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초대
베이스 하성헌
지난 5월 22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KBS교향악단과 한국바그너협회가 준비한 ‘바그너 콘체르탄테’에서 잘츠부르크 주립극장 지휘자 등을 역임한 카이 뢰리히의 지휘와 KBS 교향악단의 연주로 오페라 「리엔치」 서곡, 「탄호이저」 서곡, 「신들의 황혼」 3막 중 ‘지그프리트의 장송행진곡’을 비롯해 〈니벨룽의 반지〉의 2부 「발퀴레」 1막이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 날 무대는 뮌헨, 암스테르담, 만하임 등 유럽의 1급 극장에서 바그너 오페라에 전문적으로 출연중인 뛰어난 가수들이 대거 협연해 관심을 모았는데, 이 중에는 레겐스부르크와 만하임 국립극장에서 오페라 솔로 가수로 활약한 베이스 하성헌도 포함되어 있다.
5월 22일 공연을 위해 19일 입국한 하성헌을 ‘바그너 콘체르탄테’의 리허설이 있었던 KBS 본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레겐스부르크 극장을 거쳐 현재 만하임 국립극장에서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하성헌은 지난 시즌에 「로엔그린」의 하인리히 왕 역을 비롯해 최근 「마술피리」의 자라스트로 역,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라이몬도 역으로 열연했으며, 남은 시즌 동안 바그너 「라인의 황금」의 파졸트 역, 베르디 「돈 카를로」의 필리포 2세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2011년 9월, 처음 만하임 극장에 발을 들일 그는 첫 시즌에 열 여섯 작품을 하기로 계약했다. 이는 많은 수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비중이 적은 단역이 주를 이뤘고, 이는 만하임 극장보다 규모가 작은 레겐스브루크 극장에서 활동하고 온 그의 실력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하임 극장에서 처음 선 무대였던 「삼손과 데릴라」에서 스스로도 놀랄 일이 일어난다. 「삼손과 데릴라」의 작은 역을 맡은 그가 공연이 끝난 후 주인공보다 더 큰 박수를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하성헌은 첫 시즌부터 주역 가수로 올라섰고,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그는 베이스 역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돈 카를로」의 필립 2세 역으로도 출연할 계획이다.
사실 그는 이번 ‘바그너 콘체르탄테’ 공연에 출연하기 위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고 왔다. 마침 만하임 극장에서도 5월 22일 바그너의 ‘링 시리즈’가 시작되어 그가 파졸트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고, 다른 공연이 한 번 더 있어 총 두 번의 게스트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던 것이다.
“외국에서 활동하더라도 한국의 팬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데, 이번 ‘바그너 콘체르탄테’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오기 전날에도 공연을 갖고 바쁘게 귀국했으며, 공연이 끝난 다음날 바로 출국하는 일정을 소화해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한국 무대에 서야겠다는 다짐으로 게스트 비용을 지불하면서 온 이번 무대는 그가 유학을 떠난 2003년 이후 10년 만에 선 것이다.
그가 처음 출연한 바그너의 작품은 레겐스부르크 극장에서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로엔그린」의 하이니히 역이었다. 이는 고음이 많이 나오는 역이기 때문에 베이스들이 굉장히 꺼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레겐스부르크의 극장장이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장학생으로 바그너협회에 하성헌을 추천한 덕분에 그는 그 곳에서 「로엔그린」을 접할 수 있었으며, 이로써 바그너 작품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저는 바그너의 작품을 알아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바그너 작품을 하면서 느낀 것은 성악이 없는 오케스트라 반주 부분에도 바그너가 모든 극적 요소를 집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래가 없이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부분에서도 괄호로 이 부분에서는 누가 나가고 앉아 있는지 등의 동선까지 다 적어놓았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유도 동기)는 인물의 개성, 특징을 나타내 주지요. 물론 처음부터 누구의 모티브인지 알 순 없지만 작품에 익숙해지면 가수가 노래하지 않아도 오케스트라 반주에서 그 모티브가 나오면 해당 배역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진행되는 무한선율도 바그너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어려서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하성헌은 교회 성가대를 비롯해 고등학교 중창단 등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성악 전공은 생각지 못한 그였는데, 고등학교 때 성악을 전공한 음악 선생님이 가창 시험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성악 공부를 권해 2학년 때부터 성악가의 꿈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연세대에 진학한 그는 이탈리아 유학을 계획하며 어학 준비도 했지만, 그 즈음 이탈리아의 학제가 바뀌어 난관에 봉착했고, 사전 답사 차 떠난 독일 여행에서 함부르크에 갔을 때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함부르크 음대를 목표로 입학 시험을 준비하던 시기에 함부르크 음대의 오페라 프로덕션이 학생 오페라로 「라 보엠」을 준비 중이었는데, 베이스가 공석이어서 오디션을 보고 그 오페라에 참여했다.
“하지만 학교의 입학 시험에서는 낙방했어요. 한 선생님께서 저를 찾아오셔서는 ‘합격시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안 됐다’며, ‘원한다면 재학생처럼 레슨을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한 학기 동안 그 선생님께 레슨을 받으면서 입학 시험을 준비했고, 다음 학기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 워크만이라는 미국 선생님이셨는데 참 감사하지요.”
이렇게 함부르크 음대에서 학업을 이은 그는 2년 과정이 지났을 때 레겐스부르크 극장의 제의로 솔리스트가 되었어 일과 학업을 병행했고, 총 5년간 그 극장에 몸담았다.
레겐스부르크 극장에서 그의 첫 무대는 「오텔로」의 로도비코 역이었다.
글_배주영 기자 / 사진_김문기 부장
- 기사의 일부만 수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춘추 2013년 6월호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월간 음악춘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뮤즈윈드오케스트라 제14회 정기 연주회 / 음악춘추 2013년 6월호 (0) | 2013.06.25 |
---|---|
선화예술고등학교 교장 나상진 / 음악춘추 2013년 6월호 (0) | 2013.06.22 |
2013 여수세계합창제 / 음악춘추 2013년 6월호 (0) | 2013.06.22 |
피아니스트 안희숙 / 음악춘추 2013년 6월호 (0) | 2013.06.22 |
인물탐구 - 성악가 테너 김금환 선생 / 음악춘추 2013년 6월호 (0) | 2013.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