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행사장에서 눈에 띈 것은 이영용 회장(43)이 이끌고 있는 한국 드럼서클 협회의 젬베(Djembe) 공연. 서아프리카 타악기, 젬베의 신나는 북소리가 행사장에서 울려퍼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돌려 흥겹게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고 직접 참여해 젬베를 쳐보기도 했다.
'꽁지머리'를 한 그가 북을 메고 공원에 나타나자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북을 치기 시작하니 주위의 시선을 뚫고 초등학생 두명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 악기가 뭐예요?" "젬베. 남아프리카 사람들이 치는 북이야. 같이 한번 해볼래?" 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즉석 연주를 시작했다. "저는 플룻을 하는데, 연습할 때 박자가 너무 어려워요." 그의 답변은 이랬다. "음악엔 정답이 없어. 네 마음대로 박자를 맞춰보렴." 그가 손바닥으로 북 가운데를 치며 둥~ 둥~ 길게 소리를 내자 아이는 북 가장자리를 치면서 장단을 맞췄다. "어? 재미있어요." 아이의 반응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 음악은 어렵지 않아. 자기가 원하는 이야길 하는 거야."
신부전증 아들 위해 음악 재개
'남녀노소 즉흥연주'에 푹 빠져… "연주단 만들어 월드컵 응원 계획"
드럼서클협회 이영용 회장(39). 그는 음악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다. 세상에 잘못된 인생이 없듯, 잘못된 소리도 없다고 그는 믿는다. 그가 이끄는 드럼서클은 여러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북이나 드럼 같은 타악기를 이용해 흥겨운 리듬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일을 가리킨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 수는 두 명만 넘으면 된다. 모여서 내키는대로 두드리면 끝. 우리나라 굿이나 아프리카 민속축제처럼 어느 민족이든 갖고 있는 음악의 원형질 같은 모임이기에 기원을 따지긴 힘들다. 대중화한 건 70년대 미국에서 히피 문화가 싹을 틔우고 일종의 문화운동의 성격으로 전파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 회장은 2002년께 드럼서클을 알게 됐다. 97년 태어날 때 난산 후유증으로 신부전증을 앓던 아들 윤겸이(10)를 생각하며 음악으로 아이들을 치유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때였다. 대학 때 작곡을 전공했지만, 결혼 뒤 기교와 자본을 앞세운 현대 음악에 염증을 느껴 음악을 떠났다. "음악 연주가 소수의 전유물이 되고, 자본과 결합해 상품화·박제화 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하던중에 아들의 병을 계기로 만난 드럼서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인터넷을 통해 드럼서클을 접하곤 "온몸이 떨렸다"고 했다. 그때부터 미국 시애틀, 하와이 등지에서 열린 대규모 드럼서클 행사에 참석했다. 아예 생업을 접고 지금까지 전주국제소리축제, 임진각 세계평화축전 등에서 100여회 정도 퍼실리테이터(도우미)로 드럼서클 행사를 열었다. 아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엄하게 아이를 키우던 일을 넘어서서 눈을 자주 마주치고,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덕분에 아이에게 점점 자신감이 붙고, 성격도 밝아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말로 하기 힘든 이들에게 음악은 좋은 도구가 되죠.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잘 하고 못 하고 가치를 따질 수 있나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화 한가지. 몇년 전, 노숙인들을 상대로 공원에서 드럼서클을 할 때였다. 한바탕 연주가 끝났는데 어떤 노숙인이 눈물을 흘리며 다가와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노숙인은 "내 평생 이렇게 신나고 후련하게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고맙다"고 했다.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 악보를 벗어나 살아있는 음악의 힘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번 월드컵 때 그는 협회 사람들 30~40명을 모아 드럼서클을 만들어볼 예정이라고 한다. 소고, 북, 장구, 페트병, 젓가락, 풍선 등을 악기로 쓸 참이다. 아니, 악기가 없어도 좋다. 입으로 소리를 내도 좋고, 추임새만 넣어도 좋고, 어깨춤만 춰도 좋다. 남은 바람은 아이의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해지는 일, 그리고 음악 공동체가 힘을 발휘해 지친 이들의 영혼을 치유하도록 돕는 일이다.
"마음의 떨림을 전하세요. 음악은 원래 영성의 도구였잖아요. 젬베를 칠 때 땅의 영혼이 울려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는 남아프리카인들처럼요."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드럼서클 정답도 경쟁도 "NO"
이영용 회장은 드럼서클을 '음악 공동체'라고 한다. 여럿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번이든 백번이든 다 같은 소리다. 모든 소리는 중요하다. 젊은 사람이 아무리 기교를 부려가며 수백번 북을 두드려도 톡, 톡, 한번씩 북을 쳐주는 노인들보다 결코 잘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드럼서클 연주를 할 때는 못 하는 사람, 잘 하는 사람 구분도 없다. 못 하는 사람이 잘 하는 사람에게 묻어갈 수 있고, 잘 하는 사람이 못 하는 사람을 이끌 수 있다는 게 드럼서클의 '공동체성'이다.
가장 신날 때는 아주머니들과 드럼서클 연주를 할 때다. 박자와 소리가 다양할수록 연주가 재미있는데, 아주머니들은 쉽게 마음을 열고 다양한 소리를 인정해준다고 한다. 반면 가장 어려운 이들은 남자들, 청소년들이다. 특히 남자 청소년들은 경쟁과 중압감에 짓눌려 남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겨워할 때가 많다.
"악기를 배우는 아이들은 많아요. 하지만 독주 악기 교육은 못 하는 사람을 도태시키는 것이라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죠. 공동체 음악에는 정답도 없고, 경쟁도 없어요. 월드컵 때 누가 응원을 잘하는지 가린 적이 있나요? 하하." (www.drumcircle.co.kr)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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