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추모인물탐구-플루티스트 금파 정창용 선생 / 음악춘추 2013년 3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3. 3. 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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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춘추 기획대담 | 인물탐구

한국 플루트계의 선각자
플루티스트 금파 정창용 선생

 

거의 독학으로 플루트를 공부한 플루티스트 정창용 선생(1931. 3. 3∼2000. 7. 12)은 경북 김천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 국문과를 마치고 늦은 나이인 40세에 도불하여 파리 고등사범음악원을 졸업하였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수석으로 활동하는 한편 릴리안 판 칼리지 객원교수와 서울대 이화여대 한양대 숙명여대에 출강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한 선생은 한국플루트협회 회장 및 고문을 맡는 등 한국 플루트계의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하였다.
생전에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후 한국 플루트계의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2005년 창단된 금파 플루트 앙상블은 매년 정기연주회를 통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일시: 2013년 2월 15일(금) 오전 10시 30분
장소: 코스모스 악기 10층 
진행: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박중수(국민대 음대 출강)
        박혜란(성신여대 음대 학장 역임)
      김종덕(성신여대 음대 석좌 교수)
      김동수(성신여대 음대 전임 교수)
      이미선(코리안 심포니 수석)
      나호천(코스모스 악기사 부사장)

 

정창용 선생과 첫 만남

 

이용일_ 정창용 선생님께서는 한국 플루트계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신 훌륭한 연주자이시며 교육자이셨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늦게나마 재조명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오늘 참석하신 제자 분들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의 좋은 말씀을 기대합니다. 그럼 정창용 선생님을 가장 먼저 뵈었던 박중수 선생님께서 첫 만남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박중수_ 제가 기억하는 정창용 선생님의 첫 인상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양대 음대 재학  때였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자가용을 타고 학교 언덕을 지나시는데 어린 마음에 참 대단하신 분이시구나 싶었죠. 당시에는 교수님들도 자가용이 거의 없던 시절이어서 많은 강사 분들 중에서도 남다르셨던 기억이 나네요.
한 번은 한양대 음대 복도를 지나시면서 다른 악기까지 레슨을 해 주시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사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심지어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까지 “너 그거 잘못되었다.”라고 짚어 주실 만큼 교육열 또한 대단하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플루트 선생님이 어떻게 다른 악기 티칭을 하시지?’라고 의아해 하였지만, 돌이켜보면 후진들을 위해서 애쓰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용일_ 그렇다면 그 시절에 정창용 선생님께서는 플루트를 어디서 배우신 것인가요? 홍익대 국문과를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박중후_ 제가 알기로는 군악대가 활성화되어 있던 미군을 통해 처음 플루트를 배우신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저의 오보에 선생님도 군대에서 처음 악기를 배우셨으니까요. 그 때는 그러한 방법으로 악기를 배우는 일이 흔했거든요. 그 후 정 선생님은 교재를 통해 연구, 공부하시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진하셨던 거 같습니다.

 

박혜란_ 하지만 정 선생님께서는 음대를 나오지 않으신 것이 한이 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당시는 음악대학이 생소하였고, 당신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셨고, 그래서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나신 것이지요. 결국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도전적인 면으로 인해 한국 플루트계의 발전에 최고의 공로자가 되실 수 있었고,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제가 플루트를 배울 수 있었을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용일_ 그렇군요. 박혜란 선생님께서 이어서 정창용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박혜란_ 저는 1963년 중학교 재학 때 처음 정창용 선생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희 언니가 플루트를 공부하는 것을 보고는 언니 악기를 빼앗아 연습하곤 했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당시 서울시향의 수석으로 계신 정창용 선생님을 찾아가 만나 뵙고 플루트를 배울 수 있었죠. 원래 저는 바이올린을 했었는데 정 선생님을 만나 뵌 후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전공을 플루트로 바꾸었습니다.

 

이용일_ 그럼 다른 제자 분들은 언제 처음 정창용 선생님을 뵙게 되었나요?

 

이미선_ 저는 1975년도에 처음 뵈었습니다. 저희 이모님께서 정창용 선생님의 제자이셨는데, 집안에서 음악 하는 것을 반대하는 바람에 포기하시고 다른 공부로 전공을 바꾸셨죠. 그 후 제가 플루트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이모님께서 정창용 선생님을 만나 뵙게 해주셔서 플루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동수_ 저도 정창용 선생님을 처음 뵌 건 고등학교 3학년 때로 정확히 기억을 하자면 1981년 3월 29일입니다.

 

이용일_ (웃음)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시는 걸로 보니 김동수 선생님께는 매우 특별했던 날이었나 봅니다.

 

김동수_ 네, 맞습니다. 정창용 선생님께 플루트를 배우고 싶어 전화를 드리고 찾아뵈었는데, 레슨실에서 대기하는 학생이 너무 많이 있더라고요. 그 때 바쁘신 와중에도 저를 보시곤 앉을 자리를 일러 주셨지만 여자아이들이 잔뜩 있으니 저는 창피해 하며 쭈뼛거리고 있었죠.
기다림 끝에 에튀드 한 곡을 외워서 연주하고 나니 정창용 선생님께서는 제게 레슨을 해줄 테니 박혜경 선생님과 스케줄을 상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매주 만 원씩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2주에 한 번 레슨 받는 걸로 하여  한 달에 2만원밖에 드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때 저에겐 만원도 너무나 큰 돈이었거든요. 그 당시 한 달 동안 제가 신문을 돌리고 받을 수 있는 돈이 만2천 원이었기에 사실 한 달에 두 번 레슨 받는 것도 저에게는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제 사정 얘기를 들으시고는 활짝 웃으시면서 그냥 배우러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가진 것 없는 학생들에게 많이 베푸시면서 기회와 혜택을 주지 않으셨나 합니다.

 

이용일_ 대단한 스승이셨네요. 그럼 김종덕 선생님께서는 언제 처음 정창용 선생님을 뵈었나요?

 

김종덕_ 저는 1970년도에 서울시향에서 처음 뵈었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시향 수석으로 스카웃되었는데, 그 때 정창용 선생님이 플루트 수석으로 계셨습니다.
저는 사회에 갓 나온 신인 연주자였기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정창용 선생님께서는 그런 저를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정 선생님을 각별히 생각하는 것이, 어른으로써 제가 서울시향에서 수석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기반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와 선생님은 사제 관계이면서 음악적 동료 입장으로 지냈었습니다.

 

정리_이은정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3년 3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용일(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김종덕(성신여대 음대 석좌 교수)

박중수(국민대 음대 출강)

김동수(성신여대 음대 전임 교수)

박혜란(성신여대 음대 학장 역임)

이미선(코리안 심포니 수석)

나호천(코스모스 악기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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