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춘추 기획대담 / 인물탐구 11월호
피아니스트 엄의경
'음악적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호쾌한 연주', '큰 스케일과 비르투오소적인 피아니스트', '내면의 열정을 담은 훌륭한 연주자'로 호평 받는 故(고) 엄의경은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 후 도미, 맨하탄 음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전문연주가 과정을 마치고 미시간 주립대에서 음악예술학박사 Doctor of Musical Arts를 취득했다. 동아콩쿨 1위 입상을 비롯하여 국내의 여러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그는 미국 유학 중에도 International Institute of Music Competition, Kankakee Symphony Competition, Catherine Herrick Cobb Fellowship Competition등에서 모두 1위 입상하여 우수한 기량을 인정받았다. 1993년 ‘월간 「피아노음악」 초청독주회’와 ‘예술의전당 유망신예초청독주회’ 등을 시작으로 귀국과 동시 다양한 음악 장르에 걸친 활발한 연주활동으로 한국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중국 등 국제무대에서도 독주회와 협연, 실내악 등 많은 연주를 하였다. 김석, 오정주, 이성균, Arkady Aronov, Ralph Votapek, Deborah Moriarty 교수를 사사했으며, 서울대 강사, 세종대 교수, 미시간 주립대 조교수, 서울종합예술학교 음악예술학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Musical Moments (Blue Griffin Records)>와 <Czerny- 50 Kunst der Fingertigkeit (Ilsong Media)> 등 음반을 출시한 바 있다.
일시 : 2016년 9월 28일 오후4시
장소 : 코스모스 악기사
진행 :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 현재희(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 원장)
이혜전(숙명여대 교수)
이선경(국민대학교 종합예술대학원장)
김경민(숭실대학교 콘서바토리교수)
백희진(단국대 교수)
배자희(배재대, 강릉원주대 출강)
1. 엄의경 선생의 성장과정과 음악의 출발
2. 엄의경 선생과의 첫 만남
3. 엄의경 선생의 음악세계
4. 엄의경 선생의 교육관
5. 엄의경 선생이 국내 음악계에 끼친 영향
이용일: 오늘은 우리나라의 음악계에 큰 획을 그은 피아니스트인 엄의경을 추모하기 위해 좌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 좌담을 열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고인도 이 사실을 안다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엄 선생님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의 스승이신 오정주 선생님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으시고 살아계셨다면, 엄 선생님이 스승과 함께 더 많은 활동을 하였겠지요. 무척이나 아쉽게 생각 합니다. 제가 오늘 처음 화두를 꺼내려고 하는 것이 오정주 선생님과의 관계인데요. 엄의경 선생님은 오정주 선생님께 언제부터 배웠나요?
백희진: 엄의경 선생님이 오정주 선생님 큰 아들의 초등학교 한 해 선배입니다. 오정주 선생님의 아들이 하버드에 진학해서 오 선생님이 그 해에 아들을 만나고 오시는 길에 사고를 당하셨고요. 아마 오정주 선생님과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현재희: 아마 오정주 선생님께 적어도 중고등 학교 때부터 레슨을 받았을 거예요. 대학 들어가서도 레슨을 받았고요.
이혜전: 엄 선생 3학년 때, 오정주 교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용일: 현재희 선생님은 처음 만남이 언제였나요?
현재희: 저는 오정주 선생님 동문회에서 만났습니다. 오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서울대 강사로 있을 때 여름에 차가운 물이 담긴 대야에 발을 담가서 연습할 정도로 굉장히 뚝심 있게 연습하는 학생이 있다며 엄 선생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콩쿠르 입상에 대한 좋은 소식도 들었고요. 콩쿠르 입상이 몇 년도 이었지요? 이혜전 선생님보다 먼저 입상했었나요?
이혜전: 아니요. 제가 1980년도에 입상했는데 엄 선생님이 1982년도에 입상했습니다. 당시에 오 선생님이 아주 기뻐하셨지요.
이용일: 이혜전 선생님은 언제 만나셨나요?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셨는데...
이혜전: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었지만 2년 후배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어요. 하지만 엄선생님이 맨하탄에 있을 때 직접 만나진 않았지만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후에 콩쿠르 나가기 전에 가서 선후배가 모여서 연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현재희: 오선생님께서는 콩쿠르를 나가기 전에 선배들을 모아놓고 후배들의 연주를 들으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용일: 얼마나 자신 있게 가르쳤으면 직접 와서 들으라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겠지요?
이혜전: 저희가 선생님 돌아가신 후에도 각별했던 선생님의 제자 사랑을 기리며 30년 가까이 동문회 선후배들이 만나고 있습니다. 거의 매달 만나고 있지요.
이용일: 이선경 선생님은 첫 만남이 언제인가요?
이선경: 저는 엄의경 선생님의 3년 선배라서 얼굴은 알고 있었습니다. 후에 김남윤 선생님 캠프의 반주자로 가면서 처음 가까워졌고요. 엄 선생님이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배웠던 선생님이 제가 갔던 캠프에 두 번이나 오시면서 공통점이 생기고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한국 와서도 사석에서 몇 번 만나게 되었고요.
이용일: 김경민 선생님과 백희진 선생님은 같이 빈 트리오로 활동하셨지요?
김경민: 저는 1998년도에 처음 엄의경 선생님을 만났고요. 당시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였는데, 좋은 피아니스트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부암의 신이사님이 엄의경 선생님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당시 연주했던 프로그램을 어제 찾아보았는데 10곡을 7월, 8월, 9월에 걸쳐서 한꺼번에 연주하였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익숙한 곡이지만 피아니스트가 그 곡을 한 달반 만에, 그것도 정말 연주를 잘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때 처음 만나고 빈 트리오를 창단하여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한 후 음악가로 만난 케이스입니다.
백희진: 2001년도에 창단 하면서 15년간 함께 트리오 활동을 했고,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엄 선생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졸업하고 유학을 가서 언니가 피아노를 전공하는 줄은 몰랐는데, 후에 캠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요. 엄 선생님이 저보다 한 살 많았는데 그 동생이 저와 동기동창이라서 언니가 피아노를 전공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맨하탄 시절 여름캠프에 가서 옆방에서 지냈습니다.
김경민: 저는 엄의경 선생님과 베토벤 시리즈를 연주하면서 너무나 잘 맞았고 인간적으로도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함께 트리오를 하자는 말이 나왔고 엄 선생님이 백희진 선생님을 좋은 첼리스트라고 칭찬하고 연락해서 2001년 6월 6일에 트리오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빈 트리오는 엄생(生)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분의 정성과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엄 선생님은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창의적인 사람이었는데, 당시에 우편엽서 크기로 음악회 팜플렛을 만들어 음악회를 알리는 것을 가장 먼저 시작했습니다.
저와 함께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리허설 중간에 함께 앉아 독일어,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아 직접 프로그램 노트도 작성하고 담소도 하며 ,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한 3달 동안 굉장히 친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엄의경 선생님이 해주었습니다. 베토벤 시리즈 연주 후에 이어진 저의 독주회 무대나 금호초청 목요콘서트도 저와의 인연으로 기꺼이 반주해주었습니다. 초견도 좋았고 반주 또한 정말 훌륭했고요. 선생님과의 연주가 저에게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연주자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말이죠. 그 마음을 생각하면 평소에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있습니다.
이용일: 제가 광주시립교향악단에서 지휘할 때, 엄의경 선생이 김남윤 선생님 캠프에서 반주를 하였습니다. 당시에 광주단원들을 캠프에 참가시켰는데, 엄 선생님이 거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레슨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엄의경 선생님의 반주를 보기 위해서 광주의 피아니스트들이 다 올라왔고 그로인해 광주 피아니스트들이 변하게 되었고요. 초견력이 엄청나게 좋고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아쉽습니다. 선생님의 제자인 배자희 선생님은 언제 선생님을 처음 만났나요?
배자희: 저는 예고 2학년 때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제 친구가 자신의 선생님이 정말 좋은 분이라고 자랑을 하기에 친구 레슨에 따라갔는데, 엄 선생님을 만나보고 그 인상이 너무 좋아서 그 후에 선생님께 레슨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급작스럽게 재입원하시고 힘들어 하시다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주 수요일에 입맛이 없다고 빵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사서 찾아갔었는데,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선생님께 “다음 주에 다시 올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하니까 “내가 전화해줄게.”라고 하셨는데 그 만남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이었던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용일: 엄 선생님의 반주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자타공인 한국 최고라고 하는데, 연주는 어땠나요?
현재희: 솔로연주도 너무 좋았어요.
김경민: 평소에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자주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던 걸로 기억 합니다. 너무 잘 쳤습니다. 스케일이 큰 스타일이라서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러시안 레파토리를 특히 잘했죠.
제 개인적으로는 함께 연주했던 배토벤의 「크로이쩌 소나타」 ,프랑크의 소나타,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의 작품 연주가 특히 탁월하였던 기억입니다. 빈 트리오의 마지막 연주인 2015년 4월 유레카 시리즈 연주 프로그램이 라흐마니노프의 대작인「트리오?엘레지아크?2번」도 연주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죽음이 곁들어진 모티브의 색깔을 유난히 잘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백희진: 그날 피아노 연주가 좋아서 우리가 다 좋았다고 말했었죠.
이용일: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학창시절과 연주활동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 했는데요. 미국 유학을 언제 갔었나요?
일동: 졸업하고 바로 갔습니다.
이용일: 제가 엄의경 선생을 만나면 빨리 유학 가서 너의 음악을 하라고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혜전: 저희 친구인 박인미 선생(추계예술대 교수)이 맨하탄에 박사 시험 보러 갔는데, 엄의경 선생님 집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그때가 86년이었으니까 졸업하고 1-2년 안에 간 것이죠.
현재희: 당시 저희 학교에서 엄의경 선생님을 모셨는데 학생들한테 반응도 좋았고 음악사나 문헌 같은 이론 과목도 많이 가르쳤습니다. 강의 전담 강사로도 인정받고 전임 교수도 되었지요. 선생님은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이고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이혜전: 저희 동문회가 저보다 20살 많은 선배님부터 4년 후배까지 연령대의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저는 연배가 비슷하니까 엄 선생을 아끼지만 나이차이가 굉장히 많은 선배님들이 보시기에는 엄 선생이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끼시면 어쩌나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희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동문 선배님들이 너무 아껴주셨지요. 보수적인 피아노계에서 엄 선생은 앞서가는 사람이고 자유롭고 화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희: 패셔너블한 사람이었지요(웃음).
백희진: 엄 선생님이 선배님께 아주 예의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후배들과 선배님들을 모두 존경하고 깍듯하게 하였어요.
이혜전: 선배님들이 엄 선생님을 즐거워했어요. 항상 프레쉬했습니다.
현재희: 아이디어도 많고 예의바르고 선배들을 대할 때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편하게 다가왔죠.
김경민: 예의바르고 정이 많았어요.
이용일: 엄 선생님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말해볼까요?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이선경: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백희진: 아버님께서는 엄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몇 달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선경: 어머님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엄 선생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두 분이 편찮으시다 보니 한분 한분 맞춰드려야 했지요.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그것을 다 해내고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모셨습니다.
백희진: 일주일에 한번 씩 두 분을 모시고 꼭 외식했다고 했어요.
이선경: 본인이 몸이 아프고 나서도 부모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김경민: 트리오 연습 때도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온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너무 효녀였지요.
이용일: 엄 선생님의 가정이 온화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좋은 가정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백희진: 부모님께서 항상 엄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러 오셨습니다.
이용일: 엄 선생이 정이 많았던 사람인데...
현재희: 네 정이 많았어요. 제자들에게도 엄청 잘해줬습니다. 아이들과 친근하게 지냈었어요.
백희진: 제자들에게 잘한 것은 어느 누구도 못 따라 가죠.
김경민: 제자 한사람을 다 존중하였습니다. 저희 빈 트리오가 연주를 하면 엄의경 선생님 군단이 음악회를 왔었죠(웃음).
현재희: 당시에도 학생들의 미래에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좀 더 많은 활동을 했어야 했는데 좋은 인재였기에 더 가슴이 아픕니다.
이용일: 엄의경 선생의 피아노를 들으면 반주라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주를 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을 활발하게 표현했습니다. 반주를 하면서도 모든 음을 정확하게 치는 것을 보면서 성실히 열심히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좋은 선생님에게 배웠기 때문이겠지요.
김경민: 엄의경 선생이 렉처 리사이틀도 잘했습니다. 강의 내용도 정말 진지하고 접근방법이 신선했고 설득력이 있었고요. 말을 참 듣기 좋은 어조로 하죠.
현재희: 당시에 렉처 리사이틀을 영어로 해서 신선한 충격이었지요. 뭘 보고 하지도 않고 너무 편안하게 영어로 렉처 리사이틀을 했었어요. 영어를 굉장히 잘했습니다.
김경민: 엄선생이 세종문화회관 주관 으로 어느해인가 그 당시에 아마 두 달에 한 번씩 했던 것 같은데 연주와 함께하는 렉처 콘서트 이었는데 반응도 좋았기에 선생님이 매우 행복해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선경: 본인이 삶이 지루하지 않게끔 음악 말고도 끊임없이 즐겁고 새로운 것들을 하였어요.
백희진: 안한 것이 없었죠. 패러글라이딩, 수상스키 등 모든 것에 도전했었습니다.
이혜전: 저희가 밖에서 보기에, 개성 있는 세 사람이 트리오를 15년 했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15년을 끌어갔나요?
백희진: 저희는 연주를 15년 해도 애프터 한 적이 별로 없어요(웃음). 그리고 다시 주관사에서 연락이 와서 연주 프로그램을 달라고 하면 다시 뭉쳐서 연습하고요. 그 순간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김경민: 저희 트리오에서 엄 선생님이 대장을 맡으셨지요.
현재희: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회 끝나고 뒷풀이도 정말 창의적으로 했습니다. 언젠가는 와인바 에서도 했고요. 항상 창의적이고 사람들이 생각 못하는 것을 했었죠.
백희진: 언니가 와인을 좋아하셨지요.
이혜전: 이선경 선생님이 와인에 얽인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세요(웃음).
이선경: 한번은 제가 제주도에서 연주가 있어서 간다고 하니까 그때까지 제주도를 못가 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텔을 잡았으니 제주도에 와서 같이 여행을 하자고 했어요.
현재희: 그때가 언젠가요?
이선경: 결혼하기 전인 2008~9년쯤이었어요. 저는 제주도 호텔을 하루 더 연기를 하고 엄 선생님이 오면 제주도를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는데, 엄 선생이 트렁크에 와인을 넣어서 왔더라고요. 그래서 밖에 나가기보다는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함께 와인을 마셨어요(웃음).
현재희: 그러니까 다름 사람들과는 다른 창의성이 있었어요. 앞서 말했던 행글라이딩, 뒷풀이, 독주회 때 의상도 넓은 통바지를 입고 나올 정도로 앞서갔었습니다.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이고 인생도 그 실험 정신을 가지고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이용일: 모든 일에 올인 했기 때문에 피아노를 잘 쳤던 것 같습니다. 손 다칠까봐 수상스키 이런 것도 아무것도 안했을텐데...
현재희: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았고 잠시도 시간을 죽이는 것 없이 살았습니다.
백희진: 그래서 두루두루 아는 사람도 많았어요.
김경민: 옛날에 제가 당시 재직하던 학교에서 잘 알던 어느 피아니스트가 엄의경 선생을 너무 멋있다고 했습니다. 근데 선생님을 회고하는 사람들 중에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저의 제자들도 트리오 연주가 끝나고 물어보면 피아니스트가 너무 멋있었다고 했어요. 아마 엄선생이 트리오 연주를 특히 더 열정적으로 해내었기 때문이 아니가 생각합니다.
현재희: 튀는 스타일인데 밉지않게 튀는 스타일 이였죠.
이용일: 부모가 음악회에 온다는 것은 적극 지원한다는 것 같습니다. 연애 결혼했나요?
김경민: 연애결혼 했었죠.
현재희: 제가 알기로는 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만났습니다. 남편분이 담임선생님 아들인데 학교 2년 선배라고 했습니다. 담임선생님 아들이니까 공유할 것이 많아져서 친해졌고 서로 너무 좋아했습니다.
김경민: 남편을 성당에서 만났다고 들었어요. 언젠가 저에게“언니 나 성당 다닐거야.”라고 말해서 무신론 자던 엄선생이 달리 보였는데 그 시점 이후 고한, 신태인 ,전주 등 여러 성당에서 빈 트리오 연주도 많이 함께 하였습니다. 결혼식도 성당에서 했고요.
백희진: 돌아가시기 5-6개월 전부터는 방배동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로 봉사를 하셨습니다. 한달 동안 새벽미사 반주를 하셨지요.
이선경: 남편이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방학 전에 오래 계획을 세워서 남편과 같이 여행 갔었습니다.
현재희: 좋은 남편 만나서 행복하게 결혼 생활 했었죠.
백희진: 엄 선생님과 남편분이 얼마나 특별했냐면 빈 트리오 연주 무대 리허설 때 남편이 오시면 피아노 앞에서 사진을 꼭 찍었습니다. 늦게 만나서인지 둘이 사이가 유난히 좋았죠. 부인의 연주 모습을 아주 사랑했고 또한 남편을 무척 사랑한다고 느꼈습니다.
현재희: 엄 선생님이 무대에서 하는 포즈가 관객들을 너무 사로잡았습니다. 또한 인간적으로도 내숭떨고 이러한 성격이 아니고 아주 털털하고 편안했습니다.
이혜전: 제자가 보는 선생님은 어땠나요?
배자희: 선생님은 레슨 때 티칭 방법은 전혀 말할 것도 없이 완벽했습니다. 너무 감사했던 것은 제자들을 마음을 다해서 케어해주셨습니다. 저희가 유학을 다녀와서 진로를 찾을 때 심적으로 힘든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을 인간적으로 굉장히 잘 위로해주셨습니다. 밥도 사주시고 와인도 사주시면서 힘든 부분들을 들어주시고 연애 고민도 들어주실 정도로 친근했습니다. 제자로도 대해주시지만 같은 음악인으로도 존중하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저희 클래스가 모이면 선생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각각이 선생님과 쌓은 추억이 많습니다. 한번은 선생님 돌아가신 후에 스튜디오에 40명가량의 제자가 모여서 각자의 추억을 이야기 했는데 시간이 끝나지 않을 정도 이었어요. 너무너무 그립고 아쉽습니다.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모두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희 제자들은 순간 순간 선생님이 계셨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정말 참 스승님이셨습니다.
현재희: 엄선생은 워낙에 몸매가 예쁘고 비율이 좋다보니 바지를 입어도 멋있었습니다. 패션 감각이 너무 좋아서 저희가 이야기를 많이 했었죠.
김경민: 예술적 감각이 정말 베스트 이었죠. 그림, 가구 등 소장하고 좋아했던 것들의 취향이 그랬죠. 안목이 좋았어요.
백희진: 맞아요. 그릇 같은 것을 고를 때도 그랬죠.
김경민: 심미안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엄의경 선생의 귀족적 취향에 감탄할 때가 많았어요. .소탈함을 겸비한, 인생을 즐길줄 아는 한마디로 멋진 인간상의 소유자였죠. 워낙이 인텔리젠트했고..
현재희: 그러면서도 동문회 총무를 굉장히 오랫동안 했습니다. 총무라는 자리가 굉장히 어렵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자리인데도 너무 열심히 잘해서 저희가 오랫동안 맡겼습니다. 저희 선생님 추모식이 3번 있었는데, 첫 번째는 1983년에 동료 교수님들이 해주시고 1993년에 저희가 하고 2003년에 콘서트홀에서 추모음악회 했습니다. 그때 엄 선생이 총무였고 제가 회장이었는데 굉장히 규모가 커서 복잡한 것을 엄 선생님이 열심히 준비하여서 함께 해낼 수 있었습니다.
김경민: 예의가 바르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발 벗고 도와주는 사람이었고요.
현재희: 엄 선생은 이타적인 사람이고 아이같이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혜전: 맞아요. 동문회 총무가 궂은일을 많이 해서 본인이 하기 어려웠을 텐데 먼저 나서서 할 정도로 마음이 좋았죠.
김경민: 엄 선생님이 떠나기 일 년전에 이선경 선생님과 저와 셋이 강원예고 강사 오디션 참석 겸 여행을 갔는데, 겨울밤 바닷가에서 불꽃놀이 하는 모습을 사진을 찍어 놓았습니다. 즐거움이 많은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용일: 엄 선생은 뭔가를 안하고는 못 배기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 사람들을 대하면서 피아니스트들을 보면 믿을만한 사람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끈기가 있고요.
현재희: 피아니스트 들은 악보를 볼 때, 단선과 오케스트라를 한 번에 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같이 어울려서 즐겁게 하는 연습보다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연습을 해야 하니까 더 인내심이 필요한 악기이죠.
이용일: 사람은 한번 좋은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이 오래 가게 됩니다. 엄의경 선생님의 연주는 저에게 좋은 자극이었습니다. 그리고 반주를 할 때도 엄의경 선생은 얼렁뚱땅 하는 것이 없고 꼼꼼하게 연주했고 연주자들에게 보잉도 이야기 할 정도로 꼼꼼했습니다. 우리에게 귀중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 감사하고 요즘 젊은 반주자들이 닮아야 하는 모델입니다. 빈 트리오의 마지막 연주는 언제이었나요?
김경민: 작년 2015년 4월 4일에 예술의 전당에서 했습니다. 유레카시리즈는 엄의경선생의 아이디어 였는데 그 시리즈의 정기연주회 이었죠. 그날 찰스 아이브스의 「피아노 트리오」, 50분 길이의 라흐마니노프의 「엘레지크 2번」, 슈만의 「트리오 1번」 등의 특히 좀 무거운 연주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저희는 트리오 연주 리허설을 12번 이상씩 하고는 합니다. 특히 치열하게 함께 준비했던 이 연주가 추억속의 마지막 연주가 되어버렸네요.
연 2회씩의 독주회를 하던 엄선생 이었는데 사실 그런 엄선생이 지난해 독주회 때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암보를 하지 않았는데 저는 그날 너무 좋았던 연주였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이 가시기 2~3년 전부터는 이상하게 독주회도 가고 싶어서 자주 갔었습니다.
백희진: 지금 엄 선생님을 흑석동 성당에 모셨습니다. 너무 좋은 분이셨는데 떠나보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고 아직도 마음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리_김진실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6년 11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진행 :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현재희(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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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작곡가 이영자 / 음악춘추 2016년 11월호 (0) | 2017.05.22 |
바리톤 석상근 / 음악춘추 2016년 11월호 (0) | 2017.05.22 |
작곡가 장민호 / 음악춘추 2016년 11월호 (0) | 2017.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