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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행. 14 - 킬링휠드의 기록. 왓트마이 사원, 씨엔립 거리풍경 / 2018년 2월 24일

언제나 푸른바다~ 2018. 3. 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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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행. 14 - 킬링휠드의 기록. 왓트마이 사원 / 2018년 2월 24일


왓트마이 사원 (씨엠립)

동족상잔의 비극은 대한민국만 가졌던 것은 아니다.
전세계 많은 관광객중 한국 관광객이 가장 가슴깊은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곳!!
킬링 필드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위해 지어진 사원으로, 당시 죽은 사람들의 사진과 당시 크메르 루즈군의 잔혹한 살인 현장을 볼수있다. 그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3분의 1인 250 여만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영화 킬링필드에서도 소개된 내용으로 폴포트 정권(1975~1979)이 통치시기에 학살된 2만여개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한다.


이들이 학살을 당하는 이유는 뭘까?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지식인)

손이 깨끗하다는 이유(지주. 일하진 않았다는)

살이 쪘다는 이유 등 말도 않되는 핑게로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한다.

그때 지식인들의 학살에 대한 공포로 지금도 학교를 멀리하고 문맹률이 60%에 이른다고 한다.

사원내에는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편히 쉬게 해주는 위령탑과 사찰이 있다.

이 곳에 사찰을 짓기 위해 땅을 파다 발견된 유골들을 정리해서 보관해둔 곳은 유리를 통해 유골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1954년 독립을 하게되고, 노로돔 시아누크가 초대 수상이 되었다. 그는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려 전쟁을 할 때(1964년~1975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후방기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지만, 비동맹국 즉 중립노선을 내세워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북베트남이 전쟁물자 이동로로 캄보디아 영토를 이용하는 것을 묵인했고, 미국은 이 전쟁물자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구실로 캄보디아를 폭격해 60~80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를 1차 킬링필드 사건이라고 하는데, 이로인해 시누아크는 정권을 잃고 미국의 지원하에 론롤 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1975년 4월 캄보디아 공산주의 무장단체인 크메르루주가 론롤정부를 전복시키고,  1979년까지 농민과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만든다는 명분아래 200만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이 2차 킬링필드라고 한다.
크메르루즈의 지도자 폴포트는 1975년 베트남에서 미국이 철수하자 론롤 정부를 무너뜨리고, 론롤 정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이유로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고 한다.
학살과정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학살에 동원함으로써 당시의 사회상을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글을 배웠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고 하니 그 숫자가 250만에 이른다고 한다.


사진_김문기<김문기의 포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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