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초대
첼리스트 홍은선
제2회 국제 펜데레츠키 첼로 콩쿠르 2위 입상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와는 달리 첼리스트가 출전할 수 있는 국제 콩쿠르는 많지 않다. 그 가운데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콩쿠르 중 하나인 국제 펜데레츠키 첼로 콩쿠르(International Krzysztof Penderecki Cello Competition)가 지난 2013년 12월 16일부터 22일까지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첼리스트 홍은선이 2등의 성적을 거두었다는 소식이다. 국제 펜데레츠키 첼로 콩쿠르는 폴란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펜데레츠키를 기념하기 위해 5년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2013년 제2회 콩쿠르에서는 프랑스의 아스트링 시라노시앙이 1위를, 그리고 한국의 문웅휘가 3위를 차지했다.
현재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유학중인 첼리스트 홍은선을 콩쿠르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2013년의 마지막날, 연천에 위치한 한옥 호텔 ‘조선왕가’에서 만났다.
“펜데레츠키는 위대한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 등 여러 유명 첼리스트들을 위한 여러 작품들을 남겼고, 그 작품들은 첼리스틱 합니다. 그래서 그의 첼로 작품들은 첼리스트들에게 유난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또 시간과 기회가 허락되면 새로운 곡을 찾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번 콩쿠르를 통해 그것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콩쿠르 준비 기간이 비교적 짧았지만 집중적으로 준비해 좋은 성과를 얻어 기쁩니다.”
그녀가 콩쿠르 출전을 결정한 것은 콩쿠르가 시작되기 5개월 전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충분한 준비 기간 같지만 콩쿠르에서 연주할 프로그램이 워낙 방대했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1차에서는 지정된 펜데레츠키의 작품 3곡 중 1곡과 지정 작곡가의 작품이 포함된 45분 길이의 무반주 리사이틀을, 그리고 2차에서는 펜데레츠키의 모음곡 중 3악장과 35∼40분 길이의 리사이틀을, 특히 3차에서는 협주곡 두 곡을 크라코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야 했던 것이다.
3차 지정곡은 슈만의 「협주곡 가단조 작품129」, 엘가의 「협주곡 마단조 작품85」 중 1곡과 펜데레츠키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제2번」이었으며, 홍은선은 그녀가 좋아하는 작곡가인 슈만의 협주곡을 택했다. 그 동안 몇몇 콩쿠르에 출전해 봤지만 한 라운드에서 하루에 두 개의 협주곡을 연달아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에너지는 물론 집중력도 많이 필요로 해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마지막에는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연주했다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를 통해 펜데레츠키라는 작곡가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인 듯합니다. 사실 처음 그분의 작품을 접했을 때는 기교적인 부분들이 많아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깊이 공부하며 연주해 보니 굉장히 강한 음악적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콩쿠르에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콩쿠르를 위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접한다는 것은 참가자들에게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기회에 고전, 낭만시대의 작품에 비해 덜 친숙했을 현대작품도 다뤄야 했던 그녀에게 평소 현대음악에 관심이 있었는지 묻자 “그렇다”고 답하며 말을 이었다.
“현대음악이 관객에게만이 아니라 연주자 입장에서도 그 음악적 메시지를 찾기 어렵고 테크닉적으로도 어려운 작품들이 있어요. 하지만 연주자의 임무는 아직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메시지가 담긴 새로운 곡들을 발굴해 계속해서 청중에게 소개하는 것이고, 그러한 작업이 앞으로 현대음악의 발전을 위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첼리스트 홍은선은 9세 때 첼로를 시작, 정선이를 사사했으며, 이후 음악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인 그녀는 13세에 금호아트홀 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했고, 예원학교 2학년 때부터 정명화 선생을 사사하였다. 그 후 서울예고 2학년 재학 중이던 16세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Escola Municipal de Musica Victoria de los Angeles에서 3년간 루이스 클라렛(Lluis Claret)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당시 홍은선은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의 유학지가 아닌 스페인이라는 곳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15살 때 루이스 클라렛 선생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셔서 그 때 마스터 클래스에서 처음 배운 후 스페인으로의 유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당시 제 나이가 어린 편이었고, 클래식 음악의 경우 스페인으로 유학가는 일이 드물어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루이스 클라렛 선생님께서 자상하시고, 음악적, 인격적으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서 부모님께서도 마음을 놓으신 듯해요. 정말 ‘첼로 아빠’ 같은 분이시거든요. 제가 스페인을 떠난 지 5년 정도 되었지만 제게는 영원한 멘토이십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3년간 유학한 후 독일 쾰른 음대(Hochschule f r Musik und Tanz in K ln)에서 프란스 헬머슨(Frans Helmerson) 교수의 가르침 아래 학부를 마치고 현재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Hochschule f r Musik Hanns Eisler in Berlin)에서 같은 교수와 석사과정 중에 있다.
“프란스 헬머슨 선생님께서는 학생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세요. 자신만의 색깔, 연주, 해석을 찾으라고 매우 강조하십니다. 선생님의 제자들 중에도 뛰어난 첼리스트들이 많은데 정말 저마다의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보고 많이 배우기도 하고요.”
일찍이 이화?경향 콩쿠르, 바로크 콩쿠르, 서울 청소년 실내악 콩쿠르 등에서 우승한 홍은선은 2004년 국제 청소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on for young musicians in Kurashiki, Japan) 2위를 비롯해, 17세가 되던 해에는 국제 가스파르 카사도 콩쿠르(International Gaspar Cassado Cello Competition in Hachioji, Japan)에서 3위, 그리고 유네스코에서 지정된 바르셀로나의 팔라우 델 라 무지카 카탈라나 연주홀(Palau de la Musica Catalana)에서 열린 엘 프리메르 팔라우 콩쿠르(El primer Palau)에서 입상해 스페인 전역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특히 2007년 독일 크론베르크에서 열린 저명한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첼로 페스티벌에서 Ingrid Gr fin zu Solms-Wildenfels 백작으로부터 ??잉그리드 추 좀스 문화상(Ingrid zu Solms Kulturpreis)‘ 를 수여받고 페스티벌에서 독주회를 여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연주 실황 중 Alfred Schnittke의 「Improvisation」이 첼로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의 타계를 기리기 위해 그가 초연한 곡들로 만들어진 『Celebrating Slava!』(Edition H nssler) 음반에 기돈 크레머, 나탈리아 구트만, 린 하렐, 조영창 등 세계적인 대가들의 연주와 함께 실리게 된다. 6년 전 가졌던 그 연주는 홍은선에게 지금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독일 크론베르크는 첼로 페스티벌, 마스터 클래스로 유명한 곳인데, 특히 그 해에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세상을 떠나 그를 추모하는 것이 모토가 되었어요. 그런 뜻깊은 자리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연주하고, CD로도 제작되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덧붙여 그녀는 최근 국제 펜데레츠키 첼로 콩쿠르의 결선 무대도 뜻깊었다며, 콩쿠르의 과정들이 힘들기도 했지만 한 무대에서 협주곡 두 곡을 연주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므로 그 경험 자체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고 말했다.
홍은선은 아직 첼로를 공부하는 학생의 신분이지만 이미 세계적인 무대에서 프로다운 경력을 쌓아 나아가고 있다. 세계적인 제네바 빅토리아홀, 바르셀로나 팔라우 델 라 무지카 카탈라나, 파리 샹젤리제 극장, 런던 위그모어홀 등에서 연주하였고, 국내에선 KBS홀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 바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14세에 서울시향과 협연한 그녀는 서울 바로크 합주단,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러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쿠오피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민스크 쳄버 오케스트라, 안도라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다.
또한 실내악에 열정적인 그녀는 독일 크론베르크에서 열린 실내악 페스티벌 ‘Chamber Music Connects the World’에서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 린 하렐, 플루티스트 이레나 그라페나우어와 함께 실내악을 연주하였고, 세계적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가 매해 여름에 스위스에서 주최하는 세이지 오자와 아카데미와 영국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Prussia Cove Open Chamber Music 실내악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실내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렇듯 첼리스트로서 무한한 잠재력과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홍은선은 앞으로 이런 음악가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연주를 통해 청중에게 음악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의 전달자가 되고 싶어요. 저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곡가의 메시지를 섬세하게 잘 이해해서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열심히, 그리고 새로운 도전과 함께 계속해서 성장하는 음악가가 되길 원합니다.”
홍은선은 올해 봄에는 뮌헨, 그리고 여름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주회를 갖고, 한국에서는 올해 여름 대관령 국제음악제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이 날 인터뷰를 진행한 ‘조선왕가’는 1800년대에 짓고 1935년에 99칸으로 중수된 황실가의 전통한옥을 그대로 옮긴 한옥호텔이다. 원래 서울 명륜동에 있었던 이 한옥은 고종(1852∼1919)의 손자이며 종묘제례를 주관한 이근의 고택인 염근당(念芹堂)을 재건한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이어진 사진 촬영을 위해 홍은선이 고즈넉한 한옥을 배경으로 밝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 서양 음악을 연주하는 첼리스트, 이 둘은 서로 다른 뿌리를 갖고 있었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면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멋과 정취를 더하는 한옥처럼 아직 젊기에 그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홍은선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관심을 가져보자.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장소제공_ 조선왕가(031-834-8383)
'월간 음악춘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회 한국스타인웨이콩쿠르 / 음악춘추 2014년 4월호 (0) | 2014.05.22 |
---|---|
바리톤 김진추 / 음악춘추 2014년 4월호 (1) | 2014.05.22 |
작곡가 나인용 / 음악춘춘추 2014년 3월호 (0) | 2014.05.06 |
한국 오케스트라의 현재와 미래 / 음악춘추 2014년 3월호 (0) | 2014.05.06 |
인물탐구 - 바이올리니스트 안용구 선생 / 음악춘추 2014년 3월호 (0) | 2014.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