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대전예술의전당 관장 오병권 / 음악춘추 2015년 5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5. 11. 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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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예술의전당 관장 오병권
“제가 경험한 노하우로 대전예술의전당을 새롭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운 좋게 관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대전시의 기대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연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요즘 어깨가 무겁습니다. 연주자나 관객들 모두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대전예술의전당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2003년 10월 개관한 대전예술의전당(이하 대전예당)은 다양하고 수준 높은 공연기획과 예술교육사업 전개 그리고 지역 유망예술인 발굴 등을 통해 대전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지난 4월 3일 대전예당은 초대 조석준, 제2대 김용환, 제3대 임해경, 제4대 이용관 관장에 이어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자문위원인 오병권 씨를 제 5대 관장으로 영입했다.
오병권 관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연 기획자이자 음악해설가이며, 또한 아시아 최고 수준, 나아가 세계적 수준의 교향악단으로 평가되고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일구어낸 장본인이다. 그는 대전예당이 서울의 공연장들과 견주어 절대 뒤지지 않는 충분한 경쟁력을 지닌 공연장이라고 소개하며 지리적인 면에서도 우리나라 중심에 위치해 있어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만큼 전국 최고의 공연장이 될 수 있는 유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대전예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경우 노하우가 많은 전문가들이라며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는 극장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얘기한다.
“이미 지니고 있는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잘 살려 사람들이 누구나 서고 싶은 공연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30여 년간 공연예술 현장에서 쌓아온 자신의 노하우를 대전예당 안에서 최대한 펼쳐내겠다고 포부를 밝힌 오병권 관장은 배재고를 거쳐 한양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정책 석사를 수료하였다.
“배재고를 졸업했습니다. 학교가 미션스쿨이기에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예배 중간에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때마침 현악파트를 모집하고 있어 지원을 한 후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전에는 비올라를 연주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중학교 3학년인 선배들과 현악 4중주를 한 적이 있었죠. 그 때 그 연습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만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바이올린을 배우면서였습니다. 그렇게 음악가로서의 삶을 고민하던 고 1때 앞으로 무엇이 될까 고민을 하다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휘과가 없었기에 지휘와 근접한 작곡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졸업 후 음악교사가 되었는데 교사로서의 활동보다는 한국의 음악적 토양과 생태계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사표를 낸 후 서울시향에서 편곡자로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획자를 뽑는다는 소식이 있어 지원했는데, 운이 좋아 세종문화회관 기획관으로 공연기획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의 전문직 공무원인 공연기획관으로 채용된 이후 수많은 국내 최초의 기획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로서는 대중가수의 출연이 불가했던 세종문화회관에 대중가수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협연무대인 팝스 콘서트를 기획하여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리는 역할을 했으며 또 국내 최초의 영상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한 그는 최근에는 청중들에게 쉽게 음악을 이해할 수 있도록 KBS와 MBC 라디오의 음악해설가로도 활동하였다.
“새로운 공연을 기획할 때는 우선적으로 청중들이 어떠한 곡들을 좋아할까? 어떤 공연에 흥미를 느끼게 될까?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기획하게 됩니다. 세종문화회관에 대중가수 패티 김을 세운 것도 그러한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처음에는 가수 양희은 씨를 협연가수로 세우고 싶었지만 당시 사회가 양희은의 「아침이슬」로 데모를 하던 때라 회사에서 반대를 했죠. 누구를 대타로 세울까 생각하다 가창력도 좋고, 노래 표현력도 좋은 패티 김 씨가 생각났습니다. 어렵게 연결된 패티 김 씨는 적은 협연료에도 흔쾌히 공연에 응해주어서 그를 무대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대중가요에는 오케스트라 반주곡이 없습니다. 클래식 작곡과 학생들, 오케스트라 편곡자들의 도움으로 오케스트라 반주를 만들어 무대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마 요즘 K-pop 무대의 최초는 저인 것 같습니다.(웃음)”

 글 _ 구수진 기자 / 사진_ 김문기 부장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5년 5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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