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커셔니스트 김종환
36년간의 KBS교향악단 생활 마감, 제2의 출발
1956년에 창단된 KBS교향악단은 KBS 소속으로 공연과 방송 연주를 해왔으며, 1968년 국립극장으로 운영권이 이관되면서 국립교향악단으로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81년에 다시 KBS로 운영권이 변경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러한 KBS교향악단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퍼커셔니스트 김종환 선생은 1975년 국립교향악단이었던 시절부터 단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해 근속 근무한 마지막 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지난 11월 10일로 36년간의 단원 생활을 은퇴했다.
12월 초 인터뷰를 위해 역삼동에 위치한 선생의 연습실을 방문하였다. 팀파니, 마림바 외에도 우리나라의 전통 타악기가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는 연습실에서 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한 선생은 정년 퇴임을 이슈로,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난 후 인터뷰하는 것에 겸연쩍어 하면서도 그 동안 한결같이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선생이 중학교 때 타악기를 접한 이유는 단순했다. 놀 거리가 부족했던 당시 밴드부가 연주하며 행진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국내에서 타악기로 대학교를 졸업한 1호가 되었고, 한국타악인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 타악기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김종환 선생은 중앙중학교 2학년 때 교내의 밴드부에서 음악을 시작해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했다. 하지만 당시 타악기 전공생을 선발하는 대학이 없었기 때문에 고3 때 호른을 불어 경희대 음대에 69학번으로 입학했고, 군에 입대해서는 군악대에서 타악기를 연주하고 제대했다. 그리고 대학 3학년이었던 1975년 1월 KBS교향악단의 전신인 국립교향악단에 정식단원으로 입단, 올해 정년을 맞이했다.
KBS교향악단에는 국립교향악단 때부터 활동한 단원이 한 명 더 있긴 하지만 국립교향악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근무한 단원으로는 선생이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립교향악단 때부터 활동해 정년을 맞이한 타악기 단원으로도 김종환 선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선생은 지금까지 KBS교향악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무대에 섰지만 아무래도 첫 번째 연주회에서 실수를 해서 그런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 무대는 국내 작곡가들의 창작곡이 발표되는 ‘한국 작곡가의 밤’으로, 지휘는 당시 국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였던 홍연택 선생이 맡았었다. 연주되는 타악기의 종류가 매우 많았고, 곡의 스타일도 저마다 달랐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던 선생은 6/4 박자였던 한 작품에서 심벌을 길게 롤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박자를 4/4로 착각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좋았던 연주보다는 실수한 무대가 기억에 남는다는 선생은 그 밖에도 조용히 연주되고 있는 도중에 악기를 올려놓은 스탠드가 고장나 악기가 떨어진 적도 있었고, 연주 도중 깨진 악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학교 때는 밴드부원으로 야구 경기 응원을 가서 심벌즈를 연주했는데 연주할 때마다 악기가 뒤집어져서 원상태로 만들어 쳤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당시에는 악기의 질이 좋지 않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타악기는 무대에서 가끔 연주되기 때문에 쉬운 악기라 생각하시겠지만, 심벌즈의 경우만 해도 한 쌍의 심벌즈, 서스펜디드 심벌, 하이 햇 심벌즈, 시즐 심벌 등 여러 종류가 있고 인치, 두께 등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작품에 맞는 타악기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떤 타악기를 어떻게 사용할지 악보에 적혀있는 작품도 있지만 없는 곡들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휘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독일어의 경우에는 사전을 찾아봐도 알 수가 없었지요. 제가 타악기 전공 1호 졸업생이니 오죽했겠습니까(웃음)? 그러다가 박동욱 선생님께서 미국 유학 후 귀국해 첫 제자로 사사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종환 선생은 오케스트라 곡에서 주로 쓰이는 타악기는 80여 가지이지만, 악기 사전을 보면 3분의 2가 각 나라의 민속 타악기일 정도로 타악기의 종류가 다양하며, 타악기는 연주 외에도 바람, 물, 총, 대포 등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의 수는 적지만 현악기군과 목관군, 금관악기군과 함께 하나의 군을 이루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내 타악기계도 큰 발전을 했고, 많은 작곡가들이 타악기 작품을 쓰는 등 점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36년 동안 활동한 직장을 떠난 후 선생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질문하자, 최근 골프를 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화백’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여기서 화백은 ‘화려한 백수’의 줄임말이다. 당분간 ‘화백’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것이라는 선생은 올 봄부터 다시금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글.배주영 기자 / 사진.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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