다른 장르끼리 만나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거리상의 문제로 인해서 음악분야는 어렵지만, 석관동 캠퍼스 내의 연극과 영화는 융합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속의 융합입니다. 포스텍이나 카이스트와 함께 과학과 문화의 융합을 시도 했었는데, 그것이 잘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카이스트에서 먼저 융합예술대학원을 만들었는데 큰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과학기술을 베이스로하고 그 위에 예술을 끌어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예술적 감동을 주기에 어려웠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술에 베이스를 두고 과학기술을 끌어오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 일차단계로 융합예술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우선 우리안의 융합을 먼저 활발히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생들보다는 교수님들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네덜란드 대학에 가서 융합을 시킨 비법이 뭐냐고 물으니, 있는 건 변하지 않으니 새로 만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이러한 확장은 사실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기에 국가와도 이야기하는 중에 있습니다.
양재무: 사실 21세기는 협력하는 사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살아남는 것이라는 교훈이 내표돼 있죠.
김봉렬: 사실 우리 학교에 아픔이 있습니다. 약 10년 전에 통섭교육을 추천을 했었습니다. 당시에 A&T(Art&Technology)로 거창하게 벌렸는데, MB정부 들어오고 유인촌 장관이 들어오면서 좌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술학교는 순수예술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통섭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결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3의 것, 또 다른 세계를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좌절되고 학교 내에서도 공감이 부족하여 오해가 생겼습니다.
예술-소비-교육의 필요성
양재무: 그런 통섭교육을 잘하는 것은 유럽쪽인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에는 10~20대에 이러한 교육속에 학생들이 자연스레 노출되니 무엇을 해도 아름답습니다. 미적감각이 자연스레 생활에 녹아들게 되는 것이지요. 정부는 정책적으로 획일화된 실현을 하려고 하고 성과를 연구하니까, 언발란스한 기형이 나오고 정책을 연구한 기관은 사실보다는 통계를 미화하고 기형적 작품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물론 기형 중에서도 창의력 있는 작품이 나오기도 하죠,,,,
김봉렬: 물론입니다. 제가 운명적으로 예술학교에 와서 들여다보니, 예술가들의 인적 공급은 이제 어느 정도 되고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시장이 없는 것인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 시장은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는 예술교육이 생산 위주로만 이루어져있는데, 예술소비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교육을 하면 그들이 자라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소비하게 될 것입니다. 정부가 시행했던 입장료 지원이나 티켓 1+1은 사실 응급조치와 같은 것입니다. 예술지원도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술교육을 밑에서부터 기반교육으로 다지는 것입니다.
양재무: 국내에 종합학교 같은 학교가 몇 개쯤 더 있으면 어떨까요?
김봉렬: 사실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인구가 줄면서 교육부에서 인문계와 예술계를 줄이고 공학을 확장시키는 프라임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예술계가 굉장히 위축되고 있고, 종합대학내의 예술대학이 힘이 없어지면서 한예종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고요. 상대적으로 우리학교가 잘 될 수야 있지만, 저는 이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제까지는 학교의 발전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예술계 전체의 발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무감이 듭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학교 이전 문제가 현안입니다. 지금 2개원의 건물이 무허가 건물이라서 옮겨야하는데, 각종 지자체에서 유치하려는 적극적인 제안이 있습니다. 한예종의 브랜드를 쓰겠다는 하는 것인데, 사실 좀 답답한 면도 있습니다. 굳이 한예종이 아니더라도 예술학교를 만들면 얼마든지 교육이 가능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재무: 저는 종합대학 안에 있는 예술대학은 밑 빠진 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종합학교와 같은 성과가 나긴 힘들죠.
김봉렬: 전문적인 예술교육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한예종의 경우에도 학생들 등록금은 전체 예산의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국가 지원에 의지합니다. 종합대학의 경우는 예술대학이 수많은 단과대학 중 하나여서, 집중적인 예산 투자나 자원 배분이 어렵겠지요. 또 대학 운영자의 입장에서도 공대나 의대, 경상대에 비해 인풋은 많고 아웃풋이 적은 예술대학에 큰 힘을 실어주기 어려울 겁니다.
양재무: 종합학교가 문체부에 큰 과일을 안겨준 학교네요(웃음). 사실 예술교육은 교육을 하는 사람이건, 교육을 받는 사람이건 계산하면 못합니다.
김봉렬: 종합학교가 문체부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문체부의 지원 없는 종합학교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투자는 곧바로 학생 교육과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일반대학의 전임교수와 시간강사의 교육 분담 비율은 대략 7:3 정도인데, 한예종의 경우는 반대로 3:7에 육박합니다. 교과목이 세분화되어 있고, 교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편성된 결과지요.
석관동시대의 막을 내릴 송파 캠퍼스?
양재무: 언론에 보도 되는 것이 송파에 종합학교 부지가 조성 되었고, 본격적으로 이전 준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김봉렬: 지금 당장 한예종의 6개원중 미술원과 전통예술원이 무허가 건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 석관동 캠퍼스는 영조의 이복형인 경종의 묘 의릉이 있습니다. 미술원과 전통예술원의 철거를 조건으로 의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서 2개의 단과대학이 나가야합니다. 차제에 통합캠퍼스를 만들고자 생각을 했는데, 서울을 비롯하여 과천시와 일산에서도 유치의사를 밝혔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원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수업이 없으면 대학로에 가서 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예술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 현장과 밀착이 되어 있어야하기에,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해서 서울시에 유일하게 남은 땅인 송파구 방이동을 생각했습니다. 서울시에서도 추천을 했고요. 만약 옮기게 된다면, 학교가 갖지 못했던 미술관이나 극장도 열고, 기숙사도 지으려고 고민 중에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넓은 땅일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향 중국프로젝트 본격적인 가동
양재무: 교육이 백년대계인데, 총장님께서 예술 인프라를 많이 만드셨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밀라노 베르디음악원에서 중국 성악지망생의 연주를 들었는데, 5년 전 콩쿨심사에서 들었던 그들의 음악과 다르게 굉장히 세련되어 졌습니다. 외관상으로도 마찬가지고요. 이미 유럽에 진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중국과 함께 같은 예술시장에서 경쟁해야하는데 앞으로 20년 내다보면 우리의 앞길은 파란 불인가요?
김봉렬: 이제는 학교의 목표를 높이 경쟁에서 깊이로 가자. 그리고 융복합하며 넓이로 가자고 목표를 잡았습니다. 어쨌든 작품을 만드는 것, 또는 연주의 재해석을 통해 고전을 남기는 것이 궁극의 목표입니다. 작년부터 향중국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우선 광대한 중국의 예술시장에 진출해 우리 졸업생들의 활동무대를 확보하는 것이고요. 또한 문화대국인 중국이 문화의 가치를 알고 우아하고 격조 있게 성장하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의 15억 인구가 한국식의 산업화를 하면, 혹은 15억이 미국인같이 살고자 원하면 인류에게는 큰 재앙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의 목표가 중국에 이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죠. 경쟁보다는 깊이에 깨달음이 있으면 그것이 결국은 비교우위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양재무: 제가 베이징 대극원에 연주갔을 때 그기간에 북한작품 「양산박」이라는 뮤지컬을 보았는데, 표면상으로는 중국 전체를 투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를 대표하는 이러한 대표작품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예술가를 만드는 교육과 예술시민을 만드는, 두 가지 교육이 필요합니다
김봉렬: 국가주의적인 작품도 필요하죠. 학교에서는 당장에 그러한 작품이 나오지 않더라도, 고전이 창작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교육을 해나갈 것입니다. 어떤 학생들의 경우에는 재학 중에도 우수작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작년 초에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우리학교 졸업 작품이 상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기량이 있으면 굳이 학생이라고 해서 고전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는데, 예술시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서 지원과 육성을 하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예술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좋겠고, 두 번째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더 큰 꿈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양재무: 예술은 10대의 교육이 중요한데 종합학교가 주말에 교육하는 시스템인 영재원이 아닌, 주중에도 정식 커리큘럼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영재학교를 만들어가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봉렬: 12~13년전에 한참 논의하고 연구를 해서 예술영재학교를 국가차원에서 만들겠다고 했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가 사라져서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하는 생각도합니다. 영재학교가 필요하다고는 늘 생각을 하고있고, 이왕이면 국가 차원에서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재학교가 사회주의 시스템같이 예술기계를 만들어서는 안될 것 같고요. 예술이 결국 인간의 모든 활동을 종합하는 것이라고 하면 특별한 교양교육도 필요하고 다른 예술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니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재무: 총장님 말씀처럼 교육과정의 어느 순간에 인문학의 기초를 넣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국은 초등학교 때 셰익스피어 원문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국작가들이 두터운 작가 층을 만드는 것 같고요. 영재학교를 못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연구를 먼저 시작해서 그렇습니다. 사실 종합학교를 만들 때, 반대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학교를 만들어 시작하고나니 대학에서 크게 반대를 하지 못했었죠. 영재학교를 만든다고 하면 몇몇 공무원과 교장이 추진력 있게 행보를 해야 실현이 가능하지, 연구하고 의견수렴하기 시작하면 아마도 미래 100년 후에나 가능할까합니다.
김봉렬: 영재학교도 장기적, 체계적으로 가야합니다. 뛰어난 예술가를 만드는 교육과 예술시민을 만드는 두 가지 교육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양재무: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이제 예술영재가 나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우리나라가 근대화 되는 특별한 상황이라 많은 영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지금은 부모님들의 용기가 많이 필요하고 대개는 주저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영재시스템은 아마추어에게 예술을 가르치는 수준이 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김봉렬: 영재학교 원리가 모으고 그중에 추려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는 친구들이 육성이 되는 것이죠. 한번 영재가 된 친구들이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 구성하는 것이죠.
정리_ 김진실 기자. 사진_ 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7년 4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문기의 포토랜드>
왼쪽부터 마에스트로 양재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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