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특별대담 - 음악 이론 학문의 현재와 미래 / 음악춘추 2015년 9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6. 3. 29. 13:00

특별대담 - 음악 이론 학문의 현재와 미래

일시: 2015년 8월 18일 오전 11시 30분
장소: 예술의전당 음악당 지하1층 심포니 카페
진행: 김시형(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패널: 정경영(한양대 음악대학 교수)


주  제:
1. 음악 이론 계열 학문 분야의 존재 필요성
2. 음악 비평 문화의 필요성
3. 융합 학문 발전에 있어서의 음악의 위치
4. 음악 이론 계열 학문의 현실적 문제점
5. 음악 이론 계열 학문의 미래 발전적 제안


김시형_음악춘추에서는 음악계 현안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로 매월 특별대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음악 이론 학문의 현재를 통해 앞으로의 미래를 정경영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찾아볼까 합니다. 정 교수님은 음악이론 계열 학문 분야에 어떤 파트가 존재하고 그것들이 왜 필요한지, 음악이론 계열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경영_ 우리나라는 서양음악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전공이 1981년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이론전공으로 처음 생겼습니다. 음악에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모든 방법을 음악이론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는 음악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음악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동차로 예를 들면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은 지금 “이 자동차는 어떤 구조로 되어있지?”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들은 체계적, 구조적 질문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자동차는 누가 발명했고, 마차가 어떻게 자동차가 되었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역사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도 학문적으로 궁금해 하고 알려고 한다면 체계적 접근과 역사적 접근을 할 수 있습니다. 음악에서의 체계적 접근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서양에서 관습화된 음악의 내적논리를 알아보는 것이 있는데 이를 음악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음악내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느냐를 묻는 음악심리학, 인지심리학,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떻게 음악이 작용하느냐를 묻는 음악사회학이 있습니다. 음악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가치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음악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요즘 여러 학문들이 생기면서 음악을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들도 생겼습니다. 예컨대 종족음악학(음악인류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낯선 음악에 대해 살펴보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원주민의 음악을 살펴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다른 종족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문화에서도 인류학적 접근을 하곤 합니다. 예컨대 힙합문화를 연구하거나 하는 식으로 자국 안의 세세한 문화적 그룹을 연구하는 것이죠. 어쩌면 소수문화라는 의미에서는 오히려 클래식 문화가 인류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 다음에는 음악생리학과 같은 것도 있습니다. 뇌에 음악이 어떻게 작용하여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는지 연구할 수 있죠. 정리하면 지금의 음악이 어떻게 생겼고 그 대상이 어떤 일들을 하느냐에 관심을 갖는 연구가 체계적음악학이라면 역사적음악학은 음악의 역사를 살피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체계적음악학과 역사적음악학은 당연히 섞여 있기도 하고요. 음악 역사 연구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과거를 이해하려는 접근을 하고 있고 악보와 기보법의 발달을 보거나 음악작품, 악기그림, 문헌 등을 가지고 과거의 음악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경우가 포함됩니다.


김시형_그러니까 연구되지 않았던 음악들에 호기심으로 접근하였는데 그러한 방법론들로 인해서 없었던 자료조차도 지금의 현 상태를 보고 고증을 통하여 다시실제를 재연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바탕을 만들어 낸 것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정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음악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알아낸 것들로 현재와 과거를 볼 수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제가 알기로는 처음에 음악은 사람들이 듣고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악보와 같은 고증적인 자료가 남아서 그러한 부분을 분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건데 연구는 왜 필요한 걸까요?


정경영_그 질문을 요약하자면 음악은 즐기고 감상하는 존재인데 뭘 그렇게 연구하려고 하느냐 이렇게 들리는데요. 두 가지 이유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선 음악학이 구체적으로 감상, 연주, 창작에 도움을 준 분야가 있습니다. 고음악 분야가 그렇습니다. 피아노를 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어떠한 기본적인 피아노연습을 통해 익숙하게 한 다음 표현하는 게 필요합니다. 보편성이 있는 거죠.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음악에 대한 연구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면에서도 음악학이 기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는 음악은 감상과 연주, 창작하는 것이지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자체가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엄청난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음악에 대한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실은 앞서 일어난 음악적 사건을 알게 모르게 분석한 뒤 뒤이어 일어나는 음악적 사건을 예상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예상을 확인하는 것의 반복이거든요. 그러므로 “음악은 분석하는 대상이 아니라 즐기는 대상이다” 라는 말 자체는 어패가 있는 거죠. 마지막은 음악연구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영시를 잘 쓰기 위해서 영문학을 공부하나?”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영문학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거기에서 얻어지는 지적인 쾌감도 있고 그것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 것도 있겠지요. 음악학은 음악연주, 창작에 도움을 주는 학문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이것이 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의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시형_지금 정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음악 이론 학문의 존재 필요성을 3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2번째로 말씀하셨던 부분이 정말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정경영_사실 음악은 즐기는 거라는 생각도 서양에서는 250년밖에 안되었습니다. 시대적인 관습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3번째 이유를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통해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거죠.


김시형_저는 음악을 항상 3가지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첫 번째는 학술적접근, 그 다음은 예술적접근, 마지막은 실용적 또는 대중적접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은 연주자라든지 창작자라든지 듣고 마는 그 정도의 관점에서 바라 봤을 때에는 너무 음악이 독자적이어서 무슨 융합을 하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인데 여기서 C를 culture로 바꾸어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결국 듣는 가치로만 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근거가 있어야만 융복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융합 학문 발전에 있어서의 음악의 위치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정경영_살짝 지나긴 했지만 요즘을 흔히 포스트모던(감성(感性)의 자유로운 표현이나 놀이의 요소를 도입한 사고 방식이나 표현 수법)이라고 하죠. 사실 포스트 모던 이전의 모던이라는 시기가 굉장히 길었습니다.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근대(모던)는 르네상스 이후입니다. 인간의 권위나 신적인 권위에서 탈피하여 이성을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했단 말이죠. 이게 계몽주의입니다. 이 시기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유일한 하나의 정답을 추구 하는 것이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하나의 문제에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람의 인식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럼 당장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에 관한 말들이나 생각들에는 언제나 정답이 없습니다. 대신 성숙한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이점, 유일한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많은 문제에는 다양한, 여러 가지 성숙한 대답이 있다는 이해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훈이라면, 이미 음악은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교훈을 선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 동안 음악연구는 자매 학문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미술학, 문학비평, 역사학의 개념들과 용어, 이론들을 빌려서 연구를 진행해 왔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오히려 음악을 이해하는 용어와 개념들이 다른 학문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김시형_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클래식음악이 왜 어렵냐면 한 시간 동안 연주자들은 연주하느라 움직이지만 제한된 동선 안에서 청각적으로만 청중들은 상상을 해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음악은 뇌의 상상을 한 번 더 자극해야 한다”고요. 이러한 개념들을 역으로 본다면 예술에 대한 행위를 잡아내는 것은 굉장히 빨랐다는 거죠.


정경영_더구나 지금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음악내부에서도 사실은 음악적으로 곡을 쓴다는 개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도 음악이 침투해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어컨도 그냥 켜지지 않습니다. 에어컨리모컨을 누르면 “띠리리리릭” 소리가 납니다. 음악적인 제스처를 취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생활에도 음악이 침투하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들이 소리환경에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소리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공원에서 지하철 역사에서의 소리환경이 개선되어야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거거든요.


김시형_그럼 설치예술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


경영_하지만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소리는 다양합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동의하는 소리를 찾아야하고요. 또한 대다수가 동의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어떤 공감과 보편성에 대한 것도 찾아야합니다. 그런 것에 관해서 융합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거의 소음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자동차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없앴더니 오히려 위험해졌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으니 어느 날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소리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어떤 소리를 집어넣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로 이야기했던 것은 음악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이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우리가 음악이 아니라 소리로 지평을 넓혀 오면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 너무 많이 있다는 것 입니다.


김시형_에어컨 하나를 켜도 소리가 들어가는 이 세상에는 음악은 필요하다는 거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굉장히 공감을 하고 앞으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만들어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학문과 연관 지으려면 이러한 생각을 말로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뭔가 문서화가 되고 명분이 남으려면 음악을 글로 써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이것은 결국 음악학문이론의 계열에 있는 분들이 해주셔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정 교수님이 음악해설도 많이 하시고 비평에도 관심이 있으시지만 이제는 클래식음악의 대중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현재 클래식음악 시장이 없습니다. 그나마 조금 바뀐 것은 예전에 딱딱했던 음악회와는 달리 음악회에서 청중들에게 쉽게 접근을 하기 위해서 해설이라는 것을 넣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음악회가 끝나고 나면 리뷰나 기사에서 비평에 대한 글이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관심을 갖게 만들려면 누군가가 미디어에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경영_해설은 지금도 관여가 많이 되어있지만 답답한 것 중에 하나가 해설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해설이 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김시형_사회자로 있는 건지 정보를 주는 건지 이런 말씀이시죠?


정경영_맞습니다. 그리고 세분화도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그 방향에 맞는 해설을 해야죠. 예컨대 저는 해설의 중요한 한 역할이라고 생각되는 아이스 브레이킹(얼어있는 청중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은 못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해설자가 사회자가 아니라 연주자와 똑같은 입장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는 멘트가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정제된 이야기가 나름대로의 감동을 주어서 음악회 전체가 감동 있는 음악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연주회에 대한 비평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비평의 입장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비평을 쓸 때 각각 악곡의 완성도만큼이나 프로그램 구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이 결국 물리적으로 동일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나름대로의 유의미한, 동일하지 않은 시간으로 만드는 행위라면, 프로그램 구성 자체가 그 연주자의 음악성을 잘 보여주는 지표가 될 테니까요. 


김시형_중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요즘 클래식 연주자들이 스스로 해설을 하면서 청중과 많이 가까워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해설을 줄줄이 읽습니다. 그런데 정 교수님의 말씀은 그 뒤의 이면을 설명해주는 게 훨씬 더 좋다는 말씀이시네요.


정경영_더 친절한 해설자가 되려면 청중들이 음악을 듣게 해줘야합니다. 예를 들면 “이곡은 슈만이 클라라와 사랑에 빠졌을 때 작곡한 곡입니다”라는 해설보다는 특정가사가 나올 때 “화음이 어떻게 되는지 들어보실래요?”라고요. 그리고 화음이 뭔지 모르니까 번역도 해주고요. 번역하는 언어나 어휘 같은 것들이 정제되어서 그 자체가 감동이 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해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너무 안하고 해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김시형_저도 가끔 해설을 하는데 고민이 많거든요. 이제 그것을 자연스럽게 비평과 연관 지어 어떻게 하면 비평하는 것을 더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요.


정경영_일단은 비평을 좁은 의미의 비평으로만 보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음악회 해설에서 여러 가지 입장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지금은 문체가 독특한 몇 분 빼고는 누가 썼는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비평을 할 때 자신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목소리로 비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비평가들은 자기 목소리가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김시형_그럼 이러한 비평이 다양화가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는 편인가요?


정경영_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음악회나 음악적 사건에 대한 비평도 있어야 하지만 지금 음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작곡계에 대해서 발언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비평가들이 발언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좋은 학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현실과 괴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음악에 대한 경이를 누르거나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이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바라보며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데 이것을 애써 누르고 자기할일만 한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스스로가 음악학은 악보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꾸 가두는 경우입니다. 음악학은 소리로 인간을 설명하는 거라고 한다면 지금 음악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간섭을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평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첫 번째 책임은 저를 비롯한 음악학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시형_그렇다면 어떻게 활로가 넓어져야 될까요. 이슈가 안되는 게 안타까운데 이슈화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줘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자기가 연주해놓고 자신이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요. 이슈화에 대한 것도 음악학자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경영_오늘 날 매체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제일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클래식과 관계된 사람들이 SNS나 블로그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처럼 글을 쓰고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시형_우리나라에서는 결국 지면에 할애가 안 될 경우에는 SNS나 블로그 등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러려면 음악학자들이 각자 책임의식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정 교수님처럼 음악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서 미래시스템에 맞게 연구해주기 시작한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음악 이론 학문의 미래 발전적 제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칠까 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지만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경영_음악학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제가 활동할 때 음악학의 존재감을 일단 알리고 싶었습니다. 음악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정말 적습니다. 그래서 음악학자들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해야 하고요. 지금 음악이 학문적으로는 정교해지고 상당히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음악계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곡을 음악학자가 2년 동안 작업하여 여러 가지 고증자료를 통해 악보를 만들고 공연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제가 학문적으로 연구한 것이 현장에서 연주가 된 거니까 되게 보람 있더라고요. 이제는 음악과 직접 맞닿는 부분에 전면적으로 나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음악학이 죽은 학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음악계라는 큰 세계가 살아 있어야 음악학도 살아있는데 지금 여기에 전혀 자극을 주지 못하는 음악계는 아무리 잘해도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정리_김수현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5년 9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김시형(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 정경영(한양대 음악대학 교수)


진행: 김시형(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패널: 정경영(한양대 음악대학 교수)


진행: 김시형(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패널: 정경영(한양대 음악대학 교수)


진행: 김시형(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패널: 정경영(한양대 음악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