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대담
통일준비와 국가(國歌)〉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45년 광복 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정부를 수립하면서 분단국가가 되었다. 현재 남과 북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이며, 내년에는 분단 70년을 맞이한다. 남과 북의 불안한 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2014년 새해를 맞아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주제로 대북 3대 제안에 대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통일이 이뤄졌을 경우 음악계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인 국가(國歌) 제정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시: 2014년 4월 9일 오후 5시
장소: 예술의전당 음악당 지하 1층 카페 ‘심포니’
진행: 김시형(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패널: 이근배(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등 역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이종구(작곡가, 남북문화예술원장,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최승준(작곡가, 전 한국작곡가협회 이사장, 숙명여대 음대 명예교수)
김시형_ 올해부터 『음악춘추』에서 음악계의 현안에 대해 연간 기획을 진행 중이라 국립오페라단, 오케스트라, 피아노 교육에 대해 다뤘는데, 이번에는 이종구 선생님께서 ‘통일준비와 국가(國歌)’란 주제를 제안해 주셔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작곡가 선생님과 시인 이근배 선생님을 패널로 모셨는데, 제게는 이 주제가 다소 낯서니 이종구 선생님께서 함께 진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이종구 선생님께서 오늘 대담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종구_ 저는 지금 남북문화예술원 원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민간차원에서 언젠가 있을 통일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일 들을 준비하는 것이 주된 업무입니다.
대체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하여 기여하는 일들로, 국어, 역사, 지리, 예술 등을 학문적인 차원에서 남북이 협력하고 공통된 방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통일국가의 새로운 국가상징물을 연구하거나 바람직한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한 일의 하나입니다. 국가 상징물은 학문적으로 생물, 철학, 음악, 체육, 문화, 미술, 건축 등 7개 학문이론이 있으며, 이는 나라꽃, 나라기, 나라노래, 나라운동, 나라언어, 나라휘장, 나라물건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 등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는 나라는 국기와 국가의 존재가 필수적입니다. 나라마다 자국의 상징물이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공유되며, 오류가 있으면 안 됩니다.
통일이 된다면, 국기의 경우, 우리 정부는 당연히 태극기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고 북에서는 인공기를 쓰자고 하겠지요. 이럴 경우 남북의 국민 즉 민간에서 연구하고 합의한 내용이나 자료가 없다면 각각의 정부는 이 갈등에 대처할 근거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지 국기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 산재해 있습니다. 다른 예로, 남한에서 생각하는 역사관과 북한에서 생각하는 역사관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어떻게 조율하느냐 하는 문제, 그리고 통일국가의 국토에 대한 정의, 이런 문제 모두 심각합니다. 북한이 과거 중국과 맺은 영토 조약인 ‘조중변계조약(中朝邊界條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과연 통일 후에도 효력이 있을지, 통일국가에서도 이를 승계할 것인지 그런 논란도 있고요.
이 대담을 건의하게 된 것은 그 많은 주제 중의 하나로 국가(國歌)에 대하여 우리 예술가들이 통일 준비 차원에서 생각을 모아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국가(國歌)와 애국가의 차이점
김시형_ 네. 그럼 본격적으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국가(國歌)와 애국가의 차이점에 대해 최승준 선생님께서 작곡가로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승준_ 저는 국가(國歌)와 애국가가 같은 의미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번 대담을 앞두고 조사해보니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사전적 의미로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이고, ‘애국가(愛國歌)’는 공식, 비공식 여부를 떠나서 나라를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내용이 있으면 애국가라고 한답니다. 미국 사이트를 조사해 봤더니 역시 비슷한 내용이더라고요. “‘국가(國歌)’는 국가(國家)의 공식적인 노래로서 국가의 공식 행사에서 연주되거나 부른다”라고 하는데, 이는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지요. 그리고 또다른 사이트에서는 “국가는 역사, 국민들의 살아온 노력, 전통을 찬양하거나 환기시키는 애국적인 음악 작품으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거나 국민들에게 관습적으로 불리는 노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國歌)에는 국가(國家)에 대한 찬양, 헌신, 애국심이 담겨 있으며, 대부분은 행진곡 또는 찬가 스타일로 작곡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영어권 사이트에서 설명하는 국가의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로 불리는 곡의 제목이 「애국가」인데, 외국의 경우에는 정식 제정 절차가 없어도 관습적으로 불리는 노래도 국가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단어의 의미만 갖고 국가와 애국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따진다면, 국가는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노래인데, 제정의 절차를 가진 것도 있지만 관습적으로 불리는 것도 있고, 애국가는 공식, 비공식을 떠나서 내용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것은 애국가로 부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전에는 애국가에 대해 관심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번 대담을 계기로 조사하던 중 우선 16개국의 국가를 접할 수 있었고, 저마다 제목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기미가요(君が代)」, 중국은 「의용군행진곡(義勇軍進行曲)」, 러시아는 「소련 찬가」, 미국은 「성조기(The Star-Spangled Babber)」, 프랑스는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독일은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chen)」, 그리고 터키, 베트남의 국가는 군가풍의 제목이더라고요.
그리고 내친김에 더 조사해 보니 한 사이트에서 유엔에 가입되어 있는 230여 나라의 국가와 국기, 국가 제목, 제정 연도, 작사가, 작곡가를 살펴볼 수 있었고, 악보는 없지만 감상은 가능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대한제국 때부터 「애국가」라는 제목의 노래만 해도 20곡이 넘는다고 하고, 현재의 「애국가」도 그런 제목의 곡 중 하나지만, 외국의 경우에는 제목이 「국가」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이종구_ 남한과 북한의 국가가 모두 「애국가」라 하여 제목은 같지만, 가사와 노래는 완전히 다릅니다. 남한의 「애국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관례적으로 ‘국가’로 인정해 왔으며, 지난 2010년 정부는 ‘국민의례규정’을 통해 애국가를 국가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북한도 그들의 「애국가」를 공식 국가로 쓰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국가(國歌)와 애국가가 분리되어 있지만, 어쨌든 남한과 북한은 모두 「애국가」를 국가로 쓰고 있는 것이지요.
최승준_ 우리 「애국가」는 4절까지 있는데, 북한은 2절까지만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가인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는 음역이 우리 애국가보다 훨씬 더 넓고, 4절까지 있는데, 그 가사를 다 아는 사람, 그리고 제대로 노래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사실 1절 가사도 끝까지 잘 모른다고 하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국민의 30%가 국가를 바꾸자고 한다네요. 그리고 프랑스 국가는 15절까지 있다고 하고, 그걸 또 7절까지는 대개 노래한대요(웃음). 이번 좌담회를 계기로 국가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더라고요.
통일조국의 바람직한 국가(國歌)의 위상에 대하여
현행 남한의 애국가 검토
김시형_ 네.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그러면 남한과 북한 「애국가」의 가사와 선율의 조화 등 각각의 장단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근배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의 「애국가」의 가사를 시인의 입장에서 분석해 주시겠습니까?
이근배_ 우선 ‘응원가’에 대한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와 이종구 선생님은 같은 충남 당진의 송산국민학교 출신인데, 저희가 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장하다 모여든 송산아이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응원가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교가가 정해지기 전이라 이 노래가 교가 겸 응원가처럼 노래되었어요. 이 학교는 개교한 지 90주년이 지난 상태이며, 저는 개교 40주년 때 교가를 작사했었습니다.
저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다들 잘 아시다시피, 당시 「애국가」는 현재와 가사는 같았지만 선율은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국가」의 가사가 광복을 맞이하기 전, 즉 나라를 잃어버린 때의 것이라 한국인이 가진 전체적인 정체성의 표현은 미흡합니다. 예를 들어 “마르고 닳도록”이란 가사처럼 진취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애국가’가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찾는 응원가처럼 치어풀(cheerful) 한 것이라면, ‘국가’는 민족, 국가, 역사 정체성을 포괄한 것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남한 「애국가」의 가사는 그렇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혹시라도 통일 후 국가를 새롭게 제정한다면 그런 가사가 나와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승준_ 우리나라의 「애국가」에 대한 논란은 최근까지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님이 친일파 인명사전에 등재된 분이잖아요. 안익태 선생님이 일제가 세운 괴뢰정권인 만주국의 창립 10주년 축하 음악 「만주국」을 작곡하고 직접 지휘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 자료가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고, 그 음악이 남한의 「애국가」와 유사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악보는 못 구했지만 들어보니까 제 귀에는 우리 「애국가」와는 달랐어요. 「애국가」의 음악과 가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안익태 선생님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풀고 가야할지 껄끄러운 면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 「오도 브란스키 크라이」(승전 축하곡)와 유사하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예전에 불가리아 출신의 어느 지휘자가 내한했는데, 당시에는 극장이나 음악회장에서 영화나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애국가가 연주되던 때였어요. 그래서 그 지휘자가 우리나라에서 음악회를 지휘하기 전에 「애국가」도 지휘했는데 관객들이 모두 일어난 것이 인상깊었었나 봐요. 자기 나라에 돌아간 후 “한국에 가서 이 노래를 지휘하면 사람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도 브란스키 크라이」도 음악만 들어봤는데, 「애국가」와 처음 네 음이 같더라고요. 그리고 「애국가」는 갖춘마디인데, 그 노래는 못갖춘마디이고요.
애국가의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아까 이근배 선생님께서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가사가 요새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로 되어 있습니다. “보우”, “철갑”, “공활” 같은 단어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설다고 하고요. 그리고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에 대해서도 일부에서 말이 많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두고 불교 신자는 “부처님이 보우하사”로 해야 하냐는 말도 있고요(웃음). 그리고 국가(國歌)인데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는 가사는 서울의 남산을 지칭해 지엽적이라는 지적도 있더군요.
이종구_ 네. 2절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는 가사는 국가(國歌)로 봤을 때 산만한 느낌입니다. 이에 이어지는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까지 결국은 여러 낱말들을 나열하여 우리 ‘기상’을 말하고자 함인데, 만고풍상(萬古風霜), 즉 “오랜 세월에 걸쳐 겪어 온 힘겨운 고생을 하는 것”을 ‘우리의 기상’으로 표방한다는 것이 애국가로서 딱 어울리지 않다고 봅니다. 3절 역시 “가을하늘”로부터 시작하여 장황한 서술을 거쳐 “밝은 달”이 “우리 기상”이라는 것인데, 이 역시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국민정서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후렴구 마지막에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가사는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에 독립된 조국에서 살고 싶은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에는 좀 아쉬운 가사라고 할 수 있어요. 「애국가」를 만들 당시 외국에서 독립 투쟁한 분들이 조국에 와서 살고 싶어 하던 염원은 엄숙한 일이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만세’를 달려야할 ‘우리나라’의 국가 가사로서는 한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 한 아쉬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애국가 가사 중 “하느님”을 ‘하나님’이라 노래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나라에 기독교 신자가 많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뿐인 유일신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노래하는 듯합니다. 또 하나 성악적인 이유도 있다고 하겠는데, ‘하느님’의 ‘느’가 목구멍이 닫힌 ‘ㅡ’ 발음을 운소로 쓰고 있어 노래 할 때 무의식적으로 기피하는 경향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음을 노래 할 때 가능한 목구멍이 열린 발음의 가사를 선호하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이전 점에서 「애국가」가 갖는 음운적 장점도 있습니다. 최고음의 ‘하느님’의 “하”나 “대한사람”의 “대”가 이른바 개구도(開口度)도가 큰 ‘ㅏ’나 ‘ㅐ'를 사용한 사실 말입니다.
최승준_ 「애국가」는 1930년대 후반 안익태 선생님이 빈에서 유학 중 작곡한 것으로, 작곡년도가 분명치 않더라고요.
이종구_ 분명치 않은 것이 또 있지요. 작사자에 대한 것으로, 윤치호 설, 안창호 설이 있지만 ‘작사자 미상’으로도 더 많이 알려져 있어요
최승준_ 일반적으로 안창호 선생님 작사설이 더 지지를 받는 것 같고, 유엔 보고서에는 안창호 선생님이 작사한 것으로 되어 있어요.
가사가 음악화되기 위해서 작곡가가 음 처리를 하는데, 여기 계신 분들도 작곡가라 아시겠지만 「애국가」의 음 처리가 굉장히 미숙합니다. 북한 「애국가」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가사가 왜곡되게 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학교에서 음악 교사를 지냈었는데, 당시 「새마을 노래」가 한창 노래되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국기 하기식을 할 때 「애국가」가 나오면 멈춰 서서 4절까지 부르기 운동을 했었지요. 그래서 당시 음악 교사였던 저는 학생들에게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가르치기 위해 2주의 시간을 주고 가사를 외워서 적는 시험을 봤습니다. 그것을 음악 성적에 반영한다고 하니 학생들이 열심히 외웠지요. 그래서 시험을 치러 보니, 「애국가」 가사 처리가 미숙하여 아이들이 가사를 ‘무우궁화’, ‘사암철리’, ‘화려 가앙산’ 이런 식으로 썼더라고요(웃음). 시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이 서로 맞지 않아 생긴 문제이지요.
이종구_ 네. 당시 학교에서는 그렇게 애국가 가사를 외워서 시험 보는 일들이 많았어요. 따지고 보면 그렇게 시험을 봐가면서까지 「애국가」를 외운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애국가」라는 것이 그 제목처럼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인데, 자발적인 마음으로 기꺼이 불러 마땅한 것 아닌가요? 가사를 암기해 시험을 본다는 것 자체가 강압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방법까지 사용해 배운 「애국가」이지만 막상 우리 국민이 얼마나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느냐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입니다. 그 원인은 최저음과 최고음이 한 옥타브에 단3도가 추가된 넓은 음역에 있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보편적 음역을 여성으로 치면 소프라노 최저음에서 알토 최고음, 남자로 치면 테너 최저음에서 베이스 최고음 이내로 두어야 조(調)를 바꾸지 않아도 누구나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 「애국가」는 음역이 넓어서 아마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의 절반이나 되려는지 모르겠네요. 이것이 바로「애국가」를 당당하게 부르며 자신 있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데 장애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승준_ 네. 「애국가」의 음역은 성악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이라야 정확하게 부블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지요.
이종구_ 기왕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음악적인 이야기를 더 하자면, 우리 「애국가」는 국악기로 연주할 때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 국악기의 음정 조직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국내에 여러 국악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국악기를 위한 「애국가」 악보가 한 동안 없었다가 10여 년 전에서야 편곡되었습니다. 즉, 국악기로 「애국가」를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연주단체에서 일부를 포기했다는 뜻이 될 수 있고, 나라노래로서의 자존심이 결여되었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국가만 들어도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만약 새로운 나라노래를 갖게 된다면 세계인 누가 듣더라도 ‘한국의 음악’임을 느낄 수 있도록 작곡하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행 북한의 애국가 검토
김시형_ 그럼 이번에는 북한의 「애국가」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승준_ 우리나라는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안익태 선생님 작곡의 「애국가」를 국가로 제정했고, 북한은 1947년, 즉 우리나라보다 1년 앞서서 김원균이 작곡한 「애국가」를 국가로 제정했습니다.
이근배_ 북한의 국가(國歌)는 남한의 국가 이름과 같은 「애국가」이며, 전국적으로 공모를 했는데 당선작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1947년 6월에 만들어졌으며, 이는 월북시인 박세영(1902∼1989) 작사, 광산 노동자 출신 음악가 김원균(1917∼2002)이 작곡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북한 애국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친 경험이 있고, 북한 노래를 많이 아는 편인데, 북한에서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김원균 작곡, 이찬이 작사)도 많이 노래되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6·25 전쟁 때 남한에서 가장 히트 친 노래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라는 가사의 「전우야 잘자라」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가사로 미루어 보아 반격 북진하는 장병들을 따라가는 것으로, 1절은 낙동강, 2절은 추풍령, 3절은 한강수, 4절은 3·8선을 묘사하고 있지요. 그리고 북한의 히트송은 「인민항쟁가」(임화 작사, 김순남 작곡)로,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은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전사를 맹세한 깃발” 이런 가사입니다.
다시 북한의 「애국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시인의 입장에서 기사에 대해 말씀드려 보자면, 가사에는 전혀 정치색이 없고 잘 쓰여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은 ‘조선’이라는 단어가 아침 조(朝), 고울 선(鮮)을 쓰므로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역사에 찬란한 문화”라는 가사에도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이란 가사에서 인민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 쓰이는 단어입니다만, 인민(人民)이 ‘피플(people)’을 뜻하므로, 특별한 정치색은 없는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최승준_ 우리 「애국가」는 음악적으로 처음 “동해물과” 가사에서 ‘해’에 해당하는 둘째 음의 음가가 길다 보니 갖춘마디인데도 못갖춘마디처럼 들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애국가」는 반대로 “아침은 빛나라”라는 가사는 갖춘마디로 쓰는 것이 어울리는데 못갖춘마디로 작곡되었네요.
이종구_ 네. 저도 그 생각으로 북한 「애국가」의 뒷부분도 봤는데 여린내기가 문제네요.
최승준_ 이런 것은 선율을 먼저 쓰고 가사를 붙였을 때 흔히 일어나는 문제이지요.
이종구_ 네, 북한 「애국가」는 처음 “아침은 빛나라”의 ‘침’이 거센소리인 ‘ㅊ’으로 시작하기에 악센트를 붙일 조건이 되어 여린내기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역시 불편한 곳이 많습니다. 아마도 작곡 당시 첫 한두 마디에 집착하다가 전체적 형식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최승준_ 그리고 24마디인데 최고 음이 너무 많이 나오네요. 5번째 마디부터 최고음인 E♭이 나와 총 5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적으로는 클라이맥스 효과가 약해져 균형있는 작곡이라 할 수 없네요.
이근배_ 소련의 스탈린, 레닌 때부터 사회주의 사람들이 문학, 음악 등 예술을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사용했습니다. 「빨치산의 노래」, 「적기가」 등이 음악이 프로파간다로 사용된 예이지요. 그런 노래 가사들이 자극적인 것에 비해 북한 「애국가」는 점잖아요. 프로파간다 음악들은 피가 끓게 만드는 특징이 있지요.
최승준_ 그래서 북한의 「애국가」에 고음이 많이 나오는 듯합니다.
이종구_ 네. 최고음이 많이 나오면 소리의 파워 때문에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지요. 북한의 「애국가」는 음역이 한 옥타브에 단 2도가 더해졌습니다. 우리 「애국가」보다는 장2도 좁지요.
최승준_ 우리 「애국가」는 16마디이고, 표준 속도가 1분 이내인데 북한의 「애국가」는 1분이 조금 넘어갈 듯합니다.
새로운 국가(國歌) 제정의 필요성
김시형_ 이종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새로운 국가(國歌)가 필요한 이유는 통일 후에는 더 이상 두 개의 국가(國歌)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남한과 북한의 국가(國歌) 중 하나를 택하거나 새로운 국가(國歌)를 만들어야 하므로, 이번에는 새로운 국가(國歌)를 제정한다는 전제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국가(國歌)가 제정된다면 그 당위성을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하는데, 선생님들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늘은 좌담회에서는 선생님들께서 저를 반대편이라고 생각하고 설득해 주시는 쪽으로 말씀해 주셔도 좋겠네요.
이종구_ 통일 후 국가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과거 분단되었다가 통일된 나라들이 몇몇 있으므로 그 나라들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독일, 그리고 베트남도 과거에 분단 국가였지요.
최승준_ 베트남의 경우 북쪽이 남쪽을 흡수 통일을 해 북베트남의 국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종구_ 서독과 동독도 마찬가지로, 1990년 통일된 후 새로운 국가(國歌) 지정에 논란이 있었지만 통일의 주체였던 서독 국가가 국가로 인정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즉, 통일의 형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참고할 상황으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통일 후 현재의 남한 또는 북한의 애국가를 택하는 것은 어느 쪽이 흡수 통일을 할 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의 통일 형태, 즉 연방제에 등의 합의에 의한 통일이라면 남한이나 북한 중 하나의 국가를 채택하는 것은 불균형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봤을 때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으며, 현시대에 안 맞는 문제가 무엇인지 들춰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근배_ 과거 남북이 단일팀으로 스포츠 경기에 참가할 때 국기로는 한반도기를, 국가로는 「아리랑」을 사용했는데, 저는 국가로 「아리랑」을 부르기보다는 남쪽의 것도 아닌, 북쪽의 것도 아닌 공동적인 행사 때 쓰는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종구_ 남북이 함께 하는 어떤 자리에서는 한반도기, 「아리랑」을 쓰고 있는데 이는 편의상, 잠정적인 합의에 의한 것이지 그것을 통일 조국에서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근배_ 저는 2003년 현대 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이 평양에 실내체육관을 개관할 때, 그리고 2005년 남북민족작가대회, 이렇게 두 번 평양을 다녀왔고, 금강산은 네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남북민족작가대회 때는 북한 작가들과 일주일 동안 함께 지냈으나 지금은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도 모두 다 끊어졌어요. 하지만 언제 통일이 될 지 몰라도 통일 전부터 남북한이 동질성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통일이 대박’이라고 말씀했는데, 통일이 멀 수도,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요. 예전에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는 많은 민간인, 단체가 북한을 지원하고 인사들이 북한을 다녀왔잖아요. 남한의 조계종과 조불연이 한국 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된 금강산 신계사 복원을 2001년에 시작해 2007년 완공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즉, 정부가 아닌 종교 등의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김시형_ 남과 북이 통일 전에 국가, 국기 등의 중간 과정을 도출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의 이런 의견들이 활자화되는 것은 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있어야 하기에 단지 화두만 던져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요. 이종구 선생님께서 구체적인 대안이 있으신가요?
이종구_ 저 역시 오늘 좌담을 통하여 나온 의견들을 앞으로 필요한 참고자료를 기록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또 그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몇 차례의 학술대회를 가지려하며, 북한의 작가나 작곡가들도 가능한 한 참가하게 유도 할 예정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늘의 좌담회 내용을 정부나 관계 부처에 제시할 수 있겠지요.
이근배_ 통일이 멀든 가깝든 시뮬레이션이 필요하잖아요. 남북 통일 대비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서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남북의 통일이 흡수인지 합의인지 등에 따라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지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통일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고, 위원회와 통일부가 따로 있으니까 ‘옥상옥(屋上屋)’이냐는 말들도 있었지요. 그런 만큼 통일준비위원회에서도 뭔가 일을 해야할 것이고, 오늘 우리처럼 음악, 문화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된 후가 아니더라도 「아리랑」만이 아니라 함께 부를 수 있는 다른 노래가 있길 바랍니다. 아까 제가 북한 「애국가」 가사에는 정치색이 없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르기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남한, 북한 어디서든 노래하고, 남북의 공동행사에서도 그 노래에 맞춰 합창한다든지, 국기 게양 등을 하면 좋겠네요.
정리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5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최승준(작곡가, 전 한국작곡가협회 이사장, 숙명여대 음대 명예교수)
이종구(작곡가, 남북문화예술원장,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이근배(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등 역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진행: 김시형(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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