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작곡가 나인용 / 음악춘춘추 2014년 3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4. 5. 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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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작곡가 나인용
한국적 현대음악의 창작에 전념해온 삶

 

‘나인용 가곡의 밤’
1936년생으로, 올해 79가 된 작곡가 나인용 선생은 오늘도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일산의 자택에서 작곡에 몰두하고 있다. 스스로를 ‘진행형 작곡가’로 일컫는 선생에게 작곡은 일상,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나인용 선생은 ‘진행형 작곡가’라는 말의 출처가 백병동 선생이라고 밝혔다). 나인용 선생은 “작품의 질은 한창 때보다 떨어지겠지만 여전히 열심히 작곡하고 있다.”며 겸손하게 운을 뗐지만 작년 한 해를 예로 들어도 작곡가로서의 활동은 젊은이 못지 않았다. 「Variation for Flute & Strings」와 「Chamber Symphony ‘소리’」, 가곡 「하늘을 우러러」(오세영 시), 이렇게 세 개의 신작이 완성되어 서로 다른 무대에서 초연되었고, 기존에 쓴 작품 중에서는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위한 대화」, 「Monologue Ⅰ for Clarinet」 등 세 곡이 재연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작품을 정리하는 의미로 꾸준히 CD를 제작해, 작년에도 두 장의 CD가 빛을 보았다. 그리고 올해에도 몇몇 위촉작을 완성할 예정으로, 현재 집중하고 있는 곡은 오는 4월 말에 개최될 작곡가 강석희 선생의 ‘디멘션 페스티벌’에서 연주될 작품이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의 회원인 선생은 올해부터 음악분과의 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저희 음악분과는 2012년부터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예술원이 올해 설립 60주년을 맞아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음악회를 갖습니다. 이를 위해 실시한 작품 공모에 60편이 왔고, 그 중에서 6편을 선택해 연주회를 준비 중입니다. 전에 음대 학장으로 일하거나 아시아작곡연맹, 21세기악회 회장으로 활동할 때는 총무가 따로 있었지만, 지금 제 나이가 79세인데도 음악분과의 작곡가들 중에서는 젊은 편에 속해서 직접 일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그래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음악회에 필요한 프로필, 사진, 작품 해설 등을 보내라고 전화를 하는데, 젊었을 때 하던 일을 느지감치 다시 해 젊음을 느낍니다(웃음).”
그리고 선생은 3월 13일 오후 7시 30분 영산아트홀에서 있을 ‘나인용 가곡의 밤’을 앞두고 있다. 모든 작품 발표회가 중요하지만 이번 무대는 더욱 뜻깊다고 할 수 있는데, 이유는 나인용 선생 부부가 작년 12월, 결혼 50주년을 맞아 딸인 소프라노 나경혜(연세대 음대 교수)가 금혼식을 축하하고자 음악회를 비롯해 CD, 악보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는 소프라노 나경혜가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창단한 ‘모던 앙상블 가온’의 제2회 정기 연주회로 개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무대에서는 나인용 선생의 1963년 작인 「진달래」(김소월 시)부터 2013년에 작곡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오세영 시)까지 50년의 세월이 담긴 15곡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무대는 생각도 못했다.”는 선생은, 이번에 연주될 작품은 서정 가곡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대부분 실내악곡, 관현악곡, 오페라, 칸타타처럼 규모 있는 기악 관련 작품에 주로 집중하고, 현대가곡은 작곡하더라도 서정가곡은 즐겨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인용 선생은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부인과 소프라노로 활동 중인 딸 덕분에 다른 작곡가들보다는 성악에 관심이 있고, 위촉받아 작곡한 가곡도 꽤 많은 편이다. 즉, 본업은 현대음악 작곡가이지만 사이사이에 대중적인 가곡을 위촉받아 작곡했고, 그러한 작품들이 선별되어 연주되는 것이다.

진행형 작곡가로써 걸어온 삶
충청남도 예산 출신인 선생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찬송가를 통해 음악을 접했고, 13세 즈음 교회의 풍금을 독학으로 연주하며 음악과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동네에서 자주 열리곤 했던 농악대의 축제를 보며 한국적인 음악의 바탕을 얻었기도 했다.
찬송가식의 노래를 작곡해 풍금으로 연주해 보던 선생에게 작곡은 일종의 놀이와도 같았고, 실제로 작곡을 시작한 것은 연세대에 진학해 나운영 선생을 사사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작곡계의 초창기, 즉 나운영 선생님이 활동하시던 시기에는 작곡가들이 주로 가곡을 작곡했지만 나운영 선생님은 기악곡이 많은 편이셨고, 현대음악을 국내에 보급한 제1공로자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세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1980년대 초반부터 현대음악이 주류가 되기 시작했는데, 클래식 음악에서 작곡을 한다고 하면 현대음악을 쓰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기악곡이 중심이었지요.”
악보, 음반 등 음악이 너무나도 귀하던 때, 당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학 수업을 마치고 찾은 곳은 르네상스, 돌체 음악 감상실이었다. 오후의 음악반과도 같았던 것이다.
“나는 돌체, 아내는 르네상스 단골이었고, 집 전화도 없던 때였지만 친구였던 고 한상우 선생을 만나려면 음악감상실에 가면 되었지요. 담배 연기가 자욱한 음악 감상실에 수십 명이 앉아 있었고, 각자 원하는 음악을 신청하면 순서대로 틀어주어서 내가 신청한 곡을 들으려면 1시간에서 2시간은 기다려야 했답니다. 그 시절 그 곳에서 듣는 음악은 생명의 양식과도 같았지요.”
1962년 연세대 종교음악과(작곡전공)을 졸업한 후 중,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1970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사실 문교부에서 시행한 시험에 합격한 후 어렵게 떠난 유학인 만큼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고 싶었으나 모교에서 교수로 오라는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은 1973년부터 연세대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6년 후인 1979년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초청으로 1년간 초빙 교수(resident composer)로 활동했다. 풀브라이트 재단에서는 미국에서 1년간 활동할 작곡가를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5개국에서 한 명씩 후보를 지원받았고, 그 다섯 명 중 나인용 선생이 선택된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은 미네소타 대학, 위스콘신 대학, 세인트 스콜라스 대학에서 수업과 작곡 실기를 지도하는 한편, 교향곡 「수페리어 호수」를 작곡했고, 이는 둘루스 수페리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었다.
그리고 연세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연세작곡연구회, 아시아작곡가연맹 등 여러 작곡 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속 이어지는 위촉 작품을 소화해 내며 바쁘게 지내던 중 1987년 안식년을 맞아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 현대음악연구소로 떠났다. 여전히 작곡에 목마름을 느꼈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지도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이자 현대음악의 중심이 되는 독일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덕분에 선생은 그 곳에서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 클라우스 후버와 교류하고, 1년 내내 열리는 현대음악 연주와 세미나를 접하고, 주변 도시에서 열리는 현대 음악제에 참가하는 등 현대음악의 현장에서 한층 음악이 깊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경험을 「관현악을 위한 ‘태(太)’」에 녹여냈다.

 

관현악을 위한 ‘태’, 창작오페라 ‘부자유친’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인 나인용 선생은 한국적, 토속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쓴 작품은 관현악곡, 실내악곡, 기악 독주곡, 협주곡, 오페라, 합창곡, 교성곡, 가곡, 종교곡, 한국전통곡 등으로 나뉘며 100여 곡에 달한다. 이 많은 작품들 중에서 선생은 「관현악을 위한 ‘태(太)’」를 일생의 역작으로, 그리고 창작오페라 「부자유친」을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인 작품으로 꼽았다. “작품의 퀄리티는 남이 평가하는 것이지만 나로서는 「태」에 특별히 애정이 간다.”고 말한 선생은 여기서 역작(力作)이라는 것은 최고라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온 힘을 들여 작곡했다는 의미라며 작품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이는 독일에 있을 당시 작곡한 것인데, 독일에 가기 전부터 『주역』을 열심히 읽었었고, 거기에 나오는 ‘태’ 이론을 음악적으로 표현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태 이론은 만물이 음양을 기초로 이루어져 있고, 음양은 순환원리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원리를 곡 안에 반영하고자 많은 연구를 했고, 일 년 내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완성했어요.”
그리고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었지만 교수 생활을 하며 오페라를 작곡한다는 것이 힘든 일이기에 2001년 정년 퇴임 후 오페라 작곡에 착수했다. 그래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의 〈부자유친(父子有親)〉을 대본으로 하여 오페라로 탄생시켰고, 이는 2002년 3월 20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부자유친〉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로 1987년 서울연극제에서 대상인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연극 〈부자유친〉을 수 차례 보았는데, 100분 동안 극이 급박하게 진행되어 긴장의 연속이더라고요. 그런 것을 오페라로 옮기려다 보니 연극의 긴장감과 음악을 조화시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조와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등 주요 인물의 아리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태석 선생에게 6개의 아리아를 위한 대사를 추가로 받았어요. 오 선생이 하도 바빠서 아리아 가사를 받기 위해 몇 번씩 찾아가야 했고, 한 달에 하나 꼴로 받았지요(웃음). 정년 후라서 그렇게 정성을 쏟아서 작곡하는 것이 가능했고요.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3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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