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국립합창단 전임작곡가 김준범 / 음악춘추 2012년 12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2. 12. 6. 14:34

국립합창단 전임작곡가 김준범

 

국립합창단(예술감독 이상훈)은 2010년부터 전임 작곡가 제도를 도입, 초대 전임 작곡가로 김준범을 택했다. 김준범은 이미 안양시립합창단에서 7년간 전임 작곡가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으며, 많은 시립합창단들로부터 위촉받는, 소위 말해 ‘합창계에서 잘나가는’ 작곡가이다. 그는 1994년 성남시립합창단 합창곡 공모 당선을 시작으로 광복 50주년 창작곡 공모 관현악과 합창을 위한 칸타타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2002 대한민국 창작 합창제 작품상을 받은 바 있고, 대한민국 창작합창제(2004년, 2006년, 2007년, 2008년), 경기 문화재단 창작 합창 페스티벌(2009년), 고양 합창 페스티벌(2010년) 등의 위촉 작곡을 한 바 있다. 

 

***국립합창단의 전임 작곡가로서 어떤 일을 하는가?
시립합창단과 마찬가지로 국립합창단에도 크고 작고 공연이 많기 때문에 각각의 특성에 맞게, 이를 테면 어떤 연주회를 어떤 규모로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 편곡, 작곡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10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된 국립합창단 제144회 정기 연주회를 위해 칸타타 「구미호」를 작곡했다. 그리고 국립합창단이 창작 합창축제를 개최하고 있어 창작자들을 모으고 전체 기획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시립합창단의 전임 작곡가로 있을 때는 한 해 25곡에서 30곡 정도를 작곡했지만, 국립합창단은 외부 위촉이 많아서 현재 연간 15곡 정도를 작곡하고 있다.

 

***합창 작곡가로서 본인의 작품 스타일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사실 한 단체의 전임 작곡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보면 같은 팀이 계속 노래하다 보니 “작년에 쓴 작품과 비슷한데?”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한 팀에서 작곡가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대여섯 개의 색깔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한 팀에 오래 있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재미있거나, 울리거나, 어떤 고민거리를 던져준다든지... 그 중에서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슴 저린 이야기가 담긴 곡들인 것 같고, 나 역시 그런 작품을 만들 때 뿌듯하다.

 
***어떻게 합창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나?
중학교 때부터 합창단원으로 노래를 가까이 했고, 대학교 때 나영수 선생님께서 지휘하신 콘서트 콰이어의 합창 단원으로 활동하며 선생님의 눈에 띄어 연을 맺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합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해왔다.
합창은 악기와 다르다. 악기는 손을 짚으면 소리가 나지만 합창은 노래하는 사람이 음을 잡을 수 있게 작곡해 줘야 하기 때문에 합창을 많이 해본 사람이 작곡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성가, 비성가를 구분하지 않고 지금까지 500곡 정도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제비꽃」, 「청산을 보며」이다. 같은 시기에 나온 이 두 작품이 나를 많이 알린 작품이라 아무래도 더 애정이 있다. 그리고 10월에 발표한 [구미호]도 힘들게 작업해서 그런지 애착이 간다. 사실 올해 슬럼프가 깊었었는데, 그 때 대전시립합창단에서 위촉한 도종환 시인의 시로 「담쟁이」를 쓰며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담쟁이가 벽을 넘는 이야기인데, 그 시에 곡을 붙이며 나 역시 함께 슬럼프라는 담을 넘었다.
아방가르드한 현대 작품이 아니고서는 조성음악에서 순수하게 100퍼센트 새로운 것을 작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합창곡을 많이 쓰다 보니 아이디어가 바닥난 상태였고, 음악회를 다녀보면 참 좋은 합창 작품이 많았다. 어떤 작곡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0년, 20년 계속 작곡할 사람에게는 발목을 잡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계속 새로운 것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올해 봄에 특히 심했다. 하지만 어떻게 곡을 쓰려고 했는지를 잊고 텍스트가 요구하는 대로 작곡할 때가 있는데, 「담쟁이」를 작곡할 때 그랬다.

 

***합창 작곡을 위해 좋은 시를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겠다
합창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좋은 점은 텍스트가 있다는 점이다. 텍스트는 다양하고 많은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쓸게 없다고 고민될 때마다 텍스트가 주는 힘이 있다. 위촉을 할 때 원하는 가사에 작곡을 해달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분위기의 곡을 써달라고 할 때도 있는데,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후자 쪽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늘 시를 모으고 계속 읽고 있다.
읽었을 때 그냥 좋은 시가 있고, 노래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고른 시라고 해도 작곡을 시작했을 때 반드시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시를 고르고, 그 시가 노랫말이 되기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 어떤 작품을 작업 중인가?
지난 10월 발표한 <구미호>의 대본을 쓴 박새봄 작가가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에 담긴 쌍용자동차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동명의 새로운 텍스트를 작업 중이다. 감동적이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우리의 일상을 칸타타로 쓰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나와 작가와 협업하는 것이다.

 

***그 밖의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합창 작곡계가 열악한 환경이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받은 게 많기에,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2002 월드컵처럼 재미있는 기억은 두고두고 꺼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결되지 않은 가슴 아픈 일들은 자꾸 잊고, 묻으려 한다. 영화, 문학 등 다른 분야에서는 아픈 기억도 끄집어내고 자꾸 이야기하는데,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그런 것을 들춰내길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종군위안부, 남북 분단,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문제 등이 그러하다. 아픈 기억이라고 자꾸 꺼내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맞는 작곡가들과 연대해서 그런 작업을 할 계획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의자 놀이」도 그런 것 중 하나이다.

 

***전임 작곡가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자면?
기대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많으므로 지휘자들도 자신의 합창단에 전임 작곡가가 있길 바란다. 내가 늘 하는 이야기가 국내 시립합창단 중 스무 곳에 전임 작곡가가 있고, 이들이 일년에 20곡씩만 써도 400곡의 레퍼토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합창곡 레퍼토리가 없다고들 말하는데, 전임 작곡가가 늘어나면 레퍼토리 교류도 되고, 합창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각 시의 아마추어 합창단, 학교 합창단은 레퍼토리가 없어서 고민인데, 레퍼토리 없는 아마추어 합창단은 시립합창단에 문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시립합창단이 자기 지역 합창단의 레퍼토리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합창환경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합창 창작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작품이 연주될 때마다 사용료가 지불이 되길 바란다. 한국의 합창단들이 외국 출판사의 악보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FTA 이후 외국 출판사들이 우리나라를 주시하고 있다.
현재 내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합창작곡가협회에서 준비하는 것이 연주 될 때마다 작곡가에게 미리 알려지고, 많은 액수는 아니더라도 사용료가 지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작곡가가 좋은 곡을 쓰는데 동기 유발이 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소개하자면?
지금까지는 5분 정도의 곡, 20분 정도의 한 스테이지를 위한 작품, 앙코르를 위한 편곡 등 단편 위주의 작품을 많이 작업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시간 이상의 칸타타 같은 작품을 해마다 한 개씩은 작곡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칸타타는 늘 이순신, 안중근 등 죽은 영웅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위인전처럼 담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고 애틋하게 느낄 사랑이야기, 우리 생활에 밀착된 것을 칸타타로 만들고 싶다. 공연을 본 후 위인이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투영되고, 또 다른 감동이 있을 수 있는 칸타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주제를 담은 메이저 곡을 많이 쓸 계획이고, 이것이 다른 작곡가에게 자극이 된다면 그러한 시도들이 좀더 많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합창계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 기대된다.

한양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했으며, 안양시립합창단 전임 작곡가와 합창모임 새하늘 새땅 음악감독 및 지휘자를 역임한 김준범은 현재 한국합창작곡가협회(KCCA) 회장, 국립합창단 전임 작곡가, 하름 교회 많은 물소리 성가대 지휘자, 평화의 나무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아리랑 ‘여행을 떠나요’ 작곡 및 음악감독, 극단 금강 가극 ‘금강’ 편곡 및 음악지도, 홍순관, 전경옥, 김원중 등 음반 코러스 및 편곡으로 참여했다. 또한 양희경의 ‘늙은 창녀의 노래’, 국립극장 아시아 동반자 프로젝트의 음악감독을 비롯해, 단편영화 〈My best friend〉, 〈어떤 이별〉, 뮤지컬 〈히스토리〉, 경제 뮤지컬 〈재크와 요술주머니〉, 가족 뮤지컬 〈햇님달님〉, 〈정글북〉, 〈타잔〉 등 다수의 작품을 작곡 및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성가곡집 『주의 기도』, 합창곡집 『앙코르 뭐하지?』 , 혼성합창곡집 『청산을 보며』, 여성합창곡집 『제비꽃』 , 성가곡집 『시냇가에 심은 나무』, 부활절 칸타타 『이미 시작된 나라』 등을 출판했다.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