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피아니스트 김주영 / 음악춘추 2013년 5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3. 5. 22. 18:38

박경우가 만난 이 달의 아티스트

피아니스트 김주영
사회에 이바지하는 음악가로서의 삶 실현

 

글_대담 및 구성 박경우(음악평론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사진_김문기 부장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고 넓혀 가는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의 삶은 어느 누구도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음악계 및 예술계에 한정된 사항은 분명 아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스페셜리스트들 역시 험난한 인생여정을 통해 자신을 실현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동일한 속성을 드러낸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경험한 온갖 난제들이 피아니스트 김주영의 예술적 사유를 풍요롭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옛 격언에,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다. 현재 중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과거 선현이나 스승 및 부모를 통해 ‘귀

에 못이 박힐 정도’로 자주 듣곤 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사회상을 고려할 때 일견 타당한 의미로 간주되고 인식되어졌다. 그러나 21세기는 투 잡(Two Job), 쓰리 잡(Three Job)이 보편적 양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비단 생계를 위해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례와는 차별적인 것임을 분명히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 역시 자신의 전문영역과 연관된 다각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김주영 역시 피아니스트로서 지향적인 삶을 추구함과 동시에 일반인에게 음악의 보편화 및 대중화를 실현하기 위한 또 다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를 연상하면 방송인과 음악 해설가라는 인식이 선행된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 그가 지향했던 목표와 방향을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활동하는 그 외의 활동에 있어서 상호 시너지효과를 갖게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피아니스트, 방송인 겸 음악 해설가 및 교수로 활동하며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그의 예술적 사고의 깊이가 궁금해졌다. 그와의 대화를 위해 김주영이 시리즈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강동아트센터를 찾았다.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아트센터를 견학하는 학생들 무리와 방금 강의를 수강한 듯 보이는 많은 여성들이 찻집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고 여유롭게 느껴졌다. 문화예술의 현장을 찾을 수 있는 삶의 여유 및 예술향유를 지향하는 선택받은 그들의 모습이다.
김주영의 부친은 외국계 금융사에서 활동하였다. 가족 가운데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없지만, 생활 속에서 음악을 즐기고 향유하는 삶을 지향하는 부모의 영향은 김주영에게 또다른 음악적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그 때문에 김주영이 피아노를 전공으로 선택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단지 과거의 김주영은 다소 풍채 있는(?) 현재의 모습과 달리 연약 체질이어서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이 힘겹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우려를 하셨다고 한다.

박경우_ 그간 방송, 연주와 교육 등 음악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는데, 과거 청소년기에 남자가(?) 피아노의 길을 선택함에 있어 전적으로 부모님이나 주변의 여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피아노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김주영_ 저의 과정은 그야말로 소박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집에 있던 피아노를 놀이기구처럼 여겼던 것 같습니다. 물론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수업을 받았지만 초등학교까지는 심적 부담 없이 취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박 경우_ 요즘은 자녀가 어려서부터 음악을 전공시키려는 학부모들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성장기 청소년들이 때로 안쓰럽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가 없지 않은데,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벗삼다 후일 자연스럽게 전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합니다.


김주영_ 물론 이후에는 피아노 학습에 매진하였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피아노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고교 3학년 때 틴에이저피아노콩쿠르에 상위 입상하면서 피아노를 전공해야겠다고 확신하고 다짐하게 되었으니, 결정은 다른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늦은 편이지요.(웃음) 그 때만 해도 권위 있는 상위권 콩쿠르에 도전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심적 부담과 긴장감이 없지 않았지만 한편, 매진하여 결과가 좋아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이후 프로코피예프콩쿠르는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기회라서 뜻 깊었습니다. 이 두 과정이 저를 피아니스트로서 삶의 길을 지향함에 있어 확신을 갖게 한 중요한 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박 경우_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를 졸업 후 러시아의 제1호 한국 유학생으로 국립 모스크바 콘서바토리 대학원과 연주박사과정을 졸업하였는데, 당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러시아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김주영_ 개인적으로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해석과 표현 등, 그들의 연주성향에 이끌렸었고, 그런 연유에서 모스크바음악원은 제겐 특별한 의미이자 ‘꿈의 학교’라고 느꼈기 때문에 러시아가 개방 이후 그 곳에서의 생활과 교육 등 모든 면이 생소함으로 인한 난관이 예상되지만 결정하고 감행했습니다.

 

박 경우_ 러시아 유학시절 어떤 교육방식이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는지?


김주영_ 유학 초기엔 저를 담당했던 교수님의 깊은 뜻과 배려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그로 인한 심적 갈등 및 혼란이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게 무대에서의 적응력, 프로로서 자세 및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서정성과 디테일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교육방식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자주 교내 및 교외 무대에 서도록 하셨는데, 때로 거의 매주 무대에 서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하셨습니다(웃음.) 제가 학습하던 곡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바로 이런 저런 무대에 서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는데, 당시로는 없던 한국인 유학생이어서 특별히 배려해 주심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박 경우_ 쇼팽 서거 150주년 기념 녹턴과 폴로네이즈 전곡 연주회를 총 3회에 걸쳐 완주하였는데, 그 때의 감회를 피력한다면?


김주영_ 이외에도 2010년 쇼팽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마주르카 전곡을 연주했습니다.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꽃인 쇼팽의 작품은 연구할수록 매력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탐구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박 경우_ 차이코프스키의 「연주회용 환상곡」, 알반 베르크의 「실내 협주곡」,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카프리치오」를 한국 초연하는 무대에서 협연하게 되었는데, 기존의 악곡들을 연주하는 것과 솔리스트로서 초연곡 연주에 동참하는 것은 특별한 기회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때의 감회는 어떠했었는지?


김주영_ 매우 보람있던 작업으로, 개인적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무대였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곡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다른 장르의 작품들과의 차별화를 도모할 혜안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박 경우_ KBS가 주최하는 ‘한국의 음악’ 시리즈에서 음반을 출반했는데, 레퍼토리는 어떤 곡이었고, 그 곡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김주영_ ‘가곡의 왕’이라 지칭되는 슈베르트의 가곡을 리스트가 피아노로 편곡한 곡들이었는데,  저의 선생님이셨던 이그나체바 교수께서 즐겨 연주하시던 레퍼토리며, 저 역시 음반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3년 5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