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드림공화국 대표 손진기 / 음악춘추 2012년 1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1. 12. 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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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공화국 대표 손진기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토크쇼가 열리기 전 마련된 네트워킹 파티(식사)를 즐기고 아직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MC인 손진기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라는 인사말 후 좌중을 집중시키는 가벼운 농담이 이어진다. 그리고 함께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의 소개에 이어 관객들에게 그 날의 초대 손님을 함께 불러보자고 한다.
이는 지난 12월 13일 페럼아트홀에서 열렸던 〈손진기가 만난 사람들 “꿈을 만드는 토크쇼”〉의 시작 장면이다. 그날의 주인공은 국민 배우인 이순재 선생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토크쇼가 진행되었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오페라 「버섯피자」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공연되었다. 뜨거운 관심과 아쉬움으로 인해 토크쇼는 예상보다 늦게 끝마쳤고, 이어 경품 추천과 사인회가 이어졌다.
현재 드림공화국의 CEO인 손진기는 매월 셋째 주 화요일마다 〈손진기가 만난 사람들 “꿈을 만드는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오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를 계속 해오고 있으며, 지난해 12월부터는 그가 기획한 오페라 「버섯피자」가 공연되고, 그 밖에도 다양한 곳에서 음악회의 기획을 요청받고 있다.
명함에 적혀 있는 그의 직함은 드림공화국의 CEO이자 ‘대장’이고,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나비 넥타이’이다. 전공은 마케팅, 광고·홍보로, 그 동안 방송국 PD를 비롯해 기획사 대표이사, 대학 교수, 광고 기획자 등 다양하고도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그의 이력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아도 음악과 관련된 사항은 단 한 줄도 없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기획, 제작하고 있는 그의 활동에서 음악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손진기, 그는 누구일까?

 

‘꿈을 만드는 토크쇼’
‘소통’이 화두로 떠오른 오늘날, 새로운 소통의 방법으로 ‘토크 콘서트’가 생겨났고 다양한 토크쇼가 열리고 있다.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던 안철수의 청춘 콘서트를 비롯해, 특히 정치권에서 다양한 토크 콘서트를 내세웠는데, 사실 이 ‘토크 콘서트’를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손진기란 사실.
“라이브 토크쇼로 롱런하고 있는 사람은 현재 저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이것을 수입원이 아닌 사회 공헌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명 인사들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므로, 다시 사회에 돌려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분들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조명해 보고 배우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동안 김영환 전 장관, 개그맨 전유성, 아나운서 차인태,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성우 배한성, 미래에셋금융그룹 강창희 부회장, 잡코리아 김승남 회장, 인텔코리아 이희승 사장, 전 국가대표 양궁감독 서거원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꿈을 만드는 토크쇼’에 서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나눴다. 그리고 게스트와 어울리는 음악가를 선정, 출연하도록 순서를 마련해 늘 음악이 함께 하고 있다.
“이 토크쇼는 ‘살아있는 위인전’입니다. 어릴 때 위인전을 많이 읽게 되는데, 모두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토크쇼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 때문에 호응도가 큽니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 양궁 선수는 매일 1,000발씩 4년간 연습하고 올림픽에 나간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삶을 위해서 오늘 얼마나 노력했나?’ 자문해 보게 되지요.”
원래 이 토크쇼는 성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점점 어린이, 청소년 관객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참석했던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려왔고, 토크쇼를 본 자녀들이 스스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크쇼에 유명 인사가 출연하고, 내용도 알차지만 놀라운 것은 초대 손님들이 모두 무료로 출연한다는 사실이다.
“연봉이 몇십억 원인 분에게 제가 출연료로 얼마를 드릴 수 있겠어요?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런티가 없다는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그런데도 유명한 분들을 어떻게 섭외하냐고요? 섭외 요청을 했을 때 의외로 쉽게 수락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거절을 하면 될 때까지 시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6번까지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웃음).”

 

손진기, 그에게 음악이란?
시기상 연말연시에는 그에게 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해 달라고 요청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최근에 특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기업 음악회, 병원 음악회 등을 주당 평균 3~4회씩 기획하고 있다.
“음악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클래식 음악이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이 좋은 클래식 음악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거든요.”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음악회의 기획을 비롯해 외국의 오페라, 음악가 등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 오페라에 가서 심하게 코를 골고 잔 적이 있습니다. 외국어로 공연되는 오페라를 알아 듣지도 못하고, 객석과 무대 거리도 멀어서 출연자들이 점처럼 작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알맞은 실내 온도 속에서 편안한 의자에 2시간 넘게 앉아 있게 해놓고 어떻게 안 자길 바라겠어요?(웃음). 사실 대형 오페라에서는 작품보다는 세트, 조명 등 무대의 규모 면에서 감동을 받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 어떻게 해야 작품 자체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리타」라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성악가, 피아노 연주자, 음악감독 등 5명을 초청했고, 9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관객과 출연자가 서로의 눈빛과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이 오페라를 관람한 관객들은 집중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동안 소극장 오페라를 선보여 「세빌리아의 이발사」, 「사랑의 묘약」, 「라 보엠」을 무대에 올렸으며, 지난 해 12월 9일부터 오는 5월 25일까지 매주 금요일 뮤지컬 하우스에서 공연되는 「버섯 피자」는 그가 기획한 다섯 번째 오페라이다.
그는 원래 서초아트홀을 근거지로 활동을 시작했었다. 홀을 만들었지만 운영자가 필요했던 교회에서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와 그에게 이 곳을 맡긴 것이다. 홀 사용료를 받지 않을 테니 좋은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역 사회에 공급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래서 손진기는 이 곳에서 ‘꿈을 만드는 토크쇼’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나갔고, 4년이 지난 최근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곳에서의 활동으로 아이디어를 얻어 ‘공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음악회나 세미나, 파티 등을 열고 싶어도 어디에 어떤 형태의 홀이 있는지 정보를 얻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찾아보면 좋지만 활용되지 못해 비어 있는 홀도 많습니다. 현재 이 곳 저 곳에서 저에게 공간(홀)을 맡겨 13개 정도 모아졌고,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알맞게 연결해 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흔히들 ‘해외 공연’이라고 하면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개최되는 대형 오케스트라 음악회, 볼쇼이 아이스 발레 공연 등을 떠올리지만 작품성 있는 외국의 소공연도 매우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 캐나다의 제리코 비치 포크 뮤직 페스티벌 등에서 직접 공연을 본 후 좋은 무대는 한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그리고 재기
마케팅, 광고·홍보를 전공한 그는 방송국에서 PD로 11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10년쯤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에서 열심히 일해도 나에게 사장이란 자리를 주진 않겠지? 그렇다면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 남의 일만 하다가 죽을 수 없어!’ 그래서 무작정 회사를 그만뒀고 얼마 후 한 그룹의 홍보실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그것도 거부했다. 그리고 창업을 택한 그는 예솔기획사를 창업해 15년간 이끌었다.
“처음에는 창업해 사장이 되면 직원들에게 월급 정도는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고 정주영 회장을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훔친 소 한 마리로 시작해 몇십만 명의 생계를 책임진 기업가가 되셨으니까요. 그분이 늘 하시던 말씀이 “해보기나 해봤냐!”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사무실에 해 그림을 그려놓고 매일 보며 ‘오늘도 해보자’라고 다짐한답니다(웃음). 해는 밝음, 희망을 의미하잖아요.”
회사 경영이 녹록치 않았던 그는 인텔에서 펜티엄 프로세서의 홍보 대행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가 그 일을 맡게 되었고, 방한한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의 일정을 2박 3일 동안 완벽하게 수행해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텔의 펜티엄 프로세서를 시작으로 델, hp, 까르띠에, 루이비통, 벤츠, 클라이슬러, 포드, 캐딜락, 한국화이자, 시티뱅크 등 외국 브랜드의 홍보는 모두 그의 몫이 되었다. 당시 IMF 시절이라 국내 기업들은 고초를 겪었던 반면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들은 그 기간 동안 약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한국 업계에도 그에 대한 소문이 나서 쌍방울, 조흥은행, LG화학 등의 광고를 기획해 800여 개에 이르는 작품을 만들었다.
“당시 열심히 일했지만 또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아무리 해봤자 내 브랜드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의 ‘루미나리에’ 전시를 한국에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판권은 생각하지 않고 여기 저기서 루미나리에를 카피했고, 저는 빚더미에 앉은 것이지요.”
당시 그는 엔터테인먼트, PR, 홍보, 공연 등 5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날아갔고 세 채(본인, 형, 어머니 집)의 집도 잃었다. 그래서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고, 수십억 원의 빚으로 인해 경제 사범으로 수배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결국 죽을 결심으로 반포대교에 답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먼저 온 다른 누가 제 눈 앞에서 뛰어 내리는 것을 보고 놀라 신고를 했어요. 그랬더니 경찰에서는 최초 목격자가 용의자라며 저를 조사하더라고요. 나도 죽으려고 답사하러 간 것뿐인데(웃음).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요.”
당시 그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후배 아나운서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기도나 해보라고 권했다. 생각해 보니 그 역시 대학생 때까지 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 동안 사회 생활을 하며 잊고 살았고, 별의별 노력은 다했지만 기도는 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으니 자신을 향한 신의 계획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한 대형 교회의 새벽기도에 참석했다. 눈물과 함께 3시간 넘게 기도한 그는 일단 시원한 마음으로 교회를 나서려는데 그에게 다가온 누군가와 마주쳤다. 바로 그의 채권자였는데, 그 교회 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도 소리를 들었다는 채권자는 놀랍게도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당신 빚은 잊겠다. 당신은 살아야 할 사람이야.”라고. 그래서 그는 빚 때문에 도망다닐 게 아니라 용기 내 살기로 결심했고, 최근 모든 빚을 거의 청산했다. 부족한 지면상에는 이 정도로 요약했지만 다이내믹했던 그의 이야기를 조금 과장하자면 ‘천일야화(千一夜話)’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송진구의 저서 『극복의 힘, 빅 예스』에도 소개되어 있다.

 

세 가지 소원
그의 최종 목표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기획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 둘째는 문화부 장관이 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최고의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
“제가 하도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분들도 계세요. 그럼 저는 그저 ‘내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지요. 제 마음이 가는 곳의 일을 직업으로 삼아 온 것뿐입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 봤자 100세인데 정해진 것만 하고 살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리고 저는 한 번 시작한 일은 꾸준히 합니다. ‘짧고 굵게’ 보다는 ‘가늘고 길게’라고나 할까요.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게 강하단 뜻이잖아요. 제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살자’처럼, 내가 만들어낸 것으로 인해 많은 이에게 웃음과 행복, 기쁨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글·배주영 기자 / 사진·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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