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 / 2017년 3월 16일
무량수전의 뜻 : 무량수불(無量壽佛)인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모신 법당.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 중턱에 위치한 부석사의 무량수전(국보 제 18호)은 아미타여래 불상을 모신 부석사의 중심 목조 건물.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건립하였고 1376년 고려시대에 재건하였다. 우리나라에 현재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두 번째로 오래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한다.
날아 갈듯이 치켜 올라간 기와지붕과 건물의 안정을 위해 중간에 불록한 배흘림기둥은 부석사에서 볼 수 있는 자랑이며 특징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은 1916년 해체·수리할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는 원융국사(964~1053)가 1376년(우왕 2)에 재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377년에 재건된 조사당의 건물 양식과 비교하여 학계에서는 조사당보다 100년 내지 150년은 더 앞서는 건물로 추정하여 왔으며, 앞서 말한 묵서명은 그 뒤의 보수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연대상 서로 차이가 있어 당시 주지로 있었던 원응국사를 잘못 쓴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아래는 홈페이지(http://www.pusoksa.org)에서 퍼온 내용이다.
▶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는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융 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깔고 단청을 하였고 1969년에는 번와 보수하였다.
사진_김문기<김문기의 포토랜드>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
부석사 안양루(浮石寺安養樓)
부석사 안양루(浮石寺安養樓)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석사 극락전 상량문이 1950년에 만들어졌으므로 이 시기를 전후하여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면 5칸, 측면 2칸 총 10칸의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정면은 창호가 없이 개방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의 박공(牔栱) 밑엔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남과 북의 단벽 중앙에는 통풍을 고려한 방형(方形)의 창문이 1개씩 위치하고 있다. 기단과 초석은 자연석이며, 그 위에 원기둥이 올려 있다. 건물의 내부는 우물마루에 벽은 석회, 백토, 가는 모래 따위를 섞어 반죽하여 바른 회사벽(灰沙壁)이며, 천장은 연등천장(椽燈天障)으로 서까래 등이 훤히 드러나 있다. 보통 누각은 2층으로 강당으로 쓰이며 1층은 사람이 드나드는데, 부석사 안양루는 1층이며, 안에는 불상이 봉안되어 있고 후면이 막혀 있어 사람이 드나드는 누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부석사(浮石寺)의 부석(浮石)
무량수전 서편 선묘각의 대칭되는 지점에 부석이 있다. 부석은 암벽 밑에 거대한 모습으로 묵중히 앉아 있다. 선묘설화는 부석으로 이어진다. 신라에 귀국한 의상은 중생을 교화하던 중 676년(문무왕 16년) 태백산 한 줄기에 절터를 발견하였다. 이곳에 이르러 지세를 살펴 본 즉 화엄종지(華嚴宗旨)를 크게 선양할 수 있는 명산이었다. 그러나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교(異敎)의 무리 500명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의상은 직접 그들을 만나 선하게 살 것을 당부하고 절을 짓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막무가내로 듣지 아니하여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용으로 화신한 선묘가 공중에서 바라보니 조사의 뜻이 순리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짐작하고 법력을 쓰기로 하였다. 선묘룡이 나타나 번개불을 일으키고 봉황이 나타나 큰바위를 세차례나 들었다 놓았다. 이교도 무리들은 겁을 집어먹고 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사찰을 건립한 것이 부석사이며 이교도들이 놀라게 하기 위하여 공중에 세 번이나 떴다는 큰바위를 부석(浮石) 또는 삼부석(三浮石)이라 이름 짓고, 봉황이 나타났다해서 산이름을 봉황산이라고 불렀다.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 앞 석등
하대석에 8엽 복판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는데, 잎의 끝마다 귀꽃이 달려 있다. 장흥 보림사 석등과 문경 축서사 석등에서만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상·하대석 모두 연꽃잎 사이에 마디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간주석 받침에 굽이 있다. 상대석 연꽃잎 안 보상화(寶相華) 무늬에 떡잎이 장식되어 있다. 화사석의 벽마다 보살 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 아래에 절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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