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친구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후배가 생겼다며 나름 뽐내는 시기인데 이 친구는 병실에 항암제를 맞고 있었다. 하나도 없는 머리는 모자로 가리고, 손에는 만화책을 들고, 다리는 흔들며, '선생님 내일은 외출 되는 거죠? 꼭이요. 친구들이랑 영화보러가기로 했어요!!!'라고 외치는 남학생이 있었다.
180cm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 만화 슬램덩크의 서태웅이 떠오를 정도였다. 이 녀석도 농구를 좋아해서 침대 밑에는 항상 농구공이 있었고, 틈틈히 손가락 위로 농구공 돌리기 연습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이불 위에는 '슬램덩크'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이 만화책들은 밤에는 내 차지였다. 저녁에 이 녀석 병실에 가서 만화책을 한아름 뺏어와 옛날 책들은 복습을 하고, 신간은 예습을 하고......
이 학생(이하 태웅이)은 3달전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배를 열고 들어갔더니 이미 복막에 쫘악 전이가 되어 그냥 닫고 나왔다(Open & Close). 그리고, 생명연장과 삶의 질을 위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고, 이미 1,2차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젊고 건장한 체격과 체력 덕에 그럭저럭 잘 버텼다. 이번 5일 간의 3차 항암치료를 위하여 입원했는데 빨리 퇴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간혹 찾아오는 친구들과 퇴원하면 뭘 할지 고민하느라 여념없는 모습에 내 학창시절 생각도 났다. 이 녀석과 친구들이 병동을 들락거리면, 암환자 병동이 생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도 슬램덩크를 보면, 병실에서 빌려보던 태웅이의 만화책이 떠오른다.]
-너무 젊으니까...... 더 빨리 진행하는 암
퇴원하고 얼마가 지났을까? 응급실에서 이 녀석이 와 있다고 호출이 왔다. 배가 빵빵하게 부르다. 복수가 차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주사기로 배를 찔러 2L 정도 복수를 뽑으니 편해졌나보다. 먹고는 싶은데 뭐든 먹으면 자꾸 토한다고 한다. 입원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혹을 형성하는 위암이 아니라 위벽에 스펀지처럼 스며드는 암(Borrmann type IV AGC)이라 위에서 음식물 배출을 직접 막지는 않지만, 위의 소화기능이 없어져서 음식물에 위 안에 고스란이 머물기 시작한 것이다. 미음으로 먹이니 그나마 나아졌다. 어린 나이에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으랴. 친구들이 들고온 과자나 통닭을 먹고 밤이면 토하는 날일 반복되었다. 그래도 놀러오는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락(樂)'을 뺏을 수는 없었다.
급기야 장폐색까지 왔다. CT를 찍어보니 암이 복막에 워낙 많이 퍼져서 소장, 대장의 운동도 저하시키고 완전히 막히기까지 했다. 비위관(Levine tube)를 코에서 위로 삽입하여 위액과 침이 장으로 넘어가지 않고 몸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 입으로는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화를 내거나 울진 않는다. 얼마나 살을 날이 남았는지 묻지도 않는다. 기운이 없어 비틀비틀 간신히 걸으며 비위관을 삽입한 채, 농구공을 들고 병원 뒷편 농구장에 간다. 친구들이 기다린다며.
[이렇게 불편한 비위관(naso-gastric tube)를 삽입한 채로 농구공을 들고 나갔다. 멀리서 보면, 코트 옆에 앉아 있기만 했지만, 그 녀석은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예쁜 여동생 소연이
이 녀석이 병실을 비우면,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 여동생, 소연이(가명)가 남아서 침대를 치우고 책을 정리한다. 착하고 예쁜 예동생이다.
'선생님, 우리 아빠 저렇게 돌아 다녀도 되요?'
'안되지. 네가 좀 말려 봐라. 죽어도 저러고 싶다는데 참...'
'우리 오빠 완치되는 거죠? 대학도 갈 수 있는거죠?'
'......'
항암치료나 CT, 입원 등의 동의는 항상 숙모가 온다. 코 흘리게 꼬마를 손에 달고, 항상 짜증이 많이 나있다. 간호사들은 마귀할범이라고 부른다. 밤 늦게 나타나서는 아픈 애 한테 짜증이나 내고, 여동생에게도 일찍일찍 다니라고 혼을 낸다고 한다. 간호사들에게도 병원비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며 화를 내고. 나도 이 아줌마가 조금 밉다. 하지만, 사정을 알면 이해는 된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이 녀석들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뒤로 아이 둘을 키우며 트럭 운전을 하는 작은 삼촌집에 얹혀 산다고 한다. 이 녀석들의 마음 고생이나 어려운 살림에 갑자기 떠안은 조카들, 엎친데 덮쳐져 버린 이 녀석의 말기위암까지...... 보통의 촌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시련이다.
몇달 동안 간병하다 지친 '소연이'도 숙모가 많이 미워졌나보다. 그 수줍음 많던 소연이가 몇일째 집에도 안들어오고 학교도 안갔다고 한다. 태웅이는 이제 혼자서는 일어서기도 힘들다.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소연이를 찾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태웅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몇일 뒤, 숙모의 손에 끌려 소연이는 병실에 나타났다. 이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에 물도 들이고, 옷도 날티(날날리티의 줄임말)나게 입고.
-몇 주 되지 않아......
태웅이가 너 같은 동생 필요없다고 소리치자,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주저 앉아 소연이는 울고 있었다. 태웅이도 울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태웅이의 약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태웅이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태웅이는 소연이에게만 줄 유서를 예쁜 편지지에 삐뚤빼뚤 쓰곤 했지만, 맘에 안든다며 버리는 종이가 태반, 누가 볼까봐 구겨서 버리는 것이 태반이었다. 떠나기 전 소연이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은 기억난다.
"까부는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작은 엄마,아빠 말씀 잘들어. 그리고, 너 꼭 대학에 가야 된다. 그래서 내가 못 해 본 것들 나 대신 다 해봐야 돼. 안그러면 하늘에서 엄마,아빠랑 기다리다 너 가만 안둘꺼야."
오늘 오전에 만난 젊은 환자분이 유서와 장기기증에 대해서 물어 보시더군요. 아이들이 많이 어린데, 간암이 너무 빨리 진행을 하네요. 누구나 남겨진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마음은 비슷할 것 같아, 옛날 일을 적어봅니다.
- 의료와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