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인물탐구 - 작곡가 송은 / 음악춘추 2014년 9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4. 10. 9. 10:01

2014년 9월호 인물탐구 / 작곡가 송은
 
작곡가 송은
원광대 음악교육과 발전에 공헌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의 외손녀로 태어나 원불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송은 선생은 1965년 경희대 음대 작곡과와 1969년 동대학원 작곡과를 졸업했다. 1971년 원광대 음악교육과를 신설하고 교수로 재직하며 원광대 음악교육과의 발전에 공헌한 선생은 원심합창단을 창단, 지휘했으며, 원음오케스트라도 창단하였다. 전라문화상 심사위원, 전북음악인협회 고문, 익산시립합창단 운영위원, 익산 청소년 오케스트라 이사, 원음오케스트라 지도교수, 한국작곡가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음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전북 음악부문 문화상, 전국 관악제 대상 등을 받았다.
가곡 「청산은 깊어 좋아라」, 「호심」을 대표작으로 수많은 우리가곡과 실내익 및 관현악 작품을 작곡한 선생은 특히 원불교 성가의 대중화를 위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작사 작곡해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일생을 음악을 통한 교화에 바치겠다는 다짐으로 음악활동과 창작에 몰두하면서 음악분야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해 원불교 법훈인 대봉도 위를 받았으며, 세수 74에 열반하였다..

 

일시 :  2014년 8월 14일(목) 오후 1시
장소 :  원광대 60주년 기념관 2층 세미나실
진행 :  이용일 (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패널 :  신상호(전북대 교수)
        심춘택((사)아리울 문화예술진흥회 회장)
        이순덕(인천 성산효 대학원 대학교 교수)
        이창녕(원광대 교수)
        양승돈(원광대 교수)

 

이용일/  이번 음악춘추 9월 호에서는 원광대에 교수로 재직하셨던 작곡가 송은 선생님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송은 선생님의 어릴 적 환경을 이야기해 주시지요.

 

심춘택/ 익산에서 여고로 유명한 이리여고에서 공부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노래, 작곡 등에 관심을 갖고 음악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의 외손녀이며,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전부 원불교의 큰 어른들이십니다. 원불교는 그 집안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의 교학과에 들어가 공부하셨지만, 음악활동은 계속 하셨습니다. 그 후 교학과를 졸업한 선생님은 다시 경희대 음대에 입학해 김동진 교수님을 사사하셨으며, 교모가 되어 활동을 하시다가 원광대에 음악교육과가 개설되자 교수로서 정년을 마칠 때까지 봉직하셨습니다. 당시 원광대에 음악교육과는 송은 선생님이 노력하여 생기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순덕/ 송은 선생님에게는 오빠 3명, 남동생 1명이 계셨는데, 전부 교직자로 활동하셨습니다. 첫째 오빠는 원불교 학당 송천은 총장님이시고, 두 번째 오빠 또한 교직에 계셨고요. 세 번째 오빠는 서울 은광여고 교장선생님으로, 남동생은 전문대학의 학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송은 선생님은 원래 원불교 학과를 나와 원불교 수녀님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원불교에서 생활을 해야 했지만, 사가에 머물면서 피아노, 노래, 작곡 등의 음악활동을 하셨습니다. 원광대에 입학하여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어머니 같은 자상한 모습으로 항상 웃고 계셔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용일/ 송은 선생님이 원광대 음악교육과에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이룬 업적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해보면 좋겠네요.

 

심춘택/ 저는 어렸을 때 대학을 간 것이 아니라, 만학으로 대학을 간 입장이다 보니 보는 눈이 다른 학생들과 달랐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송은 선생님이 모든 정열을 음악교육과에 쏟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해서든 음악교육과를 가장 좋은 학과로 만들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원광대 음악교육과가 신설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페라를 올렸고, 오케스트라 음악회 등과 같은 음악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1회 졸업생인데, 다른 음악대학에서 하는 음악활동 못지않은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한 음악활동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송은 선생님이 원불교 창시자의 외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셨기에 이런 일들을 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용일/ 저는 그 때 원광대 강사로 출강하여 음악 감상을 강의하였습니다. 그런데 학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레코드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송은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저를 행정실로 데리고 가서 150만 원을 받게 해주시며 학과에 좋은 레코드를 구비할 수 있도록 해주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당시 150만 원은 큰 돈이었습니다. 송은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지요. 그래서 원광대 음악교육과가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잡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음악교육과 초창기에 또다른 기억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이창녕/ 원광대는 원래 종법대학으로 원불교의 성가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재단에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송은 선생님은 경희대와 동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신 후 원광대 음악교육과에 교수로 취임하셨습니다. 그 때 당시에 전라북도에서는 유일하게 고등학교에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유영수 교수님께서 지도하고 계셨습니다 송은 선생님께서는 그분을 영입하셔서 두 분이 함께 원광대학의 음악교육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72년에 원광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음악교육과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가는 그 때 김동진 선생님이 작곡하셨으며.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김동진 선생님과 송은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원불교 성가도 만들며 발전시켰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이나 교수, 강사들에게 원불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악도 할 수 있는 학교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용일/ 그 당시 원광대 기독학생연합회의 지도교수가 유영수 교수님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 때 총장님께서 유영수 교수님에게 “우리 원광대의 재단이 원불교인데 찬불가 소리를 한 번 들어 보셨습니까. 기독학생연합회의 모임에서 들리는 찬송가 소리가 너무 크니 소리를 좀 줄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하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원광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송은 선생님도 종교적인 면을 떠나 모든 음악을 포용하셨습니다.

 

이창녕/ 그 때 당시에는 종교를 초월하여 유명한 음악인이면 모두 원광대에서 강사로 초청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음악교육과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양승돈/ 당시에는 송은 선생님 때문에 음악교육과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였습니다. 일례로 국립대인 전북대에도 오케스트라가 없었습니다. 전라북도 내에서 유일하게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할 수 있는 곳은 원광대뿐이었습니다.

 

이용일/ 그것은 송은 선생님이 음악교육과가 재정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도왔기에 오페라와 오케스트라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피아노 전공으로 지휘를 하신 유영수 교수님과 송은 교수님이 손발이 잘 맞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그 때 원광대 음악교육과의 강사료는 상당히 고액이었습니다. 학교에 와서 적당히 강의하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많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고생을 많이 시켰지만 열심히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 좋은 정신을 지닌 교직원들이 많이 있어서 송은 선생님도 활동을 열심히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승돈/ 저와 송은 교수님과의 인연은 1992년도에 제가 원광대에 부임하면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처음 만나 뵌 것은 1983년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저는 원광대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객원으로 참가하면서 원광대에 출강했습니다. 어느 날 유영수 교수님의 엄격한 지도로 오케스트라가 리허설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뒤에서 말없이 묵묵히 도와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무척 헌신적이시다.”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나중에 교수가 되어 만나 뵈니 바로 송은 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젊은 저에게 몇 가지를 부탁 하셨는데, 첫 번째는 학생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당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아직 젊고 하니 학교에만 붙어 있지 말고 자주 밖으로 나가 음악활동을 하라, 없으면 찾아서라도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용일/ 엄격한 교육권 아래 교수들의 권위를 보호해 주는 학교야말로 진정한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송은 선생님의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신상호/ 개신교에서 회중이 함께 쉽게 부를 수 있는 찬송가를 만든 것처럼 송은 선생님은 원불교 성가를 회중들과 함께 편하게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작곡하셨습니다.

 

이창녕/ 작곡적인 면에서 송은 선생님은 원불교 성가에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 성가 안에는 김동진 선생님의 곡도 몇 곡이 들어있습니다. 이 성가들을 보면 종교를 초월해서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켜 원불교, 불교, 천주교, 이렇게 세 종파가 모여서 합창과 음악활동을 하는 삼소회를 만드셨습니다. 종교적으로 원불교 하나만으로 제한된 것이 아닌 완전히 열려있는 그런 음악을 도입하여 음악을 발전시켰습니다. 일례로 삼소회에서 「할렐루야」라는 곡을 연주하도록 요청을 받아도 거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춘택/ 송은 선생님께서는 전라북도에서 오케스트라 창단을 상상도 못할 때, 원음 오케스트라를 만드셨습니다. 송은 선생님이 뒤에서 도와주시고 앞에서는 제가 이끌어 나갔습니다. 원불교 창시자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도 공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오페라를 가지고 전국순회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송은 선생님이 원불교 음악만 가지고 연주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한국가곡에도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많은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송은 선생님이 작곡하신 것을 제가 가장 많이 연주하였데, 선생님은 종교인이셨지만 음악인으로 일평생을 살다 가신 분입니다.

 

이용일/ 제가 원광대에 출강할 때, 송은 선생님은 저와 많이 부딪힐 수 있는 위치에 계셨습니다. 저는 현대음악 쪽을 추구하였고, 송은 선생님은 조성음악을 중요시하셨지요.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저의 의견을 존중해 주시며 항상 상의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신상호/ 당시 저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원음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다 보니,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선생님께서 너무 잘해 주셔서인지 교회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이용일/ 지금까지 제일 아쉬운 마음은 송은 선생님과 한 번도 식사를 같이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송은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수도생활을 철저히 하셨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순덕/ 음악생활을 하신 선생님께서는 사가에서 생활하시면서도 수도생활의 규칙을 철저히 따르셨습니다.

 

이용일/ 네, 맞습니다.

 

이창녕/ 제자들과는 커피도 자주 마시고 함께 식사도 많이 하셨습니다(웃음). 작곡도 마찬가지로 당신은 조성음악을 중시하였지만 제자들에게는 현대음악을 가르치셨습니다. 가곡은 되도록 군더더기 없이 부드럽고 조화롭게 하라고 강조하셨고요.

 

이용일 / 송은 선생님께서는 어떤 음악활동을 하셨습니까?

 

심춘택 / 송은 선생님은 저와 음악활동을 오래 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발표회를 하든 전국 순회연주를 하든 꼭 원불교 음악만 해야 한다고 고집하진 않으셨습니다. 

 

신상호/ 송은 선생님의 특별한 공적은 원불교 성가를 작곡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용일/ 원불교 자체가 송은 선생님의 음악활동처럼 모든 종교에 열려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생각이겠지요?

 

이순덕/ 네 그렇습니다. 원불교 정신이 “내 것만이 소중한 게 아니라 남의 것도 중요하다.”입니다. 즉, “상대방을 존중해 줌으로써 나도 저절로 존중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은(四恩:천지,부모,동포,법률은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원불교의 정신입니다.
송은 선생님의 가곡 「청산은 깊고 좋아라」라는 곡이 너무 좋아서 상당히 오랫동안 일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되기도 하였습니다.

 

심춘택/ 송은 선생님은 대한민국 문화상도 수상하셨으며, 전라북도 문화상의 심사위원이셨습니다. 이것은 원불교 음악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음악활동을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처음에 원불교 성가는 120곡이었는데, 시골에 있는 분들이나 나이드신 분들이 부르기에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성가를 다시 편곡해서 부르기 쉽게 드셨습니다.

 

이순덕/ 지금은 300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300곡 중 3분의 2 가량이 송은 선생님의 곡입니다. 그 외에도 복음성가곡집도 있지요.

 

심춘택/ 한 마디로 말해 원불교 음악을 만드신 분이 송은 선생님이시죠.

 

신상호/ 송은 선생님이 작곡하시기 전에 다른 성가는 몇 곡이나 있었나요?

 

심춘택/ 120곡이 있었습니다. 원불교 성가를 작곡하신 어떤 선생님은 이 일로 인해서 종교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으신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송은 선생님께서는 처음에는 다른 작곡가를 보조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거의 다 송은 선생님이 작곡하셨습니다. 원불교 성가만 아니라 다른 곡들도 작사 작곡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창녕/ 한 마디로 성가를 대중화시키신 것이지요..

 

 

정리_구수진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9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진행 :  이용일 (한국음악교육협회 명예회장)

 

심춘택((사)아리울 문화예술진흥회 회장)

 

이창녕(원광대 교수)

 신상호(전북대 교수)

이순덕(인천 성산효 대학원 대학교 교수)

양승돈(원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