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합창단 제135회 정기 연주회 ‘CREO’
근래 인천시립합창단이 한국 합창계에 던진 화두는 ‘어떻게(How)’ 연주할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What)’ 연주할 것인가에 관한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같은 작품이더라도 더, 잘 연주하는 것으로 가치를 찾았던 형태에서 이제는 차별되고 참신한 콘텐츠를 무대에 올리는 시도와 노력들이 일반화된 것이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인천시립합창단의 경우 자체 제작한 ‘한국적 합창’으로 국제사회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국내 합창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 6월 12일 열린 인천시립합창단의 제135회 정기 연주회에서는 인천시립합창단 전임작곡가 우효원의 창작곡 「CREO」와 최근 합창계를 강타한 「O Magnum Mysterium」의 작곡자 안효영의 신작곡 「청산별곡」이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려졌다.
이번 안효영의 「청산별곡」은 세계 초연작으로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전문(全文)이 아닌 일부를 발췌해 음악적 전개를 위해 연의 순서를 바꿔 네 곡(‘살어리 살어리랏다’, ‘울어라 울어라 새여’, ‘어리라 던지던 돌코’, ‘이링공 저링공 하여’)으로 구성되었고, 오래 전 우리가 노래했던 그 언어가 갖는 리듬과 이미지에 주목하여 작곡가의 고유한 해석에 따라 현대 음악언어를 입혀 새로운 「청산별곡」을 전달했다. 무반주곡으로써 절제되고 깊이 있는 선율과 세련된 화성이 인천시립합창단의 견고한 연주와 만나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무난하고 색다른 표현이었다.
우효원 작곡가의 「CREO」는 작년 인천종합예술회관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이 되었었지만 올해는 미디어 아트가 더해져 더욱 화려하고 입체감 있는 공연으로 진화했다. 「CREO」는 창세기의 천지창조 내용을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그려냈으며, 라틴어 가사에 현대 합창 기법과 국악적 요소가 융합된 독특한 작품이다. 한국적 정체성 위에 서양 현대음악을 입혀 오늘날의 기준으로 장르를 구별하기 모호한 포스트모던 체취가 강하다.
단일 합창공연 치고는 오케스트라와 타악, 영상, 조명 등이 대거 동원된 블록버스터(Blockbuster)급이다. 창세기 1장 1절 ‘빛과 어두움’으로 시작해 ‘혼돈(Chaos)’, ‘말씀(Dixit)’, ‘창조(Creatio)’, ‘안식(Requietio)’, ‘완전함(Perfectus)’ 까지 전체 11악장 60여 분이며, 특히 제1일부터 7일까지의 창조 장면을 섬세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내년 국내에서 개최되는 IFCM세계합창심포지엄 때 세계인에게 선보일 작품으로써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작품의 압권은 웅장한 합창 소리와 모듬북과 팀파니의 고동치듯 강렬한 퍼포먼스와 시종일관 국악과 양악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 듯한 묘한 긴장감, 모듬북과 팀파니, 대금과 호른, 정가(正歌)와 소프라노 솔로를 대칭적으로 구성해 마치 반으로 접으면 맞닿을 듯, 같은 느낌 다른 얼굴의 이란성 쌍둥이를 보는 듯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에너지 넘치는 합창단과 타악기의 사이에 수묵화와 같이 단아하게 여백을 메운 정가와 대금의 연주였다. 특히 정제되고 구성진 정가의 소리는 관객의 시선을 끌 만했으며, 시조가 아닌 라틴어로 부르는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다만, 극적 효과를 위해 사용된 화려한 조명과 영상의 경우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 화려함과 입체적인 효과는 있었지만 조명과 영상 사용으로 인해 음향판 사용이 불가했던 사실은 일정 수준의 국내 관객과 내년에 내한할 세계 합창 관계자들에게 약간의 혼돈을 줄 수 있을 듯하다. 특히 타악기의 경우 볼륨의 문제가 아닌 응집력 있는 소리의 무게감이 중요한데, 음향판이 없어서인지 소리가 퍼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객석을 향해 과도하게 비치는 조명 역시 공연의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 일 것이며, 영상의 경우 그 시도와 방법적인 면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 음악과 영상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보다 더 충분한 리허설 및 사전 작업이 필요할 듯하다.
대체적으로 작품의 완성도와 연주 수준은 매우 높았다. 10년 전 인천시립합창단의 「아! 대한민국」과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CREO」는 윤학원 예술감독과 우효원 작곡가의 그간에 경험한 진보된 자산을 담은 듯 더욱 감동적이고 화려했으며, 과감하기도 했다.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했던 내용을 담은 「CREO」지만, 이번 공연은 인천시립합창단이 20년간 자신들이 창조하고 개척 해온 과정과 길을 보여준, 또 하나의 「CREO」가 투영된 듯 하다.
글_ 윤재동(위더스챔버콰이어 지휘자)
사진_김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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