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커버스토리 작곡가 이영자 / 음악춘추 2016년 11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7. 5. 22. 19:21
300x250

커버스토리 / 작곡가 이영자
60여년을 꾸준히 작품 활동 해온 한국의 여성 작곡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곡가로 60여년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온 이영자가 11월 24일 예술의 전당에서 제자들과 함께 음악회를 갖는다. 이번 음악회는 현대음악앙상블 ‘소리’의 위촉으로, 한국 창작음악의 줄기를 조명하는 ‘Korean Schools' 시리즈의 두 번째 음악회이다. 인터뷰를 통해서 격동의 파도 한 가운데서 살아 온 그녀의 인생과 음악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나에게 음악이란

음악은 ‘나’이며, 내가 ‘음악’이다. 
음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간단한 대답이지만 기자는 그녀의 눈빛에서 그 속에 담긴 깊은 뜻과 이제까지 겪어온 시간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많은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의 내조자로서, 교단위의 교육자로서, 세 딸의 어머니로서, 창작활동을 하는 작곡가로서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하루도 음악을 멀리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음악의 정의를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연륜에 서서 사랑으로 만난 사람이 평생 하나 되어 부부로 살아가듯이 음악은 내 영혼의 소리 찾기로 나와 하나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음악은 나이며 내가 음악입니다. 나는 음악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떠난 적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요즘에도 하루에 6-8시간씩 매일 오선지 위에 나의 삶을 그립니다. 그리고 쓰다만 오선지 속에 담긴 내 영혼의 조각들을 못 버리고 이불처럼 덮고 잡니다.”_ 작곡가 이영자


80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선지 앞에 선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기자는 그녀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음악이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모든 오선 위의 악보를 읽으면 그 작곡가의 삶과 사색의 깊이를 투명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오선 위의 음악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그녀에게는 음악이 ‘이영자’이며 이영자가 ‘음악’이라고 확고히 말했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음악회
그녀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1958년 8월, 우리나라에는 번듯한 공항 하나 없던 시기였다. 여의도의 간이 비행장에서 동양여자 혼자 낯선 이국땅으로 유학을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무모하고 만용의 힘든 시기였지만 그녀는 선구자적인 사명으로 알고 떠났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영자는 자신이 파리에서 배운 음악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1961년 가을학기부터 1983년 여름까지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 교단위에 선다. 또한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경희대에서 그녀를 초빙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많은 제자들 중 5명과 함께 이번 음악회를 연다.

현대음악앙상블 ‘소리’의 위촉으로 열게 된 이번 음악회는 그녀가 처음 갖는 제자들과의 음악회이다. 현대음악앙상블 ‘소리’는 100여년의 시간을 통해 형성된 한국의 여러 악파들을 집중 조명하여 한국의 서양음악의 역사를 조망하는 ‘Korean Schools'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열리는 이번 음악회는 작곡가 이영자와 그의 제자들의 음악으로 준비된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작곡가 이영자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이혜자, 홍사은, 심옥식, 한혜리, 연제식 신부 등의 작품이 전부 2016년 세계초연으로 연주된다. 

“제자들이 바쁜 와중에도 작품을 써서 이번 음악회에 전곡을 초연으로 연주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작곡가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 영혼도 무르익어 가는데 그들마다의 삶의 희노애락을 음악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하느님의 사제로 평생을 살아오신 신부님이 은퇴하신 후에 나와 함께 작곡 공부하여 이번 음악회에 작품을 발표하게 되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_ 작곡가 이영자


PROGRAM

심옥식의 「‘윤슬! 그 반짝임...’ for flute, clarinet, violin, cello and piano」
이혜자의 「Trio for violin, viola and cello ‘Encounter'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만남‘」
홍사은 「Legend for flute & harp」
한혜리 「For Ten Years (그리움 꽃이 되어...) for 12 instruments」
연제식 신부 「혼성합창과 실내악을 위한 음악」
            Ⅰ. 안중근의사 칸타타에서 ‘아 그는 누구인가’
            Ⅱ. 성 프란치스코 칸타타에서 ‘태양의 노래’
이영자 「가야금과 열하나의 악기를 위한 ‘죽음과 정화’」


***「가야금과 열하나의 악기를 위한 ‘죽음과 정화’」
음악이 ‘나’이고 내가 ‘음악’이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이번 음악회에 발표되는 그녀의 작품, 「가야금과 열하나의 악기를 위한 ‘죽음과 정화’」가 궁금해졌다. 어떠한 것에서 영감을 받으셨느냐 는 질문에 웃으면서 “이 작품은 나의 초상화”라는 대답을 하였다.

“이 작품은 2015년 12월에 시작해서 2016년 8월 2일에 마쳤습니다. 8개월에서 9개월의 인고의 가혹한 시간이었습니다. 곡을 쓰면서 몇 부분은 눈물을 흘리며 쓰기도 했습니다.”_ 작곡가 이영자
 
하루도 음악을 떠나지 않고 9개월이란 시간동안 15분가량의 곡을 쓴다는 것은 작곡가들에게 힘든 일이다. 또한 작곡을 언제 하시냐는 질문에 24시간 한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가정을 돌보면서도 그녀의 음악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나는 격정의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한 가운데 내가 태어나 8.15를 맞고  6.25전쟁을 비롯한 격동의 한국의 역사 속에서 살았습니다. 지금 주위를 돌아보면 내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먼저 떠나가고, 나도 그 행렬 속에 있습니다. 80 넘은 노년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미움도, 원망도, 추한 것도 모두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초연해 집니다.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절절하게 느끼고 삽니다. 남은 것은 정화된 사랑뿐입니다.”_ 작곡가 이영자

80 넘은 자신의 나이를 모든 것이 초월되는 나이라고 말하는 작곡가 이영자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을 암송하며 지금 그 음악을 작곡 중이라 했다.

「가야금과 열하나의 악기를 위한 ‘죽음과 정화 (Mort et Transfiguration)’」에서  Transfiguration라는 단어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노년의 작곡가가 느끼는 진정한 정화란 무엇일까? 그녀는 이 세상에서 육체가 많은 고통을 받고 살았어도 후에 몸은 땅에 묻히지만 혼은 하늘로 올라가서 꽃밭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말했다. 인생의 말로에는 아름다운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다는 천상병의 시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감사하면서 산다고 말했다.

“이번에 작곡한 「가야금과 열하나의 악기를 위한 ‘죽음과 정화(Mort et Transfiguration)’」에서 가야금이라는 악기는 나 자신과 속세의 모든 인간을 뜻합니다. 처음엔 플루트가 2~3마디로 음악의 문을 열면 열하나의 악기가 연주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상의 모든 자연의 시달림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열하나의 악기들이 지구상의 삼라만상의 자연을 노래하며 절정으로 승화된 후에 가야금이 시작됩니다. 홀로 연주하는 가야금 소리는 여리고 가냘프지만 매몰차게 서려있는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했습니다. 우리 모두 힘겹게 하루하루를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속세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몇 군데는 눈물을 흘리면서 쓰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음악을 이해할 수 없어 이견을 내어놓아도 두 번 세 번 듣고 음미하면 작가의 미학적 표현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정화의 뜻도 알게 될 것입니다.

창작 예술 속에 작곡은 가장 어려운 예술입니다. 문학은 우리들의 일상용어로 작가의 사유에서 솟아나는 글을 씁니다. 미술의 그림, 조각도 어느 소재로던 쉽게 눈에 보이게 작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곡은 하얀 종이 위, 다섯 줄 위에 하늘의 별을 따다 심듯, 시공의 소리를 찾아 씁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 잡히지도 않는 -...작곡가 자신에게도 안 보이고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습니다. 오직 시공의 환상 속에 빛을 내고 있는 억 만 개 넘는 소리 속에 내 소리를 찾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시인의 사랑의 두 글자는 바로 내 가슴에 오지만 내 음악 속에 깃든 사랑은 한 세기를 지나도 청중에게 전달이 안 됩니다. 오직 작곡자 한 사람만이 사랑을 표현했고 청중은 연주자를 통해서만 그 사랑을 듣게 됩니다. 정답도 없고 천차만별의 울림만이 존재한다는 고귀하고 거룩함이 있습니다. 인류의 영혼을 치유하는 목적 안에 갈고 닦은 사랑과 정화가 있습니다. 무궁동의 정화입니다.”_ 작곡가 이영자


***한국음악계에 바라는 점
1981년 한국여성작곡가회를 동료들과 만들고 13년 동안 회장을 역임하고 그녀는 현재 명예회장으로 있다. 그녀는 한국 작곡계의 대모이다.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은퇴가 없는 작곡가이다. 음악이 전부이기 때문에 은퇴는 없으며, 연필을 쥐고 오선지에 음표로 영혼이 깃든 음악을 만들 때까지 작곡을 하겠다는 그녀의 말에서 강한 의지와 열정이 느껴졌다. 그녀가 한국의 창작음악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한국의 창작음악계는 눈부시게 빛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콩쿠르에도 한국의 작곡가들이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은 가히 세계적입니다. 창작음악에는 정답이 없어 개개인의 영혼이 깃든 음악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많은 사람의 마음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그런 음악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이따금 오선 위에 사색이 깃들지 않은, 풍경처럼 스쳐가는 음악들이 있어 아쉽기도 합니다. 창작이란 오선위에 자신의 넋을 담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나에게 음악을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신비스런 표현이지만 행복하게 동의합니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혼을 쏟아 부어 작품을 써야 합니다.”_ 작곡가 이영자

그녀는 작곡을 최고의 창작예술이라고 말하면서, 작곡가들이 영혼의 사고를 가지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말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작곡은 천재나 할 수 있는 위대한 창작세계이지만 인간이 무한한 인고의 시간과 사유를 통해 몰입하면 우리의 정체성 깃든 독창적인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글_김진실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6년 11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