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이상훈 / 음악춘추 2012년 6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2. 5. 3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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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우가 만난 이 달의 아티스트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이상훈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소리 형성에 일조

 

대담_박경우(음악평론가) 사진. 김문기

 

사회 각 분야를 이끄는 사람들의 성향을 대별하면 리더형과 보스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 가운데 음악계 역시 마찬가지 양상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과거처럼 권위적으로 군림하는 보스형보다 소통과 화합을 이끄는 리더형 인물이 추앙(推仰)받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국립합창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두 가지 중책을 맡고 있는 이상훈은 단체를 이끄는 면과 예술적 측면에서 리더형 인물로 간주할 수 있다.

 

박경우_ 여러 차례 공연과 대화를 통해 이 감독님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본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훈_ 저 자신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공연준비가 미흡하거나 또는 그릇된 처신을 했을 때는 자신을 몰아세우지요. 하지만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세상에 이해 못할 것은 없다는 마음입니다. ()으로 사람들을 지도하거나 함께 이끌어 가는 덕장(德將)이 되고 싶은 것이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박경우_ 지금까지 삶의 과정을 말씀해 주시지요.

 

이상훈_ 서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릴(Reel) 녹음기와 전축이 집에 있어 일찍이 교향곡 등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피아노 배우는 남학생이 많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 수소문하여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피아노를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행운이었지요. 경신중학교 시절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선생님들께서 노래 잘하는 학생으로 기억해 주셨고, 경동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합창과 중창단 활동을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학생들이 저에 대한 이미지는 운동장 조회 때 애국가를 지휘하는 학생으로 기억했었지요. 그렇게 학창시절부터 지휘를 하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고등부 성가대가 있는 큰 교회로부터 부름을 받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전공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멋모르고 실질적인 지휘자 활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후 전공은 성악으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지휘에 대해 적극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미국의 윌리엄 A. 와이만 교수님께서 서울대의 교환교수로 부임하시면서부터입니다. 교수님은 성악과 교수 겸 합창지휘자로 활동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합창 수업을 담당하고 제가 그분의 제자가 되면서 합창음악의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각 세미나에 초청되시면 제가 통역자로서 동행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과 대학원 과정에서 와이만 교수님께 배우면서 합창지휘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교수님께서도 적극 추천해 주셨습니다. 저는 국립합창단에 재직하면서 대학원을 병행했습니다. 와이만 교수님이 떠나고 난 다음 서울대 음대 챔버 콰이어를 조직하였습니다. 이후 10년간 활동이 지속되었는데, 창단 후 6년 동안 제가 지휘했지요. 당시 교수님이 이끄시던 콘서트 콰이어가 있었는데, 학생이 합창단을 조직해서 성악과를 중심으로 합창활동을 하니까 미운털도 박혔었지요(웃음). 콘서트 콰이어는 배덕윤 교수님께서 창단하셨는데, 이후 배 교수님께서 학교를 떠나실 때 당시 총무였던 박치용(현 서울모테트합창단 지휘자) 씨가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학창시절의 합창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콘서트 콰이어와 챔버 콰이어가 서로 선의의 경쟁도 하고, 교내에서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단원으로 제 동기나 후배들이 참여했는데, 예를 들면 한예종의 양의준 교수, 바리톤 한경석 교수, 경북대 유소영 교수, 서정학 교수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성악가들과 더불어 재밌게 활동했던 시절입니다.

 

이상훈 감독은 그 시절 6년간의 활동을 통해 합창지휘를 전문적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과 목표를 갖게 된다. 그가 배웠던 와이만 선생의 초청을 받아 미국 유학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국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진로를 수정하여 독일 만하임 음대로 유학을 결정한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에 대해 이 감독은 ?합창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병행하면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합창을 이끌면 노래하기가 불편해서 연주 효과가 좋지 않고,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합창지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유봉헌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대에서 합창을 맡아서 지휘하셨는데, 독일 만하임 음대를 가면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동시에 공부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만하임 음대에 입학하여 제가 원했던 오케스트라와 합창공부를 병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박경우_ 현재의 활동은 지휘자로서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감독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일상을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상훈_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습을 진행합니다. 저는 9시에 출근하여 아침에 결제할 일들을 먼저 처리하고 국장님, 총무님과 짧은 미팅을 갖습니다. 점심은 되도록 단원들과 같이 하고, 4시에 사무실로 돌아오면 합창단 운영을 위한 회의를 갖습니다. 국립합창단이 사단법인으로 전환된 지 12년이 되었습니다. 많은 노하우가 생겼고, 시스템이 자리잡았지만 제가 욕심을 내는 부분들이 있어서 사무국 단원들은 아마 힘들 것입니다. 회의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갖고 있는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는 사무국 내부가 소통이 되어야 하고, 합창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공유하며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시간을 꼭 마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합창단의 소리 만들기 작업도 일상에 속합니다. 지휘자가 ?이렇게 소리 내라.? 고 제시하는 것, 그것은 분명히 지름길일 것입니다. 물론 빠른 시간 내에 모아질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국립합창단이 내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오랜 전통을 가진 합창단이라면 지휘자 한 사람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전통 있는 소리를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조건 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합창단 전체 단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가지고 낼 수 있는 소리가 오래 갈 수 있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부터 함께 고유의 소리를 추구해 왔기 때문에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소리, 즉 나영수 선생님께서 이뤄 오셨던 사운드를 조금 더 탄탄하게 만들어 ?국립합창단의 사운드는 이런 것? 이란 인식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박경우_ 지휘자마다 성향이 제각기며 자신만의 특성을 부각하려는 마음들이 없지 않은데

 

이상훈_ 저는 경직된 소리를 원치 않습니다. 합창음악은 세부적으로 폭넓고 다양한 변화를 추구해야 하므로 상응할 팔색조 같은 변신을 추구할 것을 요구합니다.

 

박경우_ 무대 연주는 준비를 충분히 해도 만족스런 결과를 실현하는데 한계가 있지요.

 

이상훈_ 무대에서는 핑계가 통하지 않지요. 관객들은 연주자의 개인적 사정을 파악하거나 이해할 리 만무하지요. 여기에 내부적 어려움도 있습니다. 법인화된 지 12년이 되었으니 재원을 확보해야 단원들에게 임금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되는 공연은 다 나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올해도 연간 60회 연주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것은 거의 오케스트라 수준의 연주 횟수입니다. 여타 시립합창단은 찾아가는 음악회 등 각각 조를 짜서 부분적으로 활동하기도 하는데, 국립합창단은 전체가 동원되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1년에 60차례나 되는 연주를 소화해 내야 하니 더욱 부담이 됩니다. 이번 공연(아카펠라 & 오르간과 함께 하는 합창음악의 밤)처럼 정기연주회를 이틀 앞두고 중국 공연을 다녀와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오늘도 제가 오전 중에 한 일은 후원 기업체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가를 대표하는 단체로써 수준에 걸 맞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데, 이 같은 현실 상황 때문에 높은 예술적 수준을 실현하는데 다소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할 때가 많습니다.

 

박경우_ 기업의 이윤을 사회 및 예술단체에 기부하는 메세나 붐이 일었던 적도 있는데, 일부만 그 혜택을 받는 현실이지요. 다음으로 합창음악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상훈_ 제가 합창지휘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합창활동은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악기처럼 오랜 시간 많은 것을 학습하지 않더라도 쉽게 모여 활동하고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잘 살게 된 환경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그에 상응할 문화예술적 향유의 기회가 조성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국립합창단이 예술적 가치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좋은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소신입니다. 또한 애호가들의 현실적 눈높이에 맞추되 다양한 체험을 통해 예술적 안목을 끌어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박경우_ 지향하시는 방안 중에 또다른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상훈_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합창곡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국립합창단의 사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나영수 선생님께서 추구해 오시던 사업이고, 이는 앞으로도 반드시 지속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기존의 가곡이나 가요까지도 예술적으로 편곡함으로써 수준 높은 합창곡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합창단도 소화할 수 있는 곡들을 창작함으로써 저작권의 부담 없이 접근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악보출판과 동시에 CD 출반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또한 외국의 합창단에서 한국 합창곡을 소개해 달라고 했을 때 그간 언어적 장벽이 문제시되었었는데, 이제는 그들의 기대 및 요구에 부응할 만한 작품에 영문을 병기함으로써 연주하기 쉽게 할 생각입니다.

 

박경우_ 합창계의 중심에서 현황을 냉철하게 말씀하신다면.

 

이상훈_ 많은 합창단들이 효과 있는 곡만을 추구하다 보니 합창음악의 뿌리가 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국립합창단 공연의 전반적인 레퍼토리에 구성에 대해 어떤 이는 재미없고 길기만 하고 옛날 것만 연주한다는 분도 있는데, 제 생각에 누군가는 그 같은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간 합창계가 관객에게 오래도록 편식을 강요해 온 듯싶습니다.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고전적인 오라토리오 등 주요 레퍼토리 연주가 균형 있게 안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경우_ 다가올 40주년 행사에 대한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상훈_ 내년 517일이 40주년 되는 해입니다. 기념 연주회를 준비 중인데, 지금까지 재임하셨던 역대 음악감독님들을 모시고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연주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장차 50주년을 맞이하기에 앞서 이제까지의 모든 국립합창단의 중요한 자료들을 총망라하여 40주년 기념 책자를 발간할 예정입니다. 또한 연중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내년 상반기 동안 국립합창단이 주최하는 합창 세미나를 개최하고, 각 분야의 권위자를 모셔서 매주 토요일마다 합창 아카데미를 열 예정입니다. 누구든지 와서 들을 수 있게 문호를 활짝 열 것입니다. 장차 국립합창단은 교육사업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경우_ 예술가는 끊임없는 자신의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데, 본인의 예술적 성장을 위해서 지향하는 방식은 무엇입니까?

 

이상훈_ 지휘자는 특히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지요. 항상 새로운 곡이 만들어지니까요. 천지창조도 그간 수 차례 연주했지만, 지난 2월 연주 때에는 총보를 새로 바꿨습니다. 새로운 차원에서 공부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악보에 대한 공부를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낮 시간이 바쁘다 보니 악보 볼 수 있는 시간이 새벽밖에 없어서 새벽시간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단원들 앞에 섭니다.

 

박경우_ 어떤 마음 자세로 작품을 대하고 해석하는지요?

 

이상훈_ 우선 그 작품 자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악보를 통해 살핍니다. 그 다음으로 작곡자의 다른 장르의 음악들을 접하려고 합니다. 합창의 경우에는 대부분 가사가 있기 때문에 가사에 대한 이해나 해석이 우선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는 시대에 걸맞은 연주 방법을 고려합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음악사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비록 짧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많은 시간을 악보와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데에 시간을 할애합니다.

 

박경우_ 국립합창단의 40년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지휘자로서 이상훈 예술감독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매김하시려는지요?

 

이상훈_ 국립합창단 단원 출신으로서 국립합창단의 예술감독으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저로서는 큰 행운입니다. 앞선 지휘자님들이 잘 닦아놓은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며, 잘 준비된 다음 지휘자에게 국립합창단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를 위하여 노력 할 것입니다.

 

 

박경우_ 연주자가 예술행정을 맡는 것은 별도의 자질과 능력을 요하는 부분인데, 이런 관점에서 안타까운 점은 무엇입니까?

 

이상훈_ 물론 예술단 사무국 직원들이 너무들 열성적으로 일하지만 예술가 입장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어요. 사무국이 예술가들을 사무적으로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더 나은 창작예술 행위를 도와주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수많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행정에 맞춘 창작 예술행위는 정형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가가 행정을 함께 한다는 것은 바로 예술적인 마인드를 전제로 한 행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성악의 재원들이 모여 있는 국립합창단에 대한 사무국의 관심은 수준 높은 예술가들이 마음껏 높은 기량의 예술행위를 펼쳐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상훈 예술감독과 만나 두 시간 동안 대화하는 동안 그의 자태는 전혀 흐트러짐 없었다. 또한 방문객이 미안할 정도로 태도는 겸손하였고 어조는 일관되며 논리는 정연하였다. 그 속에서 예술가로서 그의 확고한 신념과 예술사랑의 깊은 정신을 가늠할 수 있었다. 모두를 존경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이 맡은 직책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정신이 살아 있고 투철함을 확인할 수 있어, 그가 재임하는 동안 국립합창단 전선에 이상 없을 확신은 물론,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마음에 가득 했다.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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