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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행. 11 - 앙코르와트. 1 / 2018년 2월 22일

언제나 푸른바다~ 2018. 3. 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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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행. 11 - 앙코르와트. 1 / 2018년 2월 22일 


앙코르와트

대부분의 사원이 동쪽을 향해 있는 반면 이 사원은 서쪽을 향해 있어 발견 초기 '죽음의 사원'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하여 천문대 역할을 했음이 밝혀졌고,우주의 변화를 표현한 사원임을 알게 되었다.

1860년 프랑스의 동물학자 앙리무오에 의해 발견되어 세계7대 불가사의로 알려져 있는 이 사원은 세계적 유산으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하여 그 값짐을 더해주고 있다. 1km 의 면적에 사암으로 건설된 앙코르왓은 그 주변을 길이 1.3km-1.5km의 해자로 둘러쳐져 있다. 또한 중앙 입구에서부터 사원 내까지 355m의 긴 보도와 중앙 탑까지 세겹으로 둘러싸인 회랑은 해자와 더불어 앙코르왓이 사원이라기 보다는 동양의 왕성을 연상케 한다. 세계적인 석조 건물인 앙코르왓은 그 웅장함이나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함 못지 않게 세부적인 조각의 아름다움이 전체를 엮어 나아갔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힌두 전설인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우유의 바다 젖기, 마나수라, 신들과 악마의 전쟁, 그리고 건립자이던 수리야바르만 2세의 출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각 회랑별로 나뉘어져있고, 그 부조물들의 정교함과 현란함으로 그 당시 예술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세 번째 회랑은 이 사원의 주신인 비쉬뉴 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화와 역사를 정교함과 현란함, 조화된 균형이 당시의 화려했던 앙코르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하룻밤만에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은 엄청난 위용과 섬세함,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많은 신비함이 앙코르를 더 매료시키고 있다.

5.2Km의 해자로 둘러싸여있으며 단일신을 모시는 사원중 세계 최대의 사원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지은것으로 규모와 섬세함,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사원이다. 밀림속에 있다가 1860년 앙리무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앙코르왓 (ANGKORWAT)이란?
앙코르왓에서 '앙코르(ANKOR)'라는 단어는 '왕성(王城)'을 의미하며 '왓(WAT)'은 '성벽'을 뜻하는 말인데 이는 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크메르제국의 앙코르왕조가 12세기초에 건립한 사원입니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그들은 신과 같아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신(神)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앙코르왓도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수리야와르만 2세가 힌두교 주신의 하나인 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웅장한 힌두교 사원입니다. 세계의 중심으로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을 돌로 정확하게 쌓아 놓았으며,
높이가 59M에 이르는 중앙사원탑의 끝에서 삼중으로 둘러싼 사각탑 끝을 선으로 연결해보면 사각뿔의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원의 건축양식은 인도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건물의 형태나 석조 장식 등에서는 앙코르 특유의 독창적인 기법을 보입니다.
또하나 주목할 점은 760m에 이르는 회랑벽의 부조입니다. 이밖에 제3회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회랑과 탑등은 여러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한 구조물입니다. 사원에는 벽화, 조각 등 불교미술품이 가득차 있어서 사원전체가 불교미술의 집합체입니다. 입면구성의 기술은 크메르 예술의 압권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제2회랑 및 제3회랑의 네귀퉁이에 있는 포탄형의 탑은 중앙사원의 탑과 함께
이등변삼각형의 입면은 구성하고 있는데 이 같은 기하학적 구성은 힌두교 사회의 계급제도와 인도 부다가야 오탑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유적의 주요특징 가운데 하나로 저수지와 운하망인데, 이는 수량조절과 관개를 위한 수단이었을뿐만 아니라 인도의
우주론(宇宙論)에 입각한, 우주중심부의 산을 둘러싸고 있는 대양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우주론적 사고와 도시의 관계는 주민과 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설정되었습니다.
중심부의 산, 즉 피라미드 사원은 '데와라지'라고 불리는 신격화된 왕이 관장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왕은 절대적 신의 하나로 동실시되었고 이런 동일시는 왕이 죽었을때 중심부 사원을 왕의 사원이나 무덤으로 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앙코르에 있는 다른 많은 사원들 역시 인도의 우주론(宇宙論)과 신화적 주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기에 자국 문화유산이 그려져있는 경우는 캄보디아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앙코르왓 (ANGKORWAT)의의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왓 유적지는 예술성과 웅장미에 있어서 고대그리스 신전과 로마의 콜로세움을 능가합니다.
영화 '킬링필드'의 망령에서부터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점철돼 왔던 부정적 이미지가 높았던 나라가 캄보디아인데,
이러한 캄보디아에 있는 세계최고유적인 앙코르왓은 연간 300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고 한국관광객은 연간 10만명에 이릅니다.
현재 앙코르왓은 단순한 관광지의 차원을 넘어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조상들이 누렸던 찬란한 영화(榮華)
처럼 자신들도 언젠가는 잘살수 있다는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는 등대역할이 되고 있습니다.


앙코르왓(ANGKORWAT)의 완성
앙코르왓사원은 수리야와르만 2세(1113~1150)가 약 30년에 걸쳐 지은 것으로 비슈누 신에게 바쳐진 사원이며 왕의 사후에는 영묘(靈廟)가 되었습니다. 이 사원은 남북길이가 1.3km, 동서의 길이가 1.5km에 이를만큼 광대한 피라미드형 사원이지만 개방형으로 건축되어 좌우대칭미와 뛰어난 시각성을 자랑하는 힌두사원입니다. 또 입구가 서쪽을 향해있고 그 건축의 중심축이 서쪽과 동쪽으로 전개되어 있는것도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앙코르왓은 신전의 정중앙에 있는 중심탑을 세겹의 회랑이 감싸고 있으며,
회랑바깥쪽에는 주벽을 만들고 그 외부에는 직사각형의 저수지를 만들어 외부로부터 단절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40m길이의 저수지는 동쪽과 서쪽에 한개씩 만들고, 성벽을 4.5m로 쌓아올려 성스러운 사원을 속세의 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시간과 공간개념을 반영했습니다.
저수지는 크메르인들이 하늘의 은하수와 같은 공간개념을 지상세계에 반영한 것이며, 중앙의 탑과 나머지 좌우로 세워진 두쌍의 첨탑은 신왕(神王)의 권위와 신분상의 등급을 상징합니다. 앙코르왓의 중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면에 나있는 출입문을 거쳐야 합니다.

출입문은 성벽의 동,남북에 각각 하나씩 있으며 서쪽 출입구는 다섯개나 됩니다. 서쪽 출입구를 이렇게 세분화시켜 설계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쪽출입구의 다섯개 가운데 두개는 지상으로 연결되어 있어 당시 주력 전투부대를 구성했던 코끼리 군단과 기마군단이 자유로이 출입하여 열병식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나머지 세개는 탑으로 올라가는 중심출입구입니다.


앙코르(ANGKORWAT)유적의 재발견

흔히 앙코르유적은 프랑스인 앙리무오가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앙코르유적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그 주위의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서양사람 중에무오가 처음 본것도 아닙니다.
앙코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주달관의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입니다.
주달관은 원(元)제국의 성종황제가 크메르로부터 조공을 받아내기위한 사신으로, 지금의 베트남해안을 따라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 톤레샵호수를 거쳐, 1296년 4월 앙코르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이듬해 7월까지 그곳에 머물며 듣고 보고 들은 것을 본국에 돌아가서 여행기로 썼는데,  그것이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입니다.


사진_<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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