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레이더
백낙호 선생 헌정 음악회
‘6년의 약속’
지난 2008년 타계한 백낙호 선생은 서울대 음대를 거쳐 미국의 예일대와 줄리어드 음대에서 수학한 후, 1963년부터 30여 년 간 서울대 음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한 우리나라 음악계의 산증인이었다.
이제 스승은 떠나고 자리에 없지만 그 뜻을 받들어 사제동행(師弟同行)을 실천하고자 하는 피아니스트들이 있다. 바로 이연화(중앙대 교수), 백정엽(서울종학예술학교 전임 교수), 유영욱(연세대 교수)이 그들이다.
생애 마지막 연주를 앞두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은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자들이 3월 14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백낙호 선생 헌정 음악회 ‘6년의 약속’이란 타이틀로 무대를 갖는다.
프로그램은 W. A. Mozart의 「Sonata for Piano Four-Hands in B-flat Major, K.358/186c」, 「Sonata for Piano Four-Hands in D Major, K.381/123a」, F. Schubert의 「Fantasy for Piano Four-Hands in f minor, D.940, Op. posth 103」, A. Arensky의 「Suite No.1 Op.15 for 2Pianos Four-Hands」, S. Rachmaninoff의 「Suite No.1 Op.5 for 2Pianos Four-Hands」로, 연주회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백낙호 선생이 생전에 선정했던 곡목이 그대로 연주된다.
매서운 추위가 한풀 꺾이고 따뜻한 햇살을 느낄 수 있었던 어느 오후, 이 세 명의 피아니스트를 만나기 위해 도곡동의 한 카페를 찾았고, 인터뷰에서 만난 이들은 연신 화기애애하게 스승과의 추억을 풀어놓았다.
* 그 동안 백낙호 선생님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몇 차례 열렸었지만, 이번 무대는 조금 특별한 인연으로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연화_ 백낙호 선생님께서 타계하시기 두 달여 전,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부탁할 일이 있으니 같이 식사를 하자는 전화를 주셨어요. 그래서 약속 장소에 나가니 직접 구입하신 악보 꾸러미를 제게 전하시면서 당신 생애에 마지막 무대일지도 모르지만 아드님인 백정엽 선생과 저와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고 하시며, 친필로 작성하신 프로그램 메모를 보여주시면서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2009년 8월 31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 후 선생님께서는 갑작스럽게 쓰러지시면서 우리들 곁을 떠나셨고, 소망하셨던 이 연주를 끝내 못 이루고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내내 남았었지요. 물론 6년의 시간 동안 3회의 걸쳐 추모 음악회를 가지기도 하였지만, 다른 이들은 모르는 저와의 애뜻한 약속을 꼭 이루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연주회를 준비하였습니다.
백정엽_ 지금 생각나는 것이 아버지께서는 대한민국예술원의 회원으로 계시면서 마지막으로 꼭 콘서트를 열겠다는 계획을 세우셨고, 그 무대를 저의 스승이시자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이연화 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지요.
이연화_ 1960년대에 백낙호 선생님께서 귀국하신 후 가르치신 첫 제자가 바로 저이며, 시간이 흘러 제가 유학에서 돌아온 1980년대 초에 처음 맡은 학생이 백낙호 선생님의 아들이자 당시 예원학교에 다니던 백정엽 선생이지요.
유영욱_ 저도 중학교 때 백정엽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었습니다(웃음). 그러한 의미에서 대를 이은 사제지간이 함께 하는 연주회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네요.
백정엽_ 돌이켜보면 아버지께서는 이연화 선생님과 함께 연주를 할 수 있음에 너무나 기뻐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몸이 안 좋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악보를 구입하시는 열의도 보이셨고,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연습을 쉬지 않으셨지요. 연주를 준비하시면서 항상 제게 “게으름 피우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다양한 무대에 꾸준히 오르시고 계신 이연화 선생님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저와 함께 이 무대에 서려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는 계시지 않지만, 좋은 취지의 음악회를 통해 새로운 부분들을 배워가고,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영욱_ 이 연주회에 정식으로 초청 받기 전, 사유를 전해 듣고 마지막까지 식지 않은 백낙호 선생님의 연주에 대한 의지에 감동을 받아 마음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백낙호 선생님께서 나름의 의미를 담아 이연화 선생님께 요청을 하셨고, 이연화 선생님께서 그 뜻을 이어 저를 선택해 주셨으니 저는 함께 하게 된 자체가 매우 영광입니다.
이연화_ 1부에서는 백낙호 선생님께서 선보이고자 하셨던 3개의 곡이 모두 들어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당시의 선생님께서는 기력이 쇠약해지셨기 때문에 당신께서 감당하실 수 있는 분량 정도로만 구성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젊은 세대인 유영욱 선생이 함께 하여 주니 좀 더 다채로운 구성과 음악회의 완성도를 생각해 한 곡을 추가하여 마지막에 배치하였습니다. 비록 이는 백낙호 선생님께서 선택하신 곡은 아니었지만 1 피아노 6 핸즈의 곡으로서 세 사람이 참여하는 것에 의미를 넣어 보았지요.
* 제자분들이 기억하시는 백낙호 선생님은 어떠한 스승이셨나요?
이연화_ 기본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을 늘 주시는 분이셨어요. 특히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니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기초를 다져주신 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아들을 맡겨주시는 믿음도 보여주셨을 만큼 백 선생님과는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오래도록 쌓아나갔고, 제자들이 연주회를 가질 때면 항상 응원을 나오셨는데, 제 모든 연주 무대를 관람하셨을 만큼 제자 사랑이 유별나셨지요. 또한 3월의 연주가 의미가 있는 것이 백낙호 선생님의 생신이 3월 31일이거든요. 또 우연치 않게 저와 생일이 똑같다 보니 함께 축하 받은 적도 많아 3월이 되면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유영욱_ 저는 사실 거의 마지막 제자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 백낙호 선생님과 함께 하진 않았지만,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레슨 때 화를 내시면서도 항상 존댓말을 하셨을 만큼 어린 나이의 제자에게도 예의를 지키셨다는 점입니다. 또한 백 선생님께서는 항상 저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봐 주셨던 분으로 남아계십니다.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3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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