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초대
서초문화재단 대표이사 박성택
국내 공연예술계에 대한 해결책 - 단계별 경험을 위한 작은 공연장이 필요합니다
26년간 국내 최고의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예술의 전당에 근무한 후, 전문 경영인으로 부산문화회관에서 3년간 근무했던 박성택 대표이사는 2016년 2월 서초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박성택 대표이사를 만나 우리나라 공연장과 문화예술계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다년간 공연계에 근무해오며 쌓아온 그의 전문성을 인터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 서초문화재단의 대표이사를 새로이 맡은 소감과 생각을 말씀해주십시오.
서초문화재단은 작년 6월에 출범하였고 제가 2월에 취임을 했습니다. 문화재단의 주요사업은 지역의 예술발전을 위해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은 중앙정부나 광역시 단위로 큰 공연장을 만들어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는 정책을 펼친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이 문화를 제대로 향유하게 하려면 지자체들이 이러한 하드웨어적 정책보다는 지역의 예술인과 지역민들의 예술소비환경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야 합니다.
서초구 주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편안하게 즐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최고의 공연장에서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으려면 나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며, 그 준비과정은 구민들의 수준에 맞는 단계적 예술프로그램입니다. 시민들이 순수예술을 왠지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유는 평소에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초·중급 단계의 향유기회들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초·중급 단계의 문화예술소비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지역구에 맞는 공연장과 예술단체, 프로그램, 교육과정, 문화정책들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지역구 문화재단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스템들이 정착될 때, 지역주민들이 편안하게 문화를 향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초구는 생활수준이 비교적 높은 지역이고, 예술의전당이라는 훌륭한 공공문화시설도 갖추어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 구민들의 문화적 수준도 당연히 높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제가 재단에 와서 보니 순수예술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한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아마도 순수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의전당 같은 곳은 프로그램들의 수준이나 공연장 고유의 문화적 환경이 주는 위압감 등으로 인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렇듯 시민들이 느끼는 고급문화에 대한 울렁증 내지 비호감들을 해소해 주기 위하여 서초문화재단에서는 문화시설의 문턱을 낮추고 구민들의 수준에 맞는 공연 및 교육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점진적으로 순수예술에 대한 친근감을 고취시키고자 합니다. 나아가 클래식을 향유할 수 있는 인구를 많이 늘리고 지역구의 문화예술 향유를 장려하려고 합니다.
*** 한국 최고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으로서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한국 최고의 지자체라는 말은 서초구의 경제 수준과 거대한 문화적 인프라들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대형 인프라의 존재와 규모보다는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선행적인 문화환경과 제도적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구에 비해 생활수준이 높다고 해서 서초지역민들이 타 지역민들보다 예술적 소양이 뛰어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서초구에도 초·중급 단계별 예술소비와 교육이 가능한 작은 공연장들이나 교육시설들은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작년까지 부산문화회관장으로 재직하며 최근 몇 년 동안 지방의 문화예술 현상을 직접 보며 느낄 수 있었던 점을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의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들이 지역의 대표시설, 즉 문화회관들과 지자체 소속 예술단체 위주로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광역시 및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는 운영자들이 전원 시·구에서 발령받아 1년~1년 반 정도씩 순환근무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전문성이나 시민들에 대한 교육, 서비스, 마케팅 등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문화시설의 ‘경영’이라기보다 ‘시설관리’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방의 어느 문화회관의 경우 공연장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부서의 명칭이 ‘청사시설관리계’인 곳도 있습니다. 공연장과 전시장이 예술가와 시민들의 문화가 펼쳐지고 소비되는 예술공간이 아니라 단순히 관료직원들이 근무하는 행정기관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자체의 문화예술 정책에 관한 인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방에서는 문화예술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오는 젊은 인재들이 그 지역의 공연이나 전시 관련 문화시설에서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합니다.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으로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시설에 종사하려면 공무원이 되어야만 하고 공무원이 되어서도 운 좋게 발령 받아야지 평생에 한번 1~2년 정도 문화예술 시설에서 일해 볼 수 있다고요.
서울 예술의전당이 1988년에 개관한 이래 수많은 공연기획자와 경영자를 배출한 반면, 같은 해에 개관하였던 부산문화회관은 공연전문인을 전혀 배출하지 못하였습니다. 부산의 공연예술이 낙후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결과를 모두 볼 수 있는 단적인 예입니다. 부산문화회관은 제가 강조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내년 1월부로 재단법인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올 하반기에는 종전에 시에서 발령받아 근무하던 50여명의 공무원들이 시청으로 복귀하고 대표이사와 직원 등을 다시금 채용합니다. 당장의 효과로는 공연예술을 전공한 부산지역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지역의 문화예술의 낙후성은 공연장의 관리 부문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문화를 소비하는 시민, 즉 관객에게도 있었습니다. 제가 부임하던 2013년까지도 부산문화회관의 대극장 로비는 공연시간 직전에야 시민에게 문을 열어 주었고 로비에는 커피 등 음료를 가지고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객석 반입급지가 아니라 로비 반입금지). 공연장 로비는 시민들이 차를 마시고 휴식하는 곳으로써 낮에도 개방되는 것이 공연계의 보편적 상식이고 기준입니다만 부산에서는 예외였고 시민들이 몇 십 년 동안 그런 무지하고 관료편의적 통치에 순응해 왔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 내에서도 지역적 낙후성은 일부 보입니다. 중앙정부가 설립한 예술의전당, 서울시가 설립한 세종문화회관 등 대형 시설들의 조직 및 경영방식과 비교해 볼 때, 서울 시내의 기초자치단체가 직접 관리 운영하는 일부 구립시설들의 경우 지방과 유사한 경직성, 비효율성 같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민들을 위하여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제도와 운영방식이 무엇인지 조금만 고민하면 알 수 있을 텐데요.
*** 예술의전당과 부산문화예술회관에 근무하셨던 경험에 비추어, 한국공연장에 대해서 새로운 제안이 있으시다면?
예술의전당도 초창기에는 재단법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적인 성격이 강해서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술의전당 내에 카페와 식당 같은 고객 편의시설을 갖추기까지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습니다. 청사시설 내에 상업시설은 안 된다는 게 상급기관의 방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여 예술을 향유하는데 불편을 주지 않아야 편하게 공연장을 찾아온다는 게 저희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기에 그들을 철저히 벤치마킹하고 행정부처를 설득하여, 2000년 무렵부터 예술의전당 시설을 전반에 걸쳐 고객중심형으로 리모델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리모델링을 하고 나니 관객들이 공간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공연에 대한 만족도까지 같이 높아졌습니다. 공연만족도 향상은 바로 매표율 상승으로 이어지므로 연주자들과 공연기획사들에게 예술의전당은 가장 선호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예술가, 관객, 극장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랜 시간 동안 그 곳에서 근무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 음악계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예술의전당을 나와 지방에 가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음을 보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우선, 부산문화회관의 경우 저는 조직의 전문성과 관객중심적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그 해결방안으로 찾은 답이 재단법인이었습니다. 재단법인은 전문경영, 책임경영을 하는 기관운영 형태입니다. 시·구 직영 예술기관이나 단체들은 매년 운영비의 전액을 시·구로 부터 지원받기 때문에 수입의 실현보다는 예산의 집행에 더욱 치중하게 됩니다. 매표 수입의 과다에 관계없이 차년도 사업비 지원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좋은 프로그램개발 – 마케팅 강화 – 수익증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활동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체제입니다. 이런 운영방식 하에서는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창의성 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술기관의 운영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기초 지자체의 공연장은 기초공연장이 되어야 합니다. 지역주민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잘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의 프로그램과 공간을 만들어 예술에 대한 친근감을 배양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음악회를 자주 개최하여 음악인들의 연주역량을 높이고 아울러 지역 주민들의 향유기회도 넓혀 가야 합니다.
*** 문화예술의 발전 그리고...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문화예술의 소양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에 우수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더욱 장려하기 위해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음악, 미술 등 예술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 같은데, 문화센터나 문화원들이 교육프로그램들을 평일 낮 시간대에 주로 편성하고 주말에는 잘 운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은퇴자들이나 노년층 어르신들이 주 대상이 되고 직장인들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사회인을 위한 좀 수준 높은 예술교육프로그램들이 현재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형 문화기관에서 굉장히 많은 클래스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 곳에서 모든 수요자들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구민회관과 작은 공연시설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런 사업을 해야 합니다. 이런 교육프로그램들은 단순 취미수준을 넘어 어느 정도의 전문적 교육이 가능해야 하므로 현역 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강사나 코치로 활동하면 더욱 좋겠죠. 우수한 음악 유휴인력들을 정부가 지원하여 이들이 지역의 작은 공연장과 문화시설 등에서 지역민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담당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체육계의 생활체육협회가 실시하는 정책을 좀 연구해 보면 음악계에도 좋은 제도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_김진실 기자. 사진_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6년 8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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