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음악춘추

클라리네티스트 안정아 귀국 독주회 / 음악춘추 2014년 8월호

언제나 푸른바다~ 2014. 9. 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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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인터뷰
스승과 제자의 특별한 음악회
클라리네티스트 안정아 귀국 독주회         

 

지난 7월 13일 금호아트홀에서 클라리네티스트 안정아의 귀국 독주회가 있었고, 그 무대에는 그녀의 스승인 클라리네티스트 로버트 디루티스가 협연하였다. 그리고 음악회를 관람한 이마에스트리 대표 양재무는 급하게 인터뷰를 마련하였다. 스승과 제자에서 음악적인 동료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기에 특별한 의미가 느껴지는 수준 높은 차별화된 음악회여서 본지에서는 이를 게재해 본다.

 

양재무: 한국에서 얼마 만에 연주하시는 것이지요?

 

안정아: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양재무: 처음이요? 놀랍네요. 이렇게 잘하는 클라리넷 연주자가 그 동안 미국에서만 활동 하다니요. 그러면 훌륭한 선생님과 같이 한국에서 엄청난 데뷔를 하신 거네요. 드루티스 교수와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음악가에겐 행운이 있어야
안정아:  드루티스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어서 매우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양재무: 맞아요 음악가에게는 행운이 있어야 합니다. 미렐라 프레니라는 이탈리아 소프라노에게 “당신은 어떻게 특별한 가수가 될 수 있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니 “운이 좋았습니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은 하늘의 별만큼 많은데, 나를 아끼는 단체를 만났고, 나에게 비전을 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행운이 있었지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음악가들에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드루티스: 맞습니다. 제가 메릴랜드 대학에서 정아를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아는 다른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었는데 정아가 저에게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고 저도 잘 가르칠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요. 그 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양재무: 그 기간이 어느 정도 됐습니까?

 

안정아: 2년 반정도 되었습니다. 드루티스 선생님은 저의 학교에 정교수로 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교육에 대한 진지하고 헌신적인 마음이 있었고, 학생들을 끈질기게 어떻게든 잘 가르치려 하시는 것을 제가 발견했는데, 더욱 좋았던 것은 선생님께서는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기본기를 잘 다듬어 주십니다.
 
양재무: 네, 이러한 만남이 음악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제 연주회에서 평소에 듣지 못했던 레퍼토리가 전반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변박이 많았는데 독주회를 준비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없었나요?

 

안정아: 클라리넷이라는 악기 자체가 다른 관악기에 비해 음정이 잘 잡혀있지 않아서 음정에 민감합니다. 드루트스 선생님께서 음정을 좋게 만드는 훈련을 시켜 주셨습니다. 아울러 질 높은 소리에 대한 새로운 개뎜을 심어 주셨습니다. 제가 원래는 연습을 지루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내기 위해 여러 가지 연습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이제는 연습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고, 아무리 힘든 레귤러 레퍼토리라도 저는 편안히 연주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습니다.

 

양재무: 사실 스승과 콜라보레이션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학생이 지적 받았던 부분을 연주할 때 그 부분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주에 집중을 할 수 없고 시험의 연속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어제는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콜라보레이션
드루티스: 우리는 함께 음악을 준비하고,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하였습니다. 저는 정아를 학생이라 보지 않고 프로라고 여겼습니다. 무대 위에 서면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는 다 없어지고 동등한 위치에서 공연을 합니다. 만약 제가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할 경우 학생이 연주자로 오게 되면 저는 학생으로 여기지 않고 프로로 여길 것입니다.

 

안정아: 선생님께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선생님이 잘하는 것을 아니까 저는 선생님의 리드에 맞춰 나가면 된다고 마음 먹었어요. 선생님이 솔로를 하시면 “아! 바로 이거구나.”라고 생각하고 음악을 타고 갑니다.

 

양재무: 이러한 것을 실현하는 것은 사실은 어려워요. 어려운 일인데 잘해 주셨네요.

 

드루티스: 음악회 전반적으로 비중있는 곡을 준비하다 보니 선생님과 같이 하는 곡은 안정아 박사가 세컨을 연주하면서 잠깐 쉬어가는 게 제 계획 중 하나였어요.

 

안정아: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선생님 덕분에 하이퀄리티로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양재무: 서로가 배려해 주시니 보기 좋습니다. 제가 보기에 두 분께서는 음악적 비중이 비슷하던데요. 퍼스트나 세컨이나 말이죠.

 

안정아: 선생님이 낮춰 주신 거지요.

 

양재무: 이런 것을 한국말로 “궁합이 잘 맞는다.”라고 하죠. 미국에서 박사학위는 언제 받으셨나요?

 

안정아: 얼마 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제 목표는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피바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했는데 끝내지를 못했어요. 그후 그게 아쉬워서 메릴랜드 대학에서 어떻게든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돼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더 좋은 학교가 많지만 저에게는 선생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재무: 석·박사 과정에서도 연주회를 많이 가졌을 텐데,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안정아: 미국에서는 본인이 스스로 콘서트홀을 찾아서 연주를 하지 않는 한 연주를 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콘서트홀을 찾아 작은 연주회를 하였고, 이 외에 선생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양재무: 어차피 음악이라는 것은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굳이 좋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학을 하셨는데,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안정아: 현재 학생이라면 그 학교 공부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본인이 스스로 찾아 열심히 공부하면서 도를 닦는다는 심정으로 노력을 하면 길이 열릴 수 있고, 한편으로는 주위에 있는 좋은 분들과 같이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재무: 한국에서 언어를 준비해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죠?

 

안정아: 언어는 필수예요. 과거에는 미국의 음악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면 음악만 잘하면 되었는데, 요즘에는 영어를 많이 보더라고요. 그 이유는 음악만 잘하니까 다른 수업들은 듣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을 해요. 그래서 요즘에는 미리 준비를 해 놓으면 훨씬 인정을 받고 다른 과목도 더 깊게 들을 수 있지요.

 

유학을 가려면 어학을 실기처럼 하라
양재무: 두 분에게 드리는 질문인데요. 만약에 미국이나 독일을 유학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안정아: 저는 미국으로 가 보았으니까 독일로 가 보고 싶어요.

 

양재무: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독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가시겠습니까?

 

드루티스: 개념도 다르고 악기도 달라서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프랑스가 나을 것 같아요. 저희 조상님들이 그 곳에 사셨거든요.

 

양재무: 그런데 지금 많은 한국 학생들은 독일 아니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합니다. 관현악으로는 프랑스로 가는 것이 드물어요.

 

드루티스: 25~30년 전에는 독일로 가는 것이 드물었습니다.

 

양재무: 드루티스 선생님께 질문이 있는데, 뉴욕필에 계실 때 로린 마젤의 지휘로 평양에서 연주회를 하셨는데, 혹시 그쪽 뮤지션들을 만나 보셨나요?

 

신비의 고도 평양서의 연주
드루티스: 네, 「아리랑」을 3명의 플루티스트들과 함께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연주를 못하게 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유도 모르겠고 통보 였습니다. 관례에도 어긋난 행동이었는데 속상했습니다. 그들은 민요적, 전통적인 소리로 연주를 잘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당시 그 곳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였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플루트를 하는 6살 아이, 북한 어린이들의 연주, 아코디언 앙상블, 오케스트라 등을 보았습니다.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양재무: 리드 깍는 기계를 직접 발명하셨다는데, 그 기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많이들 이용하고 있지요?

 

드루티스: 많이 팔립니다.

 

양재무: 저는 어제 느낀 것이, 제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도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탈리아 가곡을 노래할 때 이탈리아어 동사의 격변이 심해서 이탈리아 유학 후 뜻을 이해하지 않고 부르기가 싫어서 모든 가곡들을 번역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도 불편하겠다.”라는 생각을 하신 선생님이 너무 잘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리드 깍는 기계를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드루티스: 오랫동안 예전에 사용했던 방법으로 리드를 고쳤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력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것이 “키를 똑같이 찍어내는 기계처럼 늘 하던 대로 만들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하면 어떨까!, 내가 원하는 모양을 똑같이 카피할 수 있는 그런 기계를 제작하면 어떨까!”였습니다. 그래서 그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 2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팔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가 쓰기 위해 만들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것이 널리 알려지며 비즈니스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팔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비싸지 않고, 두 번째로는 작동이 잘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일을 20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양재무: 클라리넷이 목관에서 바이올린만큼 중요한 악기잖아요. 미국에서도 보편화가 잘 되어 있나요? 한국에서는 지금 색소폰, 클라리넷을 아마추어들이 많이 하고 있거든요.

 

드루티스: 한국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스트만 대학에 있었을 때, 58세 이상의 100명 넘은 분들이 모인 뉴호라이즌이라는 클라리넷 아마추어 단체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악기를 다 빌려주기 때문에 클라리넷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깊게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개인레슨을 받기도 합니다.

 

안정아: 클라리넷이 대중적인 이유 중 하나는 악기 가격이 다른 악기들보다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메릴랜드 대학에서 드루티스 선생님이 클라리넷 콰이어를 지도하고 계십니다.

 

양재무: 저는 얼마 전에 오페라 가수 70명과 함께 일본에서 「네순도르마」를 공연하였어요. 저는 지휘를 하였는데 일본사람들도 좋아하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드루티스: 저도 200명 정도의 클라리넷 콰이어를 지휘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클라리넷 콰이어는 오르간  같은 소리를 냅니다.

 

양재무: 한국에서 클라리넷 콰이어 연주회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드루티스: 사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이 2016년 정도에 한국에서 국제클라리넷협회 일정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이번 연도에 국제클라리넷협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정리_구수진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4년 8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김문기의 포토랜드>

 

 

왼쪽부터 양재무 :남성합창단 이마에스트리 대표

            클라리네스트 양정아 : 피바디 음대 학사, 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 메릴랜드 음대 박사학위 취득

            클라리네스트 로버트 드루티스 : 메릴랜드 음대 교수, 전 뉴욕 필하모닉 수석으로 평양에서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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