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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서현석 Hyun-Suk Suh, Conductor / 2015년 10월 14일

언제나 푸른바다~ 2016. 8. 9. 14:56

지휘 ㅣ 서현석   Hyun-Suk Suh, Conductor

 
지휘자 서현석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재학시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 음악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독일에 유학하여 Aachen 국립음대 정기연주회의 독주자로 선발되어 연주하였고 Georgen Karloself 교수께 지휘를 사사하였으며, Bedburg시 초청연주회, Pan Music Festival등 많은 연주를 하였다.
 
귀국 후 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의 수석주자로 활동하며 국향, 서울시향, KBS, 대구시향등과 협연하였고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부산시향, 제주시향, 대구시향, 진주시향, 코리안심포니, 원로교향악단, 경북도립교향악단, 원주시향, 광주시향을 지휘하였다. 또한 미국 Riverside시 초청으로 Riverside Philharmonic Orchestra를 지휘하여 `작곡가의 심오한 음악세계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특출함을 지닌 지휘자` 라는 찬사와 호평을 받았다.
 
2003년 미국 L.A와 Riverside시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초청연주>로 현지음악인과 교포들의 뜨거운 사랑과 성원을 받았으며, 2013년 4월 미국 시카고 문화회관 초청 연주를 성공리에 마쳤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 5번의 CD 출반 후. 국내 교향악단으로는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을 기획, 추진하여 교향곡 제1번부터 제9번을 출반, 9개의 교향곡 전곡을 CD로 제작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한국 음악계에 큰 획을 그었다.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에 이어 2009년도부터 브람스 교향곡 전곡 녹음을 진행하여 2011년 전집 음반을 발매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한국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협회상, 이천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화 화관훈장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지휘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작년까지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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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석, 20년 강남심포니와 아쉬운 고별


우리나라 교향악단의 짧은 역사 속에, 20년 이라는 긴 세월을 강남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서현석과 같이 아쉬운 고별을 한 지휘자는 흔치 않았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가 이루어 진 것과 거의 때를 같이 해서 일어난 도립과 시립의 교향악단은 거의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성장해왔지만 기초 자치단체 특히 구 단위의 행정구역으로는 유일하게 서울특별시의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발족해서 20년 간을 굳건하게 이어오고 있다.

강남구는 서울시 안에도 재정 자립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지적 수준이 높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교육환경이 좋은 곳이라고 하지만 구의 지도자와 예술가들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 강남심포니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다. 이제는 강남은 서울의 상징적인 문화지역이 되었다. 물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중적인 선풍을 일으키어 국제적으로 이름을 펼쳤지만 그것이 강남구에 사는 주민들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어쨌든 강남구의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해 연주한 일본의 3대교향악단의 하나인 뉴재펜 필하모니가 3년 전 도쿄의 스미다 구와 협력해서 활동하는 것도 강남심포니의 사례를 많이 본 땄다는 풍문도 들려왔다. 강남심포니는 공식적으로는 1997년부터 발족한 것으로 되었지만 실제는 1995년부터 서현석이 이끌었던 윈드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강남구와 협력해서 많은 연주회를 개최하면서 생기게 된다. 처음에는 윈드오케스트라를 설립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심포니오케스트라로 정착된 것이다.

서현석은 우리나라 트럼펫 주자로서 제2세대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재학 시, 공보부(현 문체부) 주최의 신인예술상에서 관악기 연주자로 대상을 받은 후 트럼펫 연주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1세대의 연주자들은 거의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2세대 연주자들 지금 지휘자가 된 곽 승, 서현석이 트럼펫 연주계의 새로운 영웅들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우리나라 양대 교향악단인 KBS 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초빙의 대상이 된다. 서현석은 KBS교향악단에서 연주자 생활을 시작해서 이 교향악단이 국립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국립교향악단의 일원이 된다. 서현석은 꾸준한 사람이었다. 계속 자기완성과 연마를 계속해서 한양대학교에서 석사학위도 취득한다. 그 뒤 그는 독일에 유학, 아헨에서 트럼펫과 지휘를 공부하게 된다. 그 결과로 그는 지휘자로서의 변신을 택하게 된다. 독일 유학을 마친 뒤, 그는 서울윈드 앙상블을 조직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조직된 관악 앙상블이다. 이 앙상블은 우리나라 관악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윈드앙상블은 지휘하면서 그의 지휘자로서의 역량이 확인된다.

그는 성신여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지휘 활동의 영역을 확장한다. 그 일환으로서 이루어 진 것이 강남심포니이다. 그 동안 69회의 정기연주를 가졌다. 강남심포니는 창단 이후부터 주목할 만한 연주성과를 올리었다. 특히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교향악축제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해 우리나라 유수의 교향악단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인정을 받게 되었다.

초창기 구청의 지원이 약할 때에 단원들이 급료를 챙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것을 그는 연주활동을 증가시키면서 보수들을 챙기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보수는 약하지만 좋은 단원들을 확보하는 것도 서현석의 몫이었다.

그는 온화한 인품과 덕으로 단원들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 대한 집념과 열의에 감복한 단원들과의 교감으로 이끌었다. 우리나라 교향악단으로는 아마도 처음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음반으로 서현석의 지휘로 출시하였다.

서현석과 강남심포니는 일심동체였다. 또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시와 로스엔젤러스에 가서 한국이민 100년을 기념하는 연주회도 가졌고, 미국 시카고에서도 연주를 가졌다. 강남심포니는 예술의전당의 프로그램에 고정 참여하는 믿음직한 교향악단이 되었다. KBS FM의 프로그램을 빛내는 교향악단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음악계에서는 보배 같은 집단이다. 이런 곳에서 서현석이 떠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다. 서현석은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교향악단에서 스스로 떠나게 되었다. 교향악단을 위해서였다. 지난 11월 11일 예술의전당에서는 서현석 예술감독 퇴임기념음악회 라는 이름으로 강남심포니 69회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서현석 지휘로 바그너의 탄호토이저 서곡, 정준수를 독주자를 맞아 막스 브르흐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 그리고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장엄하게 연주되었다.

서현석은 흔들림 없이 정중하게 지휘를 마쳤다. 많은 청중과 단원들은 숙연하였다. 단원들을 올드랜사인으로 고별을 아쉬워했다. 단원들 가운데는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으며, 청중들의 눈시울이 뜨겁기도 했다. 연주 후, 강남구청장은 그에게 뜻을 담아 패를 전달했다. 이 교향악단 운영의 주체인 강남문화재단은 그에게 명예 지휘자로 추대하고 공로패를 전달하였다. 서현석은 창단 지휘자이다. 창단지휘자가 교향악단을 떠날 때 대체를 단원들과 불화, 운영주체와의 갈등, 볼상사납게 떠나는 것이 과거의 전례였다. 그런 사연 없이 떠나는 지휘자는 서현석이 처음일 것이다.

서현석은 원하면 더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원하면 그의 아들 서진(과천교향악단 지휘자)를 그 자리에 앉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갔다. 우리나라 음악계의 귀감이 되는 일이었다.

글_ 이상만(음악평론가, 국제델픽위원회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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