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선화예술중·고등학교 교장 전기홍
새로운 선화(仙和)예술중·고등학교를 위하여.....
리틀엔젤스 예술학교를 시작으로 1974년에 설립된 선화예술학교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는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 ‘마음이 고와야 예술이 곱다’라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예술관과 세계관을 가르치고자 힘쓰고 있다. 최고의 명문 예술학교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전기홍 교장을 만나, 진정한 선화인의 정신과 앞으로의 선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선화예고 제1회 졸업생으로 학교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그 당시와 현재의 선화예술중?고등학교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선화의 초창기 이름은 ‘리틀엔젤스 예술학교’였습니다. 리틀엔젤스 예술단은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황폐해진 동양의 보잘것없는 나라가 아닌, 오천 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임을 알리겠다는 의지로 1962년 창립되었습니다. 그 후 리틀엔젤스는 유엔을 비롯하여 세계 60여 개국에서 6000여 회 초청 공연을 하는 등,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 상영 전 방송된 대한뉴스에도 리틀엔젤스의 활동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리틀엔젤스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이 굉장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해외공연을 갔을 때, 그곳에서 빈소년합창단이 왕궁의 궁정에 마련된 학교에서 학업과 단원 교육을 함께 받으며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였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국위선양을 치하하기 위해 리틀엔젤스를 초대한 자리에서 리틀엔젤스 단원들은 “저희는 집 없는 천사예요. 저희도 빈 소년합창단처럼 한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실기도 연마하고 싶습니다.” 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대통령은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국가적 공헌을 인정하고 개원을 준비 중이던 어린이대공원의 일부 부지를 하사하셨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학교 건립의 첫 삽을 뜨시면서 오늘의 선화학교가 세워졌습니다.
1974년 3월 1일 초대 교장으로 박보희 선생님이 취임하시고, 3월 5일 리틀엔젤스 예술학교 제1회 입학식(240명)을 가졌습니다. 그 후, 한글상호 장려 국가 시책에 따라1977년 2월 ‘리틀엔젤스 예술학교’는 ‘선화예술학교’로 교명 변경하고, 3월에 선화예술고등학교도 개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리틀엔젤스 단원들이 포함된 리틀엔젤스 예술학교 학생들은 리틀엔젤스와 같은 빨간 모자를 쓰고 당시 일반중학교와는 달리 세련된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어린 시선을 받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초대 박보희 교장선생님은 탁월한 지도력과 교육관으로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 ‘마음이 고와야 예술이 곱다’라는 표어를 늘 말씀하시면서 학생들에게 예술관과 세계관을 심어주고 인성 교육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선화는 신생 학교임에도 교사와 학생 모두 학교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동문들은 박보희 교장선생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때의 가르침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물론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스승으로 남아 계십니다. 그러한 훌륭한 교장선생님 아래에서 배웠기에 지금 저의 자리가 많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선화의 시설은 지금도 자랑거리이지만 지금의 이 건물들이 42년 전에 세워진 그대로의 건물이니 당시에는 얼마나 최첨단의 건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 서울대 음대에 2대 있었던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우리 학교 연습실에는 35대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비전을 주는 교육, 아낌없는 시설투자,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선화예술학교 학생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제가 36년 만에 학교로 돌아와 보니, 지금은 그 시절에 우리가 가졌던 자부심, 예술관 혹은 세계관이 많이 희석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정신을 ‘선화인 정신’이라고 표현하는데, ‘선화인 정신’이 부족해진 원인에는 세상의 변화를 비롯해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이 변했다 해도 ‘선화인 정신’이 부족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러한 ‘선화인 정신’을 오늘의 학생들에게 다시금 일깨워 당시에 가졌던 선화인의 자부심과 예술관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도 출근길에 학교 입구에서 선화 건물만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그 시절 받은 교육과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교장으로 부임 후, 선화예술중·고등학교에 어떠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개교 42년이 지나 돌아보는 선화는 국내에서 예술학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진학률에서도 국내 최고의 대학에 60% 이상 진학하는 학교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중요한 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대학을 가는 것입니다. 대학을 잘 보내는 학교도 중요하지만 감동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겠다는 선화인의 자부심, 예술관, 세계관을 가진 예술가를 키우는 학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화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선화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첫째,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좋아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학교 못 나오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벌이라 할 정도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분위기는 학생 교직원 동문들이 ‘선화인’이라는 동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화란 신선 仙에 화합할 和자를 사용합니다. 리틀엔젤스예술학교의 교명을 바꾸면서 리틀엔젤스의 엔젤을 의미하는 한자어 표기로 ‘신선 선’을 사용하였습니다. 결국 선화는 ‘천사들이 화합하여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선화의 최고의 자랑거리는 바로 ‘선화인 정신’입니다.
둘째, 예술 융합 교육과 인성 교육입니다. 선화예중의 경우 자신의 전공 이외의 다른 예술을 배우고 경험하는 융합수업이 있어 매주 2시간씩 본인의 전공과 다른 예술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전공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이 수업은 제가 와서 진행하게 된 수업인데, 학교에서 모든 경비를 지원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예술이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예술로 진화해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융합예술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선화 제일의 교육목표는 인성 교육입니다. 선화 중·고 모두 전문적인 인성 교육 선생님을 모시고 일주일에 1시간씩 인성 교육을 합니다. 매번 인문학적,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 시간 또한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셋째, 선화는 리틀엔젤스예술단, 유니버설발레단, 유니버설아트센터와 함께 예술 단지를 형성하고 있어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고 교류할 수 있으며, 어린이대공원을 캠퍼스의 일부처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수시로 어린이대공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교직원들과 아이들이 좋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화인들을 어떻게 육성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선화의 40년을 보내며 새로운 40년의 교육목표를 세웠습니다.
藝天美地 (예천미지)
‘천상의 예술, 즉 최고의 감동을 주는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이 ‘예천미지’에는 예술가가 가져야 할 꿈과 목적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술가는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 감동을 통해 진선미의 세상을 이루는 것이 꿈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예술가를 키우기 위해 선화는 세 가지 실천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 Challenge, 정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는 선화인이 되도록 교육하겠습니다. 목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40년 전 저는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고, 정확한 꿈도 비전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선화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화에서 초대 교장이시고 이사장이셨던 박보희 총재님의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는 가르침으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저에게 선화는 인생의 은인과 같은 학교입니다. 오늘날 선화의 학생들도 이곳 선화에서의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높은 곳을 바라보고, 도전하는 예술가로서의 인생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겠습니다.
둘째, Create,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창조하는 창의적인 선화인이 되도록 교육하겠습니다. 미래의 예술세계는 오늘날과 같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래의 예술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 무용, 음악과 같은 예술의 패러다임과 전혀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래세계에 어떤 예술 패러다임이 존재할지를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래는 과거라는 거울과 현재를 바탕으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또한 미래는 예측하고 만들어 가는 사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선화의 교육은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 사회의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학생 스스로가 주체적이고 창의적이 되도록 교육하고자 합니다.
셋째, Communicate, 세상과 소통하는 선화인이 되도록 교육하겠습니다. 예술가는 예술로 세상과 소통함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예술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선화는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키우는 학교가 되고자 합니다.
***음악 교육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좋은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시기의 교육과 재능, 좋은 선생님, 기타 주변 환경 등 수 많은 조건들이 훌륭한 연주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음악 교육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공자님의 말씀처럼 음악을 ‘즐기고’ 음악을 통해 ‘행복한 음악가’가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외국에서 활동할 때, 무대를 서면서 늘 치열하게 음악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하려고 했던 음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경쟁에만 몰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력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 안에서 예술가 자신이 행복을 찾고, 그를 통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부분들이 예술을 통해서 표출되어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연주가가 자신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압니다. 그러나 음악가로 살고자 한다면 자신의 능력 안에서 자신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음악이 발전하고, 행복한 음악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의 가치에 대한 목적을 뚜렷이 하여 행복하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예술가의 예술관은 어릴 때 교육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성 교육에 제가 집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임하고 난 후, 저는 가능한 한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갖고 학생들에게 이러 가치관들을 전해주려고 노력합니다.
***한국 음악계에 바라는 점.
음악의 특성상 연주자의 연주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도 음악가에게 연주의 기능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예술의 기능이 남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을 통해서 진선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면 연주 기능만큼이나 폭넓은 사고와 지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음악계의 입시제도와 사회적인 현상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의 입시만 해도 수시로 전환되면서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 가버렸고, 모두가 실기에만 전념하게 만들어 버려 숙달된 기능인을 선별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진정한 예술을 위해서는 올바른 예술적 가치관과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예술적인 매체를 통해서 예술가의 정신과 사상 감정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의 시기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기능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바라건대 우리의 입시와 예술적 환경이 학생들을 기능 위주의 음악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학문적 사고를 함께 키울 수 있는 환경으로 전환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바리톤 전기홍
선화예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후, 도이하여 이태리 뜨렌또 국립 음악원 수석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음악원 최고 연주자 과정 수석 졸업하였다. 중앙 콩쿠르, 전국 성악 경연대회 대통령상, 이태리 부세토 베르디 국제 콩쿠르 1위, 한국음악상 대상, 예총 문화예술상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유럽 주요 오페라 극장 100회 이상 오페라 주역 출연하였고, Salzburg , Paris, Roma, Busseto, Barcellona, Parma, Nara 등 유럽 주요 음악제 독창자 및 독창회를 가졌다. 국립오페라단, 서울시립오페라단 등 국내 30여 편 오페라 주역을 하였고,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선화예술중· 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글_김진실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6년 7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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