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손양원’ 작곡가 박재훈 & 지휘자 이기균
최고의 사랑을 실천한 민족지도자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
흔히들 사랑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필로스(philos), 에로스(eros), 그리고 아가페(agape)인데, 필로스는 형제애라고도 하며 지속적이고 깊은 우정관계를 의미하고, 에로스는 성적, 육체적 사랑으로 성적 매력과 욕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가페는 영적 사랑으로서 조건 없이 주는 사랑, 자기 희생적 사랑,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창작 오페라가 탄생했다. 이는 바로 고(故) 손양원 목사(1902∼1950)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손양원」이다. 우리나라의 민족지도자로 손꼽히는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양아들로 삼았으며, 나병환자들을 돌보면서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사)고려오페라단이 주최하는 창작 오페라 「손양원」이 3월 8일부터 11일 오후 7시 30분(총 4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작곡: 박재훈 / 지휘: 이기균 / 연출: 장수동 / 손양원 역: 테너 이동현, 강신모 / 정양순 역: 메조 소프라노 김소영, 양송미 / 손동인 역: 테너 윤병길, 신재호 / 손동신 역: 바리톤 공병우, 강기우 / 손동희 역: 소프라노 이현정, 김주연 / 이인제 역: 바리톤 김종표 / 안재선 역: 바리톤 곽상훈 / 나덕환 역: 베이스 함석헌 / 김창기 역: 테너 이상호 / 김지회 역: 테너 최상배 / 홍순서 역: 베이스 이진수 / 지창수 역: 테너 최호준 / 야전사령관 역: 테너 김용찬 / 음악코치: 조윤희 / CMK 교향악단 / 인천오페라합창단(지휘 임병욱), VEA 코러스(지휘 이동현)).
창작 오페라 「손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작곡가인 박재훈 목사와 지휘자인 이기균을 만나 보았다. 박재훈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 큰빛장로교회의 원로 목사이며, 이기균은 현재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이자 (사)고려오페라단의 단장이며, CMK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이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캐나다에서 사역하고 있는 박재훈 목사는 지난 2004년 여수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 애양원을 찾았고, 그 곳에서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오페라로 작곡해야겠다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지역 관계자들로부터 이 곳에서 활동한 손양원 목사의 생을 그린 오페라가 2012 여수 세계 박람회에서 공연되면 더 없이 좋겠다는 동기 부여를 받아 8년간 작곡에 임해 오페라를 탄생시켰다. 박재훈 목사의 나이가 91세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의지와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 오페라 「손양원」은 박재훈 목사님께서 노년에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8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곡하신 작품입니다. 손양원 목사의 사랑, 헌신, 믿음, 교훈, 감동을 되살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주고, 사랑을 나누고자 기획했습니다.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 봉사하신 그분의 민족정신을 기리고자 합니다.”(지휘자 이기균)
이기균은 지난 해 3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박재훈 목사의 오페라 「유관순」 갈라 콘서트를 가진 후 바로 오페라 「손양원」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일년 내내 준비했다. 애국, 신앙, 사랑을 모토로 하여 활동하는 (사)고려오페라단은 그 동안 오페라 「에스더」, 「유관순」, 「안중근」을 발표하는 등 위대한 신앙인에 대한 작품 발표를 비전으로 갖고 있었기에 이번 오페라 「손양원」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오페라를 작곡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 한 작품을 남기기도 힘든데, 박 목사님께서는 이미 오페라 세 편을 작곡하셨습니다. 이번 오페라 「손양원」에서는 용서를 넘어선 사랑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데, 정말 주옥같은 아리아들이 많고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세계 공통어인 음악을 통해 오페라로 탄생한 손 목사님의 삶은 각박한 오늘날 이웃 사랑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지휘자 이기균)
손양원 목사는 여수의 나병환자 수용소인 애양원 교회에 부임해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했으며,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를 거부해 옥고를 치렀고, 여수·순천 반란사건 때 좌익 세력에 의해 동인, 동신 두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으며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 보인 그는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란 가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거동이 불편한 나환자들과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총살 당해 순교했다. 그의 일대기인 『사랑의 원자탄』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기균은 1막 여수 애양원 교회 앞, 2막 순천 경찰서로 구성되어 있는 이 오페라에서 눈여겨 봐야 할 몇몇 아리아들을 소개했다.
“출연진들이 울면서 연습할 정도로 좋은 아리아들이 많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손동희 역 소프라노의 ‘덮어주고 감싸주는 주님 사랑’은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큰아들인 손동인의 아리아 ‘북풍이 몰아치던’과 손양원 목사님의 아리아인 ‘저 목자여’,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노래되는 ‘아홉 가지 감사’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지휘자 이기균)
그는 소위 말하는 전문직인 의사, 변호사 등에 못지않게 음악가들도 공부를 많이 하는데,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고 사장되는 것에 늘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실력이 있는 신인 성악가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인 발굴에도 관심이 많은 이기균은 이번 오페라 「손양원」에 실력과 신앙을 겸비한 성악가를 캐스팅하고자 했다며 말을 이었다.
“신앙인들에게 어필하려면 그 이상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노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사실 창작 오페라는 출연하는 성악가에게도 개척 정신이 필요하고 부담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주 공연되는 유명한 작품은 이미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수월하지만 창작곡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니까요. 이번 공연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성악가들과 함께 하게 되어 감사합니다.”(지휘자 이기균)
그는 “손양원이란 인물이 목회자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만 이 오페라를 볼 것이 아니라 종교를 떠나서 일반 대중들도 관심을 갖고 꼭 봐야 할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손양원 목사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목회자가 아니라 열사였다면 보다 더 많은 국민에게 알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숙자, 장애인, 독거노인 등을 돕는 국내 봉사단체 중 80%가 기독교 단체라는 언론 기사를 봤다는 그는, 기독교계의 좋은 일보다는 일부 잘못된 일들만 크게 부각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번 오페라를 통해 기독교에 대한 나쁜 이미지도 불식되길 바란다는 말을 했다.
협력하여 선(善)을 이루다
이기균과 박재훈 목사의 첫 만남은 20여 년 전 러시아에서 이뤄졌다. 당시 이기균은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에서 지휘를 공부한 음악학도였으며, 캐나다의 큰빛장로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던 박재훈 목사는 러시아의 선교지를 방문했던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짧은 인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부자지간처럼 각별한 인연이 되었다. 오페라 「손양원」의 프로모션 공연을 위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박재훈 목사 내외는 현재 이기균의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
“가까이에서 뵌 박재훈 목사님은 매우 겸손한 분이십니다. 신앙, 음악,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목사님께서 얼마나 뜨거운 가슴으로 작곡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작곡하신 분이 곁에 계시니 이번 작품의 지휘를 준비하는데도 큰 힘이 되네요. 늘 신앙으로 격려해 주신 덕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있습니다.”(지휘자 이기균)
작곡가이자 합창지휘자인 박재훈 목사는 한국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인 「어서 돌아오오」, 「지금까지 지내온 것」,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와 동요 「산골짝에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꽃송이」,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의 작곡가로 유명하다.
한국 교회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인물인 그는 1922년 강원도 김화군 김성면에서 출생했으며, 평양의 요한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제국 고등 음악학교에서 잠시 수학했다. 그리고 37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하여 웨스트민스터 합창 대학에서 공부한 후 크리스천 신학교에서 교회음악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66년에는 캘리포니아 아주사 패시픽 대학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목사 안수를 받아 1984년 캐나다 토론토에 큰빛장로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로 시무한 그는 목회를 하며, 그리고 은퇴 후에도 작곡에 천착하여 오라토리오 「성 마가 수난 음악」과 「뿌리, 온 땅에 편만하리」, 오페라 「에스더」와 「유관순」 등의 대곡을 남겼고, 지난 해 10월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박재훈 목사는 아흔이 넘은 나이여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작곡에 대한 의지는 여전히 뜨거웠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면 앞으로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내용의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그분으로부터 시작했다”며, 현재 지인에게 오페라 토마스의 대본 작업을 맡겨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경을 전수한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 때 복음을 전하다 대동강에서 순교한 인물이다. 덧붙여 박재훈 목사는 자신이 특별히 작곡을 잘해서 계속 애국, 신앙인에 대한 작품을 쓴다기보다는 이러한 작업들이 후배들을 통해서도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1994년 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고려오페라단은 조국애, 사랑, 신앙을 모토로 그 동안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성경의 에스더 왕비 등 순국, 순교자를 작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이기균은 은사이면서 초대 단장인 김수길 선생이 작고한 이후 그 뒤를 이어 고려오페라단을 맡아 이끌어 오고 있다. 1995년 5월부터 9월까지 오페라 「안중근」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10개 도시를 순회, 연속 33회 공연했으며, 2010년에 공연한 오페라 「안중근」 갈라 콘서트에서는 관중이 태극기를 들고 기립하여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어 이기균은 ‘애국 열풍을 끌어낸 지휘자’가 되기도 했다.
지휘자 이기균은 “국내 많은 오페라단들이 베르디와 푸치니 등 기존 작곡가들의 공연을 올리고 있지만 애국적인 인물에 대한 오페라 공연도 필요하므로 앞으로도 (사)고려오페라단에서는 이러한 작업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음대를 거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및 대학원 오케스트라과(석사, 박사), 지휘과(석사) 및 지휘전문과정을 졸업한 이기균은 제1회 러시아 탈랴찌 국제 관악콩쿠르 심사위원 및 음악지도상을 받은 바 있다. 러시아의 Leningrad national academic, St. Petersburg national capella, Russia Tchellyabinsk city, Russia Glazunov Theater Orchestra, St. Petersburg 국립방송교향악단, CSUN Phillharmonic, LA Valley Youth Phillharmonic, Seoul Chamber in LA, MJD International Phillharmonic Orchestra(일본, 중국), 부천시향, 부산 심포니, 프라임 필 등을 지휘했고 군산시향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그는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예프게니 오네긴」, 「마술피리」, 「라보엠」 등 다수의 무대를 지휘했다.
“김수길 선생님께서 단장님으로 계실 때 저는 지휘만 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에 관여해야 해서 힘들지만 축복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고려오페라단의 모토를 잘 이해해 주는 적임자만 계시다면 언제든지 단장 직을 맡기고 싶습니다. 사실 제 주변분들께서는 그렇게 힘들면서 「안중근」, 「유관순」 같은 공연을 왜 하냐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하지만 힘들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꼭 계속 해야하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소명(calling)이라 여기며 감사, 순종하고자 합니다.”(지휘자 이기균)
오페라 ‘손양원’, 세계를 무대로
창작 오페라들이 제작에 큰 비용과 노력이 투자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재연기회를 얻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오페라 「손양원」은 이번 3월 공연 이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열리는 2012 여수 세계 박람회에서도 6월 1일부터 3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손양원 목사가 돌봤던 애양원이 여수에 있었기 때문에 지역 관계자들이 이 오페라의 시작부터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준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장로교 총회 100주년 행사가 오는 9월 16일부터 18일에 열리는데, 그 때도 한 대형교회에서 오페라 「손양원」이 무대에 오른다. 또한 내년에 개최되는 제4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서도 오페라 「손양원」을 만날 수 있다
“오페라 「손양원」은 이 시대 필요한 작품”이라 힘주어 말한 그들은 여건이 허락된다면 전국순회공연과 해외에서도 특히, 뉴욕과 캐나다, 중국에서 공연하는 것도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곡가, 그리고 창작품을 공연하는 단체를 위한 메세나 지원이 보다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초대권을 바라기보다는 티켓 한 장이라도 직접 구입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고요. 이러한 오페라를 통해 건전한 문화가 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지휘자 이기균)
글·배주영 기자 / 사진·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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