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최재혁
PPYC 국제 경연대회에서 2위 및 우수상 수상
기악 부문 영재들의 국내외 콩쿠르 입상 소식은 꾸준히 들려오고 있지만 작곡 영재의 괄목할 만한 활동은 드물었다. 하지만 작년 12월, 미국 MTNA(Music Teachers National Association) 작곡 콩쿠르 내셔널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미 동부지역 우승을 차지했던 최재혁 군(만 17세)이 반년 만에 또다른 수상 소식을 알려왔다. 지난 6월 Pikes Peak Young Composers International Competition(이하 PPYC)의 Division Ⅰ(16-18세 부문)의 Category B에서 2위와 우수상을 차지한 것이다.
PPYC는 젊은 작곡가를 위한 국제 콩쿠르로 정평이 나있으나 그 동안 한국인의 수상이 없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전세계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국제 콩쿠르의 입상자 명단에 최초로 한국 유학생이 이름을 올린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국제 작곡 콩쿠르인 PPYC는 18세 이하의 젊은 작곡가를 대상으로 하며, 연령별, 장르별로 나뉘어 지원을 하게 되어 있다. 최재혁 군은 「세 대의 플루트, 소프라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6중주」로 2위를, 그리고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주」로 우수상을 받았다. PPYC의 설립자이며 2012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Leonard Rhodes 예술감독은 “올해 대회 참가자의 수준은 PPYC의 지난 17년 역사상 최고였으며, 특히 Division Ⅰ이 치열했다”고 밝혔다.
“사실 레슨 때 지적을 많이 받기도 했던 곡들이었지만 마침 PPYC의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편성이라 큰 기대 없이 출품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작곡 콩쿠르는 악보와 녹음된 CD를 함께 제출해야 하는데 PPYC는 악보만 제출한다는 점이 특이했고, 그래서 보다 더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콩쿠르라고 생각했어요. 제출한 두 곡으로 2등, 우수상을 동시에 받아서 기쁘고,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아요.”
2위의 「세 대의 플루트, 소프라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6중주」는 작년 11월 윤동주의 시 〈내일은 없다〉를 바탕으로 풀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6중주 작품은 지난 3월 용산아트홀에서 열린 제1회 서울 월넛힐 페스티벌에서 그의 지휘로 초연되기도 했는데, 당시 독특한 편성, 그리고 고등학생의 현대작품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우수상을 받은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주」는 작년 여름에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여름 축제의 작곡 클래스에서 처음으로 현대음악을 접하고, 공부하며 작곡한 것이다. 예전에는 현대음악이 많이 생소하고 친숙하지 않았지만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여름 축제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현대음악에 마음이 열리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재혁 군은 앞으로 창의적인 새로움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자신만의 독창성을 지닌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7살 때 동네 음악학원에서 취미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뉴질랜드 어학연수 시절,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1년 후 한국에 돌아와 아르떼 유스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지휘에 관심이 생겨 카라얀의 DVD를 보며 지휘를 흉내 내보기도 하며 자연스레 수많은 오케스트라 곡을 접했다. 차츰 베토벤과 바그너와 같은 작곡가들에 대해 깊고 넓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 1때부터 혼자 곡을 쓰고 연주해 보던 중 우연히 단국대의 박정선 교수를 만나 재능을 인정 받았다.
“영화 〈카핑 베토벤〉도 저를 작곡의 길로 인도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어요. 재미 삼아 작곡을 하고 있었지만 그 영화를 보며 제대로 작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베토벤이 작곡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목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강렬한 감동이었지요(웃음).”
재혁 군은 중3이었던 2009년 여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재 보스톤의 월넛힐 예술고등학교 11학년에 재학 중이며,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예비학교 과정도 밟고 있다.
“현재 공부하고 있는 미국 학교에서는 곡 제출 마감이나 평가가 없어요. 학교 선생님께 레슨을 받고 일년에 3번 월넛힐 작곡가 연주회를 합니다. 어떤 곡을 쓰라든지, 어떻게 작곡하면 된다고 구체적으로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직접 선생님들을 찾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제 작품에 대한 기성 작곡가들의 시각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각자 작곡 성향에 따라 조언이 달라 고민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갈피를 잡기 힘들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다양한 조언들을 가운데 저만의 독창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 중인 거 같아요.”
또한 재혁 군은 작년 4월,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 진은숙의 마스터 클래스에 선발되는 행운을 안기도 하였다. 우수한 작곡 영재를 발굴, 육성하고자 서울시향에서 기획한 상임 작곡가 진은숙의 마스터 클래스는 ‘아르스 노바’시리즈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재혁 군은 이 마스터 클래스에 선발되어 진은숙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그 중 뛰어난 다섯 명의 학생에게만 주어진 프랑스 작곡가 파스칼 뒤사팽(Pascal Dusapin)의 마스터 클래스에도 참여했는데, 이는 고등학생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매년 봄, 가을에 개최되는 진은숙의 마스터 클래스에 계속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재혁 군은 더욱이 올 11월 ‘아르스 노바’에 초청된 헝가리 작곡가 겸 지휘자 페테르 외트뵈시(Peter Eotvos)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그의 「첼로 협주곡」을 리딩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가을에 있을 「첼로 협주곡」 리딩은 콩쿠르 수상만큼, 오히려 더 좋은 기회라서 기뻐요. 오케스트라 곡을 써본 적은 있지만 협주곡을 진지하게 작곡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떨립니다. 제 작품이 연주 기회를 얻는 것, 더구나 서울시향이 연주한다는 것은 큰 영광이지요.”
최재혁 군은 진은숙, 박정선, Chaya Czernowin, Rodney Lister, Whitman Brown, David Ludwig, Sivan Cohen-Elias를 사사하고 있다.
글·배주영 기자 / 사진·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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