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특별대담-국립오페라단의 과거, 현재, 미래 / 음악춘추 2014년 2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4. 4. 1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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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국립오페라단의 과거, 현재, 미래

 

일시: 1월 10일 오후 12시
장소: 유중아트센터 1층
진행: 양재무(이 마에스트리 대표)
패널: 4대 안형일 단장(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5대 박성원 단장(연세대 음대 명예교수)
       6대 박수길 단장(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7대 정은숙 단장(성신여대 음대 석좌교수)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의 국내 보급과 활성화를 목적으로 1962년 서울 명동 국립극장 소속단체로 창단되었다. 창단 후 오페라 본고장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공연하고,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품은 창작 오페라를 개발하는 등 오페라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오고 있다. 또한 소극장오페라축제 개최, 국립오페라 아카데미 스튜디오 개설, 전국 고등학교 성악 콩쿠르 개최 등 국내 성악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해 가을 국립오페라단의 서울 예술의전당 편입안이 나오며 오페라계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에 국립오페라단 역대 단장들과 함께 국립오페라단의 나아갈 길에 대해 자유 토의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양재무_ 역대 단장님들 중에서 가장 어른이시며, 제4대 단장을 맡으셨던 안형일 선생님부터 제7대 단장 정은숙 선생님까지 오늘 자유토의 시간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장님들께서 임기 동안 해오신 일들과 현재 국립오페라단의 활동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단장님도 참석하셨다면 좋았을 텐데 불참하신 것이 아쉽네요.
2011년부터 국립오페라단 역사상 처음으로 음악 전공자가 아닌 분이 단장으로 국립오페라단을 이끌어가고 있기에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바둑을 둘 때 직접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수를 잘 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특히 걱정되는 부분은 지난 해 9월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오페라단을 서울 예술의전당에 편입하는 방안을 내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방안은 무마되었지만, 현재 국립오페라단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은숙_ 어떤 일이든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오늘 좌담회의 내용은 국립오페라단의 현재가 이렇기 때문에 미래는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될 거 같습니다. 현재 국립오페라단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해당하는 역대 단장님들만 이 자리에 모여서 현재 오페라단에 신랄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에 해당하는 제9대 김의준 단장님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양재무_ 네. 우선 국립오페라단이 창단된 배경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형일 선생님께서 가장 오랫동안 국립오페라단을 지켜 봐 오셨으므로 1962년 창단 당시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안형일_ 창단될 당시 국내에 여러 민간 오페라단이 활동하고 있었고, 작은 모임 형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민간오페라단의 염원을 모아 국립오페라단이 시작된 것이지요. 1962년 이인범 단장님과 오현명·안형일·김복희·황영금·변성엽·양천종·임만섭·김금환·우순자·윤을병·진용섭·장동은·이재우·윤치호 등 20여 명의 성악가를 중심으로 국립극장 소속단체인 국립오페라단이 조직되어, 4월 13일부터 4월 19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장일남 선생님의 「왕자호동」을 공연하였습니다. 당시 출연한 가수는 저를 비롯해 테너 이우근·김금환, 소프라노 황영금·김복희, 바리톤 변성엽·양천종·윤치호·진용섭, 메조 소프라노 윤을병·우순자 등이었고, 지휘는 이남수, 연출은 오현명 선생님이 맡았었지요.

 

박성원_ 1948년 테너 이인선 선생님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제오페라단이 국내 최초로 공연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한국 오페라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오페라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많은 민간 오페라단이 산발적으로 생겨나 활동한 것이지요.

 

양재무_ 네. 국립오페라단이 창단되기 전에는 개인이 만든 오페라단들인 김자경오페라단, 수도오페라단, 대한오페라단, 프리마오페라단, 고려오페라단, 한국오페라단, 서울오페라단 등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수길_ 당시 명동 국립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이 창단되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69년 KBS로부터 교향악단을 인수, 국립교향악단으로 개편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은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성악가 25명의 단원제로 출발, 이인범 선생님이 초대 단장, 김자경 선생님이 부단장, 황병덕 선생님이 총무로 일하셨고, 2대 단장은 홍진표 선생님, 3대 단장은 오현명 선생님이셨지요. 그리고 제4대 안형일 선생님, 제5대 박성원 선생, 제6대 저, 제7대 정은숙 선생님, 그리고 제8대 이소영 단장, 제9대 김의준 단장으로 이어진 겁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초창기에 단원제로 운영되던 당시 캐스팅 등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홍진표 선생님께서 단원을 축소해 국립오페라단이 정비되었습니다. 오현명 선생님께서 단장을 맡으시며 다시 정비가 되어서 국립오페라단이 더욱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새로운 단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1973년 국립오페라단이 서울 장충동의 국립극장으로 오면서 저희 세대가 신입 단원으로 들어갔고, 20명의 단원이 활동했습니다. 단원제는 1993년 폐지되었다가 2003년 상근단원제가 실시되었습니다.

 

박성원_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이었던 고 오재경 장관님이 국립오페라단을 창단, 서울 명동 시공관을 국립극장으로 하여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당시 명동 국립극장은 700석에 불과해 오페라를 공연하기 힘들었지만 오페라 「아이다」도 발표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73년 서울 장충동에 1,476석의 대극장과 340석의 소극장이 있는 국립극장을 새로 지어 국립극장 산하 6개 단체(극단·창극단·무용단·발레단·오페라단·합창단)가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정부의 국립예술단체 민영화 정책으로 국립오페라단이 법인체가 되면서 현재의 예술의전당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제가 단장으로 활동하던 때까지 국립오페라단이 장충동에 있었고, 지금의 예술의전당에서는 박수길 선생부터 활동하기 시작했지요.

 

정은숙_ 제 생각에 국립오페라단의 환경이 가장 잘 갖춰졌을 때가 1973년 장충동 국립극장으로 이전했을 때인 듯합니다. 그 때 비로소 모든 국립예술단체가 창단되어 제대로 협업하는 환경을 갖췄습니다.

 

안형일_ 과거에는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교향악단, 국립발레단이 서로 협조하며 원활히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국립오페라단은 오히려 그 때보다 국립 산하 예술단체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국립예술단체들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해, 국립오페라단도 오페라를 공연하려면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을 직접 섭외하고, 연주료를 지불해야해서 오페라 제작비 부담이 늘어났고, 협력하여 집중력 있게 만드는 부분이 없어지고 말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국립오페라단이 전속으로 예술의전당의 오페라극장을 관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예술의전당에서도 오페라를 제작해서 올렸는데, 그런 방식이 없어진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를 기획할 것이 아니라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양재무_ 외국의 경우 오페라 하우스가 따로 있고, 그 안에 중심이 되는 오페라단을 비롯해 발레단, 합창단 등의 예술 단체가 함께 있는데,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은 독특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도 국립극장에 예술 단체들이 상주했지만 각각 법인화로 독립되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가 된 것입니다.

 

정은숙_ 국립오페라단도 과거에는 유럽 오페라 극장의 구성을 모두 갖춘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1999년 말에 정부가 국립오페라단 등 국립예술단체들을 재단법인으로 독립시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재단법인화되던 당시의 단장님이셨던 박수길 선생님께서 단원제 등을 갖추기 위해 많이 고생하셨지만 재단법인 출범 자체가 급해서 무산되었지요. 재단법인화도 2주 전에 통보 받아 급하게 하셨어야 했으니까요.
그 다음에 제가 단장 직을 맡았을 때도 오페라에서는 가수,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필수조건이라 단원제도를 만들고, 합창단·오케스트라도 만들고 싶었지만 예산 등 여건이 부족했습니다.
아까 안형일 선생님 말씀처럼, 장충동 국립극장에 국립교향악단이 있을 시절에는 다른 국립 예술단체들이 교향악단을 활용하기 좋았는데, 국립교향악단의 운영권이 KBS로 이관되고 명칭도 KBS교향악단으로 바뀌며 국립교향악단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1985년 홍연택 선생님이 코리안 심포니를 창단, 국립교향악단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1987년부터 국립극장과 전속계약을 맺고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등의 공연을 맡아왔습니다.
그리고 역시 국립합창단도 재단법인이 되어 자기 살림을 하다 보니까 장충동 국립극장에 있던 시절 같은 국립합창단과 국립오페라단의 관계가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립오페라단은 외부 합창단을 섭외해서 오페라를 하게 되었고, 연습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예를 들어 국립오페라단 측에서는 15회 연습을 원하지만 합창단에서는 10회만 하려고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단장으로 있을 때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을 만들었고, 일주일에 3번씩 연습을 해 다양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갖춘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1년 해체되었지요.
어쨌든 지금은 매번 다른 합창단, 오케스트라와 작업하니 연습량이 부족하고, 전체적인 무대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주역 가수만 잘해서는 오페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어렵거든요. 이것이 현재 국립오페라단의 문제점입니다.

 

양재무_ 우리나라가 좋은 인프라를 갖고도 다른 나라에 비해 오페라의 발전이 더딘 이유는 오페라에 대한 행정적, 제도적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생각되네요. 어떤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요.

 

박수길_ 문화행정 관련 기관들이 잘못한 것이 큽니다. 문화정책을 올바르게 펼쳐야 하는데 매번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장관, 문화 관료가 국립예술단체를 지금처럼 운영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한다 등 이해하고 방향을 잡아주면 우리나라는 금방 좋은 여건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박성원_ 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공무원들이 예술을 이해하고, 발전하게 도와주기보다는 권위 의식을 갖고, 개인의 감정을 섞어서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번 만에도 국립오페라단을 서울 예술의전당 안에 편입시켜 산하 단체로 두겠다는 발상 자체가 관료들이 의식부족입니다. 제가 단장으로 있을 당시 문체부 장관님이 직접 오페라단을 방문해 주셔서 제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말씀드리니 장관께서도 제 의견에 공감하셨고, 예산상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이후 아무 소식이 없더라고요.

 

정은숙_ 가장 간단하면서도 상식적인 것을 하나 말씀드릴게요. 발레단은 오케스트라만 있으면 발레 공연이 가능하고, 합창단은 주로 피아노 반주로 공연되며 오라토리오처럼 큰 공연을 할 때 오케스트라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페라단이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케스트라, 합창, 발레가 반드시 필요하고, 초창기에는 그런 단체들과 협업이 이뤄졌지만 국립예술단체들을 재단법인으로 독립시켜 불가능하게 되었어요. 즉, 문화예술 행정 관계자들이 오페라 공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있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현재 국립오페라단은 공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한국 성악계가 르네상스를 맞이했다고들 하지요. 실제로 세계 오페라 무대가 한국 성악가 없이는 유지되지 않을 정도이고, 세계적인 콩쿠르는 한국 성악가들이 석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은 전용 극장은 물론, 합창단, 오케스트라도 없어요. 이는 우리나라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태도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박성원_ 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국립오페라단이 관리하게 해주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그것을 안 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오페라극장은 있는데 산하단체가 없고, 대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박수길_ 현재 정부에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국립오페라단의 극장으로 해야 하고, 국립오페라단과 발레단,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그 안에서 협업하게 해줘야 합니다. 과거 장충동 국립극장 시절 그렇게 운영된 바 있고요. 그런데 지금은 음악을 모르는 분이 국립오페라단의 단장을 맡고 있어요.

 

양재무_ 외국의 경우 오페라 하우스의 장은 지휘자, 음악감독, 연출자, 성악가 등 오페라의 전문가가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비음악인이 국립오페라단의 단장을 맡은 것에는 음악 외적인, 다른 정치적인 영향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박성원_ 네. 문광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예술단체에도 여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정치로 인해 예술계가 흐려지는 것도 문제지요.

 

양재무_ 성악은 음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오페라는 종합적인 큰 그릇이라 발레, 의상, 미술, 조명 등 다양한 분야가 필요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 하우스 안에 여러 예술단체가 함께 있는데 우리나라만 독특한 방향으로 가고 있네요. 좋은 문화예술 인프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박수길_ 저는 우리나라가 모방할 시스템이 미국의 링컨센터라고 생각합니다. 뉴욕 맨해튼에 건립된 무대예술 및 연주예술을 위한 종합 예술센터로, 여기에 5개의 건물과 11개의 예술단체가 상주하고 있지요. 더불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뉴욕필하모닉의 전용홀이 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예술의전당이 미국 링컨센터의 역할을 하면 된다고 봅니다.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극장은 국립오페라단이,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되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지요.

 

양재무_ 네. 박수길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네요. 서울 예술의전당이 계속해서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개관 때보다 홀도 늘어났고, 국립오페라단, 합창단, 발레단 등의 사무실도 있어 매우 큰 규모입니다. 저 역시 미국의 링컨센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클래식 음악이 서양 문화이다 보니 그들에게서 대안을 찾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박성원_ 음악 전공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행정 관계자들과 접촉이 어렵습니다. 전문가와 공무원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데, 대화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으면 합니다.
문광부에서 국립오페라단을 서울 예술의전당에 편입시키겠다는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정책 관계자들과 음악가들이 밀접하게 소통해 왔더라면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지요. 정책 관계자들이 문화예술계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문화예술계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자문을 얻으면 되는데, 그런 것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발전이 안 되는 것이지요.

 

양재무_ 네. 예술가와 단장들, 행정가들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겠습니다.

 

박성원_ 그리고 오페라를 제작하기 위해 많은 예산이 필요한데 이를 오페라극장에서 4∼5회하고 끝나는 것도 정말 아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극장을 관리한다면 한 작품으로 한 달 정도 계속 공연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음 달에는 또 새로운 레퍼토리를 공연하고요. 이렇게 하면 일반인들에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가면 언제나 오페라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지요. 그리고 제작비를 투자한 만큼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극장을 대관해서 사용하고 보관 장소도 마땅치 않아 무대, 의상 등에 큰 예산을 투입할 수가 없습니다.

 

정은숙_ 현재 국립오페라단이 리바이벌 공연, 지방 공연도 하고 있긴 하지만 제작해 놓은 세트의 수명이 너무 짧기 때문에 예산 낭비입니다.
외국의 경우 1,000석 규모의 극장이어도 30년 된 「토스카」를 리바이벌 합니다. 무대 장치, 의상 등에 굉장히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데 현재 국립오페라단의 예산으로는 정성스럽게 만들 수 없는 형편입니다. 만약 그 오페라 세트, 장치 등을 보관해서 계속 리바이벌 할 수만 있다면 제작비의 절감에 큰 기여를 하겠지요.

 

박성원_ 국립오페라단이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제 구실을 한다면 민간오페라단, 지방 극장 등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입니다.

 

정은숙_ 네. 국내 오페라계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지요.

 

 

정리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2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4대 안형일 단장(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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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대 정은숙 단장(성신여대 음대 석좌교수)

 양재무(이 마에스트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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