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경희대 음대 교수 김승림 / 음악춘추 2012년 10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2. 10. 11. 11:31

경희대 음대 교수 김승림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는 작곡의 길

 

“제가 작곡을 하게 된 경로도 그렇고, 음악이란 본인이 하고픈 의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빠른 시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순수 음악 부분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제자들이 당장의 보상이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길게 보는 안목을 갖고, 작곡하는 기쁨을 알게 되어 평생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작곡가 김승림이 2012년 2학기부터 경희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음악을 전공한 부모님 덕분에 일찍이 피아노를 배우는 등 음악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그 역시 음악으로 진로를 정했지만, 학창시절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공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은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뒤늦게 작곡 공부를 시작,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진학했고, 동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음악을 더욱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에서 지휘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군대를 다녀오면서 작곡으로 진로를 굳히고 2000년 초 독일 유학길에 올라 쾰른 국립음대와 자르브뤼켄 국립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2007년 말에 귀국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곡의 길에 들어선 김승림을 이끌어 준 좋은 스승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대학시절 고 김정길 선생을 사사한 김승림은 “김정길 선생님께서는 78세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곡을 쓰신 늘 한결같은 작곡가이셨고, 음악의 내적, 외적 경계를 뛰어넘는 진취적 사고를 갖고 계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지휘를 공부하던 시절에는 임헌정 교수를 통해 전통음악의 심도 있는 분석과 여러가지 실질적인 작곡 테크닉을 많이 배웠다고. 또한 독일 유학시절 사사한 Krzysztof Meyer, Theo Brandmueller 두 명의 교수에게서 공통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실질적인 작곡뿐 아니라 모든 생활의 중심에 작곡이 있어야 하며, 작곡가로서 늘 작품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하고, 창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작품을 쓸 때 많이 생각하고, 집중하고, 시간을 투자할수록 양질의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바로 없다고 해도 기다릴 수 있는 자세를 그 때 배운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마주할 김승림은 무엇보다도 제자들에게 자신이 스승이기 이전에 ‘작곡가’로 비쳐지길 원하고, 동료 작곡가로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독일 유학 중반이었던 2004년은 두 번째 학위를 시작했던 해로,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004년에 조금씩 작품의 결실을 보기 시작했고, 작곡가로 사는 것을 받아들인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한 계기를 제공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가을 창문’」은 그 시기에 완성된 작품으로, 2006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현대 음악제에서 초연되었으며, 올해 3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CL-Korea 국제음악제에서도 연주된 바 있다.


“유학 중이어서 그런지 여전히 저 스스로를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것이 겸손한 마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제 작품에 대한 책임을 미루는 구실이 되더라고요. 당시 34살이었기에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작품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고, 스스로 ‘나는 작곡가다’라는 것을 받아들인 때입니다. 그러면서 제 생활, 그리고 작품도 변했지요.”
젊은 작곡가인 김승림의 작품은 다양한 무대에서 활발히 연주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 봄 교향악축제에서 코리안 심포니가 연주한 「여전히 울리고 있는...」은 2003년 초안을 잡았고, 2008년 부천 필의 위촉으로 완성된 것으로, 일본 도쿄에서 2010년에 열린 아시안 뮤직 페스티벌의 공모에 당선되어서 작곡가인 그의 지휘 하에 도쿄 필이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8월 31일에도 부천 필의 위촉으로 「관현악을 위한 ‘야상곡(夜想曲)’」을 발표했으며, 10월 17일에는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Asian Composers League Confernece의 공모 당선작인 그의 「세레나데」가 연주된다. 이는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트리오 한’의 위촉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는 연말에 작곡동인 지음에서 발표할 작품을 작곡하고 있으며, 11월에 있을 수원음악학회의 정기 연주회에서도 신달자 시인의 시를 텍스트로 한 「두 명의 소프라노와 첼로, 피아노, 오르간을 위한 ‘빛과 그림자’」가 연주될 예정이다.


“오케스트라는 좋은 역사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음악 어법이 변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지만 제가 지휘를 공부할 때 좋았던 기억들이 살아있어서 오케스트라 작품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대한민국 실내악 제전에서 5명의 작곡가와 극음악 연주회를 했었는데, 극음악도 매력적인 장르란 생각이 들어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 극음악은 현대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김승림은 “앞서 말했듯이 순수예술이라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분야인데, 요즘 사회에서는 빨리 성과를 요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가의 지원도 1년 단위로 되고 있는데, 1년 지원으로 실적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순수예술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3, 5, 10년 정도의 지속적인 지원 후 실적 평가와 요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질적인 성장은 매우 어렵다며, 특히 창작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