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대담
한국 오케스트라의 현재와 미래
일시: 2월 13일 오전 11시
장소: 예술의전당 음악당 카페 심포니
진행: 김시형(작곡가, 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패널: 이한돈(백령 윈드 오케스트라 총감독 및 지휘자)
정치용(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박인건((재)KBS교향악단 사장)
김경희(숙명여대 음대 교수, 과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백진현(동서대 대학원 교수, 중국 Tianjin Symphony Orchestra 수석 객원지휘자)
한국 최초의 교향악단은 고려교향악단으로 계정식·현제명·김성태를 중심으로 출발, 1945년 10월 계정식의 지휘로 창단 연주회를 가진 후 1948년 10월 제26회 정기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1948년 1월 김생려를 중심으로 창단된 서울교향악단은 김성태의 지휘로 창단 공연을 가졌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활동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1950년 11월 해군에서는 해군정훈음악대를 조직하여 명맥을 이었고, 19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된 후 1957년 8월 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재창단되었다.
그리고 국내에서 시립으로는 두 번째, 지방 도시 중에서는 처음 창단된 시립교향악단은 부산시립교향악단으로, 1962년 11월 초대 지휘자 오태균과 함께 창단 기념 공연을 가졌다. 이후 국내 지자체에서 도립, 시립교향악단의 창단이 계속 이어졌으며, 서울특별시에서는 최초의 기초 자치단체 오케스트라인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1997년)가 창단되기도 했다. 현재 50여 개의 도립, 시립 등 지자체에 속한 교향악단이 활동 중이며, 자발적으로 생긴 민간 교향악단도 100여 개에 이른다. 이렇듯 국내 교향악단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으나 시향에서는 지휘자와 단원 간의 불화, 낙후된 행정, 관객 개발에 대한 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있으며, 민간 오케스트라의 경우, 예산 확보 및 후원 부족, 연주의 질적 문제 등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및 관계자와 함께 한국 오케스트라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시립교향악단의 운영 방식과 문제점
김시형_ 월간 음악춘추에서 현재 음악계가 처한 현안에 대해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회를 이번 3월 호부터 시리즈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 시작으로 ‘한국 오케스트라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선정했는데, 광범위한 주제이긴 하지만 음악계에서 교향악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내 교향악단체에서 시립교향악단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므로 시향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다루고자 합니다. 우선 시향의 지휘자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계시는 정치용 선생님께서 시향 내부의 문제점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정치용_ 우선 시향의 상임지휘자 선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외국 교향악단의 경우 단원들이 상임지휘자 선임에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베를린 필 같은 곳을 예로 들 순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단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시 행정 측에서 일방적으로 상임지휘자를 선임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즘에는 특채와 공채, 두 가지로 진행되는 거 같은데, 공채의 경우 공정하게 진행된다고만 하면 장점이 많지만 특채의 경우는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KBS 교향악단 등 국내 극소수 교향악단의 경우 상임지휘자 선임 과정에서 상당히 단원들의 의견 반영되는 거 같은데, 그런 선례들이 앞으로 다른 시향에도 벤치마킹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경희_ 제가 최근 어떤 시향의 상임지휘자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지휘자의 자질에 대해 항목마다 점수화를 해 경험은 다소 부족해도 실력있는 사람이 서류에서 탈락하는 일도 있더라고요. 엉뚱한 사람이 서류 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문제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다음 전형이 제로 베이스에서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각 전형마다 퍼센티지가 정해져 있어 다음 단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력이 없는 사람이 선발될 수도 있습니다. 상임지휘자 선정 문제에서부터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음악인들의 말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지자체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김시형_ KBS 교향악단이 지난 해에 지휘자 요엘 레비를 음악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단원들의 의사가 반영되었나요?
박인건_ 저는 개인적으로 단원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부 오케스트라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충분히 다른 입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단원들의 의견 반영을 꺼리는 이유는, 과거의 경험을 보면 단원들이 뽑은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휘둘리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단원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요. 단원들의 의사를 반영해 지휘자를 선정하는 것이 틀림없이 필요하지만, 단원들에게 좌지우지되지 않고 통솔하는 리더십을 가진 지휘자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요.
KBS 교향악단의 경우, 상임지휘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5∼6회의 실무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단원들의 요구는 과거에 KBS 교향악단을 지휘해 본 지휘자와 그렇지 않은 지휘자를 한 번씩 함께 연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상임지휘자 후보들과 단원들이 무대를 가져봄으로써 단원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여론이 형성되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비교적 잘 상임지휘자를 선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경희_ 박인건 사장님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KBS 교향악단이 상임지휘자 추천 위원회는 어떤 분들로 구성했었나요?
박인건_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때는 단원 중에서 전용우 악장과 김우진 첼로 수석이 단원 대표로 포함되었고, 이사진 중에서는 상임이사인 저와 고(故) 김주호 이사, 그리고 외부 인사로는 단원들이 추천한 지휘자인 최승한 선생님, 이사진이 추천한 김민 선생님과 김용배 선생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렇게 7명의 추천위원회가 몇 차례 모였는데, 그렇게 모일 때마다 비용과 시간적인 면에서 부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치열한 격론도 있었습니다.
김시형_ 그런 선임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단원들도 수용할 수 있었나 보네요.
박인건_ 추천위원회에 단원 대표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회의 결과가 단원들에게 계속 전달이 되었지요.
김시형_ 시스템에 갇힌 대한민국의 교향악단은 예산, 지자체의 장(長)에 따라 변화가 있게 마련인데, 그런 문제를 시향에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김경희 선생님 역시 과천시향의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신데 운영하시면서 겪은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단원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경희_ 지휘자와 단원 간 불화의 요인은 지휘자 선정에서부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볼 때 지휘자를 선정하기 위한 어떤 공정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그것을 전국의 시향이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지휘자가 행정력을 가져야 무능한 지휘자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단원들의 불편사항을 개선하지 못하면 단원들에게 불편한 지휘자가 되어 불화를 일으키게 되는 듯해요. 그래서 예를 들어 단원의 처우 개선, 또는 공무원급 대우, 근무 시간 등과 관련된 문광부의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용_ 과거 서울시향의 조례가 지방 시향 조례의 기초가 된 것인데, 그 오래된 조례를 그대로 시행하거나 수정했더라도 미비하게 수정한 곳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오케스트라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런 경우들을 빨리 받아들여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경희_ 네. 예를 들어 근무 시간의 경우, 국가에서 교향악단의 단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해야 한다고 정하면 시의 담당공무원은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무조건 지키라고 하는데, 음악의 특성상 그러한 근무 시간은 불가능하지요. 현재 문광부가 음악계에 대해 어떤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각각의 지휘자들이 제도를 개선할 수는 없고, 예술단과 관계된 공무원들은 단순히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일할 뿐입니다.
이한돈_ 저도 시향의 연습 시간과 관련해 곤란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제가 춘천시향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던 당시 자문위원 중 한 분이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당시 70대였는데, 저희 교향악단더러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습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음악가가 앉아서 편하게 연주하는 것처럼 보여도 운동선수가 100미터를 달리는 것보다 더 많은 호흡량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연습시간을 줄인 일이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음악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지요.
백진현_ 문광부나 지자체에서 이러한 특수성을 가진 예술분야의 사례 연구를 통하여 심포지엄 등을 열어 방향을 설정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 개개인의 지휘자들이 문광부에 단발성의 건의 형태로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담당부서와 담당자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김시형_ 정리해 보자면, 전국의 시향을 관리하는 운영 시스템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를 어떻게 해낼 것인가가 관건이네요. 시립 예술단의 사무국이 교향악단 외에도 무용, 합창 등 서너 개의 예술단체를 단 몇 명의 직원으로 관리하는 것도 문제이지요.
박인건_ 뉴욕 필의 경우 단원이 100명, 스태프가 80명이고, 서울시향은 30명입니다. 서울시향이 발전한 이유 중의 하나도 시스템의 변화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향들이 사무국 직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보니 일정이나 연습 시간 조율과 같이 사무국에서 담당해야 할 일들을 지휘자가 종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경희_ 그리고 시향의 사무국 직원들이 대부분 계약직으로 채용되기 때문에 주인의식을 갖지 않고 일하는 경향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문광부에서 이런 직원들에 대해서도 처우 개선을 해줘야 합니다. 뉴욕 필의 스텝이 80명이고, 서울시향은 30명이라는 것이 정말 부러운데, 국내에서는 사무국에 직원이 확보되어 있다고 해도 음악에 대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시의 말을 듣지 지휘자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휘자는 오히려 더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이한돈_ KBS 교향악단은 사무국 직원이 몇 명인가요?
박인건_ 공연기획팀, 홍보마케팅팀, 경영관리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악기계, 악보계까지 포함해 총 17명입니다.
백진현_ 저는 지휘자로 활동하기 전에 악기를 전공해서 교향악단의 단원, 수석도 해봤는데, 단원들은 지휘자가 무엇이든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슈퍼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휘자는 그렇지 않잖아요. 지휘자가 어떤 제안을 할 경우 지휘자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다르다면 결코 그 일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교향악단의 직원 수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마산시향의 상임지휘자로 8년간 활동하던 당시 초기에는 직원이 한두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직원 수를 늘리려고 했지만 고작 5∼6명이 충원되었고, 이것도 지방의 다른 시향에 비하면 많은 편이었어요. 박 사장님 말씀처럼 지휘자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어 스케줄, 교향악단 연습 시간 등에 대해 지휘자에게 전결권을 주면 지금보다는 좋은 환경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용_ 지금 거론되는 모든 문제들이 결국 행정적인 부딪힘인데, 시향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보면 상임지휘자가 단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휘자로서 어떤 것을 행정 쪽에 요구하더라도 행정 담당자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싫다고 하면 결국 안 되니까요. 근본적으로 시에서 ‘시립’ 교향악단이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 개념이 부족한 듯합니다. 시향의 필요성만 제대로 안다면 잘 발전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텐데 말이지요.
제가 원주시향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던 당시, 원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립교향악단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시장님이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입니다. 시장님께서 시의 예산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형편에 맞게 최대한 오케스트라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거든요. 제가 원주시향에서 6년간 있었는데, 두 번 빼고는 시장님께서 정기 연주회 관람을 빠진 적이 없으셨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오케스트라를 아끼는 시장님을 본 적이 없어요. 시장님께서 워낙 오케스트라를 좋아하시다 보니 직원들도 꼼짝 못했지요. 시의회에서 한두 번 시향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시장님이 워낙 흔들리지 않으시니 곧 조용해지더라고요. 그건 특별한 경우였지만, 박근혜 대통령께서 최근 “교육과 문화는 우리 미래를 여는 문”라고 말씀하기도 했는데, 지자체에서도 시향 등 예술단체에 대해 창의적인 발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이한돈_ 오케스트라를 음악의 꽃이라고 하며,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도시의 문화 척도를 나타내는 것이 오케스트라 수준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저도 과거에 춘천시향을 창단하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춘천시향을 이끄는 동안 시장님이 네 번 바뀌었는데, 시장님들이 한결같이 하신 말이 “음악회에 가면 졸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자의 “음악을 모르면 정치를 못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선거 때만 표를 얻기 위해 유세하지 말고, 평소 음악회장에서 시민들과 가까워지라는 말씀을 드리곤 했습니다. 음악회장에서 만난 관객들과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불편한 것은 없는지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말을 안 듣더라고요(웃음).
김시형_ 교향악단의 사무국 지원 부족에 대한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시향 지휘자의 경우 공공성에 대한 경영 마인드를 갖고, 단원들과 소통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준 경영자가 되어야 해서 애로사항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산 문제도 있지요. 제가 주변에서 들은 바로는 시향이라고 해도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고, 교향악단에 관련된 논문들에 의하면 예산의 문제는 공연 횟수와도 결부되더군요.
그리고 시향에는 상임 단원, 비상임 단원이 있고, 음악회를 진행할 때 단원이 부족해 객원 단원을 쓰는 것에서도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김경희_ 네. 객원 단원비를 공연비에서 삭감해야 하다 보니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공연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경우가 있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하고 싶더라도 객원 단원비 등 늘 예산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 프로그램을 마음껏 정할 수가 없어요. 결국 악순환인 것이지요.
김시형_ 학술논문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기본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공연 횟수를 연 40회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연 40회 공연을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문화 소비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상위 오케스트라 30곳의 연간 공연 횟수가 100회가 넘더군요.
백진현_ 우리나라와 일본의 교향악단을 비교하는 것은 실정상 맞지 않습니다. 일본 오케스트라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자생하거든요. 즉, 기업후원금과 티켓 수입 같은 자체적인 자금 확보를 통해 교향악단을 운영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연주를 많이 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보면 한국 오케스트라는 좋은 환경이고,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많은 시향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시향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긴 하고요.
그리고 공연 횟수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이유 중 하나는 부풀리는 곳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공연 횟수의 기준을 어느 정도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작은 공연까지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연 횟수에 대해 논의한다면 챔버 오케스트라, 풀 오케스트라를 구분하고 정규 공연 횟수에 대한 비교가 필요하겠습니다.
박인건_ 시나 도의회 의원들이 예산을 책정할 때 작년에 몇 회 공연했는지를 참고하기 때문에 공연 횟수를 헤아리는 것도 행정적인 면에서 필요하긴 합니다. 그래서 저희 KBS 교향악단은 아예 연간 2관 편성 공연을 60회 이상 하는 것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적 퀄리티이지요. 어떤 시향의 경우 찾아가는 음악회로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를 25회 공연했고, 이를 정규 공연 횟수에 포함시켰더라고요. 정규 공연은 학구적인 프로그램, 그리고 수준 높은 협연자와 함께 하는 것 등이 필요하고, 이런 과정을 시향들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어떻게 푸느냐가 숙제이지요.
백진현_ 네. 지휘자들은 누구나 일반적 전통 클래식 작품으로 정규 공연을 하길 원하지요. 하지만 예산과 예술 행정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고요.
박인건_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1989년 처음 시작되었는데, 그 때에 비해 지금 우리나라 교향악단이 질적,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운영 시스템은 그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오늘 좌담회에서도 그렇고, 평소에도 음악가들은 담당공무원들이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고 불평하잖아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시립 예술단에 속한 단원들도 모두 공무원 신분이고, 타성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시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원들도 변해야 하고, 공무원 마인드를 벗어나야 합니다. 솔직히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학 교수 자리가 있으면 그 곳으로 옮기잖아요. 단원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이가 별로 없어요.
정치용_ 행정을 맡은 공무원들만이 아니라 시향의 단원들도 안주한다는 말씀이시지요.
박인건_ 네. 관객이 음악회에 오든 말든, 티켓이 팔리든 말든, 월급은 꼬박꼬박 잘 들어오니까 관심이 없어요. 심지어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을 부업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변하긴 했지만, 단원들도 교향악단의 발전을 위한다면 단원으로서의 자부심,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도 변해야 하고요. 교향악단이라는 곳 자체가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닌데, 재단법인화를 하겠다고 하면 돈 벌려고 한다고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재단법인화라는 것이 법인화 출발 당시의 약속만 잘 지켜진다면 정말 매력적입니다. 예를 들어 시향이 관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는 외부 연주 섭외가 들어와 추가 수입이 발생해도 그것을 처리할 항목이 없고, 예산이 남아도 시향의 재정으로 갖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시향도 재정이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하지만 재단법인이 되면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한돈_ 클래식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행정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박인건 사장님처럼 문화예술 행정에 정통한 분이 교향악단에 있어야 하고요. 지자체마다 문화예술과가 있지만 그 곳에 음악전공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간 오케스트라의 운영 방식과 어려움
김시형_ 시향의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할 것이 많지만 토의안이 많으므로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민간 오케스트라에 대한 내용으로 가겠습니다. 민간 오케스트라는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어렵고, 연주 후에는 질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요. 아무래도 충분한 정단원을 두기 힘들어 객원 연주자들을 쓰니까요.
저는 민간 오케스트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주 연주회장과 긴밀한 관계가 설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정치용_ 민간 오케스트라와 시향을 비교했을 때 보통 시향이 민간 오케스트라보다 수준이 높다는 인식이 있지만 요즘에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시향이든 민간 오케스트라이든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시향의 경우 안정적이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민간의 경우에는 운영이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있지요.
오케스트라가 자생 능력을 가지면 가장 좋은데, 자생 능력을 갖기 위한 첫째 조건은 오케스트라의 실력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높으면 자연히 공연 횟수가 많아져 수입이 늘고, 어떤 면에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민간 오케스트라가 당장의 티켓 판매를 염두에 두고 대중성 있는 연주를 위주로 하다보니 응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코리안 심포니의 경우 문광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민간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시향이 아니니까 민간으로 본다면 수준이 낮지 않고, 많은 연주회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 오케스트라의 경우 재정상 불안정한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결국 노력하는 사람은 지휘자이고요. 그게 좋다 나쁘다라기보다는 지휘자가 예산 확보에도 신경을 써야 하다 보니 연주를 많이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음악적인 부분에 충분히 집중하기 어렵게 되잖아요. 연주를 많이 해서 연주의 질이 떨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충분한 연습 시간을 갖고 해야 하는 고급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것이 어려워지니까 오케스트라가 기능적인 쪽으로만 치우치고, 질적 성장이 어려워지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이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민간 오케스트라가 운영 방식을 개선하고 연주의 질을 높이면서도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오히려 시향처럼 안주할 위험성을 가진 단체들이 위기감을 느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우, 픽업까지는 아니지만 연주회별로 필요한 연주자를 선발해서 연주한다는 말을 최근에 들었습니다. 그것이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수준 높은 연주자를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겠지요.
저는 민간 오케스트라가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지휘자가 개인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여기저기에서 후원금을 모아 연주하는 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시향보다 안정감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요. 오케스트라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민간이 오페라 반주 등의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부분은 있는데, 사실 오페라단 같은 경우도 좋은 오페라 공연을 만들기 위해 무대에는 많은 예산을 쓰면서도 정작 오케스트라에는 많은 예산을 책정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적은 예산으로 오케스트라를 섭외하려고 하지요. 오페라에서 성악가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들을 받쳐주는 오케스트라에서 수준 높은 연주가 나오지 않는다면 공연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민간 오케스트라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시향에 단원 자리가 없어서 객원으로 활동하는 좋은 연주자가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주자들을 잘 묶어서 수준 높은 연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분명히 경쟁력이 생기겠지요.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 한때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이것도 실패한 케이스라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예술 쪽에서의 사회적 기업이 문광부가 아닌 노동부에서 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요.
김시형_ 민간 오케스트라가 경쟁력을 갖추고 시향과 공존하면 시향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함께 발전하는 계기가 될 듯합니다. 그리고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도 법인화가 되었는데, 결국 교향악단이 독립 기관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운영상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는 듯하네요.
백진현_ 시향이든 민간 오케스트라이든 결국 운영 방법에 대한 문제가 있고, 시향과 민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공성이 얼마만큼 있느냐 없느냐인데, 시향이 가요 등 대중음악도 다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면 민간 오케스트라와 활동 범주가 겹치니까 민간 오케스트라의 형편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민간 오케스트라들 중 몇몇 특성화된 오케스트라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시향은 공공성에 입각해 관객이 적고, 힘들어도 예술성 높은 작품들을 연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국 예술기관의 담당자, 공무원 등에게 예술과 관련된 교육이 자주 이뤄진다면 인식 또한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리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3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진행: 김시형(작곡가, 명지대 음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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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 바이올리니스트 안용구 선생 / 음악춘추 2014년 3월호 (0) | 2014.05.06 |
바이올리니스트 정준수 / 음악춘추 2014년 3월호 (0) | 2014.05.06 |
피아니스트 이윤수 / 음악춘추 2014년 3월호 (0) | 2014.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